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월 28일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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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사상검증’의 벽을 무너뜨리자
박남일  ㅣ  2012년7월28일

우리사회에서 생각을 통제하는 건 국가보안법뿐만 아니다. 남한 자본주의체제는 시도 때도 없이 ‘색깔론’으로 인민의 사상을 통제해왔다. 빨갱이, 용공좌경, 좌익사범, 친북, 종북 등 제멋대로 용어만 뒤집어씌우면 그만이었다. 국가주의 논리를 따르지 않으면 누구나 ‘불순분자’이며, ‘국가관이 의심스럽다’는 한 마디면 누구든 자라모가지처럼 움츠러들게 했다. 그 때문에 남한 사회의 변혁운동은 번번이 사상검증의 칼날 앞에서 무너지곤 했다.

이런 현상은 단지 지배세력의 공세 때문만은 아니었다. 변혁운동 주변에서, 심지어 그 내부에서 휘두른 자기검열의 칼날에 깊은 상처를 입곤 했다. 바람이 불기도 전에 먼저 쓰러지는 풀잎처럼. 그런 의미에서 지난 4.11총선 후 통합진보당 안에서 불거진 ‘애국가 타령’은 진보를 참칭하는 기회주의 세력이 자기검열의 덫에 걸려 일으킨 한편의 해프닝이었다.  

사실 통합진보당의 사상검증은 지난 1월 창당 때부터 시작되었다. 다들 알다시피 과거 민주노동당은 당내 행사에서 국민의례 대신 ‘민중의례’를 해왔다. 맹목적 국가주의에 대한 저항의 표현이었다. 하지만 통합을 앞두고 국민참여당 쪽에서 ‘국민의례’를 주문했다. 그에 따라 통합진보당은 애국가 합창만 뺀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게 되었다. 사상검증에 대한 절충이었다.

 



사상검증에 무너진 자칭 ‘진보’ 세력

하지만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4.11총선 후, 경선 부정 등 당내 민주주의 문제로 소란스러운 틈에 유시민의 ‘애국가 타령’이 불거졌다. 총선 평가 자리에서 유시민은 “애국가를 부르지 않는 게 그렇게 가치 있는 일인가?”라고 물었다. 애국가를 안 불러 총선 과정에서 어렵다는 말과 더불어 두 번째 사상검증을 시작한 것이다.

유시민의 갑작스러운 문제제기에 대하여 당 일각에서는 “개인 의견인 것 같은데 오늘 논의 대상은 안 된다”라는 취지로 얼버무렸다. 또 심상정, 노회찬, 강기갑 등 과거 민주노동당 인사들은 “지금 입장이 없다”며 답변을 피했다. 그로써 과거 진보정당 운동의 유의미한 부분까지도 모조리 부정해버린 것이다.  

하지만 이 사건은, 부르주아 세력이 통합진보당을 향해 ‘애국가도 부르지 않는 정당’이라고 비판하는 신호탄이 되었다. 이와 더불어 구당권파에 대한 ‘종북몰이’는 정점을 이루었다. 당 안팎의 자유주의자들도 ‘진보정당’의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며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자유주의자들은 ‘경선 부정’이라는 틈새에 집요하게 지렛대를 밀어 넣으며, 주체사상에 뿌리를 둔 구 당권파 전체를 뒤집어버렸다.

사실 통합진보당 출범 당시 당 안팎에서는 자유주의자들과의 통합에 대해 반대의 목소리가 높았다. 하지만 구 당권 세력은 듣지 않았다. 그리고 한 침대 누워 각기 다른 꿈을 꾸게 되었다. 하지만 그들은 한 지붕 아래 들어온 자유주의 세력의 사상검증에 허둥대다가 결국 손발을 들고 말았다. 음모론이니 뭐니 하며 후회해 본들 때는 이미 늦었다. 그야말로 초라한 희극이었다.

이처럼 남한 사회에서 ‘사상’과 ‘이념’은 용어 자체가 금기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해묵은 색깔론이 여전히 힘을 얻고 있다. 그렇다면 이 고질적인 금기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사상검증과 도덕검증의 교묘한 결합

남한 현대사에서 사상검증은 무시무시한 공포를 일으켜왔다. 그 최대의 비극은 ‘국민보도연맹사건’이었다. 1949년에 결성된 국민보도연맹은 좌익 인사들을 전향시켜 보호하고 인도한다는 취지로 결성되어, 무려 30만 명이 가입한 조직이었다. 대한민국 정부 절대 지지, 북한정권 절대 반대, 공산주의 배격 등을 강령으로 내세운 반공단체였다. 그러나 이듬해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이승만 정권은 이들에 대한 무차별 검속(檢束)과 즉결처분을 통해 대략 20만 명에 대한 집단학살을 단행했다.

국가가 자국의 비무장 인민을 이 정도로 학살한 예는 세계 역사상 유래가 없었다. 신변 안전을 위해 찾아 들어간 ‘사상의 검색대’는 도살장으로 통하는 정문이었다. 이 엄청난 역사적 비극은 남한 인민에게 무한대의 트라우마를 남겼다. 그리고 지배 권력은 자신들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이러한 트라우마를 자극하여 권력 유지의 수단으로 활용했다.

