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7월 22일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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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 비정규직 투쟁을 평가하다: 왜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은 패배했는가
기관지위원회  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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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 일단락, 평가가 필요하다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의 중심에 있던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투쟁은 2010년 대법 판결 이후 다시금 솟아올랐고, 재차 꺼질 듯 했으나 2014년 9월 대법 판결로 그 불씨가 다시 피어올랐다. 그러나 2017년 3월 합의가 되면서 일단락되었다. 


그런데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아무리 비정규직 주체들이 어렵고 힘들다하더라도 이번 합의는 야합이라 비판받았던 8‧18합의와 본질적으로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점이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정규직 전환이 아니라 신규 채용이었으며, 현대자동차 원청에게 그 책임을 분명히 묻기보다는 소송 취하를 합의하였다. 앞서 두 차례에 걸친 조합원 총투표는 부결이라는 집단적 의지를 보여주었고, 이로 인해 집행부가 총사퇴하고 새로운 집행부가 선출되었다. 그러나 이런 모든 과정에도 불구하고, 주체들 스스로가 그토록 비판해마지않았던 8‧18 야합안과 비교해서 그다지 나아지지 않은 합의안에 동의해주고 말았다. 다만 이전보다 경력인정 기간의 차이 정도만 있을 뿐이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동지들의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은 전국의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대표해서 투쟁했던 정규직 전환 쟁취 투쟁이었기 때문에 이런 합의는 한 사업장만의 합의로 끝날 수는 없다. 특히 아직 자동차산업의 비정규직 동지들이 불법파견 정규직화 소송을 진행 중이거나 승소한 후 현장에서 투쟁 중이기도 하기 때문에, 그 영향이 작지 않다. 따라서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투쟁을 평가하고 앞으로의 전망을 끌어내는 일은 필수적이다.


혹자는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 자체가 이미 태생적으로 왜곡될 수밖에 없는 한계를 내포한다고도 말한다. 법적 판결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무엇보다 파견노동자로 국한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십여년전 불법파견 정규직화를 요구로 내걸고 투쟁을 시작했을 당시에도 양날의 칼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투쟁의 과정에서 투쟁의 태생적인 한계들을 극복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은 어느 순간부터 투쟁 주체들이 그 한계들에 갖혀 버리게 되었다. 요컨대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이 애초부터 ‘신분상승’운동이 될 운명은 아니었다. 모든 것은 주체들이 어떻게 만들어가느냐에 달려있었다.


2010년 대법 판결 이후 다시 불붙은 투쟁, 하지만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다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은 2005년 노동부의 불법파견 판정 이후 대중적인 투쟁이 솟구쳤었다. 특히 비정규직 노조가 결성된 이후 내건 불법파견 정규직화 요구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대거 비정규직 노조에 가입하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당시 전개된 5공장 파업 투쟁이 승리하지 못하였고, 그 이후 투쟁의 불꽃은 사그라들었다.


그러던 중 2010년에 대법에서 최병승 동지가 승소하는 일이 일어났다. 이것은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의 불꽃이 다시금 살아나는 것으로 이어졌다. 현대장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벌인 25일간의 점거파업은 비정규직 운동의 역사를 새롭게 썼다. 당시 파업은  “모든 사내하청 정규직화”라는 보편적인 요구를 내걸었고, 아래로부터 현장에서 올라오는 비정규직 대중들의 자연발생적인 투쟁 열기는 비정규직 지회의 유약한 지도부를 밀어붙였다.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대의를 안은 투쟁은 전국적인 연대를 끌어 모을 수가 있었다. 이경훈 정규직 어용노조가 투쟁을 파괴해도, 민주노조운동의 관료들이 그것에 놀아나도, 노동자 국회의원이 야권연대로 투쟁을 왜곡시켜도, 비정규직 투쟁 주체들은 ‘모든 사내하청 정규직화!’를 요구하고 현대자동차가 진짜 사장이라는 주장하며 파업을 전재하였다. 이것은 전국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하나의 울림과 감동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후 그러한 울림과 감동은 파업이 승리하지 못한 이후에 더 이상 지속되지 못했다. 오히려 투쟁이 확산되고 조직이 확대되기보다는 정규직 채용을 원하는 조합원의 욕망이 투쟁을 압도하기 시작하였다. 단적인 예로, 현대자동차 자본은 1천5백여 명에 이르는 파견노동자들을 기간제 계약직 노동자로 전환시키면서 불법파견 시비를 빗겨가려했을 때, 투쟁을 제대로 조직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이들이 이제 파견법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또한 모든 사내하청 정규직화라는 요구는 직접생산하도급 정규직 전환이라는 요구로 후퇴하였다.


