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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노동자의 현실과 조직-투쟁 이야기

2009/07/11 ㅣ 전국사무연대노조 김호정

2007년 7월1일, ‘비정규직보호법안’이 시행되면 2년 후 비정규직 대량양산이 불가피하다고 노동계와 학계 등 자본과 정권을 제외한 모든 이해 당사자들이 심각히 우려했다. 이러한 우려는 2년이 지난 2009년 6월 현재 비켜갈 수도 돌이킬 수도 없는 엄중한 현실로 다가와 있다.

전두엽이 완전 마비된 2MB정부와 한나라당은 ‘6월 대량 비정규직 해고 설’에 근거하여 쓰레기보다 못한 현재의 비정규직보호법안을 개정 또는 유예 하겠다고 한다. 그리고 반드시 강행 처리하겠다고 생떼를 부리고 있다. 그래야만 민생을 살릴 수 있다고 말이다. 참으로 어이가 없다.

비정규직 피해사례는 어느덧 우리의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어버렸다. 비정규직의 소리 소문 없는 슬픈 소식과 체념이 넘쳐난다. 날이 갈수록 말이다.

1. 농협중앙회지부(비정규직 노조)의 현실

“위원장님~지금 시간되시면 꼭 만나서 할 이야기가 있는데요. 꼭~”
“지금 만남 중인데... 급한 일이 아니면 내일 일찍 사무실에 들러 이야기 하시죠~~ 그런데 무슨 일이?”
“예... 전화로 이야기 하기는 좀 그런데...”
“그럼 만나서 이야기 하시죠.. 내일 아침 일찍 농협중앙회 지부사무실에 들리겠습니다.”

2008년 7월10일 저녁 10시경 배삼영 지부장과의 통화 내용이다. 다음날 이른 아침6시경 배삼영 지부장이 서대문 농협중앙회 본관 40미터 외벽에 매달렸다. 목숨을 건 고공농성에 돌입한 것이다.

당시 농협중앙회 사측은 배삼영 지부장을 일방 계약해지로 해고하고, 노조를 와해하기 위해서 조합원 탈퇴를 종용하고, 조합원 노조 가입에 대한 자격 시비까지 전방위적으로 노조를 압박했다. 단체교섭은 진척이 없고 현장의 조합원들은 소리 소문 없이 계약해지 되고, 노조 탄압이 가중되니까 결국 목숨을 건 고공농성을 선택한 것이다.

매달린 배삼영 지부장을 보니까 눈물이 핑 돌면서 전날 저녁에 꼭 만났어야 하는데 하는 진한 후회가 밀려왔다. 결국 고공농성은 9시간 만에 정리가 되었다. 당시 노사가 합의한 내용은 해고자 원직복직, 노동조합 인정, 교통비·중식비 지급 등이었다. 합의서를 보면서 이것 때문에 목숨을 걸어야 하나 생각하니 더욱 마음이 무거웠다.

고공농성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이면에는 2007년 7월1일 시행된 ‘비정규직 보호법안’이 도사리고 있었다.

농협중앙회 사측은 비정규법 시행을 앞두고 전체 비정규직 대략 1만여 명(직접, 간접고용 포함) 중에서 2천여 명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면서 비정규직 외면한다는 사회적 비난 여론에 대하여 명분을 쌓았고,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 비정규직은 정규직이 되었으니 비정규노조의 조합원이 될 수 없다는 말도 안 되는 논리로 노조를 무력화 시켰다.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었지만 고용보장 외에 처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한때 3천여 명에 달하던 조합원 수가 현재 200여명으로 크게 줄어들었다. 그리고 무기계약직 전환에 희망을 가지고 있는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노조에 가입해 있으면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면서 탈퇴 공작을 노골적으로 진행했다.

농협중앙회는 비정규법이 시행되기 전에는 비정규직을 5년 고용했었다. 하지만 비정규법이 시행되고부터는 2년 미만으로 고용을 계약한다. 비정규법 시행 전에 5년 계약을 맺은 사람의 경우 기간이 만료되면 재계약 없이 일방적으로 계약해지를 하고 2년 미만의 경우도 비정규법에 근거해서 2년 이전 계약해지를 자행하고 있다.

결국 매일 전국 곳곳에서 비정규직이 계약해지 되고 있는 실정이다. 농협중앙회 대다수의 비정규직이 이처럼 잘못된 비정규법으로 인해서 엄청난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이다.

