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토론회의 첫 번째 주제에서는 한국사회에서 사회주의가 대안이 되어야 하는 이유를 살펴보았다. 이어서 두 번째 주제에서는 새로운 사회주의의 내용이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를 살펴보겠다.
80년대 후반, 90년대 초의 현실사회주의의 붕괴는 현실사회주의의 실패를 대중적으로 확인시켰다. 이로써 현실사회주의는 더 이상 자본주의의 대안이 될 수 없음이 입증되었고, 사회주의자들에게는 현실사회주의의 실패원인에서 반성적 교훈을 끌어내어 새로운 사회주의 대안을 모색하고 실천해야 하는 과제가 주어졌다.
현실사회주의의 붕괴는 단지, 현실사회주의에 대한 대중의 부정을 가져오는 데에만 머물지 않고 사회주의 일반에 대한 전반적인 회의를 가져왔다. 이로 인해 대중들 사이에서뿐만 아니라 사회주의자들사이에서도 사회주의에 대한 회의가 급속히 확산되고 사회주의자들의 청산행렬이 이어졌다. 그리고 사회주의자에서 청산주의자로 선회한 자들에게 현실사회주의의 실패원인에 대한 규명은 더 이상 관심거리가 아니었다. 이들은 현실사회주의의 실패원인 규명과 대안 모색이라는 버거운 과제를 내팽개치고 현실사회주의의 역사 전체를 잊어버리거나 회피하였다.
사회주의자들은 이러한 청산주의자들의 태도와는 달리 역사와 현실로부터 도피하지 않고 인내심을 갖고 대면하였다. 사회주의자들은 노동자, 민중의 투쟁과 굳건히 결합하면서 현실사회주의의 실패원인 규명을 끈질지게 진행하였고 그 성과를 축적해왔다. 이 과정에서 사회주의자들은 새로운 사회주의대안의 기본적인 내용을 확보해왔다.
현실사회주의의 붕괴는 사회주의자들에게 시련을 가져왔지만 부정적인 측면만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현실사회주의의 실패원인 규명과정에서 사회주의자들은 사회주의에 대해 보다 깊이있게 재해석하고 재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현실사회주의에 강박된 협소한 인식의 틀을 탈피하고 보다 열린 마음으로 현대사회의 변화발전 속에서 새롭게 제기되어온 새로운 대안적 삶에 대한 다양한 문제의식을 사회주의의 내용으로 수용해왔다.
올해가 2006년, 소련이 붕괴한 1991년으로부터 치면 연수로 15년이 되어온다. 짧지 않은 기간이었고 이 기간동안 사회주의자들은 어려움을 헤치며 더디지만 새로운 사회주의의 내용을 확보해왔다. 지금은 이러한 성과를 집약해서, 집약된 내용에 대한 토론과 비판을 통해 새로운 사회주의의 모색과 실천을 한 단계 더 상승시켜야 할 시점이다. 이것이 필요한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는, 새로운 사회주의 대안 논의가 지금까지와는 달리, 일부 사회주의정치조직, 개인의 탐구와 논의 수준을 넘어서 전체사회주의자들 사이의 논의로 발전해야 할 시점이 되었기 때문이다. 둘째는 이러한 논의 속에서 성과의 한계지점을 드러내고 이 한계지점을 사회주의자들이 공동의 노력으로 조직적으로 극복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셋째는 한계지점의 극복을 위한 사회주의자들의 조직적 실천이 지금까지의 논의를 강령수립으로까지 발전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토론회는 이러한 시도 중 하나이다.
발제문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분은 본론인 제2부분의 전제가 되는 총론적 문제의식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여기서 필자는 새로운 사회주의 내용의 각론적 부분의 전제가 되는 총론적 문제의식을 제출하였다.
제2부분은 네 개의 부분(인간해방운동으로서의 사회주의운동의 복원과 전면화, 민주주의의 심화발전으로서의 사회주의, 생산과 유통에 대한 생산자들의 의식적 통제, 노동자 국제주의)으로 나누어 대안을 제시한다.
대안이 도출된 근거를 명확히 하기 위해서는 먼저 현실사회주의의 실패원인을 밝히고 새로운 문제의식의 수용을 다룬 후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필요한데 이런 방식으로 글을 작성하면 글 전체가 방대해질 수밖에 없고 자칫하면 토론회글로서는 글의 긴장감이 떨어질 우려가 있어 대안을 제시하는 부분에서 이를 함께 다루었다.


