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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마 민주화 투쟁은 한시도 꺼지지 않았다!

2007/10/26 ㅣ 문창호

1988년에 3천여 명의 피를 흘리고 좌절됐던 버마민중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다시금 9월항쟁을 통해 되살아났다. 그러나 버마군사정권의 가공할만한 탄압은 또다시 버마민중의 생명을 무참하게 짓밟았다. 최소 2백여 명이 희생당하고, 1만여 명이 강제로 연행, 구금됐다고 한다. 이에 세계 곳곳의 민중들은 자발적으로 항의시위를 조직해 버마군사정권의 학살을 규탄하며, 살인적 탄압 아래에서도 다시 일어선 버마민중항쟁에 지지와 연대를 보냈다. 반면에 버마의 자원에 이권을 갖고 있는 한국을 비롯한 자본주의 국가들은 이익을 쫓아 버마군사정권의 학살을 방조했다. 그리고 주류언론들은 학살을 전후해 잠깐 보도에 열을 올리더니, 이제는 관심을 거두어 비교되는 무관심과 소외를 통해 마치 버마민중이 패배하고 일상으로 복귀했다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그러나 버마 민주화 투쟁은 한시도 꺼지지 않았다! 민중은 위협하면 수그러드는 수동적인 존재가 결코 아니다. 민중의 자기발전의 의지와 힘은 무엇으로도 꺼뜨릴 수 없다.
한국에서 버마의 민주화를 위해 싸우고 있는 ‘버마행동 한국’ 활동가인 ‘아웅틴 툰’ 동지를 만나 버마민중의 끝나지 않은 투쟁에 대해 들어보았다.


Q. 본인과 버마행동에 대해 소개해 달라.

버마에서 온 아웅틴 툰 이라고 합니다. 한국에 온지는 13년이 넘었다. ‘8888 민중항쟁’(88년8월8일의 버마의 거리를 가득 메웠던 민주화투쟁. 당시 군사정권의 발포로 3천여 명이 희생됐다.) 이후 94년까지 군사정권은 학생운동을 억압하기 위해 대학교 전체를 문 닫았었다. 94년에 입학신청을 했었는데 결국 공부도 못해보고 학교가 문 닫았고, 같은 해 한국에 산업연수생으로 왔다. 지금은 버마행동에서 활동하고 있고, ‘이주노동자의 방송’에서 취재, 편집 쪽 일을 하고 있다.
버마행동에 대해서 소개하자면, 이주노동자의 인권과 버마의 인권, 민주화에 대해 우리가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 해보자해서 여러 동지들이 함께 일하고 있다. 우리는 버마 민주화를 위해 스스로 활동하는 시민단체, NGO랄 수 있다.

Q. 9월 민중항쟁에 대한 군사정권의 학살과 항시적인 탄압으로 대대적인 거리시위는 잠잠해졌다고 들었다. 지금 버마민중은 어떤 방법으로 민주화투쟁을 이어가고 있나?

현재는 정부가 이기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총 있는 사람이 총 없는 사람을 무자비하게 탄압한,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현재 상황을 1988년과 비교해보면 상황이 다르다. 경제가 파탄이 났다. 사람들의 생존에 꼭 필요한 음식, 교통수단을 구하고 탈 수가 없다. 지금은 정부가 이겼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버마 사람들 99%가 경제가 이대로는 더 이상 돌아갈 수 없다고 인식하고 있다. 버마민중의 마음속에서, 해외에 있는 버마활동가들과 이주노동자들 마음속에서도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이번에 버마 민주화 쟁취 못하면 우리의 미래는 사라진다. 어떤 방법을 쓰더라도 다시 시작해야 한다.
민주화 활동이 국내에서는 꼼짝 못할 정도로 탄압받고 있다. 집집마다 조사해서 투쟁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다 잡아가고, 주도적인 사람들 같은 경우는 본인은 피하더라도 부모님까지 대신 감옥에 넣고 있다. 그래서 밖에 나가 시위할 수는 없더라도, 저녁8시면 국영방송의 거짓말 뉴스를 보지 않기 위해 불을 끄고 집집마다 기도회를 가진다. 살인적인 탄압 아래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있다. 한편 버마 국경지대에서는 학생무장단체가 준비하고 있고, 소수민족이 정부군과 싸우고 있다. 만약에 국경지대나 다른 지역에서 싸워야 하고 힘을 합쳐야 한다면, 해외의 우리도 가야한다는 마음을 먹고 있다. 이주노동자도 나라 자체의 문제, 정치 때문에 남의 나라 와서 고생한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지난 9월 30일에 버마 대사관 앞에서 큰 집회가 있었다. 한국에서 오랫동안 집회가 있어왔지만, 이주노동자에게는 외국에 있어도 정부가 무섭기 때문에 참여가 적극적이지 못했다. 하지만 28일 밤에 전화가 먼저 와서 30일에 집회하게 해달라고, 우리가 사람들 모아서 가겠다고 했다. 정말 기뻤다. 누군가가 이끄는 것이 아니라, 직접 나서야 한다는 것을 이주노동자 스스로 깨달았다.
그런데 그날 한국에서 우리가 모이고 집회할 수 있었던 건 행복이었지만, 그날 들은 소식에는 정부군이 쏘는 총에 승려들이 맞고 돌아가셨고, 다친 사람들까지 살아있는데도 같이 화장했다고, 화장했던 사람이 인터뷰에서 총으로 위협해서 태울 수밖에 없었다고 직접 말했다고 했다. 이 소식에 우리는 너무나 충격받았고, 버마의 미래가 어떻게 되나 물었다. 불교를 믿고 불교의 나라인데 승려들이 같은 버마사람에게 죽었다. 승려들이 이렇게 심하게 맞고 죽은 것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처음인 것 같다.
어떤 방법이라도 버마 국내와 해외가 함께 투쟁할 수 있는 기회 만들어야 한다. 이번에는 우리가 필요해서 무기를 잡아야 한다고 하면 무기를 잡아야 한다고 마음먹고 있다.

