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월 28일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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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민주화와 그 적들
문창호  ㅣ  2012년7월28일

과거로 회귀한 것처럼 다시 ‘민주화’라는 말이 대세가 되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경제를 민주화하자고 한다. 여기에는 박근혜와 문재인 등의 대선후보들의 역할이 크다. 여야할 것 없이 경쟁적으로 경제민주화 공약을 발표하고, 서로를 사이비라고 힐난한다. 이런 차원에서 보자면 경제민주화 담론의 본질은 5년 전의 ‘747공약’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선거동원의 이데올로기이다. 지키지 않을, 지킬 수도 없는 장밋빛 미래에 대한 약속. 그리고 별 기대를 하지 않으면서도, 찍어주는 이유는 있어야 하기에 속아주는 유권자. 우리는 권력을 향해 시동을 건 거짓말들의 여정을 보고 듣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거짓말의 향연 속에서도 일말의 진실을 찾아볼 수 있다면, 그것은 경제민주화가 대두된 배경인, 민중들의 절박해진 삶이다. 97년 이후로 15년간 비정규직화와 정리해고, 반복된 경제위기로 사회의 빈곤화·양극화는 갈수록 확대되고 있고, 다가올 부동산거품과 세계경제의 붕괴 앞에서 삶은 몸서리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들의 해결이 경제성장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는 사실, 성장의 과실을 소수의 기업과 부자들이 독차지하고 있는 현실이 민중의 의식을 깨우고 있고, 경제민주화를 호출하고 있다.


진일보한 문제의식

성장만능주의의 새빨간 거짓말, 기업과 부자들의 반사회적 탐욕에 대한 인식을 어느 정도 전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경제민주화 논의에는 진일보한 측면이 있다. 또 성장과 분배의 이분법적 구도에 비해서도 발전적이다. GDP같은 경제총량을 우선 키우느냐, 당장 나누느냐의 조야한 문제설정에 의해, 경제문제를 야기하는 ‘부당한 지배’에 대한 문제의식은 실종돼왔다. 자유시장론자들의 종교에 따르면, 시장은 자유로운 경제주체들의 동등한 계약관계에 근거하며, 따라서 경제문제는 투자와 소비, 또는 노동과 여가 같은 것들 사이의 자유로운 선택들에 걸려있는 기회비용의 계산과 동일시되었다. 성장과 분배 사이의 논의도 결국은 국민경제의 장기적인 생산성에 어느 게 이익이 되는지 따위의 기술적 논쟁에 불과했고, 이는 경제학자의 밥벌이에는 중요하겠지만 민생고의 긴박한 해결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 이에 비해, 경제민주화 논의는 재벌과 중소기업·소상인 사이, 기업과 노동자 사이의 동등하지도 공정하지도 않은 관계를 문제시하고, 또 경제를 시장질서에만 맡길 게 아니라 민주적 합의에 맞추어 운영해야 한다고 여긴다는 점에서 경제학의 위선과 무능을 넘어서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자본주의 자체


경제운영에 정치적 가치를 도입하려 하고, 마치 맑스 시대의 정치경제학이 귀환하려는 듯한 조짐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대선후보들 간의 경제민주화 논의의 진정성에 대한 의심은 차치하더라도, ‘경제’에 ‘민주화’를 갖다 붙인 정도로 우리 시대의 과제가 해결되리라고 바라기는 난망하다. 지난 시대에서 정치민주화를 요구했을 때, 그 의미는 군사정권과 권위주의 체제를 타도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오늘날 경제민주화를 요구할 때, 그 적들은 누구이고 무엇인가? 과연 재벌과 불공정한 시장관행, 소수에게 집중된 경제적 의사결정만일까?

기업지배구조 및 불공정거래 개선, 기업이사회 개방, 재분배 정책 같은 개혁마저도 매우 힘겹다고 항변하겠지만, 우리 시대는 망가진 경제를 민주적으로 수선하는 정도가 아니라 문제적 경제체제 자체를 뒤엎는 노력을 요구하고 있다. 사실 대외의존도가 80%를 넘어서고, 국가경쟁력이 재벌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까닭에 국가 전체가 재벌의 경쟁력 강화에 볼모로 잡혀 희생되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재벌을 개혁하고 상생, 동반성장할 수 있다는 믿음부터가 비현실적이다. 진정한 문제는 자본의 논리이고, 세계시장을 향해서 극소수가 독차지하는 이윤만을 위해 만들어진, 그래서 민생과의 연계를 잃어버린 생산체제 자체이고 그 재구성이다. 또한 세계경제의 장기침체와 단일세계시장의 붕괴가 현실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몇몇 복지정책에 대한 논쟁 역시 한가하다. 긴요한 문제는 동력을 잃고 있는, 이윤만을 위한 자본주의적 생산을 민중의 필요를 직접 충족시키는 사회주의적 생산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들이 자본의 지배에서 비롯하고, 자본은 타인의 노동을 무상으로 취득하는 악의적 능력에 불과하며, 그 능력은 노동자가 스스로에 대한 통제권을 포기하고 있는 현실에 기인한다는 점을 인식함이 시대적 과제 해결의 첫걸음이다.

경제민주화 담론이 정치놀음에서 벗어나 극복의 대상을 올바르게 분별하고 목표할 수 있다면, 반자본주의로의 진화 가운데서 새로운 상상력의 자양분이 될 수도 있다. 반대로 ‘민주화’라는 역사적 기억의 오용과 남용에 불과한 상태로 계속 남는다면, 자본의 지배를 넘어서려는 진정한 민주주의 실현의 장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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