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머리말

1997년 경제위기 이후 한국 경제는 큰 변화를 겪고 있는데, 그 방향은 신자유주의로의 이행이라고 이야기된다. 그런데 신자유주의 이행에 대해 비판적인 진보진영의 경제학자들은, 1997년 경제위기 이후의 신자유주의 이행의 기본 성격을 Aglietta and Breton (2001), Boyer(2000), Chesnais (2002), 등 조절이론에 따라 “금융화󰡓(financialization) 또는 󰡒금융주도 축적체제󰡓(finance-led accumulation regime)로의 이행이라고 주장한다 (예컨대 Crotty and Lee(2002; 2004), 조복현(2004), 권우현(2004)) 이들은 또 1997년 이전의 한국 경제는 견실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1997년의 위기는 자본축적의 근본 모순이 아니라 1980년대 이후 금융자유화라는 잘못된 정책 때문에 발생했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Chang and Yoo(2002)). 또 이들은 IMF와 김대중, 노무현의 신자유주의 정책이 금융화를 가속시켜 경제위기, 양극화, 국민경제의 ”탈민족화“를 더 심화시켰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이들은 케인즈주의적 󰡒금융억압󰡓을 실시하여 재벌의 기업지배구조를 개혁하고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을 분리할 것 (예컨대 전창환(2004), 조영철(2004)), ”협력적 자본주의“(이병천, 2005), ”한국형 사회적 시장경제“(신정완, 2006), ”개방적 민족경제“(정건화, 2006) 등을 대안으로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1997년 위기 이후 진보진영의 󰡒새로운 통념󰡓으로 정착되고 있는 듯 하다.

그러나 우리는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이와 같은 진보진영의 󰡒새로운 통념󰡓의 오류와 한계를 이미 지적한 바 있다.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 설 때, 1997년 위기를 전후한 한국자본주의의 구조변화와 관련된 쟁점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첫째, 1997년 위기는 단순한 금융위기가 아니라 자본축적의 구조적 모순이 심화된 결과다. 이는 이윤율이 1980년대 말 이후 1997년 위기 직전까지 저하한 사실에서 입증된다.
둘째, 금융화 또는 󰡒금융주도 축적체제󰡓로의 이행이라는 문제설정으로는 1997년 위기 이후의 한국 사회 변화의 기본 성격을 적절하게 파악할 수 없다.
셋째, 1997년 위기 이후 오늘에 이르는 신자유주의로의 이행의 본질적 측면은 이윤율을 회복하기 위한 자본의 공세이며, 이 과정에서 자본주의 모순의 심화되면서 노동자 계급에 대한 착취 강화와 경제적 종속의 심화가 초래되고 있다.

요컨대 이 글에서 필자는 21세기 한국경제의 기본적 역사적 경향은 “금융화”, “양극화”로 정식화하는 것은 부정확하며 마르크스가 경제학비판에서 정식화한 자본주의 모순과 적대의 격화로 파악하는 것이 정확함을 몇 가지 거시경제통계의 분석에 근거하여 주장할 것이다.

그리고 마르크스가 말한 자본주의 모순과 적대가 21세기 한국 사회에서 격화되고 있다는 사실은 마르크스가 구상하고 고전 마르크스주의 전통에서 계승 발전시켜온 사회주의 대안이 21세기 한국 사회에서도 여전히 유효함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2. 이윤율의 저하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 설 때, 자본주의 경제의 변동을 설명하는 핵심적 지표는 경제 전체의 평균이윤율의 추이이다.
<그림 1>은 1970-2000년 제조업 부문의 이윤율의 추이를 나타낸 것이다. <그림 1>은 제조업 부문의 이윤율이 1970년대 초반의 16 퍼센트에서 1980년대에는 12 퍼센트로, 1996년에는 6.7 퍼센트로 분명하게 저하했음을 보여준다. 특히 1997년 위기 이전인 1986-1996년 동안 이윤율은 1986년 16.3 퍼센트에서 1996년 6.7 퍼센트로 하락했다. 즉 1986년부터 시작된 이윤율의 저하 추세는 1997년 위기 직전까지 10년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또 주목할 것은 이윤율이 1997년 위기 바로 한 해 전인 1996년에 1970-2000년 중 최저수준에 도달했다는 사실이다. 1996년의 이윤율 6.7 퍼센트는 1980년 마이너스 성장 해의 이윤율 10.3 퍼센트보다도 40 퍼센트 가까이 낮았다. 이러한 사실은 1997년 위기가 이전 시기의 실물 부문의 수익성 저하와 밀접하게 연관되어있음을 보여준다.
이윤율은 1996년 바닥을 친 다음, 1997년 위기 이후 다시 상승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2000년에도 이윤율은 11.3퍼센트로, 1970-2000년 동안 최고점인 1972년 21.4 퍼센트의 절반 수준 밖에 되지 않았다. 이는 한국 경제가 21세기 들어서도 지난 세기말에 시작된 구조적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이런 상황을 두고 새로운 󰡒축적체제󰡓 (󰡒금융주도 축적체제󰡓, 󰡒지식기반 축적체제󰡓 등등)로의 이행을 운운하는 것은 시기상조이다. 한국 경제가 투자와 고용의 증대를 수반하는 새로운 호황으로 가기 위해서는 이윤율이 적어도 1987년 이전 수준을 회복해야 하지만, 한국 경제의 현 상황을 고려해 볼 때 이는 몽상처럼 보인다.
이윤율의 추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다음 (1)식처럼 이윤율의 결정요인을 총부가가치에 대한 이윤의 비율로 정의되는 이윤몫(P/Y)과 순자본스톡에 대한 부가가치의 비율로 정의되는 산출-자본 비율(Y/K)로 분해하는 것이 유용하다. 이윤몫은 마르크스적 의미의 착취율, 즉 잉여가치율의 대용변수라고 할 수 있는 이윤-임금 비율(P/W)과 같은 방향으로 변동하며, 산출-자본 비율은 다른 조건이 불변일 경우 마르크스적 의미의 자본의 가치구성의 대용변수라고 할 수 있는 고정자본스톡-임금 비율(K/W)과 반대 방향으로 변동한다. (1)식은 또 (2)식과 같은 성장회계식의 형태로 바꿔 쓸 수 있다.

