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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맑스주의 위기론과 신자유주의 금융위기

2008/10/10 ㅣ 김성구 (한신대 국제경제학과)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사태에서 비롯된 금융충격으로 국내외적으로 위기와 공황에 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8500억 달러의 구제금융 법안이 미 상하원을 모두 통과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금융시장이 과연 안정될 것인지, 금융시장의 위기가 실물경제의 위기로 발전하는 건 아닌지 금융시장에서는 비관적인 전망이 우세한 실정이다.

그러나 당면한 위기와 공황을 논하기에 앞서 그것이 도대체 어떤 위기인지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맑스주의 위기론에 입각한 여러 논자들조차 위기의 원인과 성격을 혼란스럽게 말하기 때문이다.

맑스의 주기적 과잉생산공황

우선 맑스가 위기를 말할 때, 그것은 10년마다 찾아오는 주기적 과잉생산위기(=주기적 과잉생산공황) 또는 주기적 과잉축적위기를 지칭하였다. 이미 <공산당선언>에서 맑스는 이 위기가 주기적 과잉생산위기라는 것, 세계적 규모에서 발생하는 위기라는 것, 그리고 근대적 생산력과 부르주아적 생산관계와의 모순의 표현이라는 것임을 분명히 하였고, 그런 점에서 체제적 위기와의 관련을 포착하였다.

즉 맑스에게 주기적 과잉생산위기는 자본주의의 기본모순의 표현이며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와 이행을 표현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그것은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위기였다. 이 점이 위기에 관한 맑스의 관점을 반성, 변화시킨 지점이었다.

맑스는 전자의 관점에서 사회혁명은 새로운 위기의 결과로서만 일어날 수 있다고 믿었고, 이러한 공황관이 그로 하여금 정치경제학비판과 공황의 연구에 몰두하게 만든 주요 요인이었다.

그러나 맑스도, 엥겔스도 만년에는 이러한 공황관과 혁명관을 반성하고 방기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경제적 위기와 정치적 변혁 간에는 그렇게 단선적인 관계가 아닌, 정치적 실천이 매개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맑스와 엥겔스의 생전에 반복되는 주기적 위기는 이러한 반성의 현실적 토대였을 것이다.

위기를 이렇게 파악하면,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로 새로운 위기가 임박하고 있다면, 이는 우선 새로운 주기적 과잉생산위기가 임박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현재의 경기순환은 미국에서 2001년 공황으로부터 시작하였는데, 이 순환이 조만간 새로운 공황으로 끝을 맺을 것이다.

통상 10년 주기는 순환에 따라 다소 단축될 수도 있고 또는 늘어질 수도 있는 만큼 새로운 공황을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지만, 작년 4/4분기 이래 점차 악화되고 있는 미국의 실물경제 지표를 감안하면 금융충격이 실물경제의 위기로 끝날 것임은 점점 더 부정하기 어렵게 되었다.

장기적 위기 또는 구조적 위기

맑스는 주기적 과잉생산위기를 이미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 또는 위기의 표현으로 이해하였지만, 이 모순 또는 위기는 주기적 공황 자체를 통해 극복되고 새로운 순환이 반복되는 것임을 분명히 하였다.

그러나 순환의 반복은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보다 높은 생산력 수준에서의 모순의 전개를 의미하며, 이렇게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관계는 순환의 반복 하에서 심화되는데, 그 모순의 심화는 다름아닌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법칙에 표현되어 있다. 자본주의 축적의 모든 동인이 이윤의 획득에 있는 한, 평균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는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를 표현하는 것이다.

이 위기는 주기적 과잉생산위기와 달리 경향적, 장기적 위기를 의미한다. 주기적 위기를 주기적 위기를 통해 극복해간다 하더라도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로 인해 자본주의는 장기적으로 성장이 둔화되고 그 체제가 불안정해진다.

생산의 무제한적 확대와 대중소비의 제한, 즉 주기적 과잉생산의 모순에서 폭발하는 10년 주기의 위기와 달리 이 위기는 생산력의 고도화, 유기적 구성의 고도화에 따른 잉여가치 생산의 상대적 저하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여기서 상론할 수는 없지만, 김수행, 정성진, 윤소영 교수처럼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법칙으로 직접 주기적 과잉생산공황을 설명하려는 시도는 맑스의 방법론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

물론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는 반대로 작용하는 상쇄력의 동원을 동반한다. 따라서 평균이윤율은 단선적으로 하락하지 않고, 상쇄력의 여하에 따라 그 자체 변동하는데, 그 변동이 바로 자본주의의 장기성장과 장기하강을 가져온다. 즉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가 관철하는 경우 자본주의는 장기하강에 빠지고 구조적 위기에 직면하게 되며, 강력한 상쇄력이 작용하면 이윤율 조건을 개선하여 자본주의의 장기성장을 이끌게 된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렇게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가 관철하면서 3번의 구조적 위기가 발생하였는데, 그 최근의 구조위기가 다름아닌 브레튼우즈 체제의 붕괴를 가져온 1970-80년대의 제3차 구조위기다.