예컨대 1980년 광주민중항쟁 과정에서 신군부는 색깔론을 제기했다. 광주에서 간첩을 검거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이에 지역 명망가들로 구성된 '5.18사태 수습 대책 위원회'는 무장을 해제하고 투항할 것을 주장했다. 하지만 시민군 일선 지도부는 결사항전을 다짐했다. 결과적으로 이들 ‘투항파’의 협상 시도는 계엄군에 의해 거부되었다. 그리고 5월 27일, 계엄군은 도청에 무자비한 최후공세를 가해왔다.

사상검증은 때로 ‘도덕검증’을 앞세우기도 한다. 1991년 4월 26일. 명지대 생 강경대 타살로 촉발된 분신자살 사태가 이어지고 있었다. 전남대생 박승희를 필두로 김영균·천세용·김기설·윤용하 등이 정권 퇴진을 외치며 분신으로 생을 마감했다. 이 비극적 상황을 진정하고자 전국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유가협)는 5월 4일, 기자들 앞에게 성명을 발표했다.
 
“우리에게는 더 이상의 열사가 필요치 않다.… 새날이 올 때까지 살아서 싸우는 것만이 진정한 투쟁의 길이다.”

그런데 바로 다음날, 과거의 민주화운동가 김지하가 도덕검증, 사상검증의 나팔을 불었다. 김지하는 <조선일보>에 실은 칼럼에서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우라’고 했다. 그는 ‘죽음의 찬미를 중지하라’며 젊은 학생들 배후에 ‘검은 유령이 배회하고 있다’고 협박했다. ‘네크로필리아 시체선호증’이니 ‘자살특공대’니 하는 말로 운동진영 전체에 대한 도덕 공세를 감행했다.

그로부터 며칠 뒤, 전민련 사회부장 김기설이 분신했다. 그러자 정권은 기다렸다는 듯이 저 유명한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사건’을 터뜨렸다. 이념과 도덕을 교묘하게 결합시킨 공세였다. 이 조작된 도덕검증은 주효했다. 결국 운동진영은 심하게 흔들렸다. 게다가 그해 여름에 소련에서 날아온 사회주의 부고장은 조직된 대중에 의한 체제 저항운동의 싹을 잘라버렸다. 그리고 이듬해에 가수 정태춘은 “다시는 종로에서 깃발 군중을 기다리지 마라. 기자들을 기다리지 마라(‘92년 장마 종로에서’)”고 목 놓아 노래했다. 

발뺌하지 말고 사상의 검색대를 거부하라
 

이제는 한국전쟁의 상흔도 두 세대가 지났다. 어느새 자본주의 체제도 내리막이다. 그럼에도 대다수 인민의 자발적 복종은 견고하다. 이념과 사상에 대한 금기도 아직 무너지지 않았다. 여전히 ‘국가관’이라는 이름으로 일상적인 사상검증이 행해진다. 말단 공무원도, 말단 회사원도 밥벌이를 위해서는 사상검증의 사슬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더욱이 현실 권력의 언저리에서는 여전히 해묵은 사상검증이 코미디처럼 행해진다.

지난해에 서울시장 보권선거에 출마한 박원순은 선거 전에 열린 관훈클럽 토론에서 천안함 침몰이 누구의 소행이냐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이때 박원순은 "북한 소행이라고 믿는다"고 답했다. 하지만 스스로도 그 믿음에 확신이 없었던지 "정부가 북한을 자극해서 억울한 장교들이 수장되는 결과를 낳았다"며 사족을 달았다. 처음 답변은 좌파 지지자들의 비판을 받았고, 두 번째 사족은 상대 측 우파들의 비판을 받았다.

이처럼 남한 사회의 선거에서 야권 후보를 골탕 먹이는 건 간단하다. '좌파' 딱지만 붙여놓고 사상검증만 하면 된다. 그러면 후보자 스스로 좌파 이미지를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을 치게 되고, 그런 액션이 거듭될수록 좌우 양측의 유권자들로부터 외면을 당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야권의 직업 정치가들이 믿을 수 있는 건 오로지 '탈이념' 뿐이다. 혹은 그것을 '중도'로 표현하기도 한다. 거의 강박관념이다.

지금도 대선을 앞두고 자본주의 야권 주자들이 좌파적 사상과 거리두기를 하느라 애를 쓰고 있다. 특전사 문재인도, 자본국가의 행정관료 김두관도, 한나라당 출신 손학규도, 그리고 자본가 안철수도 탈이념에 목을 맨다. 특히 민주당 내 유력 주자 문재인은 특전사 군복을 활용하여 애국자 이미지를 구축하다가 그 스스로가 수구 기득권 세력보다 더한 쇼비니즘의 함정에 빠져버린 듯하다. 희극에도 못 미치는 삼류 쇼에 그저 쓴웃음만 난다.

사상검증의 벽 앞에서 조건반사적으로 무릎을 꿇거나 발뺌을 하는 게 당연해 보이는 현실이다. 하지만 사상에 대한 비극적 트라우마를 걷어내지 않으면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진출도, 제대로 된 사회주의 정당 건설도 어렵다. 검색대 자체를 부수어야 한다. 더욱 투철한 사상으로 당당하게 무장하고, 사상검증에 정면으로 맞서야 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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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정당 건설을 포기하고 노동자정당 건설에 투항하는 사회주의세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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