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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노총 사과 사태와 더욱 깊어져가는 민주노동당의 위기

2007/11/25 ㅣ 정방기

노동자들의 투쟁을 유린하는 굴욕적 사과

10월 15일 민주노동당 문성현 대표는 김선동 사무총장을 보내 한국노총에 공식사과를 했다. 작년 노사관계로드맵을 야합한 한국노총에 대하여 문성현 대표가 강한 어조로 규탄 발언을 한 것을 1년여 만에 사과한 것이다. 이 사실을 접한 후, 많은 사람들이 참을 수 없는 배신감과 분노를 느껴야 했다. 이것으로, 로드맵 야합을 규탄하며 한국노총 점거농성을 벌인 전해투 동지들의 의로운 투쟁은 어이없게도 당 최고 지도부에 의해 부정되었다. 구속과 실형으로 투쟁의 댓가를 혹독히 치르면서도 언제 한 번이라도 당당함을 잃지 않았던 해고자 동지들의 고결한 정신이 어느 누구도 아닌 ‘진보정당’의 대표에 의해 유린된 것이다. 더군다나 노사관계로드맵 뿐만이 아니라 비정규직 법안까지, 개악에 동의하는 것도 서슴지 않던 한국노총에게 행한 사과로 악법에 저항하는 비정규직노동자들의 투쟁 역시 심각히 훼손되었다.

거센 반발에 직면해 내놓은 당대표의 변명투성이 사과문

역사에 기록될 이 굴욕적인 사과 소식으로 곳곳에서 민주노동당을 향한 비판과 항의가 이어졌다. 그리고 이구동성으로 민주노동당 지도부에게 전달된 요구의 가장 핵심적인 것은 굴욕적인 사과를 ‘철회’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사과가 명백한 역사적, 정치적 오류였음에도 불구하고 당 대표와 사무총장, 최고위원들은 이를 겸허히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격렬한 당 안팎의 비판이 있은 후 2주여가 지난 후인 11월 2일에야 문성현 대표는 사과문을 발표했다. 그러나 문성현 대표의 사과문에서는 ‘시기와 절차 등의 문제로 심려를 끼친 점’ 정도의 사과를 할 뿐, 한국노총에 대한 사과 철회 등 그 동안 전해투를 비롯한 많은 동지들이 요구한 사항들이 보란 듯이 부정되었다. 원인을 무효화하는 ‘한국노총에 대한 사과를 철회’하는 것과 ‘한국노총의 정책연대 제안을 거부’하는 것을 뺀 채 변명 위주의 사과문을 발표한 것이다. 심지어 사과문 발표 과정에서도 한국노총에게 가급적이면 자극을 주지 않으려고 해서인지, 이미 공개된 사과문을 김선동 사무총장의 요구로 슬며시 수정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무려 네 번의 회의를 거쳐야 했던 ‘사과 철회’ 결정

사실상 이 문제 하나 가지고 당 최고위원회는 네 차례에 걸쳐 회의를 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사태가 이 지경까지 가게 된 것은 최고위원들에게 사과 철회에 대한 의지가 극히 박약한 반면, 한국노총과의 정책연대에 대한 매우 강한 집착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당 대표가 한국노총에 했던 사과는, 애초에 한국노총이 ‘민주노동당이 공식 사과를 하고 그것을 전제로 정책연대 대상 후보에 포함시킨다’는 요지의 공문을 보내온 이후 이뤄진 것이었는데, 당 대표는 “자신의 사과와 정책연대가 무관하다”고 하며 너무도 뻔한 사실을 아니라고 우기는 억지 주장을 계속했었다. 이런 당 지도부의 상태에서 최고위원회는 사과 철회와 정책연대와 관련한 지리멸렬한 회의를 거듭하게 되었고 명확한 결론을 이끌어낼 수 없었다. 이렇게 사태를 명쾌하게 정리하지 못하는 사이 항의와 규탄 성명은 계속 되었고, 급기야 분노한 노동자들과 당원들이 당사 앞에서 당 지도부 규탄집회를 하게 되는 비극적인 상황에 이르러서야 최고위원회는 비로소 ‘사과 철회’를 결정했다.

