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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의 민주주의는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가?

2008/07/12 ㅣ 김광수

촛불에 마비된 국회

촛불집회 기간동안 대의제는 작동을 멈추었다. 야당은 등원을 거부했다. 수구정당들의 의원들이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의회는 촛불로 불붙은 압도적 다수의 민심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음으로 해서, 그 권위가 땅에 떨어졌기 때문이다.

흔히 의회로 대표되는 대의제는 대표들이 선출되자마자 모순이 시작된다. 선출할 때 투표자들의 정치적 정서와 선출된 사람들의 정치적 입장간의 간극이 투표 다음날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2008년 5월과 6월처럼 대중들의 정치적 정서가 급격히 변한 시기에 이런 부조화가 극단적으로 드러난다. 2/3를 점하고 있는 수구보수 의원들과 이명박에 대해 고작 7%만이 지지를 표했던 정치적 정서의 극단적인 대비는 대의정치 자체를 마비시킨다. 이러한 경직성을 해소하기 위해 논의된 장치인 소환제 등은 사실상 하자가 있는 대표를 끌어내리는데 이용될 뿐 그 이상의 역할은 하지 않는다. 직접민주주의 장치라고 할 국민투표는 비용도 비용이지만 국민투표를 끌어내는 과정이 만만치 않아 쉽게 이루어지지도 않는다. 의원내각제의 경우, 이러한 모순이 극대화 될 경우, 의회를 해산하고 다시 총선을 하는 경우도 왕왕 발생한다. 그래서 의원내각제는 그런 면에서 부르주아의 정치적 지배를 보다 유연한 형태로 지속되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의원내각제가 아무리 유연성을 발휘한다 하더라고 의원내각제의 유연성은 대의정치를 구하기 위한 유연성이지, 직접민주주의에 자신을 양보할 의사는 털끝만치도 없다. 의원내각제에서 국민투표는 아예 제도상으로도 보장되지 않는 것으로도 이는 확인된다.

촛불의 민주주의는 무엇으로 발전해야 하나?

많은 사람들이 촛불집회를 보고 직접민주주의를 찬양한다. 그러나 촛불의 직접민주주의는 좌절의 민주주의다. 거기에는 권력도 수단도 존재하지 않는다. 정부가 모르쇠로 나가면 딱히 방법이 없다. 오히려 의식 있는 대중에게 촛불은 화병의 근원이 되고 있다. 촛불에서 확인된 답답함, 대중의 민주적 의사가 차단되어 있는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대중의 의사가 직접 반영되는 대중적 정치권력을 세우는 것이 해답이다. 촛불이 시민의 의사표현에만 머문다면, 이른바 광장의 촛불은 감시견(watch dog)의 역할,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후견인 역할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그리고 그 후견인 역할은 이명박의 모르쇠로 이미 파산했다.
새로운 민주주의는 새로운 주체세력을 요구한다. 우리사회에서 민주적 자치능력이 가장 높은 것으로 여겨지는 세력은 노동자다. 노동자들은 87년이후 어용노조의 굴레에서 벗어날 것을 목표로 노동조합내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기 위해 비상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정부에서 체결권이 아무리 위원장에게 있다고 난리를 처도, 총회(일종의 국민투표)를 거치지 않고 단체협약은 체결되지 않는다. 대의원대회에서 문제가 있는 결정이 날 때, 현장활동가들이 총회 소집을 요구하고, 결정이 뒤집어 진 사례는 수 없이 찾을 수 있다. 민주노조에서 위원장은 직선에 의해 선출된다. 대학총장 선출이나 농축협에서 직선제로 인한 폐해가 끊임없이 등장함에도 노동조합만큼은 직선제를 훌륭히 유지하고 있다.

민주노조에서 소환제는 대단히 발달되어 있다. 노동조합법 상으로는 2/3의 찬성이 있어야 위원장을 소환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 노동운동은 신임투표라는 제도를 창안해냈다. 신임투표에서 50%를 확보하지 못하면 현 집행부는 물러나야 한다. 그리고 대개 단협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집행부는 스스로 물러남을 주저하지 않는다. 노동조합내 민주주의에서 가장 강점을 들라면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강조이자 비상한 수준으로 발달한 소환제도이다.

노동자들의 민주주의는 직접민주주의를 상상하게 하는 촛불집회와 매우 친화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노동운동세력은 촛불정세에서 자신이 무엇을 이루어내겠다는 목표의식도, 진정성도 보여주지 못했다. 민주노총의 총파업요구안에서조차 한미FTA 반대는 의도적으로 배제되고, 총파업은 말그대로 형식적이었다. 촛불에 호응해 생산현장과 물류가 멈추는 웅혼한 투쟁가는 울려 퍼지지 않았다. 이것은 높은 수준의 민주주의적 자치능력이라는 노동자계급의 잠재력을 발휘할 기회를 박탈하고, 촛불의 민주주의가 실제 광장의 권력으로 전화하는 가능성을 박탈해 버렸다. 지금이라도 노동운동세력은 보다 진지한 모색을 통해 스스로를 투쟁의 전위로 발전시켜야 한다. 그것이 자신의 역사적 가능성을 실현하고 역사적 임무를 다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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