--------------------------------------------------------------------(1)

-------------------------------------------------------------(2)

(1), (2)식은 분배(P/Y)와 기술진보(Y/K)가 이윤율에 미치는 영향을 분리해서 설명할 수 있게 해준다. <그림 2>는 1970-2000년 이윤율의 저하 경향의 주된 원인이 산출-자본 비율의 저하 추세였음을 보여준다. 1970-2000년 이윤율 저하의 91.8 퍼센트가 산출-자본 비율의 저하로 설명된다. 즉 이윤율 저하는 이윤몫의 저하보다 산출-자본 비율의 저하에 주로 기인했다. 실제로 1997년 위기로 이어진 시기인 1986-1996년 동안 이윤율의 저하의 61.6 퍼센트가 산출-자본 비율의 저하에 기인했으며, 이윤몫의 저하에는 단지 38.4 퍼센트만 기인했다. 하지만 1997년 위기 직전 시기이자 이윤율이 급락한 시기인 1994-1996년 동안 이윤율 저하는 압도적으로 이윤몫의 저하에 기인했다. 즉 1994-1996년 이윤율 저하의 77.8 퍼센트가 이윤몫의 저하에 기인했으며, 산출-자본 비율의 저하에는 단지 22.2 퍼센트만 기인했다. 이는 1997년의 위기가 과잉축적과 이윤압박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발생한 위기임을 시사한다.
Mohun(2004)에 따르면 산출-자본 비율(Y/K)는 (3)식처럼 분해될 수 있다. (3)식은 산출-자본 비율이 고정자본스톡의 가격지수(Pk)에 대한 GDP 디플레이터(Py)의 비율(Py/Pk)에 시간당 실질노동생산성((Y/Py)/L)을 곱하고, 이를 다시 노동시간당 실질고정자본스톡((K/Pk)/L)으로 나눈 값으로 표시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3)식은 또 (4)식과 같은 성장회계식으로 바꿔 쓸 수 있다.

--------------------------------------------(3)

--------------------------------------------(4)

(3)식과 (4)식은 산출-자본 비율이 산출-고정자본스톡 상대가격 (Py/Pk)과 실질노동생산성((Y/Py)/L)과 같은 방향으로 변동하며, 자본장비율, 혹은 마르크스적 의미의 자본의 유기적 구성과 유사한 비율인 노동시간당 실질고정자본스톡((K/Pk)/L)과 반대 방향으로 변동함을 보여준다.
<그림 2>는 노동시간당 실질고정자본스톡((K/Pk)/L)의 상승, 즉 자본의 유기적 구성의 고도화가 1970-2000년 산출-자본 비율 저하의 주된 요인이었음을 보여준다. 즉 1970-2000년 노동시간당 실질고정자본스톡은 연평균 3.5 퍼센트 증가하여 같은 기간 시간당 실질노동생산성((Y/Py)/L)의 연평균 증가율 3 퍼센트를 초과함으로써, 같은 기간 연평균 0.5 퍼센트 저하한 산출-고정자본스톡 상대가격(Py/Pk)과 함께 작용하여 산출-자본 비율을 매년 평균 1 퍼센트씩 저하시키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이상에서 발견한 사실들은 자본의 유기적 구성의 고도화로부터 이윤율의 장기적 저하가 초래된다는 마르크스의 이윤율의 저하경향 법칙이 한국자본주의의 사례에서도 입증될 수 있음을 강력하게 시사한다.
<그림 2>는 1997년 위기 이후 경기 회복의 주요 양상을 보여준다. 이들은 1997년 위기 이후 경기 회복을 가능하게 한 이윤율의 상승이 전적으로 이윤몫의 증가, 즉 착취율의 상승에 기초했음을 보여준다. 이윤몫은 1996년 21.4 퍼센트에서 2000년 37.8 퍼센트로 무려 16.4 퍼센트 포인트나 급등했다. 실제로 1996-2000년 이윤몫은 연평균 6.1% 증가하여 같은 기간 산출-자본 비율의 하락 (매년 0.7%) 을 완전히 상쇄하고도 남아, 이 기간 이윤율을 매년 5.4% 상승시키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실제로 생산적 노동과 비생산적 노동의 구별을 고려하지 않은 이윤-임금 비율(P/W)로 계산한 착취율은 1996년 27퍼센트에서 2000년 61퍼센트로 무려 두 배 이상 상승했다. 이는 1997년 이후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의 핵심이 다름 아닌 노동자계급에 대한 착취 강화를 통한 자본의 수익성의 회복이었음을 보여준다.
아래 (5)식은 이윤몫을 실질노동생산성((Y/Py)/L)과 생산물임금((W/Py)/L)의 관계로 분해한 것이다.