1. 총론적 문제의식들

1) 자본주의 사회에서와 달리 사회주의 사회에서 정치와 경제는 직접적으로 통일되어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다.

자본주의사회가 자본주의 이전 사회와 비교하여 갖는 두드러진 특이한 현상 중 하나는 정치와 경제, 국가와 (시민)사회가 실제로 분리된 것이 아닌데도 분리된 형태로 나타나고 상대적 자율성을 갖는다는 점이다. 가령 봉건사회에서 봉건영주와 농노사이의 관계는 정치적 관계, 경제적 관계가 분리되어 나타나지 않으며, 직접적으로 통일되어 있다. 농노의 봉건영주에 대한 관계는 신분적 예속관계로서, 이 관계없이 봉건적 생산은 존재할 수 없다. 이에 따라 정치적 관계, 경제적 관계는 분리되어 나타나지 않으며 국가와 사회는 분리되지 않은 채 직접적으로 통일되어 있다.
이와 달리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정치와 경제, 국가와 (시민)사회는 상대적으로 분리되어 자율성을 갖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정치는 경제와 직접적으로 통일된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으며, 국가 역시 (시민)사회와 직접적으로 통일된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이 점은 이전사회와 비교하여 자본주의사회가 갖는 두드러진 차이점이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이러한 상대적 자율성이 발생하는 것은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의 관계의 특별한 성격에서 발생한다. 봉건사회에서 농노는 생산조건-주로 토지-의 사실상의 소유자, 점유자이다. 때문에 명목적인 토지소유자인 봉건영주가 농노로부터 잉여노동을 강탈할 수 있기 위해서는 경제외적 강제가 필수적이며, 농노를 토지에 강박하여 토지의 부속물로 만드는 것과 신분적 예속관계가 봉건적 생산을 위해 필수적이다. 만약 이것이 없다면 봉건영주는 농노로부터 잉여노동을 강탈할 수 없을 것이다. 봉건사회에서의 농노와 달리 자본주의사회에서 노동자는 생산조건에서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조건은 자본가들의 소유이며 생산은 자본가들의 지휘아래에서 이루어지고 생산물은 자본가들의 소유이다. 이러한 조건에서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력을 자본가에게 판매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음으로써만 자신과 가족의 생존과 재생산을 확보할 수 있다. 그 결과 경제외적 강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필수적인 것이 아니게 되며 노동자와 자본가의 관계는 외관상 ‘계약관계’의 모습을 갖게 되고 노동력이라는 상품을 거래하는 ‘상품거래관계’의 모습을 갖게 된다.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의 관계는, 본질상 지배, 종속, 착취피착취관계임에도 외관상으로는 대등한 주체의 계약관계, 상품판매자와 구매자의 관계로 나타난다.
이러한 이유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본질상 분리된 것이 아님에도, 정치는 경제와, 국가는 (시민)사회와 분리된 외관형태를 취하며 상대적으로 자율성을 갖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자본주의사회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정치와 경제의 상대적 자율성은 자본주의의 종식과 함께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며 사회주의사회에서 정치와 경제는 불가분리의 관계를 갖고 서로 상호작용하고 서로 직접적으로 통일되게 된다.
이러한 자본주의사회와 사회주의사회의 차이 인식은 사회주의사회의 특성을 인식하는 데서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만약 자본주의사회에서의 정치와 경제가 갖는 상대적 자율성이 사회주의사회에서도 그대로 존재하는 것으로 바라볼 경우 이는 자본주의사회에 적용되는 것을 사회주의사회에 잘못 적용하는 것으로 실천적으로 중대한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 이는 노동자민주주의의 변질이 초래할 수 있는 파멸적 결과에 대한 경계심을 약화시킨다.
자본주의사회에서 국가는 본질적으로 부르주아국가라는 동일한 내용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형태를 취해왔다. 보나파르트적 형태의 국가, 파시즘형태의 국가, 부르주아민주주의 형태의 국가, 군사독재형태의 국가 등 다양한 형태의 부르주아국가가 존재하였지만 이들 국가형태의 변화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의 본질적 변화를 수반하지는 않았다. 이는 자본주의사회에서 정치와 경제 사이에 상대적 자율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이 사회주의사회에서는 발생할 수 없다. 사회주의사회에서 정치와 경제는 직접적으로 통일되어 있어 정치에서의 변화는 경제의 변화와 분리되지 않고 역의 방향에서도 그러하기 때문이다.
공산주의적 생산관계의 형성은 노동자민주주의의 수립이후 생산수단의 사회화가 이루어지고 노동자들이 생산을 관리해들어갈 때 비로소 출현하게 된다. 때문에 노동자민주주의는 공산주의적 생산관계 형성의 조성자로서 필수적인 것이고 공산주의적 생산관계는 노동자민주주의의 발전과 함께 발전해간다. 그런데 만약 노동자민주주의가 발전하지 못하고 오히려 변질 왜곡되는 일이 발생하게 되면 이는 생산관계의 변질로 곧바로 연결된다. 즉, 자본주의사회에서와는 달리 사회주의사회에서 정치의 변화는 곧바로 경제의 변화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이는 러시아에서 노동자민주주의의 변질이 급속하게 생산관계의 변질을 가져오고 다시 이러한 생산관계의 변질이 노동자민주주의의 가일층의 변질을 가져오게 된 이유이다.

