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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뿐인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기만적인 전진의 "민주 생태 사회주의"

2010/03/09 ㅣ 황정규

전진‘표’ 사회주의의 등장

2010년 새해 벽두부터 대단한 이념이 등장하였다. "민주 생태 사회주의"라는 이념이! 이 이념은 "평등사회로 전진하는 활동가연대"(이하 전진)가 야심차게 들고 나온 것으로, 소위 "방향상실의 시대", "혼돈의 시대"에 "진보의 재구성"을 가능하게 할 이념이라고 한다. 전진은 1월 4일, 이러한 야심찬 이념을 지향으로 하는 새로운 정치조직을 결성하자는 제안을 공개하였다.

전진은 언술수준에서 사회주의를 표방하였을 뿐이다

이 전진의 제안서는 일견 그렇듯 해 보이는 말들로, 일견 좋게 들리는 말들로 채워져 있어서, 전진에서 표방한 "민주 생태 사회주의"에는 뭔가 대단한 것이 있는 이미지를 준다. 그러나 전진에서 만들어낸 "민주 생태 사회주의"는 실상 사회주의의 핵심은 사라진 말뿐인 사회주의에 불과한 것이다.

우선 전진이 사회주의라고 주장하는 내용에는 노동자국가의 수립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다.
우리가 노동자국가 수립이라는 내용에 대해서 강조하고 전진의 제안에 이것이 누락된 것을 지적하는 것은 사회주의혁명 과정에서 노동자국가의 수립이 지니는 의미가 크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이 혁명의 과정에서 자신의 국가를 수립해야하는 것은 단지 혁명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반혁명세력의 저항을 억압해야 하기 때문만이 아니다. 노동자국가의 역할은 이러한 과제보다 더 중요하다. 노동자들이 자본주의 하에서 발전한 생산력을 인간의 필요를 충족시키고 인간의 전면적인 발전을 위해 이용하기 위해 생산관계를 변화시키려면, 노동자가 국가권력을 장악하여 사회전반의 생산을 인간의 필요와 발전에 입각하여 계획하고 통제하여야 한다.
노동자국가의 수립은 노동자계급의 의식을 발전시키는 데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사회주의자는 노동자국가의 수립을 부단히 선전, 선동하여,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권력을 수립해야 한다는 의식과 의지를 노동자계급 사이에서 고양시키나가야 한다.
따라서 사회주의 혁명의 과정에서 노동자국가가 지니는 결정적인 역할을 고려할 때, 노동자국가의 수립을 주장하지 않는 사회주의는 말뿐인 사회주의에 불과하다.

두 번째로 전진의 제안서는 사민주의와 사회주의 사이의 차이에 대해서 애매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제안서는 나름대로의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비판을 가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사민주의는 "현존대의제에 일방적으로 적응하는 길"을 걸어갔으며, 그래서 "노동자·민중이 자기 삶의 현장에서 권력의 주인이 되는 민주주의의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사회주의자들이 사민주의를 비판했던 것은 단지 의회주의고, 민주주의를 저해하였기 때문이 아니다. 사민주의는 19세기말부터 성장한 기회주의 세력으로, 1차 세계대전과 전후의 혁명의 시기에 자본가계급의 편에서 서서 노동자계급을 노골적으로 탄압한 세력이다. 이들은 다른 나라의 노동자계급을 학살하는데 앞장섰으며, 자국의 혁명적 노동자계급에게 피비린내 나는 학살을 자행했던 세력이다. 더 나아가 그 이후로는 자본가계급의 이해를 대변하는 정당으로서 노골적으로 변신하였다.
이러한 사민주의에 대한 사회주의자들의 평가에 비하면, 전진의 사민주의 비판은 사민주의에 대해서 호의적인 평가이다. 예컨대 전진의 제안서를 보면 “서구 사회민주주의가 성취한 복지 체제 정도라도 실현시키는 것은 여전히 우리의 중요한 당면과제들 중 하나"라고 하면서, 서구의 복지제도가 사민주의의 공으로 수립된 것이라고 치켜세우고 있다.

