발행. 노동해방실천연대(준)     홈페이지. www.hbyd.org     Tel. 02-2275-1910     E-mail. hbyd@jinbo.net

  본격화된 대공황과 반자본주의투쟁

  상황이 급박하면 썩은 동아줄이라도 잡아보려는 것이 사람의 심리일까? 올 해 초, 다보스포럼에 모여서 자본주의는 끝났다고 넋두리를 하고 있던 자본가계급은 그래도 하반기 정도가 되면 경제가 호전될 것이라는 바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2012년의 절반이 지난 지금, 전세계 자본주의는 회복은커녕 그 끝을 모르는 대공황의 심연으로 빠져들고 있을 뿐이다. 그리스를 시작으로 한 유럽경제의 위기는 이제 뉴스거리도 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은 고용, 소비지표의 악화가 완연히 드러나면서 제 3차 양적완화 논의가 스멀스멀 나오고 있다. 미언론은 미국경제를 ‘좀비’니 ‘몽유병환자’니 떠들어대고 있다. 실상 ‘좀비’라는 표현은 미국자본주의뿐 아니라 현재의 자본주의 체제에 더 어울리는 표현일 것이다.
  사회주의자들이 자본주의의 공황을 중요하게 바라보는 것은 단지 대공황이 노동자계급과 민중에게 끼치는 막대한 피해 때문만은 아니다. 한편에서는 넘쳐나는 생산물과 생산능력으로 위기에 빠지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기본적인 삶의 조건조차 확보되지 못한 채 고통받게 되는 공황은, 인간의 필요 충족이 아니라 자본가들만을 살찌우는 이윤 추구가 목적인 자본주의의 본질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따라서 공황은 자본주의가 왜 인류 전체를 위해 존속해서는 안되는 체제인지, 극복해야하고 극복할 수 있는 체제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계기가 된다.
  현재의 대공황은 우리가 기본적인 인간다운 삶조차 확보하지 못한 채 고통스러워하게 되는, 문제의 원인이 바로 자본주의에 있다는 것을 모든 이들에게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계속되는 대공황의 여파 속에서 자본주의에 맞선 노동자, 민중의 투쟁이 공양되는 계기가 마련된다. 2011년부터 전세계적으로 본격화되고 있는 거대한 대중투쟁은 바로 이러한 맥락 속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반자본주의투쟁을 가로막는 장막을 걷어내자


