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7월 22일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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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THAAD), 제국주의 폭력의 산물
박남일  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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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뜩이나 무더운 여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사드) 배치 문제로 더욱 뜨겁다. 투쟁의 불길은 집권 여당의 표밭이자, 고령 박씨 선영이 있는 경북 성주에서 타올랐다. 현 정부 탄생에 큰 역할을 했을 주민들의 분노가 거세다. 지자체의 수장인 군수와 군의회 의원들도 단식투쟁을 벌이며 동력을 제공했다. 현 정권의 텃밭에서 관민이 혼연일체가 되어 사드 배치 반대 투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그 수습을 맡은 국무총리와 국방부 관료들은 횡설수설과 오락가락하는 대응을 반복하고 있다. 그럼에도 지난 14일, 박근혜는 사드 레이더 전자파의 안전성에 대하여 “오히려 우려한다는 것이 이상할 정도로 안전한 지역"이라고 발언했다. 더불어 "이해 당사자 간에 충돌과 반목으로 정쟁이 나서 국가와 국민의 안위를 잃어버린다면 더 이상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며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사드 배치를 강행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그러나 박근혜의 이런 태도는 미숙한 통치자의 몽니로 비추어져 더 큰 반발만 불러일으켰다.


“판단은 미국이 하고, 우리는 받아들였다”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논리도 다양하다. 사드 레이더 전자파의 유해성을 문제 삼는 ‘안전 논리’부터 시작하여, 사드는 수도권 방어에 도움이 안 되며, 막대한 비용만 들어갈 것이라는 ‘효용성 논리’도 등장했다. 사실상 한반도 사드 배치는 중국을 겨냥한 것이므로 이후 중국의 보복조치가 우려된다는 ‘국익 논리’도 확산되었다. 사드 배치에 예민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러시아의 개입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다. 한편 사드 배치 반대를 당론으로 정한 국민의당과 정의당 등 야당은 사드 배치 결정이 국회 비준 사안인데도 청와대가 이를 무시했다며 ‘절차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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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와 같은 반대 논리들은 거꾸로 된 질문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을 짚어 봐야 할 것이다. 가령 “레이더 전자파가 무해하다면 사드를 배치해도 좋은가?”라는 질문에 봉착할 수 있다. (실제로 국방부는 미군에 괌 사드 포대 개방을 요청하여 7월 18일에는 기자단과 함께 레이더 전자파 측정을 하였고, 그 결과를 빌미로 성주에 배치할 사드 전자파의 안전성을 주장하고 있다.) 이밖에도 만약 수도권 방어에 유용한 미사일방어체계라면 배치해도 되는가. 중국이나 러시아와의 관계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면, 그리고 국회 비준 절차를 거친다면 사드 배치에 찬성할 것인가 따위의 질문도 가능하다. 조건부 반대는 조건부 찬성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물론 사드의 문제점을 여러 각도에서 제기하는 것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지금까지 제기된 다양한 반대 논리 가운데서 이른바 ‘한미동맹’의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없다는 점이다. 사실 사드 배치는 이른바 ‘한미동맹’의 부산물이다. 이와 관련, 사드 배치 결정을 주도한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최근 국회 운영위 회의에 출석하여 “한국에 사드 배치를 요청할 것이냐 말 것이냐 하는 판단은 미국이 한다. 미국이 하고 우리는 받아들였다”고 했다. 이른바 ‘한미동맹’ 관계가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날것으로 보여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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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대중에 먹혀드는 안보 장사


강한 쪽이 요청하면 약한 쪽은 기본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는 관계. 그럼으로써 서로의 통치 영역을 인정해주는 관계. 그것이 미 제국주의가 주변 자본주의 국가의 지배자들과 동맹을 맺는 방식이다. 박근혜 정권의 사드 배치 결정 또한 그런 배경 안에서 이뤄졌다고 볼 수 있다. 부정선거 논란 속에 탄생한 데다 임기 내내 철저히 자본가계급의 이해를 대변해 온 박근혜 정권은 끊임없이 사퇴 요구를 받아왔다. 게다가 지난해 9월 박근혜는 중국 전승기념일에 참석하고 ‘한중밀월시대’를 천명하여 미국 보수 정객들의 미움을 산 적이 있다. 따라서 그는, 미제국주의에 뭔가를 보여주어야 했다. 그리하여 조상들의 뼈가 묻힌 성주에 사드 배치를 강행함으로써 멸사봉공(滅私奉公)이 아닌 멸사봉미(滅私奉美)의 태도를 연출하려 했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박근혜 정권이 기댈 곳은 해묵은 ‘한미동맹’의 울타리와 안보 이데올로기뿐이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그런데 안보 이데올로기와 ‘한미동맹’이라는 망령에 사로잡힌 게 박근혜 뿐만이 아니다. 지금의 남한 대중 다수가 거기에 포섭되어 있다. 사드 배치 논란이 한창이던 지난 7월 14일에 발표된 두 개의 여론조사 결과가 그 실상을 잘 보여준다. 이날 발표된 갤럽 조사 결과는 찬성 50%, 반대 32%로 나타났다. 찬성의 주된 이유는 ‘사드가 국가안보와 국민 안전 위한 방어체계’라는 것이었고, 반대자들 가운데 상당수도 사드 자체의 위험보다는 그 효용성을 문제 삼는 비율이 높았다. 한편 같은 날 발표된 리얼미터 조사 결과에서는 ‘대북억제력 제고와 한미동맹 강화를 위해 찬성’이라는 답변이 44.2%, ‘낮은 군사적 효용성과 동북아 긴장 고조로 인해 반대’한다는 답변이 38.6%로 나타났다. 이 조사 역시 찬성 비율이 높다. 