2) 생산수단의 국유화는 그 자체로서 공산주의적 생산관계를 담보하지 않는다.

소외된 노동이 사라지는 공산주의적 생산관계는 생산수단의 국유화뿐만 아니라 노동자민주주의의 수립, 노동자관리를 필수적 요소로 한다. 생산수단의 국유화는 공산주의적 생산관계의 이들 필요조건중 하나일 뿐이며 이의 충분조건이 아니다.
현실사회주의의 경험은 생산수단의 국유화가 반드시 공산주의적 생산관계를 담보하지 않으며 생산수단이 국유화된 사회에서도 소외된 노동이 다시 발생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즉, 생산수단이 국유화되더라도 노동자민주주의가 변질될 경우 공산주의적 생산관계가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계급은 국가의 주체가 되지 못하고 거꾸로 비대해질대로 비대해져 사회에 군림하는 국가의 지배대상이 되며 생산과정에서 노동자관리가 실현되지 않고 관료와 경영자의 전제아래 노동자계급이 놓여지는 생산관계가 출현하게 된다. 그 결과 이러한 생산관계아래에서 소외된 노동은 새로운 형태로 다시 발생하게 된다.
따라서 우리가 새로운 사회주의의 내용을 올바로 확보하기 위해서는 생산수단의 국유화=사회주의라는 조잡한 경제주의적 사회주의관을 철저히 극복하고 소외된 노동을 극복하는 공산주의적 생산관계의 형성을 새로운 사회주의대안의 핵심적 내용으로 설정하여야 한다. 이는 사회주의자들이 단순한 생산수단의 법적 소유형식이 아니라 노동과정, 생산과정자체를 중심으로 새로운 사회주의대안을 기획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3) 통제되지 않는 권력은 반드시 변질된다.
- 너무나 상식적이면서 너무나 쉽게 무시된 명제

통제되지 않는 권력은 반드시 변질된다는 것은 어쩌면 복잡한 논의조차 불필요한 상식적인 것이다. 이점은 오래전부터 이미 강조되었던 것이다. 파리콤뮨에서 노동자계급은 공직의 선출과 소환제를 실천하였고, 콤뮨의원들이 노동자의 임금수준의 수입을 받도록 만들었다. 파리콤뮨의 경험은 이후 사회주의자들 사이에서 일반화, 이론화되어 노동자민주주의의 기본적인 원칙이 되었다. 러시아에서 출현한 소비에트는 거의 판을 박았다고 할 정도로 파리콤뮨의 경험을 반복하였다.
자신들을 대표하는 자들이 자신들로부터 독립하여 자신들을 배신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노동자계급은 이미 오래전에 창조적으로 통제의 수단을 도입하여 이를 실천하였던 것이고 사회주의자들은 이를 이론화하였다. 그러나 역사적 경험은 이 자명한 진리가 너무나도 쉽게 ‘현실적 조건’이라는 이유로 무시되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러시아에서 노동자민주주의가 변질된 과정은 전형적인 예이다(이 과정에 대한 구체적 내용은 제2부에서 다루겠다).
러시아의 경험은 통제되지 않는 권력, 국가, 당이 어떻게 변질되는가를 보여주는 교과서적 사례이다. 앞에서 검토한대로 노동자민주주의의 변질이 급속하게 사회전체의 변질에 이르게 된다는 점에서 노동자민주주의 변질의 원인, 통제의 실종은 현실사회주의가 실패하게 한 근본적 원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교훈으로부터 사회주의자들은 새로운 대안을 기획할 때 통제의 문제를 핵심내용으로 설정해야 한다.