  이러한 전세계적 상황을 고려한다면, 한국에서도 거대한 반자본주의 대중투쟁의 고양을 기대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한국 역시 대공황 이후 계속 삶의 악화를 겪고 있다. 20-30대는 삼포세대라는 자족적 표현으로 대변되고 있으며, 대학생들은 학자금 대출을 갚지 못해 죽음을 택하고 있기도 하다. 서울시 한복판에서는 쌍용차 정리해고 노동자들이 몇 달째 천막을 치고 투쟁을 하고 있으며, 비정규직 문제 역시 철폐되기는커녕 양산하는 법안이 발의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 모든 원인이 자본주의에 있다고 부르짖고 자본주의에 맞선 싸움을 만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상황이 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이와는 온도차를 보이고 있다. 반자본주의 대중투쟁은커녕 끈질긴 투쟁을 하는 곳에서조차 자본주의를 공격하는 발언을 듣기가 매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해방연대는 2011년 하반기 ‘반자본주의 정치투쟁체’를 제안한 바 있으나(해방 68호) 실질적인 투쟁의 흐름을 형성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현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반자본주의 대중투쟁이 노동자들의 투쟁의 자연스러운 귀결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반자본주의 투쟁이 형성되지 못하고 있는 것 자체가 오히려 이례적이라고 할 정도이다.
  체제의 착취와 억압을 은폐하는 자본주의의 고유한 특징은 이러한 상황에 일조하고 있다. 자본주의는 생산에서 착취계급과 피착취계급사이의 관계를 명백하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동등한 개인들의 계약관계로 현상되기 때문에, 자본주의적 착취의 본질은 은폐되어 버린다. 더욱이 시장, 상품판매, 화폐 등 자본주의의 기본적 요소들은 인간의 본성에 기반을 둔 자연스러운 산물인 것처럼 간주되기 때문에, 자본주의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를 봉쇄하고 “나쁜” 자본주의를 “인간적인” “새로운” 자본주의로 바꿔야 한다는 생각을 야기한다. 특히 조·중·동 뿐 아니라 한겨레, 경향 등 주류언론들은 이러한 생각을 최근 더욱 유포시키면서 대중들이 ‘문제는 자본주의’라는 인식을 갖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 우리에게 학습을 통한 사상무장이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러한 자본주의의 특성 때문이다.
  그러나 반자본주의 대중투쟁에 대한 또 다른 장막은 바로 투쟁하는 우리 스스로일 것이다. 투쟁하는 주체들 스스로가 자본주의의 최대 피해자이면서도 자본주의에 맞선 싸움을 분명히 하고 정면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아니 오히려 반자본주의는커녕 지금까지 해왔던 경제주의, 조합주의 투쟁을 답습하는 퇴행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변혁적 현장실천과 노동자계급정당 건설을 위한 전국 활동가 모임”은 그 대표적인 경우라 할 수 있다. 이 모임은 사회주의는커녕 반자본주의 기조도 분명히 하지 못한 채, 노동조합의 현안 요구 투쟁을 잘하자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지금까지의 모습을 볼 때, 이 모임이 말하는 ‘변혁적’이라는 수식어에는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궁금하다. 정치세력화에 대한 입장은 통진당 사태 이후, 통진당 몰락으로 발생한 정치적 공백을 차지하려는 수준의 대응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이 모임의 정치세력화의 논의는 15년전 민주노동당을 처음 시작했을 때의 논의수준을 축소된 역량 속에서 다시 반복하고 있을 따름이다. 결국 반자본주의, 사회주의를 내걸기는 부담스럽지만 현장에서 뭔가 정치적 행보는 보여주어야 하는 조합주의 활동가들에게 대선시기 알리바이를 제공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에 그칠 수밖에 없다.

  시대적 과제에 부응하고 시대적 투쟁을 전개하자


  실패할 것을 알면서도 실패할 길을 가는 것은 현명한 자들의 길이 아니다.
  반자본주의 투쟁을 거대한 대중운동으로 만드는 것은 대공황으로 고통받고 있고, 이 고통이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는 노동자대중이 스스로를 구원할 유일한 길이다. 투쟁의 선봉에 선 사람들이라면, 바로 이러한 시대적 과제에 부응하는 투쟁에 선봉에 서야 할 것이다. 좀비가 된 자본주의와 싸우는 것은 회피하면서, 조합주의적 정치공학에 빠져 이전부터 밟아왔던 구태의연한 길을 걷고자 한다면, 결국 또 다른 실패를 낳게 될 것이다.
  문제는 자본주의이다! 대대적인 반자본주의 대중투쟁을 형성해가자! 이렇게 형성된 대중운동 속에서 사회주의 운동의 굳건한 토대를 형성해가자!

황정규

[71호] 국가보안법 철폐! 사회주의정치활동 보장! 우리는 탄압을 뚫고 당당히 투쟁할 것이다
[70호] 부르주아정치, 소부르주아정치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사회주의노동자정치만이 대안이다
2 | 쟁점 ①
사회주의정당 건설을 포기하고 노동자정당 건설에 투항하는 사회주의세력들
- 사회주의정당 건설이라는 역사적 과제에 우직하게 복무하자! -

3 | 쟁점 ②
단 한사람의 올바른 인식과 적극적 행동이 어설픈 총파업보다 낫다
4 | 정세 ①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는데 비용이 너무 들고 있다
5 | 정세②
신자유주의 대학체제를 넘어 대학통합네트워크로
6 | 이슈 ①
경제민주화와 그 적들
7 | 이슈 ②
‘대선 블랙홀’은 마이너스 삶을 품지 않는다
8 | 생태 ①
반핵투쟁, 반자본주의투쟁으로 발전해야
9 | 생태 ②
리우+20 정상회의, 녹색 자본주의의 찬가인가, 반자본주의 투쟁의 서곡인가
10 | 시리즈
[칼럼] ‘사상검증’의 벽을 무너뜨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