여론조사 결과는 남한 대중의 의식에 안보 이데올로기가 얼마나 깊숙이 침투해 있는지를 실감하게 한다. 이런 현실 때문에 질 낮은 보수 정객들은 가끔 안보 장사로 재미를 보기도 한다. 예컨대 지난 2003년 이라크 전쟁 발발 직후, 한국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 소속으로 텔레비전 토론에 나온 송영선은 “미국의 이익이 한국의 이익이다.”, “미국을 감동시켜야 한다”고 공공연히 발언하여 논란을 일으킨 뒤, 이듬해 총선에서 한나라당 의원에 당선되었다.


이처럼 남한의 우파 세력은 친미(親美)에서 종미(從美), 숭미(崇美)로 수직적 한미관계를 더욱 공고히 해왔다. 하지만 미국이 어떤 나라인가. 조선 개항을 위해 1871년에 군함 5척으로 강화도를 공격하고, 1905년에는 식민지 필리핀을 일본으로부터 보장받기 위해, 조선에 대한 일본의 지배권을 인정한 나라가 미국이다. 해방 직후에 미군정은 대한민국임시정부를 부정했고, 일제 적산을 몰수하여 친일 자본가들에게 헐값으로 넘겨준 바 있다. 또 행정관청에 친일 관료들을 고용함으로써 친일청산을 어렵게 만들었다. 그로써 미군정은 이승만 친미정권 수립의 기반을 마련해주었다.


‘한미동맹’의 역사적 실체에 주목해야


이후 미국은 자국의 잉여농산물을 이승만 정권에 원조물로 제공했다. 하지만 이 원조물은 이병철 등 초기 자본가들의 돈벌이에 이용되었다. 게다가 1960년대 이후 미국은 일본과 한통속으로 낡은 생산설비를 한국에 넘겨주고, 자국에 필요한 상품을 한국에서 저렴하게 생산하는 ‘대리생산체제’를 구축했다. 그 수직적 분업관계에 따라 한국의 자본가들은 미국과 일본에서 건너온 낡은 생산시설에 노동자들을 몰아넣고 피땀을 쥐어짠 뒤, 그 잉여가치의 일부를 자신들의 자본으로 축적해왔다. 그것이 박정희 시대 산업화의 본질이다. 


한편 1980년대 이후 무역수지와 재정수지 모두 적자에 직면한 미국은 이른바 ‘세계화’라는 명목으로 주변 자본주의 나라에 시장개방을 강요하며 제국주의 본성을 드러냈다. 그에 따라 한국의 친미정권은 미국상품에 대한 수입 제한을 차례로 철폐했고, 1994년에는 쌀시장까지 개방했다. 이어 1997년 IMF 외환위기 사태를 조성한 미국 자본은 폭락한 한국 주식을 마구 사들여 떼돈을 벌었고, 줄줄이 민영화된 알짜배기 공기업의 지분을 집어삼켰다. 그리고 한미FTA 체결로 미제국주의에 의한 한국 경제 침탈은 정점을 찍게 된다. 이처럼 한국은 그간 한미동맹을 빌미로 미국의 원조와 차관에 의존해온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이즈막에 유행하는 ‘헬 조선’이라는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니다. 한미동맹의 역사 속에서 이미 지옥문은 조금씩 열려온 것이다.


한미동맹은 한국전쟁 말기에 정전협정을 앞두고 맺어진 ‘한미상호방위조약’에서 비롯된 개념이다. 미국의 비호를 받아 지속적으로 권력을 유지하려던 이승만 정권과, 분단된 한반도 이남에 제국주의 주변부를 구축하려던 미국의 이해관계 맞아 떨어지면서 형성된 관계라 할 수 있다. 그 후 60여 년 동안 한미동맹 개념은 안보를 핑계로 미제국주의와 결탁하여 자국 노동자, 인민에 대한 수탈을 유지하려는 자본가정권의 편리한 도구로 이용되어 왔다. 박근혜 정부의 사드 배치 결정 또한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한반도 사드는 한미동맹에서 비롯되었고, 한미동맹은 제국주의에서 빚어졌다. 제국주의란 폭력화한 자본이다. 따라서 지금의 사드 배치는 한반도 분단체제를 지속하고 군비경쟁을 부추기며 중국 등과 이윤 경쟁을 벌이려는 미국 자본가들의 폭력적 의도와 맞닿아 있다. 이쯤 되면 지난 1980년대에 울려 퍼지던 “반전반핵 양키 고 홈”이라는 구호가 되살아날 법도 하다. 사드 문제의 궁극적 해결은 제국주의의 폭력에 맞서는 투쟁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길도 거기에서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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