구조위기 시에도 10년 주기의 경기순환이 반복, 진행하지만, 구조위기 시의 경기순환들은 대체로 호황의 상대적 약화와 공황의 상대적 심화로 특징지워진다. 따라서 성장의 둔화는 필연적인 귀결이다. 구조적 위기는 주기적 위기와 달리 상부구조를 포함하여 자본주의 체제의 일정한 구조재편을 요구하는 성격의 위기다.

신자유주의적 국가독점자본주의의 위기

1970년대 이래 현대자본주의는 국가독점자본주의의 신자유주의적 재편을 통해 이 구조적 위기를 극복하고자 하였다. 신자유주의적 재편의 핵심은 케인스주의의 해체 위에서 자유화, 세계화, 금융화, 투기화, 유연화를 실현하는 것이었는데, 주지하다시피 이 전환과 재편은 케인스주의의 위기를 극복한 것이 아니라 오리려 성장의 둔화와 대량실업을 고착, 심화시키고 위기를 세계화시켰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사태에서 비롯된 금융위기만이 아니라 1990년대 이래 파상적으로 전개된 국제금융위기와 외환위기는 이러한 전환이 가져온 새로운 성격의 위기임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현대자본주의의 현재의 위기는 제3차 구조위기의 지속이라기보다는 신자유주의적 국가독점자본주의의 고유한 위기이며, 이는 제3차 구조위기로부터 등장한 신자유주의적 국가독점자본주의가 이전의 구조위기들에서와 달리 새로운 장기성장으로 전환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점에서 다가오는 새로운 위기란 신자유주의적 국가독점자본주의의 고유한 위기를 배경으로 전개되는 2001년 순환의 종료 즉 새로운 주기적 과잉생산공황을 말하는 것이다. 이 공황을 단순하게 맑스의 주기적 과잉생산공황으로만 이해하는 것은 신자유주의적 금융화와 증권화에 의해 특징지워지는 이 순환의 특징을 간과하는 게 된다.

이처럼 맑스주의 위기론은 월러스틴이나 아리기같은 장기파동론자들의 위기론과 본질적으로 상이하다. 또한 현재의 경제정세의 판단도 맑스주의 위기론과 장기파동론은 서로 상반된다. 예컨대 월러스틴은 현대자본주의가 대체로 1990년대 말 또는 2000년대 초 이래 새로운 장기성장의 국면으로 전환되며, 새로운 장기하강은 2025-2050년에 전개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이 새로운 위기를 운운한다면, 그것은 기껏해야 소위기 즉 주기적 위기의 도래일 뿐인데, 장기성장 국면에서의 주기적 위기는 별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들의 경제학에 기반하고 있는 윤소영 교수가 다가오는 새로운 위기에 심대한 의미를 부여한다면 그건 앞뒤가 맞는 주장이 아니다. 근본적으로 윤 교수는 구조위기와 주기적 위기의 관련을 이해하지 못하고 극도로 양자를 혼동하고 있다.

국가개입과 공적자금 투입의 모순

신자유주의 금융위기에 대해 국가가 공적자금의 투입으로 개입하는 것은 일견 모순되지만, 신자유주의 하에서도 국가개입은 결코 철폐되지 않았음을 직시하면 하등 모순이 아니다. 국가는 여전히 총자본과 총독점자본의 기관이며 그 이윤을 보장하기 위해 위기에 개입한다.

문제는 오히려 공적자금 투입의 모순적 효과에 있다. 시장의 위기는 과잉자본의 청산을 요구하는 것인데, 오늘날 시장기제를 통한 기업의 도산과 과잉자본 청산은 자본주의 자체를 청산할 위험이 높기 때문에 국가개입과 공적자금 투입이 불가피하지만, 이런 위기관리 방식은 과잉자본의 청산을 지연시켜 경제회복과 새로운 성장을 어렵게 하기 때문이다.

공적자금을 동원하는 손실의 사회화, 국영화, 자본주의적 사회화는 이렇게 모순적이어서 결코 위기의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진정한 해결책은 진보적 사회화뿐이며, 여기에는 부실기업의 대주주와 경영자, 채권자, 증권소유자 등 자본가계급에게 최대한 부실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는 한편에서 과잉자본 청산에 기여하고 다른 한편에서 공적자금 투입을 최소화시킬 것이다. 궁극적으로 진보적 사회화는 국가독점자본주의를 넘어가며 사회화된 기업에서 시장경쟁과 이윤추구를 지양함으로써 자본주의 위기의 근원을 없애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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