-----------------------------------------(5)

1997년 이후 이윤율 반등을 주도한 이윤몫의 급등은 주로 실질노동생산성의 상승에 기인했다. 즉 1996-2000년 시간당 생산물임금은 매년 평균 1.6 퍼센트밖에 증가하지 않았는데, 실질노동생산성은 그 세 배에 가까운 매년 평균 4.2 퍼센트로 증가했다. 그 결과 제조업 부문 단위노동비용 (1990년 미국 달러 기준)은 1996년 85 센트에서 1998년 44 센트로 거의 절반 수준으로 폭락했으며, 2001년에도 45 센트 수준에 묶여있었다 (ILO, Key Indicators of the Labour Market). 1999년 이후 한국 경제의 회복을 이끈 견인차였던 수출의 폭발적 증대는 이와 같은 임금 붕괴가 가능하게 한 제조업 제품 가격경쟁력의 제고에 힘입은 것이었다. 또 1996-2000년 실질노동생산성의 상승은 자본의 효율을 나타내는 산출-자본 비율이 이 기간에 매년 평균 0.7 퍼센트 저하했음을 감안한다면 효율성의 개선의 결과가 아니라 노동강도의 강화의 결과라고 해석해야 할 것이다.
1997년 위기 이후 착취율 상승은 1997년 이전까지 나타났던 노동자계급에 대해 우호적인 추세들, 예컨대 국민소득에서 임금몫이 차지하는 비중, 즉 노동소득분배율의 상승 추세, 소득 분배의 불평등의 개선 추세, 노동시간의 감소 추세 등이 1997년 위기 이후 중단되거나 역전되는 사실에서도 확인된다. <그림 3>에서 보듯이, GDP에서 피용자보수가 차지하는 비중으로 계산된 노동소득분배율은 1970년 34.1 퍼센트에서 상승하여 1996년 48.8 퍼센트로 정점에 도달한 다음, 1997년 위기 이후 저하 추세로 반전되어 2002년 45 퍼센트까지 저하하여 1989년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즉 자본은 1987년 7,8,9월 노동자대투쟁 이후 노동에 내주었던 것을 다시 탈환한 것이다. 이는 같은 시기인 1996-2002년 미국과 일본의 노동소득분배율이 55퍼센트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과는 물론 멕시코의 노동소득분배율이 28.9 퍼센트에서 32.5 퍼센트로 개선된 것과도 극명하게 대조된다.
또 <그림 4>에서 보듯이, 도시근로자가구의 소득 분배의 불평등이 1990년대 중반까지 완화되다가 1997년 이후 다시 악화되었다. 소득 수준 하위 20퍼센트의 소득에 대한 상위 20퍼센트의 소득의 비율은 1995년 4.42에서 2003년 5.22로 상승했다. 또 <그림 5>에서 보듯이, 우리나라 노동자의 일인당 연간 총노동시간은 1986년 2,734 시간을 정점으로 1998년 2,390 시간까지 감소했지만, 1999년 이후 이와 같은 감소 추세가 중단되어 2003년에도 여전히 2,390 시간으로 세계 최장이었다. 이는 우리나라 노동자보다 연간 500-1,000 시간 덜 일하는 미국, 일본, 독일의 일인당 연간 총노동시간이 같은 기간인 1998-2003년 각각 1,841, 1,842, 1,489시간에서 1,792, 1,801, 1,446시간으로 단축된 것은 물론, 멕시코 노동자의 일인당 연간 총노동시간도 1,879 시간에서 1,857 시간으로 줄어든 것과 너무나 대조된다. 이와 같은 1997년 경제위기 이후 우리나라 노동자계급의 상태 악화는 내외 자본의 신자유주의 공세 속에서 1987년 7,8,9월 노동자 대투쟁을 통해 수립된 ‘87년 체제’가 붕괴되고 있는 사태를 반영한 것이다.
최근 Crotty and Lee(2004)는 1997년 위기의 주요 원인은 한국자본주의에 내재한 구조적 모순이 아니라 1990년대 이후 시작된 금융자유화에 기인한다는 새로운 통념을 되풀이했다. 그런데 Crotty and Lee(2004)에서는 마르크스주의적 이윤율 저하 이론의 논박을 시도한다. 그들의 주장의 요지는 1997년 위기 이전 어떤 의미 있는 이윤율의 저하 현상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를 《기업경영분석》 자료에서 매출액영업이익률이 1995년 이후 적정 수준이었다는 사실로 뒷받침하려 했다. 즉 1997년 위기는 실물 부문의 효율성의 붕괴에 기인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기업의 실물 부문의 효율성을 측정하는 적절한 지표는 이자지불을 공제한 후의 경상이익이 아니라 이자지불을 공제하기 전인 영업이익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또 매출액영업이익률은 분자에 이자지불을 포함하고 있고 분모에 금융자산을 포함하고 있지 않아서 실물 부문 변수로부터만 영향을 받으며, 이 때문에 실물 부문 효율성을 측정하는 지표로서 경상이익률보다 우수하다고 주장한다.
Crotty and Lee(2004)가 실물 부문의 수익성을 보이는 지표로서 경상이익이 아니라 영업이익을 선택한 것은 옳다. 하지만 수익성을 측정하기 위해 이 영업이익을 매출액으로 나눈 것은 잘못이다. 자본가 수익성을 올바르게 측정하기 위해서는 이윤은 유량(flow) 변수인 매출액이 아니라, 저량(stock) 변수인 투자된 자본 스톡으로 나누어 주어야 한다. 게다가 이들이 의존한 《기업경영분석》은 전수 조사 자료가 아니라 표본 조사이고, 그것도 대기업에 현저하게 편기되어 있어 자본가 전체의 수익성을 올바르게 반영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Crotty and Lee(2004)는 1997년 위기가 이윤율 저하에 기인한다는 이 논문의 주장을 논박하는 논거가 될 수 없다.


