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날아가, 삼다를 설명하신 구양수 어르신을 만나서,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특히 뭘 어떻게 생각하라는 것인지 묻고 싶다. 더불어 경험을 많이 쌓으라고 말씀하시는 분에게도 찾아가 무슨 경험을 어떻게 쌓아야 하는 것인지도 묻고 싶다...’

이즈막에 어느 인터넷 사이트 게시판에 올라온 글 한 조각입니다. ‘삼다’에 대하여 거센 반감을 품고 있는 한 고등학생이 ‘불쌍한 젊은이의 처절한 절규(?)’라는 제목으로 쓴 글입니다. 이 ‘불쌍한 젊은이’의 절규를 보면서 어린 시절 기억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저는 초·중·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한 번도 글쓰기에 대해서 체계적으로 배운 기억이 없습니다. 초등학교 때 선생님의 강요에 못 이겨 억지 일기를 쓴 것이 글쓰기 연습의 전부였던 듯합니다. 중·고등학교 때는 더더욱 글쓰기를 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시험에 대비하여 케케묵은 교과서 글들에 밑줄을 긋고, 줄줄 외우는 것만으로도 국어 수업시간은 늘 턱없이 부족하였습니다.
그런 과정에서도 딱 한 가지 기억에 남는 말이 있긴 합니다. 이른바 ‘삼다론(三多論)’입니다. 송나라 때 문장가 ‘구양수’가 말했다는 ‘삼다’는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다독(多讀)’, ‘다작(多作)’, ‘다상량(多商量)’을 아우르는 말입니다. 곧, 글을 잘 쓰려면 많이 읽고, 많이 짓고, 많이 생각하라는 뜻입니다.
오직 ‘삼다론’ 하나만을 가슴에 품고 문학에 대한 꿈을 키워오던 시절, 무척 게을렀던 저는 어쩌다 도서관이나 서점에 가면 서가에 빼곡한 책들을 보면서 아득한 절망감에 휩싸이곤 하였습니다. 학교 앞, 문방구를 겸한 작은 책방에 진열된 책만 읽으려고 해도 한 평생이 걸릴 것 같았습니다. ‘다독(多讀)’이 게으른 저를 그렇게 절망에 빠지게 하였던 것입니다.
‘다작(多作)’이라는 놈은 ‘다독’보다는 조금 더 친절했던 듯합니다. 종이와 펜만 있으면 아무 데서나, 어떤 내용이든 긁적거릴 수 있으므로 그다지 부지런을 떨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시도 때도 없이 긁어댄 글 조각들이 살아남지 못하고 휴지가 되어 사라지고 말았을 때, 그 허탈함은 ‘다독’이 주는 강박관념 못지않았습니다.
한편 ‘다상량(多商量)’은 저같이 몸이 게으른 사람이 가지는 특권이었습니다. 그저 아무 짓도 하지 않으면서 멍한 표정으로 생각에만 빠져 있으면 되니, 이보다 쉬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그렇게 생각에 빠져 있다가 종종 넋 나간 사람 취급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그러고 보면 그 ‘다상량’이라는 것도 종종 사람을 곤경에 빠뜨리는 심술궂은 놈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무작정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라는 것은 참으로 대책없는 가르침입니다. 오히려 사람들로 하여금 주눅이 들어서 글쓰기를 포기하게 만들 뿐입니다. 그렇다면 구양수가 말한 ‘삼다’의 진정한 뜻은 무엇일까요? 앞서 인용한 ‘불쌍한 젊은이’의 글 속에 그 해답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분들의 대답을 알 것도 같다. 그래서 타임머신은 필요 없을 것 같다. 이미 ‘뭘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도 생각이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내 경험이다. 실제로 읽고, 쓰고, 생각하는 데에는 순서가 없는 것 같다. 읽기는 물론, 읽고 있는 것, 읽었던 것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있으며, 쓰기는 물론 쓰고 있는 것, 썼던 것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있다. 당연히 생각하고 읽을 수도 있고, 생각하고 쓸 수도 있다.’

놀랍게도 이 ‘불쌍한 젊은이’는 ‘삼다’의 세 가지 개념이 서로 유기(有機)적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1천 년 전, 한 중국 사람이 무책임하게 던진 말을 한층 수준 높은 개념으로 승화시킨 그 친구가 문득 존경스럽게 느껴집니다.
뗏목을 타고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듯, 끊임없이 노를 저어야만 하는, 일상이 고단한 우리 노동형제들은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할 여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백지만 보면 망망한 바다가 떠오르기 십상입이다. 그러한 동지들을 위하여, 저는 잘못된 글쓰기 상식에 대한 비웃음을 이어가려 합니다. 더불어 그 비웃음이 주는 쾌감이 동지 여러분에게 무한정 ‘전염’되기를 바랍니다.


「한장짜리 글쓰기」 연재를 시작하며
→ 1. ‘한 장’의 미학(美學)
→ 2. 소재를 도구로 주제를 설득하라!
→ 3. 좋은 글이 갖추어야 할 여섯 가지 조건
→ 4. 글쓰기에서 어휘력의 문제
→ 5. 선거유세문 쓰기
→ 6. 충동하는 글쓰기
→ 7. 독버섯이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