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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버트로스의 똥으로 만든 나라
- 개발주의의 희생양 나우루공화국 -

2008/11/22 ㅣ 박남일 (저술노동자)

태평양을 떼 지어 누비던 앨버트로스의 똥이 오랜 세월 산호초 위에 쌓이고 쌓여 섬이 되었다. 적도 바로 아래 태평양에 떠 있는 나우루 섬 이야기다. 세월이 흘러, 섬 지표면을 덮은 똥은 귀중한 산업자원인 인광석으로 변하였다. 그 섬 위에서 미크로네시아 계 원주민 수천 명이 물고기와 열대 과일 따위로 자급자족을 하며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

그러던 1888년경부터 이 섬에 출몰하기 시작한 독일과 영국의 자본가들이 철도를 놓고, 인광석을 캐 갔다. 인광석은 질 좋은 화학비료의 원료가 되어, 서구 자본가들의 주머니를 두둑하게 채워주었다.

이어 제1차 세계대전 무렵에는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 영국 등이 함께 섬을 통치하면서 또 인광석에 군침을 흘렸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때는 점령군이 일본군으로 바뀌었다. 그 사이 섬사람들은 인광석 채굴장에서 노동자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받은 임금 총액은 인광석 생산액의 5퍼센트에 머물렀다.

개발주의의 달콤한 유혹에 넘어간 나우루 주민들

1945년. 전쟁이 끝나고 일본군은 철수했다. 오스트레일리아를 비롯한 옛 점령자들이 다시 돌아왔다. 그러나 세상에 눈을 뜬 나우루 사람들은 독립을 꿈꾸었다.

그리고 1968년. 자본에 짓밟힌 지 80년 만에 드디어 나우루공화국이 수립되었다. 더불어 인광석이라는 황금덩어리도 그들 것이 되었다. 그들은 인광석을 직접 팔아 번 돈을 펑펑 쓰면서 살 수 있게 되었다. 남은 돈은 외국 부동산에 투자도 하였다. 온 주민이 순식간에 부자가 되었다.

나라 전체가 채굴장으로 변해가고, 채소나 과일을 재배하던 농장은 사라졌지만 아무도 걱정하지 않았다. 그들 창고에는 외국에서 건너 온, 맛 좋은 고기 통조림이 가득 쌓여 있었다. 세금도 없고, 병원이나 학교는 모두 공짜였다. 나라에서 집도 거저 주었다.

빈부격차도 없으니 내부 갈등도 없었다. 섬을 일주하는 도로가 겨우 18킬로미터뿐이었지만, 집집마다 승용차를 굴렸다. 채굴 노동은 외국인 노동자들 몫이었으므로, 나우루 인들은 그저 노는 것이 일이었다. 한마디로 나우루 섬은 지상 낙원이 되었다.

그렇게 십여 년 남짓 세월이 흘렀을 때, 이 지상낙원에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날마다 먹고 놀다 보니 주민들 대부분이 비만으로 인한 당뇨병 환자가 된 것이다. 하지만 더 심각한 문제도 드러났다. 섬에 매장된 인광석이 불과 십 몇 년 안에 바닥나고 만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었다.

21세기를 눈앞에 두고 비로소 정신이 든 나우루 정부는 채굴량을 줄이기로 하였다. 하지만 이미 씀씀이가 커져 버린 주민들은 반발하였다. 그러자 나우루 정부는 오스트레일리아가 과거에 무단으로 채굴해 간 인광석 대금을 받아내어 주민들 지갑을 채워주었다. 그러나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격이었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일터에 나가야 할 형편이건만, 나우루 주민들은 여전히 희희낙락하였다. 정부에서 어항(漁港)을 조성하여 일터를 제공하자, 주민들은 그것을 해수욕장으로 사용하였다. 그렇다고 섬을 본격적인 휴양지로 개발할 수도 없었다. 무리한 인광석 채굴로 이미 자연경관은 대부분 폐허가 되어 있었다.

1990년대 들어, 인광석은 바닥나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러자 나우루 정부는 오스트레일리아, 하와이, 괌, 사이판 등지에 그간 투자해 두었던 부동산을 담보로 돈을 융통하여 썼다. 외국인 부랑자들을 상대로 현금 2만 5천 달러에 국적을 팔기도 하였다.

스위스를 흉내 내어 세계의 ‘검은돈’을 보관해 주는 은행업도 시작하였다. 수천억 달러에 이르는 검은 돈이 나우루로 유입되었다. 어느새 나우루는 국제 마피아나 테러리스트들에게 좋은 은신처가 되었다. 국제 사회 비난이 빗발쳤지만 나우루 정부는 눈도 꿈쩍하지 않았다.

지상 낙원 나우루에 들이닥친 위기

‘검은 돈’ 유치 전략은 제법 성공하는 듯하였다. 그러나 2001년 9월 11일, 동시다발 테러로 뉴욕세계무역센터가 무너지면서, 나우루 은행도 무너지고 말았다.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 미국이 나우루 은행을 파산시키고 말았던 것이다. 더불어 나우루 정부도 파산 지경에 이르렀다. 임금을 받지 못한 외국인 노동자들은 ‘똥으로 만든 나라’를 떠나갔다.

