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조운동이 이제 위기 논쟁을 지나 과연 그 미래는 있는가라는 질문이 나올 정도로 전망을 상실한 채 방향을 잡지못하고 있다. 1995년 민주노총 출범 이후, 지도부 총사퇴를 몇 번이나 겪으면서 민주노조운동은 혁신의 기회가 있었지만, 매번 혁신은 지체되었고 위기는 만성화되었다. 특히 지난해 직선제가 유보되면서 민주노총 임원 선거 자체가 상층 관료들만의 권력배분의 장으로 전락해버리면서, 선거 시기 '혁신'이라는 단어 역시 정치적 수사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미래는 만들어나가는 자의 것이기에, 관성적이고 패배주의적인 자세에서 벗어나서 적극적으로 문제의 원인을 분석하고 방법을 구하는 실천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이에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기관지위원회에서는 ‘민주노조운동, 과연 그 미래는 있는가’라는 제목으로 민주노조운동 위기의 실체와 그 원인, 해결 방법에 대해서 민주노조운동 혁신의 주체가 될 수 있는 활동가들을 대상으로 심도있는 릴레이인터뷰를 기획했다.

두번째 릴레이인터뷰는 류재운 공공노조 애니메이션지부장을 선정했다.]


1. 전투적 조합주의에 대한 태도에 따라 국민파, 중앙파, 현장파가 구분되었다. 과거지향적인 3정파를 넘어선다는 것은, 곧 전투적 조합주의를 지양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전투적 조합주의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겠는가?

현장, 국민, 중앙파에 개인적으로 관심 별로 없었다. 그놈이 그놈이다. 관료들끼리 위원장 바꿔치기하는 총연맹이라고 생각했다. 요즘들어 보다보니 더욱더 짜고치는 고스톱에 가깝다.

전투적 조합주의는 사실 임금인상 투쟁 잘 하면 전투적이라고 얘기한다. 임단협 잘 맺으면서 파업을 동원하면 전투적 조합주의고 파업 동원 안하면 그냥 조합주의이다. 따라서 전투적 조합주의는 직장 내에서 사용자와만 전투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지역, 업종 연대투쟁이 있었는데 지금은 전혀 그런 것도 없는 이기적인 상황이다. 따라서 지금은 그냥 조합주의이다.

극복 방안은 사실은 민주노조 직선제였다고 본다. 민주노총 대대는 체육관 선거나 다름없다. 자기네 정파 줄투표 하고 투표 전에 이미 결과 예측 가능하다. 관료들은 현장도 안 가고 운동권 건달이나 다름없다. 직선제를 자기들이 통과시켜놓고 자신들이 지키지 않는다. 간선으로 뽑힌 위원장이 직선으로 뽑힌 대통령한테 할 말이 있겠느냐. 다음 대대 때는 직선제를 관철해서 현장에서 건강한 위원장을 올리고 함께 투쟁해야 조합주의를 극복할 수 있다고 본다.


2. 민주노조운동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반자본주의 기치를 강화하고 사회주의 노동운동으로 발전해야한다. 이에 대해 어떻게 판단하는가?

민주노조 운동이 위기가 된 원인은 자본에 많은 노동자들이 포섭되었다는 점도 있다. 과거엔 공동체적 성향 강했으나, 점차 이기적이고 관료적으로 되면서, 현장노동자들의 의식이 저열화되었다. 또 과거에는 같은 고민들을 했으나, 요즘에는 고민들이 각각 다르다. 과거에는 노조건설에 대한 고민이 같이 공유되었으나, 지금은 노조가 건설되어서 의식이 경제적인 부분에 경도되어 정치투쟁하자는 이야기는 피곤하다고 생각되고, 때문에 사회주의 운동으로 전화되기 힘들다. 과거에는 정치-경제가 같이 가는 것이었으나 현재는 정치투쟁은 사회단체에, 경제투쟁은 노조 이런 식으로 이원화한다. 게다가 민노당이 우경화되면서 정치투쟁은 더욱 약화되어 의회주의, 대리주의가 만연해졌다. 당비만 내면 된다고 생각한다. 민노당도 그것을 부추긴 면이 있다. 때문에 점차 반자본주의 사회주의로 가는 길의 발목을 잡고 있다. 또한 소련의 붕괴로 사회주의에 대한, 미래에 대한 전망이 사라지고 아직까지도 반공논리가 먹혀들긴 한다. 때문에 새로운 사회에 대한 상상이 부족하다. 과거 전노협 시절에는 현장을 일으켜 세운 사람들이 모두 위장취업한 사람들이었다. 그때까지는 소련도 건재했다. 미래에 대한 상상을 소련으로 했지만, 소련 붕괴 이후 급격히 관료화되는 경향도 강했다. 민주노총 현재 간부들도 모두 사회주의를 지향하지 않았었나. 그러나 현실과 타협하며 조합원들에게 상상력을 제공하지 않고 있다.


3. 현장활동가들에게 투쟁방향으로서의 반자본주의 기치를 어떻게해야 설득할 수 있겠는가?

