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월 28일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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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는데 비용이 너무 들고 있다
- 한국경제위기의 질적변화가 시작된 2012년 -
김광수  ㅣ  2012년7월28일

과다한 체제유지비용에 시달리는 한국경제

지금 세계경제의 애물단지로 전락한 유로존 국가들의 딜레마는 유로존을 유지하자니 돈이 너무 많이 들고, 유로존을 해체하자니 그것도 돈이 너무 든다는 거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에 빚관리 하시느라 유럽각국의 재무장관들 흰머리가 늘고 있다.
역사적으로 체제유지비용의 과다는 체제붕괴로 이어졌다. 로마는 정복전쟁으로 늘어난 국경수비를 위해서 로마인을 차출하는데 너무 많은 비용이 들자 처음에는 로마병사들과 현지인들의 혼혈병사를 쓰다 그것도 어렵게 되자 현지 야만인들을 로마군단에 받아들이다 결국 망했다.

봉건체제는 귀족들이 귀족신분을 유지하기 위한 비용이 증가하자 도시의 상인들에게 빚을 내쓰게 되고 이를 변제하려고 소작인들에게 과다한 현금지대를 수탈하다가 결국 무너지게 되었다.

지금 독일을 제외한 유럽각국은 소비자들의 파산에 거덜이 난 은행을 유지하기 위해 정부가 빚을 내고, 그 빚을 변제하거나 더 늘릴 방법이 없어 망하기 직전이다. 미국이나 일본도 예외는 아니다. 사태가 이 지경이지만 자본주의가 몇개월안에 폭삭 주저앉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려는 노력은 과거에 비해 더욱 많은 사람들의 고통을 요구하게 되었다. 살인적인 실업률, 88만원세대의 영구화, 자영업자의 몰락, 빈국들의 농민들 몰락, 이 모든 것이 자본의 이윤을 유지하고 은행들의 번영을 위해 치루어야 할 비용이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유지하는 비용은 경제, 사회적으로 그 전 세대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규모가 커졌다.

이는 한국경제라고 예외일 수 없다. 지금 한국경제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유지하기 위해 빚을 내고 사람들을 사지로 내모는 일을 서슴없이 자행하고 있다. 그리고 그 정도는 더욱 심해질 것이다. 이것이 각종 낮은 성장률이나 수출증가율, 떨어지는 부동산가격 같은 경제지표보다 정작 사람들을 우울하게 하는 것들이다.



빚을 내 집을 산 당신은 체제유지자

 
시장경제를 유지하는 것은 상품경제를 유지하는 것이다. 상품경제란 인간의 손이 닿는 거의 모든 것을 사고파는 물건으로 만드는 것이다.
지금 한국경제의 시한폭탄으로 지목받는 것이 주택가격 붕괴와 그에 따른 가계부채 폭발이다. 그런데 이말은 주택 거래가격이 폭락함으로서 일어나는 상품으로서 주택의 위기다. 최근들어 대부분 가계에서 가지고 있는 자산이라곤 집이 전부고, 저축은 거의 없는 상태가 되었다. IMF 직후 25%대였던 가계 저축율은 이제 4%이하로 떨어졌다. 가계의 돈은 집에 다 잡혀있다. 지금 빛을 내서 집을 샀다가 집값이 빌린 돈보다 더 떨어진 집들이 속출하고 있다. 이런 집은 경매를 해도 은행이 본전을 못 건진다. 사람들이 살기에 멀쩡한 집이지만 시장에서 “부동산”으로서 역할은 끝이 난 것이다. 

건설업자가 아파트를 지었는데 사려고 하는 사람이 없다면 건설업자는 아파트를 짓지 않는다. 결국 민간이 공급하는 아파트가 적정한 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집이 팔려야 한다. (민간업자의 주택공급비중은 여전히 70%가 넘는다)

지금 상품의 역할을 잃어버린 집들을 상품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은 지금보다 더 빚을 내 집을 사도록 유도해야 한다. 그래서 이명박대통령은 청와대에서 경제위기 대책회의 9시간 회의를 해서 고작 건진 결론이 DTI 규제완화다. 주택담보로 쉽게 빚을 내게 해주자는 거다. 만약 이를 통해 부동산거래가 활성화된다면 가계부채 1,000조 시대는 앞으로 1,100조, 1,200조로 확대되게 되어 있다. 주택을 상품으로 만들려면 개인들이 빚을 더 져야 한다. 이런 것을 토건국가의 체제유지비용이라고 하는 거다.


