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과 정치활동의 시작

내가 처음으로 정치활동에 입문한 것은 21살이다. 내가 최초로 가입한 정치단체는 민주청년동맹의 부산지부였다. 해방 전부터 조선공산청년동맹이 만들어져 활동하고 있었는데, 조선공산당 시절을 거쳐 3당 합당(조선공산당과 남조선신민당(新民黨) 및 조선인민당(人民黨) 이 합해진 것)으로 남로당이 만들어지고 난 다음에는 민주청년동맹으로 개편되었다. 나는 민주청년동맹으로 개칭된 직후 가입하게 되었다. 그리고 45년도 9월에는 철도에 취직을 하게 되었다. 철도에 취직해 있을 때 노동조합결성을 호소하는 유인물이 현장에 뿌려지는 것을 보고, 당연히 노동조합결성에 참여를 했고, 곧이어 남로당 노책을(노동담당책임자) 맡게 되었다.
22살이 되던 해는 정치활동이 본격화하던 해였는데, 마을에서는 청책으로 현장에서는 노책으로 활동하였다. 당에서는 부산시 북구책으로 활동하였다.

당시 남로당은 대중조직의 기간활동가들을 당의 중핵으로 조직하는 조직방침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기본계급 출신으로 당의 골간을 형성한다는 것은 남로당이 끝까지 고수했던 방침이다. 당원으로 노동조합활동을 하면서, 여타 조합활동가들에 비해 당원들은 강고한 규율과 확고한 계급적 원칙을 지켰다. 당원들은 주기적으로 교양사업에 참여했던 덕분에 높은 계급의식을 유지할 수 있었다. 특히 유물변증법, 정치경제학 비판(자본론)을 중점적으로 학습했었다.


모스크바 3상회의와 우익의 테러

흔히 역사책에서는 해방 후의 정세를 극심한 좌우대립으로 표현한다. 심지어 좌파들도 좌우대립이라는 말을 거리낌 없이 사용하는 것을 보면 답답한 맘이 든다. 해방 후의 정세는 압도적인 사회주의자들이 주도하는 민중진영의 자주독립의지와 이를 좌절시키려는 미군정의 폭압과 우익의 테러로 규정할 수 있다. 모스크바 3상회의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소위 반탁, 신탁 논의도 그런 면에서 새롭게 규정할 필요가 있다.

애초에 루즈벨트는 조선반도에 대해 50년의 신탁통치를 제안했다. 반면 소련은 조선민족이 자주독립역량이 충분함을 들어 신탁통치를 일관되게 반대했다. 이러한 사정이 작용하여 신탁통치 기간은 30년, 10년 나중에는 5년까지 줄어들게 되었다. 그러나 소련은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 신탁이 아닌 모든 주권을 조선민중에게 주고 연합국은 후견인 역할을 해야한다는 주장을 일관되게 피력하여, 결과적으로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 결정된 것은 5년간의 후견기간이었던 것이다.

미군정은 이러한 상황을 역전시켜 3.8선 이남에서의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위해 우익을 동원하는 방식을 취했다. 미군정은 이승만, 김구 등에게 마치 소련이 신탁통치안을 주장한 것처럼 거짓정보를 흘리고, 이들에게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을 반대하는 투쟁을 사주하였다.

처음 언론 등을 통해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 5년 동안 신탁통치 결정이 내려졌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당과 민중들은 상당한 혼란에 빠졌다. 5년간의 신탁통치는 조선민족의 자치역량을 무시하는 행위로 모두가 신탁통치안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날 저녁 당의 계통을 통해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문 원본이 도착했다. 거기에는 분명 연합군은 후견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명시되어 있었다. 사태는 명료했다. 우리는 우익이 3상회의 결정을 반대하는 것이 명백히 미군정의 지배를 연장하려는 음모임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다음날 우익들은 서울에서 5만 명을 동원하여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을 반대하는 집회를 열었다. 소위 반탁집회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을 동원했다. 그러나 사회주의, 민중진영은 같은 시간에 50만 명이 모여 모스크바 3상회의를 지지하는 집회를 조직했다. 그 후 우익들은 사회주의, 민중진영에 대한 극심한 테러를 가했다. 테러에 앞장선 것은 이승만의 한민당 쪽보다는 김구의 한독당이었다. 한독당은 애초에 테러를 주요한 독립운동수단으로 삼아서인지, 폭력적인 테러를 가하는 데 거침이 없었다. 그래서 당시 부산에서 시위를 할 때 부르던 노래 가사에는 “조국의 원수 한민당, 민족의 원수 한독당” 이라는 구절이 들어 있을 정도였다.

이처럼 해방 후의 역사에서 사회주의 진영, 특히 남로당 주류를 형성했던 볼셰비키 세력이 일관되게 추구한 것은 민중의 자치역량을 고양하여, 민족의 완전한 자주독립을 쟁취하려는 것이었다. 이것을 좌절시킨 것은 제국주의 세력과 이들과 결탁한 우익테러집단이었던 것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악랄하게 테러를 선봉에서 자행한 집단은 대한노총(지금의 한국노총)이었다는 사실을 노동자들이 꼭 기억해주길 바란다.


→ 열혈혁명가 이수갑의 삶과 투쟁의 기록 [나의 삶, 나의 투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