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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이 사라진 민주노동당 당직선거

2006/02/16 ㅣ <이장수>

민주노동당의 지도부를 뽑는 당직선거가 진행되고 있다. 원내의석을 가진 유일한 진보정당이자 지지율 3위인 정당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를 가름하는 선거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이번 선거에 당내외적으로 상당한 관심이 쏟아지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진보진영 내부에서건 대외적으로건 이번 선거에 대한 관심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한마디로 맥빠진 선거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그것은 한마디로 당내 거대정파들끼리의 조직대결 및 후보 개개인에 대한 인물평 위주로 선거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별한 정치적, 노선적 쟁점을 만들기보다는 각자 자신의 조직을 동원하여 지지후보의 인물을 추켜세우고 상대측의 약점을 공격하는 방식의 선거운동이 위주가 되고 있다. 딱 보수정당의 선거운동방식이다. 그 과정에서 당이 진정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나 당혁신의 방향성에 대한 진지한 토론은 완전히 실종되어 버렸다. 누구나 당의 위기를 이야기하고 혁신을 이야기하지만, 그 실내용이나 진정성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이런 식으로 선거가 진행된다는 자체가 당의 위기를 더 심화시키는 것이라 생각된다.

이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당대표 선거이다. 좀 심하게 말하자면, 당대표 출마한 세 사람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당대표에 나왔는지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 문성현 후보는 통합만을 이야기할 뿐, 실제로 통합을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그 내용이 전혀 없다. 게다가 통합은 거대정파끼리의 담합 내지 막후정치에는 핵심적인 사안일지 몰라도, 당의 위기를 극복하고 당이 진정한 계급정당으로 나아가는 것과는 별 상관이 없는 주제이다. 통합만 이루어지면 저절로 혁신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런데 문성현 후보는 당이 무엇을 혁신해야 하고 어떻게 혁신이 이루어질 수 있는가에 대해선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다. 당내 최대정파인 민족주의자들에 얹혀서 당대표가 되겠다는 생각 말고는 당에 대해 얼마나 진지하게 고민했는지가 솔직히 의심스럽다.

조승수 후보 또한 마찬가지다. 세 사람 중 가장 인지도가 있으니까 인물로 몰아붙이겠다는 생각인지 몰라도, 당이 앞으로 나아갈 방향 따윈 일체 언급하지 않고 대선 500만표 어쩌고 하면서 권영길 전 대표의 2012년 집권과 비슷한 내용없는 구호만을 내걸고 있다. 그냥 이대로 가더라도 자신이 대표가 되기만 하면 500만표 득표가 이루어진단 말인가? 당장 울산북구의 패배만 하더라도, 그 자신이 상당한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아니던가? 북구청장 및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재직할 당시 진보적 지방자치의 모범을 창출했더라면 지난 보선에서 당은 그렇게 쉽게 패배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동안 못한 것을 이제 와서는 잘할 수 있다는 근거가 도대체 뭔가?

우습게도, 그나마 나름대로 ‘혁신’의 방향이라도 내놓은 후보는 주대환 후보이다. 문제는 주대환 후보가 내놓은 ‘혁신’의 방향이란 것이 계급정당은 고사하고 진보정당으로서의 자기정체성을 포기하고 우경화, 개량화하는 방향이라는데 있다. 당직공직겸임금지 폐지 정도가 아니라, 미흡하나마 중앙당이나 지역위에서 진행되는 대중운동과의 결합이나 연대투쟁 등을 포기하고, 중앙당의 ‘전문가’와 지역의 ‘자발적인 지지자’ 중심으로 당을 운영하자는 그의 논리는 한마디로 운동을 포기하고 보수정당과 완전히 동일해지자는 이야기일 따름이다. 주대환 후보는 그렇게 하면 당이 집권당이라도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보수정당과 똑같은 정당이 말만 좀 번지르르하게 한다고 대중들이 그 정당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한마디로, 주대환 후보의 혁신이란 당의 정체성도 버리고 대중들의 지지도 잃는 이상한 혁신일 뿐이다.