3. 금융화?

Crotty and Lee(2004), Chang and Yoo(2002) 등 일부 진보진영 경제학자들은 1997년 이후 경제 추세의 특징은 금융화나 󰡒금융주도 축적체제󰡓로의 이행에서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금융화가 1997년의 위기뿐 아니라 현재 한국 경제 위기의 주범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의 배경에는 산업자본은 생산적이고 평등주의적인 반면, 금융자본은 투기적이고 기생적이라는 나름대로의 신념이 깔려 있다. 이로부터 이들은 케인즈주의적 금융억압의 부활을 정책 대안으로 제시한다. 이 절에서는 금융화 혹은 “금융주도 축적체제”로의 이행이라는 문제설정은 1997년 이후 한국자본주의의 변화를 설명하는 데 적절하지 못함을 입증할 것이다.
그런데 금융화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금융화 가설의 타당성을 지지하는 논자들 사이에서도 통일되어있는 것 같지 않다. 예컨대, 금융화는 논자에 따라 산업자본에 대한 금융자본의 우위, 은행에 대한 기관투자가의 우위, 자본시장 및 주주자본주의의 논리의 지배, 기업의 자금조달에서 직접금융 비중의 증가, 비금융법인의 유형자산에 대비한 금융자산의 비중 증가, 비금융법인의 채무 비율 증가, 가계 자산의 증권화 등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하에서는 이와 같이 다양하게 정의되는 금융화 현상이 1997년 위기 이후 한국경제에서 확인되는지 살펴 볼 것이다. 우선 금융화에 대한 가장 엄밀한 실증 분석이라고 할 수 있는 Duménil and Lévy(2004a)가 정식화한 금융화 현상을 한국의 사례에서 확인해 보자. 이들에 따르면 금융화는 (1)이윤 중 보다 많은 부분이 이자와 배당의 형태로 금융 부문에 이전될 때, 또 (2)비금융법인에서 금융관계를 고려한 금융적 이윤율이 금융관계를 고려하지 않은 실물 이윤율로 수렴할 때 발생한다.
그런데 <그림 6>, <그림 7>은 이와 같은 금융화의 두 가지 현상이 한국에서는 나타나지 않음을 보여준다. 먼저 <그림 6>은 비금융법인의 영업이익으로부터 이자, 배당, 임대료 등의 형태로의 금융 부문으로의 유출액의 비율을 보이고 있다. 이 비율은 1980년대 이래 50 퍼센트 수준으로 안정적이었다. 이 비율은 1997년 위기 다음 해인 1998년 103.1 퍼센트로 급상승했지만, 1997년 위기 직후 곧바로 이전 수준으로 되돌아가 2001년에는 55.2 퍼센트로 떨어졌다. 즉 1990년대 이후 실물 부문으로부터 금융적 유출이 획기적으로 증가했다고 말하기 힘들다.
미국에서 신자유주의 금융화의 기점은 “1979년 쿠테타”(Duménil and Lévy, 2004c)로까지 불리는 1979년 당시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 볼커(P.Volker)가 주도한 금리인상이었다. 그러나 1997년 이후 한국에서는 오히려 저금리가 기조화되고 있다(박종현, 2004). 예컨대 1990년대 10-15 퍼센트 수준에서 변동했던 콜금리는 1997년 위기 직후 1998년 1월 한 때 28 퍼센트까지 치솟았지만 그 후 6년 동안 모두 11 차례의 공식적인 콜금리 목표 변경을 통해 2004년 8월 현재 3.5 퍼센트까지 인하되었다. 저금리 기조로 전환되는 조건에서 금융화의 핵심인 금융 부문으로부터의 잉여가치의 유출의 질적 증대 같은 현상은 사실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금융화 논자들은 1997년 위기 국면의 예외적이고 일시적인 금리 급등 상황을 구조적 장기적 추세의 변화로 혼동하는 잘못을 저지른 것이다.
<그림 7>은 《기업경영분석》을 이용하여 제조업 부문에서 금융관계를 고려한 금융적 이윤율의 추이를 금융관계를 고려하지 않은 실물 이윤율의 추이와 비교한 것이다. 금융관계를 고려하지 않은 실물 이윤율과 금융관계를 고려한 금융적 이윤율은 아래 (6), (7)식처럼 정의될 수 있다.





