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7월 22일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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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혐오’ 범죄에 함께 분노하며, 한 걸음 더 나아가기
김민재 학생  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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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 사회에서 여성과 남성은 평등하지 않다. 명백히 존재하는 여성과 남성의 임금 격차 이외에도, 남성에 비해 여성은 외모를 꾸며야 한다는 문화적 압박에 더 많이 시달리고, 남성은 성관계 경험이 없으면 비웃음을 당하는 데 반해 그런 경험이 있는 여성은 더럽혀진 사람 취급을 받는다. 사회주의자라면 이런 성차별적 문화를 그저 사람들을 계몽해서 해결할 문제로 사고하기보다는, 생산 영역에서의 계급지배 및 자본주의 체제 자체의 모순과 관련지어 사고해야 한다. 동시에 성차별적 문화에 맞선 투쟁을 노동자계급의 투쟁으로 받아 안고, 자본주의 체제를 뒤엎는 투쟁으로까지 진전시켜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성차별적 문화에 맞선 투쟁에서도 누구보다도 앞장서야 함이 당연하다.


특히 남성이 여성에게 폭력을 저지르는 범죄는 성차별적 문화로 인해 억압받는 여성의 처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최근 5월 17일에 강남역에서 발생한 살인사건도 그런 사례이다. 피의자는 처음부터 여성을 대상으로 범행을 저지르기로 결심하고, 범행현장에 숨어서 남성이 아닌 여성이 나타날 때까지 1시간 정도를 기다렸다고 하였다. 여자들이 자기를 무시해서 그랬다는 진술이 사실이든 거짓이든, 피해자가 ‘여성이기 때문에’ 살해당했다는 것은 이미 명백히 밝혀졌다.


그렇다면 이 사건에 대해 사회주의자는 ‘어떻게 하면 이 사건을 계기로 여성이 여성으로서 겪는 억압을 더 효과적으로 폭로하고 투쟁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를 우선 고민해야 하며, 피의자의 주관적 동기가 정말 성차별인지 아닌지에만 초점을 맞추려는 지배계급의 선전에 휩쓸려서는 안 된다. 경찰은 가해자의 정신질환이 원인이라는 말을 반복하면서 여성억압에 대한 대중의 분노가 표출되는 것을 막으려 하고, 보수 언론 역시 ‘묻지마 살인’이라는 명명을 강조하며 여성이 표적이었다는 사실을 은폐하고자 한다. 이에 대항하여 여성운동단체들과 대중은 강남역에서의 피해자 추모 운동을 통해 이 사건을 ‘여성혐오’ 범죄라고 명명하며 피해자가 여성이기 때문에 살해당했음을 폭로하고 있다. 이러한 폭로는 당연히 정당하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 ‘여성혐오’라는 규정이 혹시 분리주의 페미니즘적 함의를 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할 수 있다. 하지만 ‘여성혐오’가 그런 의도로 쓰이고 있다거나 그렇게 이해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예컨대 일본 여성학자 우에노 치즈코는 『여성혐오를 혐오한다』에서 ‘여성혐오’란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성적 주체로 결코 인정하지 않는 …… 여성의 객체화, 타자화”라고 하였다. 이는 ‘여성억압’의 정의와 별로 다르지 않다. 실제로 이 사건에 대한 여성운동단체들의 성명이나 대중의 ‘여성혐오’ 담론 속에서 남성 전체가 가해자라는 분리주의적 언설은 보이지 않는다.


사회주의자는 이 사건에서 어떤 활동을 해야 하는가? 무엇보다 이번 사건에 대한 여성들의 분노에 공감하며 추모 운동에 함께해야 한다. 단, 대중의 뒤를 그저 따라갈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목소리를 내며 운동이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현재 추모 행사를 주최하는 단체들 중 일부를 중심으로 남성의 발언권을 부당하게 제약하거나,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를 답습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잘못된 경향을 단호하게 비판하고, 남성이든 여성이든 성차별에 맞서는 투쟁의 주체로 세우며 운동을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비판, 저항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사회주의자들은 또한 성차별적 이데올로기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라는 물적 토대 위에 세워진 것임을 폭로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여성억압을 지칭하기 위해 ‘여성혐오’라는 용어를 포괄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재고할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혐오’는 구체적인 사람들(예컨대 남성들)이 대상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을 갖는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물론 사회적 차별에 입각한 범죄를 지칭하는 ‘hate crime’과 유사한 의미로 사용할 수는 있겠지만, 그 경우 적대적 성차별에 한정해서 사용해야 맞다. 지금처럼 온정적 성차별까지 전부 ‘여성혐오’로 포괄하는 것은 일상적인 언어사용과 괴리되어 선전에 부적합할 뿐 아니라, 마치 여성억압을 이데올로기, 문화만으로 전부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은 잘못된 인식을 강화할 우려가 있다.


추모 운동이 보이고 있는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강남역에 나와서 자신도 피해자가 될 수 있었음을 이야기하며 여성억압을 고발하고 있는 대중은 이미 사회주의자들보다 앞서 나가고 있다. 사회주의자들은 이제 여성 대중의 분노에 공감하는 자세를 갖고 추모 운동에 함께함으로써 그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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