당대표 후보라면 마땅히 다음과 같은 것들을 이야기해야 한다. 우선 1기 지도부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당의 위기가 초래되었으며 그 중 어떤 것이 노선의 문제이고 어떤 것이 제도 내지 운영상의 문제인지에 대해 정확한 평가가 제출되어야 한다. 또한 당직공직겸임금지의 기본적 취지인 의원단에 대한 당적 통제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며 그것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일 것인지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 사실 원내진출 이후의 당에 대한 평가의 핵심은 바로 이 문제다. 그런데도, 의원단 활동에 대한 문제제기는 이번 선거에 나온 후보 중 그 누구도 제대로 이야기하지 않고 있다. 이미 당이 심각한 정도로 의회주의에 경사되어 있는 지금, 2기 지도부가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지 않는다면 당은 완전히 의회주의의 함정에 빠지게 될 것이다.

대외적인 측면에서도, 당의 지도부는 대중들에게 내용없는 전망만을 반복할 것이 아니라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의 근원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밝히고 그에 대한 극복의지를 단호하게 천명함으로써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야만 한다. 물론 이 고통의 근원이 무엇인가에 대한 판단은 당내의 각 정파별로 다를 수 있는 바, 노선 상의 차이는 바로 이런 방식으로 밝혀지고 이에 대해 당원들이 판단하게 해야 한다. 지금처럼 조직을 통해 세대결만 벌이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공개적으로 노선을 천명하고 당원들이 이를 평가하도록 하는 것이 제대로 된 정파별 선거운동 방식이다. 가령 이른바 자민통 그룹이 지지하는 문성현 후보의 경우 현재 민중들이 겪는 고통의 근원은 미국 때문이며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바는 미국의 지배에서 벗어난 민족자주정부라고 말해야 할 것이며, 이른바 범좌파 그룹이 지지하는 조승수 후보의 경우 일방적인 시장중시의 신자유주의가 고통의 근원이며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바는 스웨덴이나 독일 등 유럽형 사회민주주의임을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주대환 후보 역시, 세계화의 추세를 인정하되 복지도 좀 더 신경써서 블레어 식의 제3의 길로 나아가자고 자신의 지향점을 솔직하게 밝혀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비록 당대표가 아니라 최고위원선거에 나왔지만 김광수 후보 등 사회주의자들이라면 마땅히,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모든 고통은 근본적으로 자본주의의 억압과 착취 때문이며 자본주의를 폐절하고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것만이 민중들의 고통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음을 당당하게 선언해야 할 것이다. 또한 당 내부적으로도, 단지 사람이 아니라 당내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타협적이고 현실추종적인 경향에 따른 기풍과 노선상의 광범위한 후퇴를 반전시킬 때만이 진정한 당혁신이 이루어짐을 확실히 해야 한다. 이 후퇴는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나는 바, 원내와 원외의 관계에서는 의회주의적 편향으로 나타나며 정치적으로는 당의 계급적 독자성을 훼손시키는 부르조아 개혁정당과의 연합전술로 나타나고 운동적으로는 노동계급 대중운동이 아니라 시민운동적인 활동방식으로 나타나는 등 그동안의 당활동 전반에 침윤되어 있는 비계급적 양상들이 바로 그러한 것들이다.

물론 민주노동당이 아직은 사회주의정당이 아니라 일반적인 진보정당 수준에 머무르고 있기에, 우리 사회주의자들의 대안과는 다른 방식의 대안들도 얼마든지 제출되고 토론될 수 있음을 우리는 인정한다. 하지만 최소한 그런 대안들이 제출이라도 되어야 하지 않는가? 당이 나아갈 방향을 결정하는 지도부 선거에서, 당대표 후보들조차 당혁신과 관련된 아무런 대안을 제출하지 않고 있는 현재의 상황은 참으로 서글프다. 바로 한달 전까지만 해도 당의 위기를 이야기하고 쇄신을 이야기하였건만, 그 위기를 극복하고 혁신할 방안은 실종된 채 조직과 인물론만이 판치는 이번 지도부 선거양상을 도대체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한마디로 이건 진보정당의 선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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