미국 사례에서 Duménil and Lévy(2004a)가 발견한 것과는 정반대로, (7)식으로 계산한 한국의 제조업 부문의 금융적 이윤율은 (6)식으로 측정한 실물 이윤율보다 거의 전기간에 걸쳐 상당히 낮았다. 그리고 미국 사례에서처럼 금융적 이윤율이 실물 이윤율을 향해 수렴 접근하는 현상도 발견되지 않았다. 이처럼 한국의 제조업에서 금융관계를 고려한 금융적 이윤율이 거의 항상 금융관계를 고려하지 않은 실물 이윤율보다 전기간에 걸쳐 상당히 낮은 이유는 한국과 같은 “고부채 모델”에 특유한 이자 지불 형태로의 항상적인 금융 유출에 기인한 것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한국에서 비금융법인은 경제성장의 초기 국면부터 부채 비율이 대단히 높았다. 금융화 논자들의 주장과는 정반대로, 실물부문에서 금융부문으로 잉여가치의 유출은 1997년 이후 새롭게 나타난 현상이 아니라 이른바 󰡒고부채󰡓 모델인 한국 경제에 고질적인 특징이었다. 따라서 현재의 경제위기의 주된 원인을 금융화에서 찾는 것은 타당치 않다.
한편 Crotty(2002)에 따르면 금융화는 비금융법인의 유형자산 대비 금융자산의 비율 증가, 비금융법인의 부채 증가, 기업 자금 조달에서 직접금융의 비중 증가, 가계 자산의 증권화 등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림 8>, <그림 9>, <그림 10>, <그림 11>은 한국경제에서 이와 같은 현상이 나타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그림 8>을 보면, 제조업 기업의 유형자산 대비 금융자산의 비중은 1970년대에 40퍼센트에서 1980년대에는 65퍼센트로 증가했지만, 1990년대를 거쳐 현재까지 이 수준을 유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970-2002년 중 이 비율의 증가는 1980년대 전반에 집중되어 있으며, 문제가 되는 1990년대에는 이 비율은 거의 증가하지 않았다. 게다가 1997년 위기 직후 이 비율은 심지어 저하하기조차 했다.
또 <그림 9>는 한국에서 GDP 대비 비금융법인의 부채 총액의 비율이 매우 높기는 하지만 이는 거의 항상적 현상이었으며, 1997년 위기 후에는 이 비율이 오히려 감소했음을 보여준다. 즉 이 비율은 1998년 211 퍼센트에서 2002년 201 퍼센트로 감소했다. 또 제조업 기업에 한정해서 보면 부채비율은 1997년 396.3 퍼센트에서 2003년 123.4 퍼센트로 더 크게 낮아지고, 자기자본 비율은 1997년 20.2 퍼센트에서 2003년 44.8 퍼센트로 크게 높아졌다 (한국은행, 《기업경영분석》).
개인 부문의 금융자산 구성을 보인 <그림 10>은 가계 자산의 증권화가 쉽게 이루어지고 있지 못함을 나타낸다. 즉 우리나라 가계의 금융자산은 압도적으로 예금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 비중은 1990년대 이후 오히려 높아졌다. 개인 부문 금융자산에서 예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1975년 42.8 퍼센트에서 1990년 48.1 퍼센트, 1995년 57.1 퍼센트, 2003년 60.3 퍼센트로 높아졌다. 반면 개인 부문 금융자산에서 주식이 차지하는 비중은 1975년 17.2 퍼센트에서 1990년 11.4 퍼센트, 1995년 7.2 퍼센트, 2003년 5.8 퍼센트로 감소했다. 이처럼 주식 비중이 미미한 조건에서 금융화의 중심 메커니즘이라고 주장되는 “주주자본주의의 원리”가 제대로 작동하기는 힘들 것이다.
기업 부문의 자금조달에서도 금융화의 주요 특징으로 이야기되는 간접금융에서 직접금융으로 이행과 같은 현상은 잘 나타나지 않는다. 1997년 위기 이후 주식발행을 통한 기업 자금 조달, 즉 직접금융의 비중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즉 그 비율은 1995년 11.8 퍼센트에서 2003년 38.4 퍼센트로 증가했다. 그러나 은행 대부를 통한 자금조달, 즉 간접금융의 비중은 2003년에도 41.6 퍼센트로서, 은행이 여전히 기업의 가장 큰 자금 조달 원천이다 (한국은행, 《자금순환계정》). 그 결과 <그림 11>에서 보듯이 비금융법인 부채 총액 중 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3년 33.1 퍼센트로서 여전히 비금융법인 부채 총액의 최대 항목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나라 금융시스템이 1997년 위기 이후 기존의 은행 중심의 자금순환 체제에서 자본시장 중심의 자금순환 구조로 바뀌었다고 보기 어려움을 보여준다.
나아가 필자는 “금융화”론이 주목한 현상들은 마르크스의 경제학비판의 체계에서 생산/비생산노동의 문제설정에 의거할 경우 더 정확하게 설명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생산노동과 비생산노동의 구별은 자본주의적 착취의 분석에서는 필수적이다. 그러나 최근 마르크스주의자들 사이에서도 마르크스의 생산/비생산 노동의 구별을 기각하는 것이 유행하고 있다. 예컨대 자율주의자들인 Negri and Hardt(2000; 2004)와 Laibman(1999)는 그 대표적인 것들이다. Negri and Hardt(2000; 2004)는 자본주의 경제에서 비물질 노동의 비중 증대에 따라 생산/비생산 노동의 구별이 무의미하게 되었다면서 이를 기각한다. 하지만 필자는 생산/비생산 노동의 구별은 마르크스 가치론의 핵심이기 때문에 이를 기각하는 것은 마르크스의 가치론 자체를 기각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마르크스주의 입장에 선다면 생산/비생산 노동의 구별은 방어되어야 하며 또 방어될 수 있는 마르크스주의의 핵심이다. 그런데 스탈린주의 <소련정치경제학교과서>처럼 물질적 재화 생산노동만을 생산노동으로 간주하고 서비스는 모두 비생산노동으로 간주하는 것은 마르크스의 생각과는 상치되는 스미드적 문제설정이다. 이 글에서는 <소련정치경제학교과서>와 달리 서비스를 수행하는 노동도 자본주의적 방식으로 조직되고 유통이나 감독 업무에 종사하지 않는 한 생산노동으로 분류한다. 이 경우 상업, 금융보헙부동산, 및 공공서비스를 제외한, 사업서비스, 문화오락 서비스, 대개인서비스의 상당 부분을 생산노동으로 분류하고 있다. 또 우리는 생산부문 피고용자 중 생산직급의 노동자 즉 십장, 반장, 조장, 및 비직급을 생산노동으로 분류하고, 생산부문 피고용자 중 감독직급, 즉 임원, 부장, 과장, 및 계장은 비생산노동으로 분류한다.
생산적 노동자수 비율 및 생산적 임금 비율의 계산 결과 제조업의 경우 생산적 노동자수 비중은 1987년까지 무려 95% 수준으로 대단히 높았지만, 1987년 이후 감소하여 2003년에는 80.3%였다. 대부분의 산업들에 공통적인 특징은 생산적 노동자수 비중이 1980년대까지는 매우 높았다가 1990년대 이후 현저하게 감소한다는 점이다. 즉 한국에서 비생산적 노동의 비중은 1980년대 말까지는 매우 낮은 수준이었으며, 비생산적 노동의 비중 증대 추세는 1980년대 말 이후에야 시작되었다. 또 제조업 부문에 관해 가장 정확하고 가장 긴 시계열의 자료를 제공하는 자료인 <광공업통계조사보고서>로부터 제조업 부문의 생산적 노동자수의 비중을 계산해 보면, 1970-1987년 18년 동안 86.2%에서 79.9%로 6% 포인트 밖에 감소하지 않았지만, 1987-97년 11년 동안에는 무려 10% 포인트 가량 감소했다. 한편 경제 전체에서 생산노동자수 비중은 19800년대에는 70-75% 대를 유지하다가 1990년대 들어 급격히 감소하여 2000년에는 58.7%까지 내려갔다.


