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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의 사민주의 (8)]산별노조와 사민주의

2009/06/10 ㅣ 김광수

시리즈 순서

1) 개관 - 역사의 범죄자 혹은 뻔뻔하고 파렴치한 사민주의자들의 역사
2) 학살의 역사 - 독일에서 벌어진 사민주의자들에 의한 노동자 도살
3) 이중대의 역사
4) 식민지 민중의 고혈을 짜는데 빨대를 들이댄 사민주의자들
5) 가부장제의 위선적인 수호자 사민주의자들
6) 사민주의와 케인즈주의
7) 사회적 분업과 직접민주주의
8) 산별노조와 사민주의


산별노조와 사민주의는 불가분의 관계라고 이야기된다. 강력한 산별노조의 존재는 계급투표의 기반이 되고, 사민주의 정당의 의회활동은 산별노조의 강력한 대중행동에 의해 배가되고, 의회주의에 갇혀 있는 사민주의자들의 정치적 내용을 산별노조에 속한 노동자들의 가두투쟁으로 확장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산별노조의 후원에 의한 사민주의자들의 집권은 노동자들로 하여금 작업장뿐만 아니라, 공장 밖에서 인간다운 삶을 보장할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희망의 메시지를 반공국가의 노동자들은 가져야 한다고, 이 땅의 어설픈 사민주의자들은 비 맞은 중처럼, 혹은 십자가 떠받치는 목사 아침 잠꼬대하듯 떠들고 다녔다. 따라서 이들은 산별노조 건설이 지상의 과제라고 말한다.

그러나 서구자본주의의 번영과 식민지 수탈이라는 떡고물에 의해 지탱되어온 산별노조, 사민주의 정당의 구조는 이미, 경제불황이 가시화된 70년대부터 흔들렸고, 사민주의 정당과 산별노조간의 역할분담은 심하게 요동을 쳤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정착되었던 전국교섭-산별교섭-기업별교섭의 계층구조는 개별산별이 전국교섭을 배제하거나, 기업별교섭으로 대치되거나, 심한 경우 연봉제처럼 개별노동자와의 임금교섭으로 대치되기도 했다.

산별노조운동의 위대한 시기

서구에서 산별노조는 직업별노조에서 자연발생적으로 발전한 노동조합의 조직형태다. 물론 산별노조는 직업별노조보다도 진일보한 것이고, 노동자들의 단결 수준은 산별노조라는 디딤돌을 이용해 전국적인 단체교섭으로 나가 수 있었다.

어디를 가나, 동종업종에 비해 낮은 임금은 경제선동의 좋은 호재가 되었고, 이러한 경제선동의 기반은 자연스럽게 노조조직의 경계를 직업, 업종, 산별로 확장하는 근거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일부국가에서는 직업별노조가 갖고 있는 보수성이 문제가 되었고, 특히 직업별노조가 갖고 있는 폐쇄성이 문제가 되었던 곳은 미국이었다. 급속한 산업화를 겪고 있었고, 모자라는 노동력을 이주노동자로부터 충원받고 있던 미국자본주의 사정상, 광범위하게 공장에 충원되고 있던 영어를 잘 못하는 비숙련노동자들, 흑인 노동자들을 직업별노조가 만만히 받아줄리 없었던 것에 기인한다.

미국에서 전개된 산별노조건설운동은 주변의 회의에도 불구하고, 미국노동운동에서 진정한 의미에서 계급운동이라고 불릴만한 노동운동의 시대를 낳았다. 특히 공장점거운동과 결합된 비숙련노동자들의 진출은 미국사회를 뒤흔든 사건이 되었다.

공장전체 노동자의 요구를 관철시키는 노동자들의 점거투쟁은 적어도 작업장 수준에서 노동자들의 계급적 대표성을 명료하게 보여주었고, 노동자들은 한 치의 의심도 없이 행동에 나섰다. 그러나 이러한 행동은 자본주의 자체를 공격하는 수준으로 성장하지는 못했다. 어느 순간 산별노조운동조차 조합주의라는 한계에 부딪치고 말았다.

왜 사민주의자들은 산별노조운동을 필요로 하나?

산별노조는 한편으로는 노동조합 조직에서 권력의 집중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의 덩어리로 노동자들의 요구를 표현하고, 그것을 자본에게 강요하는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한 덩어리로서 질서가 무엇보다도 중요해진다. 이러한 덩어리를 덩어리로 유지하는 힘은 관료조직과 실질소득이 계속해서 늘어난다는 무언의 약속이다.

사민주의 정당은 입법활동을 통해 이를 보장하려고 한다. 산별노조는 의회의 활동이 만족스럽지 않을 때는 행동을 통해 사용자 조직의 양보를 얻어내려고 한다. 상호간의 갈등이 있는 것처럼 보일 때조차 상호의존은 깨지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다.

단체협약을 공고히 하는 것은 어쨌든 의회 내에서의 권력의 균형추가 어느 쪽에 유리한가이고, 의회 내에서 상대적으로 소수인 사민주의 정당의 힘을 배가하는 것은 작업장과 가두에서의 노동자의 행동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민주의자들이 신자유주의 시대에 구조조정에 동의하는 순간, 이 거래는 균열을 맞게 되었다. 노동조합운동은 강력히 반발하기도 했지만, 그리고 이탈리아처럼 공산당이 우경화되었을 때, 노동조합이 새로운 정당을 파트너로 삼는 경우도 있었지만 결과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산별노조는 크게 흔들리면서도 한 덩어리로 노동자를 묶어두는데 크게 실패하지는 않았다. 단결의 필요성은 어느 때도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이 사실은 끔찍한 산별노조의 관료주의를 계속해서 유지하게 하는 근거가 되었고, 사멸해 가는 자본주의의 무덤을 파는 곡괭이를 쥐는데 노동자들을 망설이게 하였다.

