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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경기회복은 중환자가 전기충격으로 깨어난 꼴

2009/11/27 ㅣ 도우

<사진설명 = 1960년대 말부터 급격히 하락한 미국, 일본, 독일의 제조업 순이윤 비율>


최근 언론을 통해 부쩍 들리는 말이 ‘출구전략’이다. 내렸던 금리를 인상한다거나 시중에 풀어놓았던 돈을 환수하는 등의, 경제위기 상황에서 취했던 비상조치를 경기회복을 맞이해서 거두어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경기지표가 예상 밖의 조기회복세를 보이면서 이 출구전략의 시행시기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이다.

논란의 단면들을 보면, 먼저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 같은 경우는 경기회복에 자신감을 보이면서도, 출구전략은 시급하지 않으며 확장적 재정정책을 계속 견지하겠다는 입장이다. 반면에 이러한 정부기조는 내년 6월 지방선거 때까지는 돈줄을 죌 수 없다는 정치논리의 산물이며, 인플레이션과 자산거품을 키울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하는 입장도 있다.

그렇지만 논의당사자들 대개는 여전히 불안요인이 상존하기 때문에 전면적인 출구전략 시행보다는 상황을 봐가며 서서히 시행해가야 된다는 생각에 동의하는 것 같다.

다시 비관론?

출구전략이 쟁점이 되는 것을 보면 불과 1년 사이에 변해버린 논쟁지형을 실감할 수 있다. 작년 9월에 리먼 브라더스를 시작으로 대형 금융기관들이 파산하기 시작할 당시만 해도 자본주의 경제에 대한 비관론이 득세했었는데, 지금은 그 심리적 충격은 온데간데 없어 보인다. 경제전망이 새로이 나올 때마다 상향 조정되고 있고, 증시와 부동산도 위기 이전의 수준을 회복했다.

그렇다면 비관론은 틀린 것일까? 일단 비관론이 국가의 정책대응능력을 적절하게 평가하지 못했다는 비판에는 동의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번 미국발 공황을 흔히 1929년 대공황과 비교하는데, 그러나 대공황에 비견될 정도의 심대한 경기후퇴와 초대형 실업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사상 최대라는 각국의 경기부양책이 힘을 발휘한 결과이다. 과거 공황기에는 시중에 돈이 메말라버려 회사들이 문을 닫는 사태가 속출했지만, 지금은 국가가 유동성을 무한정 공급해주니 기초체력이나 시장상황과 상관없이 기업의 생존능력이 제고된 것이다.

그런데 이 마당에 다시 비관론을 꺼내드는 것은 단순한 아집일까? 그러나 눈에 보이는 사태를 과장하지 않고, 그 이면을 서로 결합해있지만 모순적인 힘들의 결투장으로 파악한다면, 비관론이 끊임없이 강조하는 점이 바로 경제를 파국으로 이끄는 힘, 즉 구조적 문제와 이것이 갖는 심각성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 경제가 국가개입에 의해 회복되고 있더라도 구조적 문제가 사라진 것이 아니고, 단지 잠복해 있을 뿐이며 다시 경제를 바닥으로 끌어내릴 것이다. 비관론의 진리는 바로 이 점에 있다.

고철이 된 글로벌 성장엔진 - 큰 의미없는 단기적 경기회복

전세계적인 경기후퇴는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실물경제 약화 등의 징후를 보이다가 리먼 사태라는 대규모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해서 본격화됐는데, 이러한 공황발발경로는 현대 세계경제에서 금융이 행하는 역할을 짐작케 해준다. 즉 금융은 주요한 성장엔진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오늘날 금융은 경기순환에 과거보다 깊숙이 관련돼 있다. 물론 재화를 실제로 생산하지 않는 금융이 경제성장을 직접 이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리고 한국, 중국 등의 신흥국에서 성장을 주도하는 것은 수출이지 금융이 아니다.

그런데 그동안 신흥국의 최종소비시장 역할을 했던 곳이 미국이고, 미국 소비자들은 수 년, 수십 년간 진행돼온 금융완화에 힘입어 자신들의 소득 이상으로 막대하게 소비해왔던 것이다.

미국인들은 수년 간 계속된 저금리의 혜택을 보았는데, 금융기관으로부터 쉽게 대출을 받아 집, 증권을 사들였고, 사들인 자산은 자산거품 속에서 가격이 곧장 오르곤 했다. 자산가격이 오르면 장부상 더 부유해진 셈이므로 소비도 함께 늘어났다. 또한 더 비싸진 자산을 담보로 더 많은 돈을 빌렸고, 이러한 과정은 무한히 계속될 것 같았다.

실제 미국의 국내총생산 대비 가계부채비율은 1980년에 50%에서 현재는 100%에 육박할 정도로 증가했다. 이러한 가계부채 증가, 자산거품에 힘입어 민간소비가 늘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는 금융이 주도한 소비확대의 한 사례에 불과하다. 투자되지 않은 기업유보금과 대미무역흑자를 통해 쌓아올린 신흥국의 외환보유고, 각종 기금 등이 주요 금융시장으로 몰려들었고, 금융업자들은 넘치는 돈을 어떻게든 굴리기 위해 규제를 넘어뜨리며 갖가지 신용공급 형태를 만들어왔다.

금융업자들의 이해는 정책결정자들의 이해와도 맞아 떨어졌다. 가계부채 증가, 신용팽창, 자산가격 상승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으로 인해 수요부진에 빠진 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줄 것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선진국들은 금융팽창을 규제하기보다 유례없는 기간의 저금리와 규제철폐로 금융업을 지원했다.