4. 경제적 종속의 심화

4.1. 금융적 종속의 심화

1997년 이후 한국 경제에서 나타난 주된 특징은 금융화라기보다 자본의 공세 하에서 노동자계급의 착취 강화와 함께 심화되고 있는 경제적 종속이다. 사실 금융화란 1997년 위기 이후 자본시장의 자유화와 초국적 금융자본의 영향력 확대, 즉 금융적 종속의 다른 말일 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금융화를 운운할 정도로 자립적인 금융자본이 존재한 적이 없으며, 따라서 산업자본에 대한 국내 금융자본의 헤게모니 같은 현상은 있어 본 적이 없다. 1960-80년대 우리나라에서 은행은 국가의 부속기관으로 국가가 재벌을 규율하는 산업정책의 도구였다. 물론 1980년대 들어 재벌이 성장하면서 금융자유화가 시작되었고 1997년 위기 직전에는 제2금융권에 재벌의 영향력이 증대되고 국내외 금융에 대한 정부의 통제가 이전에 비해 상당히 약화되었다. 그러나 1997년 위기 이후 김대중 정부가 주도했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월가-미국 재무부-IMF”의 요구에 따라 금융자유화가 가속화되면서, 제2금융권에 대한 재벌의 지배 강화와 함께 초국적 금융자본의 국내 금융 지배가 초래되었다. 금융화의 주요 양상으로 이야기되는 기관투자가의 지배는 우리나라에서는 외국 기관투자가의 국내 증시 장악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럼에도 금융화 논자들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진전된 1990년대 이후 세계 모든 나라에서 금융화의 증거를 찾으려 한다 (예컨대 권우현(2004), 조복현(2004)). 이는 많은 경우 금융화 논자들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동시에 미국 제국주의의 지배력 강화의 프로젝트임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고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본질을 금융세계화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는 미국 제국주의의 헤게모니 강화를 위한 프로젝트임을 감안한다면, 또 “산업화”와 달리 “영합(零合) 게임”(zero-sum game)인 “금융화”에 특유하게 작동하는 불균등 발전과 양극화의 논리를 고려한다면, 제국주의의 중심에서와 같은 금융화 현상이 제국주의의 주변부에서 나타날 수 없는 것은 분명하다. 제국주의 중심에서의 금융화는 제국주의 주변부에서는 금융적 종속의 심화를 수반하고 그것에 기초해서만 지속될 수 있다.
지난 1980년대 한국사회 성격논쟁에서 한 때 한국자본주의의 자립화론, 종속 약화론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1997년 위기 이후 한국경제의 종속은 금융적 종속이라는 형태로 다시 심화되고 있다. 금융적 종속의 심화는 (1)상장주식 시가총액에서 외국인 지분의 급증, (2)외국인 직접투자의 급증, (3)가치의 국외 유출 증대 등의 지표에서 확인된다. <그림 12>에서 보듯이, 외국인 주식소유 비중은 시가총액 기준으로 1991년 3. 퍼센트에서 1996년 13 퍼센트, 1998년 19.6 퍼센트, 2000년 30.1 퍼센트, 2003년 40.1 퍼센트로 급증했다. 외국인 주식투자는 주로 우량기업 중심으로 이루어져 2004년 6월 28일 현재 외국인 지분은 삼성전자의 경우 58.1 퍼센트, 현대자동차의 경우 55.3 퍼센트, 포스코의 경우 70.1 퍼센트였으며, 10대 그룹 계열 상장사에 대한 외국인 보유 비중은 1998년말 30.2 퍼센트에서 2004년 6월 28일 현재 48.5 퍼센트로 급증했다. 또 외국인이 5 퍼센트 이상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회사의 수도 2001년말 55개사에서 2004년 6월 22일 현재 149개사로 급증했다 (박현수(2004)). 은행의 경우도 2004년 8월 현재 8개 시중은행 중 3개 (제일, 외환, 한미) 은행의 경영권을 외국인이 장악했으며, 나머지 은행들도 외국인 지분율이 매우 높으며 (국민은행 77.8 퍼센트, 신한금융지주 63.4 퍼센트, 하나은행 65.5 퍼센트), 외국계 증권사의 국내 시장 점유율은 거래대금 기준으로 1999년 6.5 퍼센트에서 2004년 25.5 퍼센트로 급증했다 (박현수(2004)).
1997년 경제위기 이후 외국인 주식투자의 외국인 직접투자도 <그림 13>에서 보듯이 1997년 이후 폭발적으로 급증했다. 외국인 직접투자는 1990년 7억 달러 수준에서 1997년 28억 달러로 증가하고 경제위기 다음 해인 1998년에는 54억 달러로 거의 배증하고, 1999년에 다시 93억 달러로 곱절로 늘어났다. 하지만 외국인 직접투자는 1999년 이후 감소세로 돌아서 2003년에는 32억 달러 수준으로 줄었다. 이는 1997년 위기 이후 폭발적으로 유입된 외국인 직접투자의 대부분이 신규 투자가 아니라 경제위기 속에서 헐값으로 된 국내기업을 인수 합병하기 위한 것이었고, 2000년 이후에는 알짜배기 국내기업들의 인수 합병이 대체로 끝났음을 보여준다(Hart-Landsberg and Burkett, 2001: 422). 이는 <그림 13>에서 보듯이 외국인 주식투자가 1997년 25억 달러에서 경제위기 직후인 1999년 121억 달러, 2000년 131억 달러로 무려 5배 가까이 급증한 다음, 2002년에는 4억 달러로 급감한 데서, 또 직접투자나 외국인 주식투자와는 달리 외국인 채권투자는 1997년 경제위기 직전인 1996년 156억 달러까지 급등했다가 경제위기 직후인 1998년 마이너스 31억 달러, 1999년 마이너스 42억 달러로 급감한 데서도 알 수 있다.
금융적 종속의 심화 결과 국외로 유출되는 가치량도 급증했다. <그림 14>는 기술사용료와 외채 이자 지불 및 이윤송금의 합으로 계산한 가치의 국외 유출액이 1994년까지 10년 동안 40억 달러 수준에 머물러 있다가 1998년 110억 달러로 급증했음을 보여준다. 이에 따라 GNP에 대한 가치의 국외 유출액의 비율도 1994년까지 감소하다가 그 후 증가세로 돌아서 2001년에는 2.3 퍼센트를 기록했다.