미국이 자본주의의 위기를 겪으면서 모든 나라들이 고통을 겪는다. 공황이나 인플레로. 그런 것들이 모두 자본주의의 폐해이다. 현재 자본주의는 거의 막바지에 가 있는 상태이다. 때문에 이후 대안사회나 새로운 사회에 대한 상상이 필요하고 그 준비가 필요하다. 따라서 현장활동가와 더불어 공부하고 고민하고 새로운 사회에 대한 구상을 할 필요가 있다.

요즘 노동자들은 공부가 부족하다. 자본가들이 무서워하는 노동자는 전투적인 노동자가 아니라, 가방에 책이 있는 노동자다. 해방연대에서 여는 노동자 정치학교가 자본에 대항하는 날카로운 무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을 통해 사회주의 사상에 대해 이야기, 고민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무작정 사회주의, 반자본주의 하자고 하면 두려워하기 보단 귀찮아할 것이다. 자본주의가 지긋지긋하다고는 다들 생각한다. 사회주의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지도할 대안이나 조직이 부족하기 때문에 사회주의 하자고 그러면 오히려 귀찮아한다. 올바른 지도지침과 새로운 사회에 대한 희망찬 상이 필요하다.


4. 민주노조운동 혁신에서 중요한 것은 노동자문화다. 문화노동자들이 문화 생산자로서 반자본주의적 상상력을 발휘할 때 대안적인 문화가 창출되지 않겠나? 어떻게 이런 흐름들을 만들어 나가야 할까?

용산 현장에서 문화노동자들이 보여줬던 문화의 힘을 느꼈다. 화가, 가수, 풍물패 등이 자발적으로 연대해서 하루도 문화공연 없던 날이 없었다. 긁적긁적 밴드 같은 분들이 매일 공연하고, 만화책도 이번에 나왔다. 문화공연을 보면서 문화생산자로서의 힘을 찾게 되었다. 며칠 전에 리스트라는 연극을 봤는데, 음악감독이 김호철 씨이다. 뒤풀이 때 극단 대표와 이야기해보니, 연극하는 사람들은 먹고 살기가 힘들어서 자본에 굴종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자신들은 그러기가 싫어서 생업을 위한 직업을 갖자고 했다고 한다. 극이 올라가게 되면, 짬짬이 연습해서 극을 올린다고 했다. 대중성이 강한 분야인 문화에서 이런 것들이 유지되면 강력한 힘이 된다. 만화책도 굉장히 대중적 매체이다. 대중들에게 침투하기가 좋다. 자본이 무서워할 수 밖에 없다. 정태춘, 서태지와 아이들, 신해철 같은 대중 예술가들이 사회 이슈가 되는 노래를 부르면 사회적 파급효과가 크다. 정태춘의 92년, 종로 음반이 금지음반이었는데 길보드차트에선 엄청난 히트였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교실이데아도 굉장한 열광을 받았다. 재작년 촛불도 여중생 몇 명이 촛불 켜놓고 앉아 있던게 대중문화로 변화한 것이다. 광장정치의 맹아도 발견되었고. 그때 당시 대중들을 올바로 이끌 사회주의 정당이 없었다는 게 아쉽다.

문화라는 건 특별한 게 아니라 같이 어울리는 것, 매체가 촉매가 되어서 어울리는 게 문화이다.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뮤지컬, 오페라 같은 것도 노동자들은 비싸서 관람을 못한다. 화가들도 화랑에서 전시하는데, 월차내고 그림 감상하는 노동자들이 없다. 그런데 용산에서는 거리에 전시한 그림들을 보고 노동자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왔을 거고, 나 스스로에게도 충격이 되었다. 대중에게 다가가야 하는데 예술가들의 소유물만 되어선 안된다. 관람료 인하 투쟁 같은 것도 했던 게 그런 이유였다. 옛날에 구상했던 것 중 하나는 그림 그려서 트럭에 실어서 공장 방문한 뒤 점심시간에 노동자들에게 보여주는 그런 구상을 했었다. 걸개그림을 걸어놓으면 팔뚝질도 힘차지고 그랬다. 문화는 기본적으로 대중에게 다가가야만 한다. 대중들에게 문화적 충격을 주면서 새로운 상상력을 던져줘야만 한다.

소위 예술노동자들이 자신들이 예술가인지 노동자인지도 모르고 살아온게 십수년인데 노동조합이 건설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게 됐다. 세종문화회관 전 노조위원장 동지는 바이올린을 켜는 노동자인데 이 동지가 집회장에서 전자바이올린을 켜면 다들 감동한다. 바이올린으로 ‘임을위한 행진곡’ 같은 것을 연주하면 거의 뿅 간다. 국립극장에는 대금 부는 동지도 있다. 소위 대금이라는 것이 우리같은 처지엔 전설의고향 같은 곳에서나 들어보는 것 아닌가. 그런데 이 동지가 집회장에서 대금을 분다. 소위 문화향유권을 대중들한테 돌려주는 것이다. 국립합창단 단원들도 있다. 이 동지들이 집회장에서 인터내셔널가나 파업가를 합창으로 부르면 여타의 다른 민중가수들이 부르는 것과는 또다른 감동이 있다.

이렇듯 운동은 전문성의 결합이라고 저는 배웠고 지금도 그렇게 활동하고 있다. 아직 사회주의 지향 문화가 대중과 결합도가 낮다고 생각되지만 이것을 극복하는 것도 활동가들의 몫이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