그런데 요구의 후퇴는 대표성의 퇴색으로 이어졌다. 심지어 같은 공장 안에 있는 다른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정규직 전환 요구에서 배제시켜나가기 시작한 이상, 더 이상 노동자들의 단결이 만들어질 수 없고 노동자의 운동이 확장될 수 없다. 특히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의 태생적 한계, 즉 법적 테두리에서 불법이라고 판결받은 파견노동자들만으로 주체 스스로가 갖혀 버리는 한계는 이제 큰 벽으로 등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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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적 패착, 조합원 우선 채용


이러한 후퇴는 결국 노동조합 스스로가 모든 사내하청 정규직화를 포기하고 조합원 배제없는 정규직화(그러나 실제로는 조합원 우선 채용)로까지 나아갔다. 조합원 우선 채용이 그 실질적 요구의 내용이 되었다는 것은 투쟁이 협소한 자기이해를 실현하는 운동으로 퇴보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운동이 대표성을 상실한 순간 또 노동자계급의 보편적 이해를 대변하지 못하는 운동이 되어버린 순간, 노동자는 자본가 계급에 승리할 수 없게 된다.


그 결과는 2014년 8‧18 야합으로 드러나게 된다. 따라서 9월 대법원 판결로 투쟁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는 계기가 형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계기는 유실되었다. 오히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주체들은 촉탁직 노동자의 투쟁을 외면하였고, 이로 인해 이러한 후퇴는 결정적으로 드러나게 된다. 2015년 현대자동차 촉탁직 노동자는 사회적 문제가 되었다. 23개월 동안 16번 쪼개기 계약이라는 기가 막힌 근로계약이 이루어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촉탁직 노동자는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지회의 조합원이 아니라 금속노조 울산지부 직가입 조합원으로서 투쟁해야만 했다. 촉탁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더 확산되고 조직되는데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의 주체들은 단결을 위해 나서지 않았던 것이다.


그 결과 불법파견 소송을 시작했을 당시의 의미인 원청 사용자성 쟁취, 즉 진짜 사장에 대해 싸운다는 것은 잊혀졌다. 그리고 투쟁은 정규직으로 신분 상승하는 것으로 그 의미가 왜곡 축소되어버린 것이다. 비정규직 문제의 가장 핵심은 원청 자본가들이 저임금 노동자를 쓰면서도 법적 사회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이 축소 왜곡되면서, 원청 사용자성 요구와 촉탁직 노동자들 및 2, 3차 노동자들에 대한 조직화는 끝내 이뤄지지 못 했다.


우리는 비정규직 없는 세상이 아니라 자본가 없는 세상을 꿈꿔야 한다


마지막으로 주체들이 투쟁의 전망을 포기하고 외연을 확대하지 못한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결국 투쟁방향의 이면에 흐르는 정치적 전망의 문제이다. 비정규직 철폐는 정규직 전환인가? 즉 비정규직 철폐 투쟁은 단지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세상인가? 그렇다면 정규직으로의 ‘신분상승’을 은연중에 내포하게 된다.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 역시 마찬가지이다. 특히 대공장 사내하청의 경우 지역에서 정규직은 비정규직과 신분 차이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가 주인되는 세상에 대한 정치적 전망이 없다면, 모든 사내하청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불법파견 판정받은 파견노동자들만의 정규직화로, 심지어 다른 노동자들은 배제하더라도 조합원이라도 정규직으로 우선 채용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전락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이제 애초의 이야기도 되돌아가자. 불법파견 정규직화는 그 자체에 태생적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노동자가 주인되는 세상에 대한 정치적 전망과 결합시켜야 했다. 그러나 투쟁은 이 한계를 극복하고 노동자의 단결을 이뤄내는 것, 투쟁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의식을 고양시키는 것에 실패하였다. 비정규직 철폐 투쟁,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은 자본가 없는 공장, 노동자가 주인되는 공장이라는 전망과 분리시켜서는 안 된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투쟁의 실패는 이런 전망과 유리된 운동은 자본가와의 대결에서 필패할 뿐이라는 점을 교훈으로 남긴다.


자본의 사슬에 묶인 노동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의 발목에 묶인 사슬의 색깔이 아니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투쟁에서처럼 노동자들이 사슬의 색깔에 연연한 채 자신이 이 사슬에 묶인 자본의 노예라는 사실을 망각한다면 노동자의 노예상태는 지속될 수밖에 없다. 이 사슬을 깨는 운동, 그것이 바로 노동자 자신의 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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