4) 총체성의 확보가 새로운 사회주의에서 필수적인 이유

새로운 사회주의의 내용을 확보해가는 과정에서 주의해야 할 것은 대안이 ‘바람직한 내용들의 짜깁기’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만약 대안이 총체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그 대안은 로자 룩셈부르크가 말한 것처럼 소부르아적 희망의 나열에 불과하게 될 것이며 각각의 부분적 내용들이 서로를 배제하는, ‘관념상에서만’ 가능하지 현실에서는 전혀 작동할 수 없는 대안이 될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시장사회주의가 될 것이다. 시장사회주의는 용어상으로는 사회주의이지만 그 본질상 사회주의라고 할 수 없다. 시장사회주의는 계획은 관료주의를 회피할 수 없고 효율성을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에 사회적 소유와 주요조절형태로서의 시장을 결합하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사회적 소유와 시장이라는 조절형태는 서로 통일되지 못하고 서로를 배제한다. 또한 시장사회주의는 그 주장의 뿌리를 파고들면, 사회주의의 핵심적 내용인 ‘노동자계급의 자기해방’과 ‘자기해방과정에서 실현될 노동자계급의 자주관리능력의 고양’, ‘민주적 계획의 가능성’에 대한 회의와 부정에 기초하고 있다. 때문에 시장사회주의는 실제의 내용에서 사회주의의 핵심적 내용과 모순되며 만약 시장사회주의가 일관되게 추구되면 그것은 ‘시장사회주의’에서 ‘사회주의부분’이 강화되는 방향으로가 아니라 ‘시장’이 사회주의를 밀어내어 결국은 자본주의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귀결될 것이다.
총체성의 확보는 환경, 여성 문제 등의 새로운 문제의식을 새로운 사회주의대안에 수용할 때도 견지될 필요가 있다. 환경, 여성문제 등을 하나의 부분적 부문으로 사회주의노동운동에 기계적으로 결합하는 방식은 이들 문제의 보다 심도 높은 해결을 불가능하게 하고 역으로 사회주의 노동운동을 여러 병렬적 부문중 하나의 부문으로 협소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 본래의 사회주의의 문제의식, 소외된 노동의 극복, 자연으로서의 인간, 인간해방의 관점은 총체성속에서 새로운 문제의식을 수용하는 훌륭한 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2. 새로운 사회주의의 내용

1) 인간해방운동으로서의 사회주의운동의 복원과 전면화

새로운 사회주의대안을 기획할 때 사회주의운동은 인간해방운동으로서의 자신의 고유한 본성을 복원시키고 전면화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운동의 진행과 함께 점차 뒷전으로 밀려났지만 사회주의운동의 본래의 궁극적 목표는 인간해방이었다. 이는 '노동자계급이, 동시에 사회전체를 착취와 억압과 계급투쟁으로부터 영원히 해방하지 않고서는 자신의 해방을 이룰 수 없다'는 입장에서 이미 압축적으로 표명되었던 것이다. 이 입장은 노동자계급의 계급투쟁과 보편적 인간해방운동의 변증법적 통일을 매우 간명하게 잘 표현하고 있다. 즉, 노동자계급의 계급투쟁은 여전히 ‘특수한 계급’인 노동자계급의 ‘특수한’ 계급투쟁이지만 동시에 노동자계급이 처한 특별한 역사적 위치로부터 모든 착취와 억압, 계급자체의 폐지를 위한 보편적 인간해방운동이기도 한 것이다.
맑스가 노동의 소외문제를 모든 소외와 전도(국가, 종교 등)의 근원으로 규정하고 소외의 극복을 위해 사적 소유 폐지를 주장한 것 역시 사회주의운동의 기본적 문제의식이 인간해방에서 출발했음을 보여준다. 사회주의운동이 주요한 실천과제로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 노동자국가의 수립을 설정하는 이유도 그 근원을 파고들면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가 노동의 소외를 극복하기 위해서 필수적이고, 다시 노동자국가의 수립이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 실현을 위해서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 노동자국가의 수립은 인간해방을 위한 수단일 뿐이며 그 자체가 궁극적 목표인 것은 아니다.
사회주의운동은 이러한 자신의 고유한 본성과 원대한 목표를 이론적, 실천적으로 철저히 복원시키고 전면화해야 한다. 이것은 협소해질 대로 협소해진 현실의 사회주의운동의 지평과 전망을 획기적으로 확장하는 것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경제주의의 극복, 주체가 결여된 구조주의와 객관주의의 극복).
또한 인간해방운동으로서의 사회주의운동의 복원과 전면화는 여성문제, 소수자문제 등 , 현실에서 새롭게 제기되어온 문제의식을 사회주의운동이 적극적으로 수용할 수 있게 할 것이다.
인간해방운동으로서의 사회주의운동에 대한 재인식은 인간과 인간 사이에 서로를 돌보고, 서로를 고양시키는 문화를 형성해가는 문화혁명운동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문제의식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지금까지의 사회주의운동이 이 문제를 등한시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 문제의 중요성을 올바로 인식했다고 할 수 없다. 앞으로 사회주의운동이 대중의 마음을 얻어가기 위해서는 현실의 운동 속에서 운동의 주체가 인간간 배려와 연대의 선진적 문화를 먼저 실천해들어가야 한다.