사과 철회, 그러나 정책연대에 대한 끝없는 미련

이미 해버린 ‘사과’이지만 결코 해서는 안되는 것이었던 만큼 뒤늦게라도 ‘사과 철회’를 결정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법도 하다. 그러나 그나마 어렵사리 내린 한국노총에 대한 ‘사과 철회’ 결정은, 같은 회의에서 한국노총과의 정책연대에 대한 재논의의 여지를 남겨둠으로써 곧바로 그 진정성을 상실했다. 정책연대 이전에 한국노총의 로드맵 등의 야합으로 이들과의 ‘연대’ 자체가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에 의해 이미 작년에 공식 폐기된 상태에서 이런 태도는 매우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었다. 야합 이후 현재까지도 한국노총의 태도가 변한 것은 단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오히려 이용득과 한국노총 집행부는 더욱더 노골적으로 자본과 한통속이 되어 노동자들에 대한 배신행위를 강화했다. 한국노총은 비정규직 악법을 기정사실화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고, 바로 이러한 배신행위로 말미암아 이랜드 뉴코아 노동자들을 비롯한 노동자들의 피눈물 나는 고통이 시작된 것이다. 정해진 열사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은 자본의 탄압뿐만 아니라 한국노총의 배신과 탄압이었다. 이러한 엄연한 현실 앞에서 정책연대 운운하는 것은 한국노총의 배신행위에 면죄부를 주고 현재 진행되고 있는 노동자들의 치열한 투쟁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것이었다. 앞에서는 당이 비정규직투쟁을 강조하고 비정규직당이 되겠다고 공언하면서 뒤에서는 비정규직노동자들에게 고통만을 안기는 한국노총과의 정책연대 운운하는 것은 노동자들을 기만하는 뻔뻔한 배신행위이다.

책임성과 지도력의 바닥을 드러낸 최고위원회

이번 사태로 최고위원회는 정치적 책임성과 지도력의 바닥을 드러냈다. 다수의 최고위원들은 사과공문을 발송하기 전에 보고서도 이를 강력하게 말리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중대한 사항임에도 이를 논의하기 위한 최고위원회의 소집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대표가 독단적으로 행동했다고 하지만 최고위원회는 연대책임을 면할 수 없다. 최고위원회는 사후 처리과정에서도 주도적으로 나서지 않았고, 중대한 시기에 무려 네 차례의 회의를 하면서도 명확한 정치적 결론을 내지 못하고 사태를 정리하지 못하였다. 몇몇 최고위원은 사태해결의 기본전제인 사과 철회마저 반대하는 두고두고 남을 행동을 보여주기도 했다. 결국 최고위원회는 표결을 통해서야 가까스로 ‘사과 철회’를 결정했다. 그리고 정책연대 제안에 대한 지리멸렬한 논란은 당 지도부의 결단에 의해서가 아니라 한국노총의 조소 섞인 결정에 의해 결국 없었던 일이 되었다. 11월 19일 한국노총 중앙정치위원회는 정책연대 대상 후보에서 민주노동당을 제외하기로 한 것이다.

위기의 민주노동당은 어디로 가려 하는가!

이번 사태는 민주노동당의 상태가 어떠한지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 보여주었다. 스스로 노동자정당, 진보정당이라고 자처해왔지만 근래에 들어 민주노동당이 보여준 모습은 정체성 배반의 연속이었다. 특히 대선이 다가오는 상황에서 보인 당의 모습은 날이 갈수록 악화일로로 치달아왔다. 결국, 로드맵 야합 직후 당이 어용노조라 비판했던 한국노총에게 머리 숙여 표를 구걸하는 듯한 굴욕적인 행동까지 한 것이다. 이렇게 민주노동당은 넘지 말아야할 선을 넘어버림으로써 참담한 지경에까지 이른 것이다. 한국노총 사과 사태 역시 그렇지만, 굳이 구체적 사례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최근 발생하여 정체성의 문제로 비화되는 사태들 대부분이 당을 이끌어가는 핵심 지도부에 의해 야기되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저질러진 사태에 대해 지도부 스스로가 그 심각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다보니 이제는 웬만한 압박이 있지 않고서는 수습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지고 있다. 당 지도부의 오류로 당 전체가 심각한 곤경에 빠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민주노동당은 날이 갈수록 심각한 위기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민주노동당 한국노총 사과 관련 사태의 진행 경과