이외에도 전전이 표방하는 사회주의는 사회주의라고 하기 어려운 내용들로 채워져 있다. 현실사회주의에 대한 평가의 경우에는 “일당 독재, 관료 독재”라느니 “‘국가’ 사회주의”라느니 하는 혼란스럽고 불분명한 평가를 내리고 있다. 사용되는 용어들도 좋게 들리는 말들을 정확한 내용 규정도 없이 무분별하게 끌고 들어온 것이 많다. 가령 “국가의 민주화”라는 말은 맑스주의의 주장처럼 국가를 점차 소멸시키자는 것인지, 아니면 국가를 개혁하자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만약 후자라면 이는 사회주의라고 할 수 없는 주장이다. “생태”라는 용어도 동일하다. 예컨대 생태문제의 원인으로 든 “생산강박”이라는 것도 생산력 발전 자체가 문제라는 것인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 하에서의 생산력 발전이 문제라는 것인지 사실 불분명 하다. 대단한 대안처럼 제시된 “협동조합” 주장조차 현실의 협동조합 운동에 대한 기본적인 평가마저 없다.

요컨대 전진이 표방하는 사회주의는 사회주의의 핵심은 사라지고 사민주의와 '현실사회주의'에 대해서도 애매한 평가로 일관하고 있다. 즉 알맹이는 없고 그 대신 번드레한 말들로 가득 차 있다. 전진은 사회주의의 실내용은 전혀 없고 듣기 좋은 말들로 표장하여 "민주 생태 사회주의"라는 상품브랜드를 하나 만들었을 뿐이다.

진보신당과의 관계를 단절하지 않는 사회주의자?

사회주의자라면 사회주의정당 건설을 과제로 삼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전제이다. 그리고 사회주의를 주장하고자 한다면 당 건설을 위한 평가와 계획이 반드시 제출되어야 한다.
그런데 전진의 제안서에는 사회주의 정당을 어떻게 건설할 것인지는 일언반구가 없다. 즉 전진은 사회주의를 하자고 말하면서 사회주의 정당 건설을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말하지 않는 진귀한(!) 사회주의자들이다. 전진은 왜 사회주의 정당이 아니라 진보정당을 해야 하는지, 그간의 진보정당 운동에 대한 평가도 진보신당에서의 자기 활동에 대한 평가도 하나 없이, 당연한 것처럼 진보정당운동이 제 역할을 하도록 해야 한다고 단언한다. 그러나 전진만 모르고 사회주의자라면 다 아는 사실이 있다. 진보신당은 사회주의정당 건설을 위한 우회로는커녕 논란의 대상도 되지 않는 기회주의 정당이라는 사실 말이다.
이런 밑도 끝도 없는 논리는 사실상 전진의 실제 욕구를 보여줄 뿐이다. 사회주의 활동의 가장 기본인 사회주의정당건설에는 관심이 없고, 다만 진보신당에서 세를 확대시키기 위해 주변을 재조직화하는 것에 불과한 실천을 하고 있을 뿐이다.

왜 전진은 그럴싸하게 사회주의 이념을 만들고, 새로운 정치조직을 제안하게 되었나?

그렇다면 그동안 사회주의 활동이라고 할 만한 것을 해본 적이 없는 전진은 왜 갑자기 그럴싸한 사회주의 브랜드를 들고 나온 것일까?
전진이 사회주의를 표방할 수밖에 없게 된 이유는 우선 수년간의 과정 속에서 전진이 지속적인 해체의 과정을 겪어왔다는 데에 있다. 전진은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 내에서 자기들의 지위를 확보한다는 이해관계 하에 민주노총 중앙파와 민주노동당의 좌파연하는 당권파가 모여 만든 조직이었다. 결국 전진의 회원들은 민주노동당 분당과정 속에서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뿔뿔이 찢어져나갔으며 그 결과 이제 의미있는 정치활동이 불가능한 정도까지 해체, 축소되었다.
두 번째로 2007년부터 시작된 세계대공황으로 자본주의 위기가 심화되었고, 그 결과 개량주의적 세력이 무력화되고 있다는 점에 그 이유가 있다. 자본주의의 모순이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점차적으로 대중들 속에서 반자본주의적 의식이 발전해가는 조건에서, 그리고 자본의 노동자에 대한 노골적인 공격이 자행되고 있는 실정에서 개량주의적 방식은 설득력을 가지기 어려워졌다.
이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전진은 사회주의를 표방하지 않을 경우 조직이 존재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졌으며, 언술 수준에서라도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것이 불가피하게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전진이 내놓은 사회주의와 이를 지향하는 정치조직의 제안은 사회주의에 대한 진정성은 하나 없는 기만적인 흐름에 불과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다행히(!) 전진'표' 사회주의에 긍정성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전진'표' 사회주의는 우리에게 '반면교사'의 교훈을 준다. 즉 전진이 사회주의를 표방할 정도로 사회주의의 절실함이 더욱 커져가고 있으며, 이제는 그냥 사회주의를 언술수준에서 표방하는 정도를 넘어서 사회주의의 내용을 사상적으로 실천적으로 심화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하게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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