4.2. 실물 부문의 경제적 종속 심화

그런데 이와 같은 1997년 위기 이후 금융적 종속의 심화는 실물 부문에서의 경제적 종속의 심화를 반영한 것이지 결코 그것을 대신한 현상이 아니다. 실물 부문에서 경제적 종속은 (1)수출 의존도의 증대, (2)국내 산업연관의 약화, (3)생산수단의 수입 의존의 심화 등과 같은 지표로 확인할 수 있다. <그림 15>에서 보듯이, GDP 대비 수출 비중은 1970년 13.8 퍼센트에서 1987년 39.7 퍼센트로 증가한 후 그 뒤 감소하다가 1997년 위기 이후 다시 증가세로 돌아서 1998년 49.7 퍼센트까지 치솟았으며, 그 후 약간 감소했지만 2002년에도 40 퍼센트로서, 1998년 이전 최고점인 1987년과 같은 수준이었다. 1997년 위기 이후 수출의 급증은 한국경제의 일시적 회복을 가능하게 했는데, 이는 이 시기 미국의 IT 호황에 따른 IT 관련 제품의 대미 수출의 급증에 기인한 것이었다. 한편 수출 비중의 급증과는 대조적으로, GDP 대비 투자의 비중은 1997년 35.1 퍼센트에서 2002년 26.7 퍼센트로 급락했다. 1997년 위기가 과잉투자에서 비롯되었다면, 1997년 위기 이후에는 과소투자가 문제가 되고 있다. 한편 GDP 대비 소비의 비중은 1970년 74.7퍼센트에서 1988년 50 퍼센트 수준까지 감소했다가 그 이후 꾸준히 증가하여 (1997년 IMF 직후 일시적 감소를 제외하면) 2002년 60.2 퍼센트를 기록했다. 이는 최근 내수부진의 주요인은 소비 위축이 아니라 투자의 상대적 부진임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1990년대 이후 국내 산업연관이 약화되어 수출 증가는 생산 증가를 유발하기보다 수입 증가를 유발하고 있다. <그림 16>, <그림 17>에서 보듯이 수출 증가의 생산유발계수는 1990년 1.99에서 2000년에 1.87로 감소한 반면, 수출 증가의 수입유발계수는 1993년에 0.28에서 2000년에 0.37로 증가했다. 1997년 이후 경제회복에도 불구하고 그에 상응하여 고용이 증가하고 있지 않은 것 (이른바 일자리 없는 회복)도 이 때문이다. 이와 같은 국내 산업연관의 약화 및 이에 따른 경제적 종속의 심화는 많은 논자들이 지적하듯이 (예컨대 이내황 외(2004)),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분업연관의 약화, 수출 기업과 내수 기업 간의 분절, IT 산업과 비IT 산업 간의 양극화의 결과이다.
국민경제의 경제적 종속의 정도를 가장 잘 나타내는 지표는 생산수단의 수입의존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림 18>은 1990년대 중반까지 감소 추세를 보였던 생산수단의 수입의존도가 그 이후 다시 증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즉 중화학공업에서 사용하는 중간투입(원자재, 부품) 중 수입품의 비중이 1970년 49.2 퍼센트에서 1993년 25.7 퍼센트까지 감소하다가 그 후 감소세가 중단되어 2000년에는 32.1 퍼센트까지 증가했으며, 특히 제조업 부문 전체의 민간총고정자본형성 중 수입품의 비중은 1993년 31.3 퍼센트에서 1995년 37.6 퍼센트, 2000년 42 퍼센트로 급증했다. 이상의 사실들을 감안할 때 1980년대 한국사회성격 논쟁 당시 일각에서 주장한 1980년대 후반 이후 “종속약화” 혹은 “자립화” 명제는 그 시기의 일시적 현상을 장기적 추세로 오인한 단견이었음을 알 수 있다. 경제적 종속은 1990년대에도 한국자본주의의 주요한 특징이었고, 1997년 위기 이후 다시 심화되었기 때문이다.