● 10.8. 한국노총, 9.11 로드맵 야합 당시 문성현 대표가 “한국노총은 노동자의 이름을 버려야 한다”라는 등의 비난을 한 것에 대하여 민주노동당이 공개사과 할 것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냄. (아래 인용 참조)

“~ 한국노총 중앙정치위원회에서 한국노총에 대하여 적대적인 행위를 한 귀 당을 정책연대 대상후보에 포함할 것인지 여부를 논의한 결과 사뭇 격앙된 분위기 속에서 심사숙고 끝에, ‘민주노동당이 한국노총에 행한 과거의 언행에 대하여 공개사과와 향후 재발방지에 대한 명확한 약속을 할 경우 2007년 대선 정책연대 대상후보에 포함한다’라고 결의되었습니다.(10월 8일자 공문 중에서)”

● 10.15. 문성현 대표, 한국노총에 사무총장을 보내 ‘한국노총에 대한 부적절한 발언 관련 사과의 건’이라는 제목의 공문을 전달함.
● 이 소식에 전해투, 전비연 등 각계의 항의성명이 이어짐. 특히, 전해투는 2006년 ‘9.11야합’을 규탄하며 한국노총 점거농성을 전개하여 8명의 농성자 전원이 구속, 실형을 선고받았고, 현재까지도 2명이 감옥에서 갇혀 있음. 한편 울산에서는 민주노총의 ‘민주노동당 배타적 지지방침 철회’를 요구하는 노동자 서명운동이 시작됨.
● 10.26. 전해투가 당대표 면담하여 사과 철회 공문 발송 요구함. 이에 당내 논의기구를 통해 처리할 사안이라는 답변을 들음.
● 10.27. 건설 전기분과 정해진 조합원이 분신, 운명하심. 한국노총 소속 노조의 폭력탄압을 겪어왔던 조합원들은 빈소를 찾은 당 지도부에 항의, 조문을 가로막기도 함.
● 10.31. 해방연대(준)과 전진이 당대표를 면담하고 사과 철회 등을 요구함. 이에 당 대표는 즉답을 피하며 다음날 최고위원회에서 논의하겠다고 함.
● 11.1. 당 최고위원회에서 이 문제를 논의하여 결론을 내지 못하고 다음 회의로 미룸.
● 11.2. 두 번째 최고위원회에서 대표가 ‘사과문’을 서둘러 내기로 결정했으나, ‘사과 철회, 한국노총의 정책연대 제안’ 등에 대해서는 결론을 내지 못하고 다음 회의로 미룸.
● 11.2. 문성현 대표가 사과문 발표, “시기와 방법, 절차가 적절하지 못했다”고 해명함.
● 11.4. 세 번째 최고위원회 개최, 여전히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다음 회의에 다시 논의하기로 함.
● 11.8. 네 번째 최고위원회가 시작되기 직전 당사 앞에서 ‘한국노총 사과 지도부 규탄집회’가 열림. 이날 열린 최고위원회는 긴 논란 끝에 표결하여, 6:3으로 ‘사과 철회’를 결정함. 다만 정책연대 문제는 사과 철회 후 한국노총의 반응을 보면서 재논의하기로 함.
● 11.14. 한국노총 중앙정치위원회, 민주노동당 최고위원회 결과에 대해 “요설 수준의 상식 이하 발언”이라 언급하고, ‘정책연대 대상후보 포함 여부’는 11월 19일 회의에서 재논의키로 함.
● 11.15. 해방연대(준), ‘당 대표와 사무총장은 정책연대 제안거부를 명확히 한 후 작금의 사태에 책임지고 사퇴하라!’는 성명 발표함.
● 11.19. 한국노총 중앙정치위원회, 정책연대 대상 후보에서 민주노동당을 제외시키기로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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