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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문명의 발상지에서 자본주의 무덤을 팔 것인가?
- 세계경제 새로운 위기로 치닫다 -

2010/03/09 ㅣ 김광수

90년대 이후 자본주의 특징, 잦은 위기들

90년대 세계자본주의의 특징을 들자면 잦은 위기가 등장하는 것이다. 90년대를 관통한 일본의 장기불황, 95년도 멕시코와 아르헨티나를 거의 녹다운시킨 데킬라위기, 97년의 동아시아위기, 뒤이은 러시아 위기, 2000년도의 닷컴버블붕괴, 2002년의 아르헨티나 위기, 2000년대 중후반을 강타한 에너지위기, 2007년의 서브프라임위기, 2008년의 금융위기, 동유럽 외채위기, 그리고 2009년의 유럽의 재정위기 등 참 셀 수 없이 수많은 위기가 몰려왔다. 그런데 재미있는 일은 위기가 오고 나서 위기가 상대적으로 손쉽게 극복되면서, 경제학자들을 비롯한 관료들, 은행가들은 계속 낙관적인 입장을 키워왔다는 것이다. 놀랍게도 그렇게 헛소리를 해서 월급 받고 살다가 년말정산 할 때쯤 마다 새로운 위기가 오곤 했는데도 그들이 계속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조절능력에 대한 헛된 망상을 걷어 찬 유럽재정위기

그러면서 경제학자들은 90년대와 2000년대를 유래 없는 장기호황국면으로 기억한다. 위기는 있었으나 잠깐이면 해결되었고, 자본주의내의 조절능력은 여하한 위기도 해결할 능력과 의지가 있다는 것이 그들의 믿음이었다. IMF를 비롯해 각국이 위기에 대처할 재정적 수단 등 안전망에 대한 믿음도 흔들리지 않는다. 실제 10년 넘게 장기불황을 경험한 일본을 제외하고는 경제위기는 당사자들의 고통의 길이와 무관하게 금융당국자들의 머리에서 6개월, 혹은 1년 안에 정상으로 돌아왔다. 환율이나 성장률 같은 여러 가지 지표가 회복되었다는 것이 그들이 내거는 근거들이다. 전 세계인들을 경악시켰던 금융위기조차 1년도 채 되지 않아, 회복세니, 출구전략이니 하는 말이 나오고 있을 정도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이 체제에 무언가 문제가 있지 않냐’ 는 생각은 뒷전으로 밀린다. 체제 이전에 현재의 자본주의 정책기조 - 신자유주의니, 케인즈주의 하는 따위에 대해서도 반성할 여지가 없게 된다. 그래도 분별 있는 사람들은 ‘만약 위기의 지속정도가 더 길어진다면’이라는 단서를 달아 체제에 대한 의문이 나올 수 있는 상황임을 인정한다. 그러나 올해 터진 그리스의 재정위기는 이러한 한가함을 뒤흔들어 버렸다. 은행이 파산위기에 몰린 것이 아니라, 정부가 파산위기에 몰렸다. 이제 더블딥(대침체후 또 한 번의 침체가 오는 현상)에 대한 걱정은 현실이 되었고, 모두가 전전긍긍하기 시작했다.

이번 유럽의 재정적자위기는 한때 세계화의 구호 속에 유행이 되었던 경제통합의 약점도 드러냈다. 스페인이나 그리스가 유로에 통합되지 않았다면, 그 나라들의 재정적자는 이미 시장에서 노출되고, 환율위기 등의 형태로 조기에 터졌을 것이다. 그러나 유로화폐에 통합된 이후, 사태가 돌이킬 수 없는 단계에 와서야 터졌다. 또한 이러한 사태가 일어났을 때 인위적인 자국화폐의 절하를 통한 방법도 쓸 수 없게 되었다. 결국, 독일이나 프랑스 같은 유로화 챔피언들이 자국 국민에게 거두어들인 세금으로 다른 나라 위기를 구제하겠다고 나서는 길 말고는 없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을 낙관하는 사람은 없다. 현실은 가장 만만한 방법, 그리스 정부가 초긴축정책으로 자국 국민의 뼈를 깎아, 채권자들의 맘을 진정시키는 것이 추구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그리스의 상황을 최악으로 몰고 갈 것이 분명하다. 많은 사람이 그래도 좌파가 생기를 유지하고 있는 그리스를 주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위기의 규모에 비해 정부가 너무 작다?