Q. 언급하신 버마 무장투쟁에 대해 좀 더 말해 달라.

무장투쟁단이라고 하면 한국에서는 테러리스트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버마 무장투쟁은 자신들이 먼저 가서 싸우려는 게 아니라, 지금 전력을 유지해서 언제가 우리가 결정적으로 필요하고 해야 되겠다 싶을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오히려 정부군이 와서 싸우는 것이지, 자신들이 정부군을 찾아 싸우지 않는다. 무장투쟁단체로는 국경지대에 전버마학생민주전선(ABSDF)이 있고, 여러 소수민족들도 무장투쟁을 하고 있다. 우리는 그쪽에 필요한 모금활동도 한다.

Q. 군사정권의 학살 이후 미국이 주도해서 경제제재를 언급하며 군사정권 규탄에 나섰다. 반면 중국과 러시아 등은 이러한 개입에 제동을 걸고 있는데, 이러한 열강의 행동들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한편 어떤 사람들은 미제국주의를 무엇보다 경계하며, 버마군정에 대한 내정불간섭을 주장하기도 한다.

미국을 보면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침공 등의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있다. 우리도 미국이 좋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의 첫 번째 목표는 무엇보다 버마의 민주화이다. 누군가 도움이 된다면 우리는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다고 미국의 지금 행동들이 그냥 좋다는 건 아니다. 미국이 어떤 입장에서 어떻게 했으면 한다는 생각이 있다. 민주화가 되면 우리 힘으로 자립해야 할 것이다.
중국같은 경우는 버마군사정권이 62년부터 손잡고 왔었다. 무기 같은 거 필요하면 제재로 군사정권이 직접 살 수는 없으니까, 중국한테 돈 주고 사달라고 하고 그랬다. 위성채널같은 경우도 버마가 중국한테 돈 주고 사서 쓰고 있고, 이런 부분이 많다. 군사정권은 중국에게 배우고 도와 달라 하고, 그런만큼 중국 측에도 많은 이익을 준다. 중국에 젤 큰 사파이어 시장이 있는데, 다 버마에서 나오는 보석이다. 버마가 만약 민주화가 되면 자기네 쪽에서 손해본다고 생각하고, 미국 영향력이 확대되는 것도 경계한다. 여러 가지 면에서 중국은 버마가 민주화되는 것을 싫어한다. 그래서 버마군사정권 편을 든다.
한국도 마찬가지로 대우인터내셔널이 들어와 가스 개발하고, 무기공장까지 만들어서 군사정권에 무기를 대고 있다. 이에 대해 한국정부는 아직 제대로 입장을 내지 않았다. 이익 쪽으로만 생각하는 것 같다.

Q. 이번 버마민중항쟁을 바라보며, 많은 사람들이 광주민주항쟁을 떠올린다. 광주에서는 모금도 자발적으로 이뤄졌다고 한다. 광주민중항쟁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광주민중항쟁은 버마사람들뿐만 아니라 아시아에서도 아주 유명한 항쟁이다. 광주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고 들었다. 나도 망월동에 한 번 가보았다. 한국의 민중항쟁과 민주주의는 우리가 부러워하는 것이고, 배워야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가 똑같이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한국이 이렇게 민주화가 됐는데, 국민들은 버마 민주화에 관심이 있지만, 한국정부는 관심이 없다. 자기 이익만 생각한다는 것은 누가 보아도 티가 난다. 이것에 대해 실망한 점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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