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7월 22일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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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들이 여성혐오에 맞서 싸워야 하는 이유
박준규 (세미나 네트워크 새움 회원)  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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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부근에서 한 여성에 대한 살인사건이 있은 직후, 희생자를 추모하는 포스트잇의 물결이 강남역 10번출구를 뒤덮었다. 또한 추모현장에서는 지금까지 여성들이 가정, 직장, 길거리 등의 일상적인 공간에서 늘 겪어야만 했던 차별과 폭력의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생적인 운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는 여성들뿐만이 아니라 남성들도 동참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자본주의가 조장해 온 차별


여성을 지배하고자 하는 것이 남성의 본능이라는 식의 사고(思考)는 매우 오래된 편견이다. 이 편견은 학교와 대중매체를 통해 재생산되고 많은 남성들에게 학습되어져 왔다. 또한 주류 대중매체와 교육기관은 늘 ‘여성에 대한 차별은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거나 ‘설령 여성이 남성보다 낮은 지위에 있더라도, 그것은 능력의 차이 때문이다’라는 식의 관점을 대중들에게 주입해 왔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러한 조류에 저항하여, 성차별적인 사회구조를 폭로하고 새로운 담론을 확산시키려는 시도가 늘 있어온 것도 사실이다. 필자의 경우에도 학생회 등의 여러 활동을 통해, 여성들이 겪는 노동시장에서의 차별 및 사회 곳곳에서 겪는 성폭력에 관한 생생한 폭로를 접할 수 있었다. 특히, 그러한 차별과 폭력은 남성과 여성의 생물학적 차이나 본능 때문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생산시스템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라는 맑스주의적 관점을 접함으로써 기존의 고정관념을 깰 수 있었으며, 성차별 및 성폭력의 문제는 모든 성(性)의 사람들이 함께 해결해야 하는 것이라는 문제의식을 얻을 수 있었다.


한국사회에서 남성의 위치


일각에서는, ‘남녀간 대립을 조장하고 있다’며 이번 투쟁을 음해 및 방해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도 하다. 이들은 남녀간 대립을 멈추고 ‘화합’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을 동아시아 제국주의 문제에 비유해보자면, 일본군 위안부 피해당사자들의 요구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일본 우익세력이 평화와 화해를 말하는 것과도 같다. 화합이란, 억압 또는 피해의 당사자가 직접, 그 억압을 가능케 하는 구조 자체를 깨고 난 뒤에야 비로소 말할 수 있는 것이며, 가해자의 위치에 있는 자나 ‘제3자’가 먼저 말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가해자나 ‘제3자’가 먼저 말하는 ‘화합’이란, 또 다른 폭력일 뿐이다.


남성들은 사회가 자신들에게 부과하는 ‘가족부양의 의무’나 병역의 의무 등을 거론하며 남성들이 여성들보다 더 차별받는다고 주장하는 경향을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일면적인 것으로, 남한의 노동구조를 보다 면밀히 검토해보면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차별받는 현실이 드러난다. 2015년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여성 전체 일자리의 약 40%가 비정규직으로, 남성 전체 일자리의 약 26%에 비해 훨씬 높게 나타났다. 특히 출산 및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에 의해, 30대 이후부터는 노동하는 전체 여성들 중 비정규직이 차지하는 비율이 남성들의 그것보다 두 배 가량 높은 경향을 매년 보이고 있다. 또한 대부분의 여성들이 양육비 및 교육비 마련을 위해 자녀양육과 동시에 비정규직/아르바이트 형태의 노동을 이중으로 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가족부양의 의무’는 남녀를 불문하고, 아니 오히려 여성들에게 더 무겁게 가해지고 있다. 남한 여성들이 반평생 넘게 겪어야만 하는 이런 문제들에 비하면, 자신들이 받는 억압(?)의 근거로 남성들이 늘 들고 나오는 ‘군복무로 인한 학업단절’이라는 전가의 보도는 오히려 초라해 보인다.


나의 해방과 여성혐오에 맞서는 투쟁


남한 남성들의 이른바 ‘여성혐오’는 ‘여성들이 내 일자리를 빼앗고, 나보다 더 편하게 잘살고 있다’라는 편견 내지는 피해의식에 기반을 두고 있다. 하지만 이는 남한의 객관적 현실에 비추어볼 때 명백히 잘못된 인식이다. 오히려 이 사회가 남성들에게 강요하는 모든 것들(징병제, 비민주적이고 폭력적인 조직구조 등)로부터 남성 스스로가 해방되기 위해서라도, 남성들은 여성들의 해방을 위해 함께 노력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보다 많은 남성들이, 지금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는 여성억압적 현실에 대한 폭로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또 한편으로 남성들은, 자신들이 지금의 불평등한 사회구조 속에서 어떤 이득을 얻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은 누군가의 희생에 기반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성찰과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 그런 책임의식이야말로 자기 자신을 보다 객관적인 위치에서 볼 수 있게 해 줄 것이며, 맑스가 말한 ‘타인의 해방이 자신의 해방의 조건으로 되는 사회주의 사회’의 인간적 기초를 만드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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