2) 민주주의의 심화발전으로서의 사회주의
- “노동자의 해방은 노동자계급자신의 사업이어야 한다.”

제1부에서 지적하였듯이 현실사회주의의 경험은 생산수단이 국유화된 조건에서 노동자민주주의가 발전하지 못하고 변질되면 사회주의, 공산주의사회가 발전해가는 것이 아니라 관료가 지배하는 생산체제가 출현하게 될 뿐임을 보여주었다. 생산수단이 국유화된 조건에서 노동자민주주의의 변질은 곧바로 사회전체의 변질을 초래해 "각자의 자유로운 발전이 전체의 자유로운 발전의 조건이 되는 연합체"로 발전하는 사회가 아니라 노동과정은 관료적 전제아래 놓이고 당과 국가, 특히 당이 자립하여 사회전체에 군림하는 사회를 만들어 내었다. 그 결과 지배피지배관계와 억압은 새로운 형태로 다시 출현하였으며 전체주의적 야만이 발생하고 노동자, 민중은 명목상의 주체일 뿐 지배와 억압의 대상으로 전락하였다.

러시아에서 노동자민주주의가 변질된 과정은 매우 복잡하지만 대략 세가지 과정의 결합이었다.
첫번째 과정은 가장 민주적인 노동자국가형태를 보인 소비에트가 내전기간 동안 형해화되고 당의 대리주의적 실천이 강화된 과정이다.
두번째 과정은 내전이 종식되었지만, 전시공산주의시기의 강제징발에 반발하여 농민의 불만이 고조되면서 소비에트권력의 붕괴위험은 오히려 높아지게 되자 공산당 일당제가 강화된 과정이다. 이로 인해 러시아에서 공산당과 경쟁할 정치세력은 더 이상 합법적으로 존재할 수 없게 되었다.
세번째 과정은 정치권력이 집중된 공산당의 당내민주주의가 제한 축소되어 간 과정이다. 소비에트다당제의 포기가 이미 심각한 위험을 안고 있었기 때문에 당내 민주주의는 그만큼 더욱더 강화되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러시아 공산당은 위기 앞에서 당의 분열을 막아야 한다는 이유로 당내 분파 형성권의 일시적 정지라는 중대한 조치를 취했다. 이 조치는 역사가 보여준 대로 이후 영구적 조치로 고착화되어 당내 다수분파가 소수분파를 연속적으로 배제, 억압하여 당내민주주의를 빠른 속도로 파괴해가는 계기가 되었다.