특이점 - 정규직노조는 한국노총 금융노조 소속이며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 적극적이지 않음

2. 신용보증기금 비정규직의 현실

5.18! 뜻 깊은 2008년 5월18일 2시 대전 유성유스호스텔. 신용보증기금 비정규직이 노조를 결성한 날이다. 설립당시 신용보증기금에는 비정규직이 260여 명이 있었다. 채권관리에 120여 명, 나머지는 출납서무 담당하는 여성비정규직 등이었다.

노조는 채권관리 비정규직 중심으로 결성되었다. 동지들은 한때 제1금융권에서 일했다. 동지들 대부분이 IMF 시기 구조조정으로 인한 쓰라린 해고의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일자리를 찾아 신용보증기금에 비정규직으로 입사한 것이다. 길게는 8~9년, 짧게는 1~2년이다.

노조를 만들게 된 계기는 일방적 계약해지로 인한 고용불안과 채권관리 보상체계의 일방적 변경 등이었다. 문제발단의 핵심은 역시 2007년 7월1일 시행된 ‘비정규직 보호법’이었다.

신용보증기금은 금융공기업이다. 비정규직 고용을 주먹구구식으로 운영해오다 비정규법이 시행되니까 그때부터 2년 미만으로 고용한 것이다. 매년 11개월씩 2차례만 계약하고 기간이 만료되면 일방적으로 계약해지를 남발했다.

그리고 2년이 넘는 비정규직은 비정규법 시행 후 2007년 10월경 국무총리령으로 발표된 ‘공공부문 비정규직 종합대책’에 의거해서 정규직 전환을 시행했어야 했다. 하지만 무기계약직 전환대상 명단만 정부에 보고하고 시행하지 않은 것이다.

전환과정에서 정규직 노조의 적극적인 노력이 있었으면 가능할 수 있는 문제였다. 하지만 예산 배정 관련하여 정규직과 사측의 협의가 불발로 그친 것이다. 오갈 데 없는 비정규직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노조 결성밖에 없었다.

전국사무연대노조의 지부 결성이후 사측에 단체교섭을 요청했지만 사측은 무시와 무성의로 일관했다. 매달 계약해지 된 비정규직은 하나둘씩 늘어가고, 노조활동은 교섭위원 교섭 참석마저도 보장받지 못한 상태에서 투쟁을 전개하자니 막막한 상태였다.

초기에는 언론을 통해서 공기업 신용보증기금의 비정규직 계약해지 문제를 적극 알려나갔다. “인간은 일회용품이 아니다”라면서 말이다. 당시가 비정규법 시행 1년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많은 언론의 관심을 받았다.

적극적인 투쟁 전개는 비정규직 해고자들이 조직적으로 뭉치면서부터였다. 투쟁의 물꼬가 트이기 시작했다. 회사 앞에 천막을 치고 수단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조직적으로 대응하니까 교섭력이 조금씩 확보되기 시작했다.

질긴 투쟁을 통해서 결국 2009년 1월초 안택수 이사장과 고용 관련한 최종 합의를 이끌어냈다. 합의내용의 핵심은 2년 이상 비정규직과 2년 미만 비정규직 29명의 무기계약직 형태인 전속업무직으로의 전환이다.

합의 과정에서 일부 2년 미만 비정규직이 구제되지 못했다. 이후 교섭 과정에서 교섭을 통해 풀어나가기로 구두 합의했지만 미흡한 지점이다. 그리고 미조직된 출납서무 등의 여성비정규직과 나머지 비정규직에 대해서도 대책을 마련하지 못했다.

막판 합의 과정에서 노사 양측이 현실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해서 그런 합의가 나온 것이다. 많은 한계에도 불구하고 성과라면 2년 미만 비정규직이 투쟁을 통해서 고용을 쟁취했다는 것이다.

노조 설립 당시 인사말을 하면서 “목숨을 걸고 투쟁하겠다. 반드시 승리하겠다. 나를 믿고 동지를 믿고 끝까지 투쟁하자”고 했는데 결국 약속을 못 지킨 셈이 된 것이다. 투쟁과정에서 해결지점이 보이지 않자 동지들이 틈만 나면 “위원장님 언제 죽을 랍니까”라고 했는데 말이다.

참으로 우여곡절이 많고 힘든 투쟁이었다. 아쉬움도 많이 남고 성과를 떠나서 한계를 보인 투쟁이었다. 그리고 비정규직을 어떻게 조직하고 투쟁해야 하는지를 다시금 가슴깊이 새기는 계기가 되었다.

