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즈막에 민주노동당 ‘당직선거’ 유세가 있었습니다. 당 누리집(홈페이지) 선거게시판이 후보별 ‘공약’과 ‘출마의 변’, 그리고 여러 당원들의 후보에 대한 지지 글이나 비판 글로 뜨겁게 달아올랐습니다. 당직 후보와 당원들의 ‘한 장짜리 글쓰기’ 경쟁이 벌어졌던 셈입니다. 그런데 선거와 관련하여 게시판에 올라온, 분량이 한 장 남짓한 글들 가운데는 가슴이 확 뚫리는 듯 후련한 것도 있었고, 답답하고 짜증나는 것도 있었습니다. 또 후보자의 진심이 묻어나는 글도 있었지만, 이것저것 나열하여 조잡하게 느껴지는 글도 있었습니다.

노동 현장이나 진보정당에서 일하는 활동가라면 누구나 선거의 홍수 속에 살고 있으며, 스스로 선거에 출마하여 직접 유세문을 써야 하는 경우도 있을 터이니, 질문 하나 던져 봅니다. 좋은 유세문은 어떤 것일까요? 이 미련한 질문에 대한 답은 뻔합니다. 당연히 ‘표가 되는’ 유세문이 좋은 것이겠지요. 더불어 ‘표’를 얻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유권자의 입맛을 현혹시켜야 할 것입니다. 우선 자신의 ‘출중한’ 능력을 드러내기 위하여 경력사항을 빼곡하게 적은 다음에, 상상력이 허락하는 범위에서 무수한 공약을 남발하여 다양한 성향의 유권자들을 현혹시키는 것입니다. 당 대표 선거를 예로 든다면, 당원 수도 늘리고, 당지지율도 높이고, 지방선거에서 많은 당선자를 낸 다음에 몇 년 뒤 대선에서 집권을 하여 좋은 세상을 만들겠다고 큰 목소리로 말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수법들은 야만적인 보수 정당에서 이미 수십 년 간 성공적으로 써먹은 바, 그 효과가 입증된 것들입니다. 따라서 물불 가리지 않고 오로지 ‘감투’를 향한 눈에 핏발을 세운 후보에게는 꽤 도움이 되는 유세문이 될 것입니다. 단, 이런 내용으로 유세문을 쓰는 경우에는 천문학적인 액수의 돈도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돈이 글보다 강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발붙인 천박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교묘한 유세문과 막대한 돈으로 수월하게 ‘감투’를 살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일터에서 땀 흘리며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는 노동자 계급에게 선거는 ‘민주주의’를 싣고 가는 수레바퀴입니다. 더불어 선거 유세문은 수레가 굴러 가는 방향을 표시하는 지도 같은 것입니다. 기실 우리는 선거를 통해서 ‘민초(民草)’, 또는 ‘잡초’들의 유쾌한 반란을 체험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므로 푸릇푸릇 돋아나는 잡초의 싹을 마취시키는 성장촉진제 같은 일회성 화학비료를 뿌려대지 말아야 합니다. 맑은 햇볕과 공기와 깨끗한 물을 주어, 조금은 더디더라도 건강한 싹이 자라게 해주어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진정으로 좋은 유세문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요건을 갖추어야 할 것입니다.

첫째, 단순명쾌한 한 가지 ‘슬로건’을 일관되게 제시해야 합니다. 한 가지 전략적 목표를 분명하게 하고, 그 하위 개념으로 몇 가지 목표를 배치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번 당직 선거에서 일반명부의 어느 최고위원 후보가 내건 ‘당의 사회주의정당화’ 슬로건이 좋은 예가 될 것입니다.

둘째, 유세문의 내용은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추상과 관념으로 얼버무린 말을 마구 나열한 유세문은 선거 후에 책임을 회피하려는 의도로 보일 수 있습니다. 구체적인 신념과 정책을 정확한 사실에 근거하여 작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셋째, 단락을 정확하게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한 단락에는 한 가지 생각이나 개념만을 담아야 합니다. 문단 나누기가 적절하게 된 글을 보면 눈도 마음도 편안합니다. 그럼에도 이번 당직 선거에서 서너 명을 뺀 나머지 후보들은 문단 나누기조차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글을 ‘출마의 변’이라고 선거 게시판이 올려놓은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넷째, 유세문의 문장은 짧게 쓰는 것이 좋습니다. 어떤 글이든 긴 문장보다는 짧은 문장이 잘 읽히고, 긴장감을 불러일으킵니다. 짧은 문장은 전투적입니다. 긴박한 호흡으로 단숨에 읽어나갈 수 있도록 간결하고 짧은 문장을 논리정연하게 이어가는 것이 좋습니다.

한 때 미국에서는 돼지를 부르는 경기가 유행했다고 합니다. 해마다 각 마을에서 선발된 선수들이 주(州)별 예선을 거쳐 전국대회에 출전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대회에서 미국 중서부에 사는 한 농부가 압도적인 성적으로 거듭 우승을 하였답니다. 그래서 기자들이 다투어 그에게 물었답니다.

“돼지를 그렇게 잘 부르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그러자 농부가 의기양양하게 대답합니다.

“간단하지요, 돼지가 바라는 것이 내게 있다고, 돼지들이 나를 믿게 하면 됩니다.”

농부의 말이 바로 유세문 작성의 핵심입니다. 물론 유세문을 작성한 후보자는 유권자가 바라는 것을 실제로 가지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한장짜리 글쓰기」 연재를 시작하며
1. ‘한 장’의 미학(美學)
2. 소재를 도구로 주제를 설득하라!
3. 좋은 글이 갖추어야 할 여섯 가지 조건
4. 글쓰기에서 어휘력의 문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