러시아에서의 경험으로부터 도출되는 교훈은, 사회주의는 민주주의의 심화발전 속에서만 발전할 수 있으며 노동자민주주의의 변질은 곧바로 사회주의의 실패로 이어지며 어떤 세력도 노동자계급을 대신하여 사회주의를 실현할 수 없고 민주주의 투쟁 속에서 자치능력을 발전시켜 가는 노동자계급과 민중만이 미래의 사회주의사회를 실현할 수 있다는 점이다.
노동자민주주의의 발전과 변질의 방지를 위해서는 콤뮨의 경험에서 부분적으로 나타난 노동자통제제도를 전면적으로 발전시켜가야 하고 노동자들의 직접적 참여를 계속 확대해가야 한다. 이것만이 자신을 대표하는 자들의 배신을 막고 노동자계급스스로가 사회관리의 주체로 나서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주의운동이 앞으로 이러한 과제를 얼마나 풍부하게 실천해가는가에 미래의 사회주의의 성공과 발전이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새로운 사회주의대안, 민주적 사회주의를 기획할 때 특별히 주목해야 할 것은 국가에 못지않게 당이 갖고 있는 양날의 칼과 같은 성격이다. 노동자국가는 해방으로 가는 과정에서 필수적이다. 그러나 국가는 국가의 주체로부터 분리되어 독립할 경우 괴물로 둔갑하여 주체를 억압하는 해방의 방해물이 된다. 당도 국가와 똑같은 특성을 갖고 있다.
따라서 사회주의자들이 한편에서 역사상 나타난 당의 부정적 측면에 실망하여 당의 역할에 대한 허무주의적 부정으로 나아가서는 안된다면, 다른 한편에서 역사상 나타난 일당제의 폐해를 고답적 자세로 회피해서도 안된다. 일당제는 당으로의 권력집중과 당과 국가의 융합을 초래한다. 그리고 이러한 당-국가는 소멸해가는 것이 아니라 갈수록 비대해져 사회전체를 삼켜버리게 된다. 이러한 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하여 사회주의자들은 변혁 이후의 과정에서 ‘전체로서의 사회주의정치세력의 통일단결과 당의 분화를 통한 복수의 사회주의정당사이의 경쟁’을 통일시켜내는 과제를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실천해야 한다. 물론 이것이 쉬운 과제는 아닐 것이다. 모든 운동이 그러하듯이 이 과제의 실천은 모순에 찬 것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불가능한 과제인 것도 아니다. 사회주의정당이 당내민주주의로 충만하다면 당의 분화는 전체로서의 사회주의정치세력의 통일단결 속에서 충분히 실현가능하게 될 것이다.

3) 생산과 유통에 대한 생산자들의 의식적 통제

현실사회주의의 지시적, 명령적 경제체제의 대안으로 붕괴이전에 제시된 시장사회주의는 새로운 사회주의의 대안이 될 수 없다. 제1부에서 지적하였듯이 시장사회주의는 상호배제하는 요소의 관념적 결합의 산물이며 따라서 작동하기 어렵다. 만약 시장사회주의가 강행된다면 그것은 두 요소의 조화로운 결합이 아니라 사회주의에 대한 시장의 승리, 궁극적으로는 자본주의의 승리로 끝나게 될 것이다. 중국에서 사회주의시장경제가 가져오고 있는 파멸적 결과는 이를 잘 보여준다.
사회주의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조차 결여하고 있는 시장사회주의론자들은 시장을 자본주의뿐만 아니라 사회주의와도 결합할 수 있는 어떤 중립적인 조절형태로 착각하고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모순은 단지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와 잉여가치의 착취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상품생산, 시장을 위한 생산에도 있는 것이며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사회주의는 이 모두를 극복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정치경제학비판’은 상품분석으로부터 출발하여 화폐, 자본, 잉여가치의 생산, 이윤, 이자, 지대의 분석으로 이어진다. 맑스가 정치경제학 비판을 상품의 분석으로부터 시작한 것은 모든 자본주의적 범주의 출발점이 상품분석에서 도출된 가치, 가치형태이기 때문이다. 자본의 운동은 상품생산과 유통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
또한 본질을 은폐하는 모든 자본주의적 범주의 물신성은 (가령 지대가 인간사이의 사회적 관계가 아니라 토지라는 물건의 특성에서 발생하는 것처럼 현상하는 것, 이자가 화폐라는 물건의 특성에서 발생하는 것처럼 현상하는 것 등) 상품생산의 물신성에 그 출발점을 두고 있다.
상품생산과 유통은 생산자들이 생산과 유통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정반대로 생산자들이 이에 지배되는 뒤집힘, 전도의 문제를 야기한다. 이러한 이유로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의 부정일 뿐만 아니라 상품생산의 부정이기도 하다.
따라서 상품생산, 시장과 사회주의의 결합을 주장하는 시장사회주의는 현실사회주의에 존재하였던 지시적, 명령적 경제체제의 대안일 수 없다. 그 대안은 결합된 노동자자주관리체들이 생산과 유통에 대한 생산자들의 의식적 통제를 실현하는 것이며 이것이 온전한 의미에서의 계획, 민주적 계획이다.