특이점 - 금융공기업, 정규직노조는 한국노총 금융노조 소속이고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 적극적이지 않음

3. 주택금융공사 비정규직의 현실

“정부 출자기관인 주택금융공사가 전체 직원의 44.8%를 비정규직으로 운용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정부의 비정규직 차별해소 의지를 의심케 하고 있다. 주택금융공사는 올 2월말 기준으로 312명의 직원 가운데 108명(34.6%)이 비정규직이며, 6개월이 지난 8월말 현재로는 다시 30명이 늘어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 비율이 44.8%에 이르렀다.”

위 기사는 매일노동뉴스 기사의 일부분이다. 주택금융공사비정규지부는 2008년 6월6일 현충일에 만들어졌다. 신용보증기금 동지들의 소개를 받아서 우리노조에 지부 설립을 문의하고 결성한 것이다. 채권관리를 담당하는 비정규직이며 신용보증기금비정규지부 동지들과 처지가 비슷하다.

사측의 비정규법 악용에 의해 2007년 6월30일 일방적·집단적으로 15명이 계약해지당한 것이 노조 결성의 결정적 계기였다. 채권관리 비정규직 50여 명 중에서 30여 명이 노조에 가입했다. 집단 해고된 15명은 2년 이상 3년 미만이고 나머지 모두 2년 미만 비정규직이었다. 집단 해고된 15명을 중심으로 투쟁을 전개했다.

사측은 교섭을 형식적으로 대응하면서 고용문제에 대해서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양보할 수 없다고 끝까지 고집했다. 사무금융연맹에 교섭권과 체결권을 위임하면서까지 교섭과 투쟁을 전개했지만 사측은 요지부동이었다. 노조결성 이후 비정규직 계약해지는 계속 이어지고 교섭이 막히면서 정말로 막막하고 힘들었다.

그러는 과정에서 집단 해고된 15명이 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승소하여 투쟁의 명분도 생기고 탄력도 받았다. 승소 핵심 취지는 이들 집단 계약해지 된 15명이 기간제 비정규직이 분명하지만 사측에서 계약갱신에 대한 기대감을 주었기 때문에 부당한 해고라고 판결을 내린 것이다.

즉 비정규직의 한계를 복직해서도 고스란히 안고 가야 되는 상황이었고, 이후에도 얼마든지 사측의 계약해지에 의해서 재발 가능한 판결이었다. 결국 15명의 복직 판결로 구제된 사람들 외는 계약해지로 인한 해고로부터 지켜내지 못했다. 사측의 요지부동 벽을 넘지 못한 것이다.

복직된 15명을 중심으로 지부는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우려하고 예상했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사측은 2008년 7월1일 복직한 15명에 대해서 이번 2009년 7월1일이 되기 전 6월말로 계약해지를 일방 통보한 것이다.

날벼락 같은 생각하기도 싫은 일이 벌어지고 만 것이다. 그뿐 아니라 동지들이 하던 채권관리 업무 전체에 외주 위탁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제는 투쟁해서 복직해도 할 일이 없어져 버린 것이다. 현재 노조에서는 사측과 이 문제에 대해서 교섭을 요청하고 투쟁을 준비 중에 있다.

특이점 - 금융공기업, 정규직노조는 한국노총 금융노조 소속이고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 적극적이지 않음

맺는말

위에서 전국사무연대노조 소속 비정규사업장의 현실을 부족하나마 써보았다. 날이 갈수록 비정규직의 고통스런 현실이 구체적으로 다가온다. 비정규직의 현실은 고통 그 자체이다. 그리고 체념과 절망이다. 그렇다고 외면하고 비켜 가면 고통은 계속될 것 같다.

그래서 우리가 가야할 길은 하나밖에 없다. 중소영세 비정규직 조직화에 명운을 걸어야 한다. 청년노동자, 단시간노동자, 여성노동자, 실업노동자 등 중소영세-비정규직을 적극적으로 조직해야한다. 그래야 미래가 있다. 기업의 벽을 넘어 전 사회적 차원에서 생산과 재생산의 영역을 넘어 대안세계를 위해 뜨거운 열정으로 조직하고 투쟁해야 한다.

실천을 위하여~~
발행. 노동해방실천연대(준) 홈페이지. www.hbyd.org 주소. (140-880) 서울시 용산구 한강로3가 40-10 인영빌딩 3층 전화. 02) 2275-1910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