5. 결 론

이 논문에서 제시된 사실들은 1990년대 이후 한국에서 자본축적의 추세에 관한 다음과 같은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의 타당성을 보여준다. 첫째, 1997년 위기는 단순한 금융 위기가 아니라 자본축적의 구조적 모순이 심화된 결과이다. 이는 1997년 위기 이전 기간인 1986-1996년 이윤율의 저하에서 입증된다. 둘째, 1997년 이후 한국 경제 변화의 기본 성격은 금융화라든지, 󰡒금융주도 축적체제󰡓라는 시각으로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비금융법인 이윤의 금융 부문으로의 유출 증가 등으로 정의되는 금융화 현상은 1997년 이후 한국의 사례에서 입증되지 못했다. 셋째, 1997년 이후 신자유주의 이행의 본질은 오히려 이윤율 회복을 위한 국내외 자본의 공세이며 이 과정에서 격화되고 있는 노동자 계급에 대한 착취와 경제적 종속의 심화이다. 따라서 1997년 이후 신자유주의가 이른바 󰡒금융주도 축적체제󰡓를 성립시켰다는 주장은 아무런 근거가 없다. 사실 신자유주의는 글로벌 자본주의를 위한 일관된 거버넌스 방식이라기보다 혼돈의 요인(Callinicos, 2004)이기 때문에, 신자유주의에 안정적 󰡒축적체제󰡓의 성립을 위해 필수 불가결한 󰡒시장경제의 사회적 조절󰡓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이 논문의 결론은 오늘 진보진영이 금융화 등과 같은 현상형태에 주목하기보다 자본주의적 및 제국주의적 착취와 축적 체제 그 자체를 문제시할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 오늘 진보진영에 요구되는 것은 금융화 논자들처럼 “나쁜 자본주의” (이른바 기생적이고 비생산적인 금융자본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적 주주자본주의)를 “좋은 자본주의” (생산적이고 혁신적인 산업자본 중심의 이해당사자 자본주의)로 대체하자고 제안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금융적 군사적 제국주의의 지배와 자본주의 착취 체제 그 자체를 거부하는 반자본주의 반제국주의 투쟁과 연대하는 것이다.
마르크스의 자본 개념에서는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이분법이 아니라 양자간의 상호작용과 모순적 통일의 측면이 강조된다. 따라서 자본주의적 착취와 축적의 본거지인 산업자본(“좋은 자본주의”)은 손보지 않고 금융자본(“나쁜 자본주의”)만 통제하는 것으로는 자본주의적 착취와 축적에 내재한 모순의 발현으로서의 과잉생산공황의 발발을 막을 수 없다.
오늘 금융화 논자들이 주장하는 금융자본/산업자본의 이분법에 기초한 금융억압의 논리는 실은 1980년대 한국사회성격논쟁에서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론자들이 주장했던 독점자본/중소(민족)자본의 이분법에 기초한 독점강화/반독점 동맹론이 변신 재현한 것이다. 과거 반독점 동맹론의 경우 단계론적 개량주의적 편향이 있었지만 그래도 근본적 변혁의 지향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독점강화론/반독점 동맹론에 대한 이론적 실증적 비판으로는 정성진(1999b)를 참조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오늘날 금융화 논자들은 1990년대 이후 득세한 ‘자본주의 이외 대안 부재론’을 배경으로 하여 반자본주의 변혁의 전망을 전적으로 거부하고 이른바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를 노골적으로 지지한다. 이 점에서 금융화론은 과거 독점강화/반독점 동맹론보다도 훨씬 우경화된 논리라고 할 수 있다.


사회주의 기획토론회(1) "한국사회의 대안, 사회주의" 취지

[1부] 21세기 한국경제 - 자본주의 모순의 격화와 사회주의 대안의 현재성 -

[2부] 새로운 사회주의의 내용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해방연대(준) 사회주의 기획토론회를 바라보며 - 본격적인 사회주의 논의를 위한 첫 단추를 끼운 토론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