금고가 바닥난 나우루공화국은 아프가니스탄 난민을 수용해 주는 조건으로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지원을 받아 겨우 연명하였다. 곧이어 이라크 난민도 돈을 받고 수용하였다. 나우루 섬은 난민들로 들끓었다.

섬 분위기는 험악해졌다. 주민들 일상 자체가 위협을 받았다. 관광비자 발급도 중지되고, 항공편도 끊겼다. 급기야는 외국과 통신마저 두절되었다. 마침내 나우루는 문명세계에서 실종되고 말았다.

1년 넘게 실종된 나우루. 그 나라 대통령으로부터 구조요청이 온 것은 2003년 3월이었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파견된 구조팀이 나우루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대통령 집무실은 이미 불타버린 뒤였다.

구조를 요청했던 나우루 대통령이 미국으로 망명했다가 워싱턴의 한 병원에서 심장발작으로 죽었다는 소식만 나중에 들려왔다. 나우루 공화국에서 그간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그 뒤 나우루에서는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우려는 노력이 의회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하지만 방치된 난민들의 인권 문제가 세계인의 도마에 올랐다. 그리하여 결국 ‘난민수용대행서비스’도 종지부를 찍게 된다.

2004년에 이르자 국가 파산 위기는 더욱 심화되었다. 미국의 금융회사에서는 채무상환 독촉이 왔다. 그러자 나우루에도 비로소 개혁바람이 불었다. 2004년 9월에 새 대통령이 된 스코티는 오스트레일리아와 손잡고 압류된 해외 부동산을 매각하여 부채를 정리하였다. 그러면서 나우루공화국은 폐허 위에 간신히 국가 깃발을 다시 올리게 되었다.

그러나 나우루 공화국이 맞이한 진짜 재앙은 다른 데 있었다. 1997년 2월, 지구온난화방지회의가 일본 교토에서 열렸을 때, 당시 나우루 대통령 클로드마르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 회의가 실패하면 우리나라는 바다 밑으로 가라앉고 말 것입니다.”

100여 년간 파먹은 인광석 양만큼 고도가 낮아진 나우루 섬. 그 철부지들의 공화국은 투발루 섬과 마찬가지로 지구온난화라는 생태계 재앙 속에서 통째로 가라앉을 위기에 처한 것이다.

개발주의는 지구 재앙을 부르는 덫

나우루공화국 100년의 흥망사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 자본주의의 허상에 사로잡힌 이들은 나우루 사람들의 게으름과 무능력을 탓할 것이다. 그러면서 그들을 반면교사로 삼으라고 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한 견해는 옳지 않다. 예전에 나우루 주민들이 부지런하고 유능해서 풍요를 누린 게 아니듯 말이다. 또 어떤 이들은, 앨버트로스의 배설물이나 인광석이 없었다면 풍요도 재앙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냉소적인 비아냥거림일 뿐 교훈은 되지 못한다.

정작 우리가 나우루에서 얻어야 할 교훈은 다른 데 있다. 그것은 국경과 인종을 초월한 자본주의적 탐욕과 개발주의가 자연과 인간사회를 얼마나 교묘하게 파괴해 가는지를 눈으로 확인하는 일이다. 더불어 그것이 전 지구적 재앙의 예고편임을 알고, 우리가 발붙이고 사는 곳 또한 나우루공화국의 전철을 밟고 있다는 사실을 이성으로 깨닫는 것이다.

지난 20세기에 파시즘과 공산주의혁명이 시들해지면서, 개발주의(Developmentalism)가 자본주의의 새로운 이데올로기로 떠올랐다. 국제통화기금(IMF)이나 세계은행(WB) 같은 기구들은 개발주의라는 이름으로, 아프리카 · 라틴아메리카 · 중앙아시아 · 중동 · 러시아 등지에 자유주의 시장경제를 이식하였다.

남한 현대사도 개발주의의 역사였다. 60년대 이후 박정희 정권이 주도한 개발주의 정책은 외형적으로 단기적인 경제성장을 가져 왔다. 하지만 어느 국가나 마찬가지로 개발에 따른 성장은 곧 한계에 도달하고, 그 성장의 결실도 독점자본과 권력에 집중되고 만다.

파시즘과 달리, 개발주의는 직접적인 폭력에 의존하지 않고 매우 세련된 방법으로 접근하여 가난을 극복할 수 있는 해결사임을 자처한다. 하지만 개발 과정에서 개인과 사회공동체의 다양한 의견을 억누르고, 결국에는 인간과 자연에 대한 폭력을 자행한다. 인간계와 생태계 모두를 파괴하는 것이다.

이미 세계 숲의 3분의 1이 사라졌다. 또 유엔 정부간기후변화위원회(IPCC)는 2050년 이전에 북극 빙하가 다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지금 추세라면 서기 2012년에 북극에서 얼음이 사라질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1억년 이상 걸려 만들어진 석유를 고작 200년에 걸쳐 다 태워버린 데 대한 자연의 응징이 이미 시작되었다. 자연을 분노케 한 주범은 자본주의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그 응징의 대상이라는 사실이 끔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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