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꽃을 보면 누구나 그 향기에 취하고 싶고, 좀 더 가까이 다가가 만져보고 싶은 것이 자연의 순리이자 세상의 섭리다.”

신석정 시인의 ‘봄의 유혹’이라는 시에서 발상을 얻은 듯, 낭만이 뚝뚝 떨어지는 이 글귀가 이즈막에 누리꾼들을 격분하게 하였습니다. 한 아무개 국회의원의 누리집에 올라왔던 한 장짜리 글의 일부입니다. 글의 내용 가운데 ‘꽃’을 ‘여자’로 바꾸어 읽어보면, 누리꾼이 분노하는 이유가 자명해집니다. 급기야 글쓴이는 논란이 된 이 한 장짜리 글을 스스로 지우고 말았지만, 글 한 편이 수많은 누리꾼을 흥분시킴으로써 ‘펜’의 힘을 절감하게 한 사건이었습니다.

때는 바야흐로 마지막 위세를 떨치던 꽃샘추위가 물러가면서, 산들산들 봄바람이 솔솔 불어오는 첫봄입니다. 그런데 이 첫봄에 불어오는 바람 냄새가 전혀 싱그럽지가 않습니다. 시궁창에서 흘러 나온듯한, 역한 냄새가 풍겨옵니다. 이른바 ‘성풍(性風)’입니다.

지난겨울 끝자락에, 서울 한복판에서 끔찍한 성도착증 환자가 어린 소녀를 성추행하고 잔인하게 살해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남성교도관에게 성추행 당한 여성 재소자가 교도소에서 자살을 기도한 사건이 또 터져 나왔습니다. 그러자 잇따르는 성 범죄에 대하여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갑니다. 그럴 즈음, 스스로를 보수라고 우기는 어느 수구 정치집단에서는 성 범죄자에게 ‘전자 팔찌’를 채우는 법안을 만들자고 너스레를 떨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정치집단의 요직에 있던 한 국회의원이 식당에서 어느 재벌 언론사 여기자의 가슴을 주물러 버렸답니다. 이튿날 술에서 깬 그 60대 노 정객의 해명이 더욱 가관입니다. “식당 아줌마로 착각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 느끼하고 몰지각한 수구 정치인의 못된 손버릇과, 지능을 의심케 할 정도로 ‘덜 떨어진’ 해명에 대하여, 거대 여당은 물 만난 고기처럼 약삭빠른 정치공세를 퍼부었습니다. 그리하여 부패한 거대 야당의 이름 앞에는 ‘차떼기 당’에 더하여 ‘성추행 당’이라는 이름 하나가 덧붙게 생겼습니다.

앞에서 인용한 낭만적인 글귀는 바로 이 무렵에, 성추행범의 동료 의원인 한 아무개 의원의 누리집(홈페이지)에서 용감무쌍하게 튀어 나왔습니다. 딴에는 여론재판에 휘말리는, 그 손버릇 고약한 동료의원의 추행을 두둔하고 덧칠하려는 의도로 쓰인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한 의원은 본전도 건지지 못하고 여론의 뭇매를 맞다가 스스로 글을 지우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한 의원이 쓴 ‘한 장짜리 글’은 이 강좌를 애독해주시는 노동자 동지 여러분께 두 가지 교훈을 선사합니다.

첫째, ‘한 장짜리 글’도 그 위력이 꽤 크다는 것입니다. 글 한 장이 수백 만 대중의 가슴을 충동질할 수 있습니다. ‘주장하는 글’은 흔히 ‘강요<이해<공감<감동<충동’의 순으로 설득력이 커지게 됩니다. 물론 한 의원의 경우, 대중의 가슴을 할퀴며 분노의 충동을 느끼게 하였습니다. 하지만 뒤집어 생각하면, 진정으로 의롭게 쓰인 글 한 장이 수백만 대중을 불의에 저항토록 충동질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 한 사람의 허물을 두둔하기 위하여 만인의 눈과 귀를 흐리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보편된 원리를 저버리고 불순한 의도로 쓴 글은, 그 글이 비록 한 장에 지나지 않더라도 치명적인 독화살이 되어 결국 자신의 가슴팍에 꽂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언죽번죽 교묘한 말법으로 쓴 글을 함부로 내보여서는 아니 된다는 것이지요. 대중으로부터 망신당하고 싶지 않다면 말입니다.

정가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냄새가 개운치 못한 이 계절에, 눈과 귀를 막고 ‘글쓰기 강좌’ 원고 쓰는 데만 매달리는 일이 쉽지가 않습니다. ‘성 범죄’를 마치 ‘성 상품’처럼 다루는 상업언론의 부채질 때문에 더더욱 냄새가 역합니다. 똥 덩어리 주변에 파리 떼가 꼬이듯, 느끼한 부패 의원의 성추행 사건을 미친 듯이 물고 늘어지는 상업 언론의 펜 끝에서 다음과 같은 기사 한 조각이라도 흘러 나왔다면, 첫봄이 이토록 쓸쓸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기득권층 대변하는 거대 야당 의원들과 재벌 일간지 기자들의 부적절한 회식자리.”
“수구 국회의원과 재벌 일간지 기자들...식당에서 무슨 이야기가 오고 갔나?”


「한장짜리 글쓰기」 연재를 시작하며
1. ‘한 장’의 미학(美學)
2. 소재를 도구로 주제를 설득하라!
3. 좋은 글이 갖추어야 할 여섯 가지 조건
4. 글쓰기에서 어휘력의 문제
5. 선거유세문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