90년대 이후, 세계경제가 그전과 달라진 점은 시장에 풀린 돈(화폐)이 많아진 것이고 그 돈들이 대부분 돈놀이에 쓰이고 있다는 것이다. 타이거펀드나 조시 소로스 정도는 찜 쪄 먹을 규모의 돈을 움직이는 펀드 혹은 유사한 기관은 이미 여러 수십 개에 달한다. 이 돈을 관리하는 자들은 페소화가 아르헨티나에서 쓰이는 화폐단위와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아르헨티나 위기 때마다 남미전역에서 투자된 자금을 빼나가는 바보들이 대부분이지만 각국의 정책담당자들을 쩔쩔매게 할 정도로 많은 돈을 움켜쥐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렇게 많은 돈이 수익을 찾아 헤매는 사이, 부동산도 오르고, 주식도 오르고, 그리고 이러한 실물자산에 투자한 돈의 이익을 나누어 먹는 새로운 금융상품, 이른바 파생상품이 등장해 금융시장을 복마전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이러한 금융상품의 수익이 떨어지는 순간, 페소화의 국적도 구별 못하는 바보들이 득실거리는 투기시장에서 투매가 이루어지고, 자산가격은 폭락하고 은행들은 파산하게 된다.

이번 2008년 말 금융공황(위기)이 오자 각국은 민간시장에서 발생한 엄청난 규모의 자산가격 폭락과 뒤이은 공황을 막기 위해 정부 돈을 풀어냈다. 즉 이자율 조정이라는 통화정책에만 의존하지 않고, 양적완화 정책 등 시장에 직접 돈을 푸는 방식을 동원해 일시에 불을 끄려고 했다. 물론 돈을 찍어서 돈을 푼다고 하지만 승용차위에다가 만원짜리를 얹고 거리를 활보할 수는 없는 터, 이른바 은행들의 채권을 사주는 방식으로 돈을 푸는 게 일반적이다. 그리고 정책자금이라는 이름으로 기업에 직접 돈을 꾸어준다는 지, 정부공사를 발주한다는 지, 차를 사면 보조금을 준다는 지 하는 재정정책 등도 동원되었다. 돈이 많이 풀리고 정부는 빛을 떠안았다. 당연히 다음 순서는 정부가 빌린 돈을 걱정하는 것이다.

시장에 돈이 많다는 것, 그리고 여전히 그런 돈들이 사적으로 소유되어 있고, “시장의 신뢰”니 하는 말로 포장되지만 돈을 관리하는 자들의 심리가 모든 것에 우선한다는 면에서 금융시장은 무정부성이 어느 때보다도 고조되었다. 따라서 금융시장은 경제학이 지배하는 곳이 아니라 심리학이 지배하는 곳이 되어 공포가 전염되는 속도도 빠르고, 이들의 심리를 진정시키는 정부의 노력이 있다면 빠르게 진정도 되는 곳처럼 보인다. 그러나 공황 때 금융시장 주체의 심리를 진정시키는데 너무 많은 돈이 들어간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자본주의 조절능력의 마지막 보루인 정부의 힘의 한계를 넘어선다는 것이 이번 그리스를 비롯한 남유럽 국가들의 재정적자 위기는 보여주고 있다.

세상은 지옥으로 가고 있다

21세기 들어와 경제 위기 국면들이 잦고 압축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함인가? 90년대 이후 잦은 위기설과 실제 위기국면들은 자본주의체제에 회복되기 힘든 내상이 늘어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90년대 이후 자산시장에 깊이 페인 내상은 부동산거품이고, 저성장의 덫에 걸려 허우적거리는 나라들은 재정적자의 내상을 입고 있다. 그리고 70년대 이후 계속 관통하고 있는 내상은 생산영역에는 엄청난 과잉생산이고, 80년대 이후는 북반구를 중심으로 거의 모든 나라의 가계경제에는 실질소득의 감소라는 내상을 입고 있다. 사실 문제는 이것이다. 과잉생산과 근로계급의 빈곤화가 모든 위기의 근본이다. 돈 빌려주고 이자 받는 은행들만의 문제라면 금융위기인데 왜 GM이 폭삭하겠는가? 세계적인 과잉생산위기는 이 위기의 근본에 도사리고 있는 근본적 문제다. 근로계급의 빈곤화는 실질임금의 하락도 하락이지만 실업과 비정규직의 증가로 드러난다.

이번 그리스 재정위기로 경제위기에서 세계자본주의가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이 고갈되고 있음이 폭로되었다. 불황의 지속이건, 더블딥이건, 세상은 지옥으로 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곤궁함은 늘어날 거고, 세상을 놀라게 할 파산소식은 계속될 것이다. 오늘 가족과 함께하는 저녁밥상이 내일도 지속되리라 보장할 수 없다. 갈수록 노동자계급에게 세상을 뒤집지 않고 저녁밥상의 평화를 염원하는 건 사치가 되었다. 위기라는 말에 짜증나는 세상, 밥상을 엎을 건가, 세상을 엎을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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