그리고 금융팽창은 세계의 넘쳐나는 상품들을 소화시켜내는 역할을 했던 것이다. 이른바 ‘금융자본주의’, ‘금융 주도 성장’이다. 이러한 과정은 미국에서만 진행되지 않았다. 정도의 차이만 있지 세계적으로 비슷한 추세가 나타났다. 한국이 2003년 카드위기 이전에 겪은 호경기나 소위 ‘아파트 경기부양’도 같은 원리가 적용된 경우이다.

그런데 소비를 촉진시켰던 무분별한 카드발급이 결국 경제 전체의 발목을 잡았듯이, 이러한 금융 주도 성장은 결코 지속가능하지 않음이 이번 공황을 통해 확실히 증명됐다. 빚과 거품이 소득에 비해 무한정 늘어날 수 없는 노릇인 셈이다.

지속불가능성은 국가에 의한 경기부양도 마찬가지이다. 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 경험이 말해주듯, 재정적자는 만능이 아니다. 정부의 지출에도 한계와 부작용이 있다. 민간에서든 정부에서든 부채증가를 통한 소비확대는 미봉책일 뿐인 것이다.

결국 안정적인 소득원, 즉 질 좋은 일자리 창출 없이 경제가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성장하는 데는 절대적인 한계가 존재한다. 그런데 세계적으로 이 고용시장이 그동안의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로 인해 초토화된 상태이다.

한마디로 고철이 돼버린 성장엔진을 바꿔 달지 못한 채 이뤄지고 있는 지금의 세계경기회복은 장기불황으로 이어질 일시적 회복세에 불과한 것이다.

40년 묵은 과잉축적위기의 파국적 국면 - 이 시대에 비관은 곧 합리이다

경제위기를 좀 더 역사적인 시야를 갖고 바라볼 필요가 있다. 세계경제에서 금융, 빚잔치가 성장을 상당 부분 책임졌다는 것 자체가 사실 비정상인 상황이었다. 이는 자본주의 세계경제가 안정적인 수요 창출에 실패해 왔음을 의미한다. 안정적인 수요 창출이란 일자리와 실질임금이 증가하고, 자본재 투자도 꾸준히 늘어나는 것이다.

그런데 1970년대부터 세계자본주의의 안정적인 수요 창출 메커니즘이 고장 나버렸다. 먼저 투자가 위축됐다. 자본이 지속적인 수익성 위기(이윤율 저하)를 겪기 시작한 것이다. 수익성 위기는 원자재 상승(오일쇼크), 조직노동자에 의한 임금상승 압력 등 다양한 요인에서 비롯됐다.

이중 결정적인 원인은 그간의 탐욕적인 생산확대(자본축적)가 빚어낸 과잉설비였다. 과잉설비는, 수출입이 손쉬워 그만큼 시장도 넓고 초국적 경쟁에 노출돼있는 세계 각국의 제조업에 집중된 현상이었다.

시장을 초과하는 과잉생산능력은 경쟁을 격화시키고 설비 일부를 유휴화시키며 공산품 가격을 하락시키는 압력으로 작용했고, 이윤율을 하락시켰다. 수익성 위기는 궁극적으로 자본의 세계적인 과잉축적의 결과였다.

그리고 수익성 위기에 직면해 자본이 벌인 일이 바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었다. 세계 곳곳에서 조직노동자에 대한 무자비한 공세가 퍼부어졌고 고용관계는 자본에게 유리하게 재편되었다. 실업의 자유와 비정규직이 늘어나고 실질임금 증가는 감소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소비도 얼어붙게 되었다. 냉각된 소비 때문에 구조조정을 통해 모처럼 자본을 절약하게 된 기업가의 투자욕도 결코 이전처럼 되살아나지 못했다. 결국 자본의 과잉축적과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 만들어낸 경제는 ‘자본주의 황금기’와는 딴판인 저성장-고실업의 세계였다. 70년대 이후 미국, 일본, 유럽의 경제실적은 5,60년대와 비교하면 형편없어졌다.

그나마 세계경제성장을 이끈 것은 범죄적 전쟁, 재정적자, 금융팽창, 신흥시장이었다. 실물투자에 매력을 잃은 기업이윤은 금융자본으로 변신해 국가를 넘나들며 투기와 수탈을 일삼았다.

그 일부는 빚으로 소비자들에게 흘러들어가 과잉상품을 소비시켰다. 또 일부는 신흥국으로 흘러들어가 값싼 노동력을 착취하는 대공업을 일으켰고, 동시에 과잉설비 문제도 지속시켰다(과잉설비에는 특히 한국의 자동차,반도체,조선,철강 산업 등이 큰 몫 했으며, 지금은 중국이 이 역할을 하고 있다).

2008년 공황은 이러한 세계 자본주의의 구조적 문제 위에서 일어난 것이다. 세계경제는 70년대 이래로 병상에 누워있었고(이것이 복지국가 해체의 배경이었다), 링겔(전쟁, 재정적자, 금융세계화) 맞으며 버티다가 약발까지 다하여 심장이 멎은 것이다. 다행인지 지금은 혼수상태에서 응급조치를 받고 의식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공황 이후 전개를 보면 어느 나라에서도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성은 말 뿐이고 과잉설비 청산도 없다. 근본적인 치료 없이 오히려 경제난을 틈타 노동유연화는 강화되고, 막대한 경기부양에 힘입어 과잉설비도 온존(GM 사례 등)하고 있다. 즉 세계경제의 구조적 문제는 지속되고 있다.

따라서 지금의 경기회복은 중환자가 전기충격으로 깨어난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구조적 문제를 염두에 둔다면 일시적인 지표의 등락은 큰 의미가 없다. 구조의 대전환 없이 본질적인 위기는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무한위기 혹은 대전환의 시대. 바로 우리 시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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