체제유지 비용은 도처에 널려 있다

 
이런 사태가 비단 부동산의 문제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님은 삼척동자도 안다. 보육, 교육, 의료를 시장의 영역으로 남기기 위해서는 어린이집, 유치원 보육비는 적정수준을 유지해주어야 한다. 등록금은 사립재단이 생존하기 위해 충분히 높아야 한다. 의료비는 의사와 약사를 위해 적정한 가격이 되어야 한다. 이를 완화하려면 정부가 돈을 보조금 형식으로 내 놓아야 한다. 실제 그렇게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끊임없이 과다진료가 문제가 되고, 사학재단의 폭리가 문제가 된다. 노동력을 사서 이윤을 거두려고 하니, 노동력을 아끼려고 하고, 학교와 병원에서 그리고 보육원에서 저임금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가 넘쳐 난다. 게다가 의료부문의 경우, 사회적 필요라는 이유로 가격도 공급자가 결정하는 일이 벌어진다. (이번에 시범 시행되는 포괄수가제는 이런 독재를 완화시키겠다는 거다)

게다가 버스처럼 이미 준공영제를 실시하여 지자체의 보조금이 천문학적으로 버스업자에게 들어가지만 사기업 형태를 유지하면서, 우리사회는 비정규직 기사가 운행을 하고, 업자들과 정치권이 유착되는 꼴을 지켜만 봐야 한다.

생산을 자본가의 지휘하에 남겨 놓으면, 생산은 판매를 위해 이루어지고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생산비는 절약되어야 한다. 특히 노동력은 절약되어야 한다. 이러니 실업자가 늘어나는 것이다. 경제성장율 10% 시대면 몰라도 한국경제에서 이것은 진실이 되었다. 청년실업자들아 당신들의 모욕적인 권태는 체제유지비용이다!

모든 생산업자들이 과다생산에 의해 재고가 쌓이고 나중에는 결제를 못해서 부도가 나는 것에 대한 공포를 갖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경쟁상대를 이기기 위해 생산능력을 키우는 것에도 비상한 관심을 기울인다. 이러니 시시때때로 과잉생산공황이 발생하고 유휴생산시설이 전 세계에 널려 있게 된다. 자원의 낭비가 체제유지비용으로 정당화되고 있다. 고철 무시하지 마라! 체제유지의 희생양이다.  

금융자본이 계속 이윤을 남기기 위해서는 빚을 내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국가는 신용카드 사용을 찬양하고, 빚내어 집을 사라고 고무하고, 등록금도 대출하라고 하신다. 이 모두가 자유민주 질서와 시장경제를 유지하는 올바른 국가관을 가진 사람들을 육성하는 국가의 노력이다. 


체제유지의 고통이 늘어나는 지금 노동자계급의 선택은?


자본주의 체제가 유지되기 위해 전가되는 고통의 크기를 말한다면 노동자계급이 다른 계층보다 더 크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고통이란 주관적인 성격이 있어서, SSM 때문에 자살에 이른 자영업자의 고통을 해고된 노동자보다 결코 적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세상이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를 맞아 노동자들을 주목하는가?

그것은 노동자들이 바로 이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가장 결정적 관계, 즉 임노동관계의 중심에 있기 때문이다. 임노동관계란 노동자들이 노동력을 판매하고, 이를 구매하여 생산이 이루어지는 관계를 말한다. 임노동관계를 유지하는 비용은 자본주의가 잘 나갈 때도 엄청났다. 노동력 판매비용, 즉 임금을 높이기 위해 노동자는 파업도 하고 시위도 해야 했고, 경찰이 동원되고, 세상은 불편했다. 만약 이러한 비용을 치루지 않았다면 진작에 자본주의는 노동자들의 혁명에 무너졌을 것이다. 자본은 그동안 이 비용을 줄이기 위해 노동의 유연성을 높이네 하면서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이주노동자를 불법으로 고용하고, 노조를 파괴하고, 아웃소싱을 하는 등 발악을 해왔다. 그러나 그렇게 자본이 임노동관계 유지비용을 낮추기 위해 노력한 결과, 자본주의 임노동관계는 갈수록 혐오스럽고 비인간적인 것이 되어 가장 추악한 형태를 띠게 되었다. 정리해고된 노동자들 특히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의 이어지는 자살은 그 대표적인 예다. 작년 한진중공업때부터 이런 임노동관계의 추악한 모습은 사회적 공분을 사고 있다.

체제를 유지하는 비용은 자본가들이 내지 않는다. 청년실업에 몰려 있는 젊은이들, 취업하자마자 빈곤상태에 놓이게 되는 비정규직들, 살인적인 대학등록금에 알바를 전전해야 하는 대학생들, 빚내 산 집이 깡통이 되어 사실상 거덜이 난 사람들, 대기업에 밀려 생계를 위협받는 자영업자들, 이 모두가 내고 있는 것이다. 자본가들, 그중에서도 독점자본가들이 내는 비용이란 욕먹는 게 거의 전부다. 물론 공황이 오면 파산하는 자본가들도 있고, 경쟁에 밀려 노숙자가 되는 사장들도 있으며 노동자들의 투쟁에 눈물을 머금고 금고에 있는 돈이 털리는 때도 있다. 그러나 다수의 사람들이 내는 비용이란 정말 소중한 생명과 가정의 행복과 공동체의 파괴다. 이제는 선택해야 한다. 이 혐오스런 체제유지를 위해 기꺼이 비용을 낼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체제를 위해 싸우는 비용을 감수할 것인가? 세상에 공짜는 없다. 하지만 어차피 감수해야할 희생과 비용이라면 제대로 된 곳에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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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정당 건설을 포기하고 노동자정당 건설에 투항하는 사회주의세력들
단 한사람의 올바른 인식과 적극적 행동이 어설픈 총파업보다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