4) 노동자 국제주의

혁명당시, 러시아10월 혁명에 연이어 발발할 것으로 기대되던 서유럽, 특히 독일에서의 혁명이 실패하자 러시아 혁명은 국제적으로 고립되고, 기대되던 선진국혁명의 러시아혁명에 대한 물질적, 정치적 지원은 좌절되었다.
이러한 극히 불리한 상황에서 스탈린을 중심으로 한 러시아공산당의 다수분파는 일국사회주의론으로 대응함으로써 노동자계급의 국제적 연대를 왜곡하였다. 일국사회주의론은, 자본주의의 불균등발전으로 사회주의혁명이 한나라 혹은 몇나라에서 먼저 발생하고 이것이 확산되어 갈 수 있으며, 일국에서 혁명이 일시적으로 승리할 수는 있지만 일국단위에서 혁명이 완전한 승리를 거둘 수 없다는 사실을 부정하였다. 일국사회주의론은 불가피하게 소련 일국에서의 사회주의건설과 ‘사회주의조국’의 방위를 국제적 연대에 우선하게 하고 여기에 국제적 연대를 종속시킨다. 그 결과 일국사회주의론은 자본주의세계체제와의 투쟁은 세계적 차원의 혁명이 승리해야만 궁극적으로 승리할 수 있다는 전망에서 이탈하여 국제적 연대를 왜곡하고 무망한 선진제국주의나라와의 국가적 경쟁에 매몰되게 되었다. 이것이 소련에서 무리한 속도의 축적과, 폭력과 유혈이 낭자한 강제집산화가 강행되고 세계혁명을 위해 건설된 조직 코민테른이 소련외교의 하부기관으로 전락한 근본 이유이다.
현실사회주의의 붕괴는 이러한 일국사회주의론의 허구성을 논란의 여지 없이 최종적으로 확인하였으며 노동자국제주의의 왜곡이 사회주의운동에 얼마나 치명적 타격을 가해왔는지를 역사적으로 결산하게 하였다.
현실사회주의의 실패로부터의 교훈에서 뿐만 아니라, 자본의 세계화의 급속한 진행에 따라 노동자국제주의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는 정도로 사회주의변혁의 사활적 문제가 되었다. 사회주의변혁은 한나라 혹은 몇 개의 나라에서 시작될 수 있지만 전세계적 범위에서 노동자계급이 승리하지 않는 한, 결코 승리할 수 없다. 고립된 일국단위의 혁명은 고도로 세계화된 자본주의세계체제에 포위되어 자본주의로의 복귀를 강요당할 것이다. 새로운 사회주의운동은 이 교훈을 철저히 실천에 반영하여야 하며 노동자계급의 국제적 연대를 행동으로 실천해야 한다.


맺으며

글의 서두에서 언급하였듯이 사회주의자들은 지난 15년의 기간 동안 어려운 조건에도 굴하지 않고 새로운 사회주의를 모색하고 실천해왔다.
이제는 그 성과를 집약해서 사회주의자들 사이의 토론과 비판을 통해 새로운 사회주의의 모색과 실천을 한단계 더 상승시켜야 할 시점이다.
새로운 사회주의 대안 내용의 심화와 풍부화는 사회주의노동운동의 재구축과 재도약, 발전속에서만 온전하게 가능해질 것이다. 이것만이 문제의식을 더욱더 풍부하게 하고 창조적 사고의 발전을 가능하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거꾸로 사회주의노동운동의 재구축, 재도약을 위해서, 현재까지의 성과를 부족하더라도 집약하고 토론하는 것이 지금 반드시 필요하다.
오늘 토론회가 이런 과정 중에서 한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회주의 기획토론회(1) "한국사회의 대안, 사회주의" 취지

[1부] 21세기 한국경제 - 자본주의 모순의 격화와 사회주의 대안의 현재성 -

[2부] 새로운 사회주의의 내용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해방연대(준) 사회주의 기획토론회를 바라보며 - 본격적인 사회주의 논의를 위한 첫 단추를 끼운 토론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