산별노조운동의 균열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한때 노조 조직율이 90%를 상회하던 스웨덴의 LO조차 이러한 추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데, 그것은 상대적으로 높은 경쟁력을 갖추고 있던 스웨덴 금속산업의 사용자와 산별노조의 모종의 합의 때문이었다. 즉 금속노조는 전국교섭을 제치고, 스스로 금속사용자단체와 교섭을 시도했고, 이는 LO의 전국교섭틀을 흔드는 것이었다.

사민주의자들이 자국 자본의 번영을 전제하고, 이를 근거로 노동자들의 경제, 사회적 지위를 상승시키는 전략을 포기하지 않는 한, 이러한 경향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자본주의에서 불균등 발전은 아무리 노동자들이 애를 쓴다하더라고, 업종간, 산업간, 국가간 이윤율의 차이를 만들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동일노동, 동일임금, 임금연대를 아무리 외친다 하더라도, 노동자들의 격차를 피할 수 없게 되어 있다. 차별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데, 누가 계급적 단결을 하자는 호소에 반응할 수 있겠는가?

신자유주의가 휩쓸고 간 지난 30여년 동안 이는 더욱 가속화되었고, 노동조합운동이 자본주의 하에서 평등세상을 만드는 견인차로서의 역할은 점점 축소되고 있다. 전국단일노조로서 결집하는 것은 분명 우리의 과제이지만 그것조차 모든 것을 약속하는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를 용인하는 정도가 커질수록 결국 자본이 처놓은 덫에 한발씩 더 빠져든다.

산별노조는 미래를 향한 약속이 될 수 없다

동종업종에서 평균임금은 여전히 교섭의 테두리를 업종, 산업별로 묶어 두는 강력한 기반이지만, 기업임금에 의존하는 비율을 낮추고 사회임금을 통해 노동자들의 격차를 줄이겠다는 전략을 품고 있는 남한의 민주노총에게는 이 또한 산별노조를 고집할 근거로는 위력이 약해진다.

자본주의가 안정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는 근거는 희박해지고, 소위 경제위기를 맞아 천문학적으로 풀린 유동성 자금은 전세계를 투기의 장으로 만들 것이 분명하다. 이미 석유에 투기자금이 몰려들고 있고, 이에 따라 유류소비는 북반구의 여름을 맞아 떨어지고 있음에도 석유값이 들썩거리고 있다. 물가는 오르고, 실질임금은 떨어지는데 반해 경쟁이 격화됨에 따라 노동자들의 삶은 더욱 불안정한 상태로 떨어지게 되어 있다.

산업별노조는 최소한 노동자의 삶을 현재 상태에서라도 지킬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답은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이는 남한의 경우를 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남한에서 95년 민주노총 건설 이후에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었던 산별노조운동은 사실상 종언을 맞이하고 있다.

90년대 중반 산별노조건설의 동기는 악명 높은 기업별 조직의 벽을 허물겠다는 것이었다. 산별건설 논의는 구체성이 떨어졌던 대산별 건설주장이 주도했지만, 실제 진행은 업종별 조직을 주장하던 사람들의 논리였던 교섭의 형식을 발전시키는 것으로 구체화되었다. 대각선 교섭이 시도되었고, 공동교섭이 추구되었다.

금속노조의 공동교섭은 그래도 교섭형식의 고도화를 위한 시도 중에는 가장 앞선 시도였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교섭형식이 발전한 방향은 중앙교섭이 원활치 않은 가운데 차선책으로 시도되었던 대각선 교섭으로 모아졌다. 그 와중에 중앙상근역량에 대한 의존이 커졌다. 상근자들의 충원 없이는 중앙이 교섭을 주도하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산별노조운동은 비정규직 문제가 제기되면서, 기업별 노조의 벽을 허무는 교섭형식의 발전이라는 산별노조 건설 명분이 퇴색되면서, 힘을 잃었다. 정규직, 그들만의 교섭, 그들만의 임금인상이 이루어지면서 계층간 임금격차(정규직과 비정규직, 원청과 하청)는 확대되었다.

이를 해결할 노력의 하나였던 정치적 교섭은 (비정규직 문제를 비롯한) 노사정 대화의 명분을 제공하는 수준에서 제기되었다. 사회적 교섭에 대한 비판여론이 노동운동 내부에서 비등했음에도 일각에서는 노사정 대화를 연맹별로 지역별로 진행해야 된다는 참으로 솔직한 주장이 나온 배경은 여기에 있다.

남한에서 산별노조운동은 기업별노조가 갖고 있던 자본주의 불균등발전에서 발생하는 격차를 해소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비정규직 문제에 무력하면서, 그 정당성마저 훼손당한 것이다. 산별노조, 사민주의 정당이라는 노사협조주의의 국가적 모델은 이 땅에서는 펴지도 못하고 시들게 된 것이다.

사회주의자들이 계급적 대표성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는 비정규직, 정규직 노동자들의 단결의 틀을 현장의 민주주의에 기반해 발전시키지 않는 한, 가망없는 산별노조 주문에서 노동자 대중을 깨어나게 할 수는 없다.

그리고 그러한 단결이 자본주의를 직접적으로 공격하지 않는 한 미래는 우리에게 없다. 그것이 쓰디쓰지만 피할 수 없는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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