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노동운동의 강점을 들라면 전투성과 총회민주주의의 활성화다. 최근 들어서 조합원 총회가 총회투표로 축소되고 집행부 활동의 사후 비준으로 제한되고 있는 것은 매우 우려할 만한 내용이지만 적정한 규모를 가진 노조의 경우, 여전히 정기총회와 임시총회가 계속 열리고 있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문제는 기업별 단위에서 행사하는 직접민주주의, 소환제, 대의원에 대한 선거단위의 통제 등이 연맹, 지역, 전국센터 규모로 가면서는 거의 발휘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조직의 규모가 커지고 행정수요가 많아지면서 관료화의 속도도 매우 높아져 있다. 노동자 민주주의 강화는 조직의 소통을 원활히 하고 교섭력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일 뿐만 아니라 새로운 세계의 주인이 될 노동자들의 민주주의적 소양강화를 위해서도 필수적인 것이다.


1. 총회중심의 노조운영을 통해 현장에 의한 조합통제력 강화

한국의 민주노조 운동에서 “총회”의 기능은 서구 평의회 운동에서 강조했던 부분들이 노조의 틀 안에서 발전해왔던 것을 보여준다. 민주노조에서 총회는 노조내의 민주주의를 강화하고, 노조집행부에 대한 현장의 통제를 관철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최근의 총회는 파업찬반투표와 협상안 찬반투표 등과 같은 투표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고 집체적이고 위력적인 총회는 파업시기에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파업시기에도 총회가 노동조합의 방침과 지침을 전달하는 집회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총회는 노동조합 지도부의 일방적인 독주를 예방하고 비민주적 행위에 대한 견제 기능으로서 뿐 아니라, 적극적 행위로서 조합원들의 요구와 과제를 모아내고 집단의 힘으로 실행시키는 데 그 근본이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합원들의 다양한 의사와 요구가 결집될 수 있도록 하는 다양한 소모임과 소위원회의 활성화가 전제되어야 한다. 물론, 모든 사안에 대한 결정을 총회에서 하자는 것은 아니다. 정족수의 문제도 있고 총회시간 확보가 문제가 된다 하더라도 공장의 중요한 제반 문제에 대해서는 총회에서 논의-결정하자는 것이다.

근로자파견제, 변형근로제 등 자본의 요구를 관철하는 가장 치열한 공간이 현장이며 이를 극복해 나가는 일차적 공간 역시 현장이다. 가령 갑작스런 구조조정과 노조탄압, 전환배치와 비정규직노동자의 채용과 감축으로 인한 현장내 노동강도의 강화, 출근시간 10분 앞당기기 강요와 노동시간 외 체조강요, 감시카메라 설치 등과 같이 모든 노동자의 이해가 걸려 있는 문제에 대해서 이를 돌파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원칙을 마련하고 이에 대한 찬반토론과 대응책 마련 등을 전체 조합원이 함께 하는 총회에서 도출해 나가야 한다. 전체 조합원의 요구가 맞물린 총회 중심으로 노동조합이 운영될 때 민주주의를 체득해 나가는 훈련이 될 뿐 아니라, 지도부의 관료주의나 부패를 통제할 수 있게 될 것이다.


2. 민주노총 위원장제도 폐지, 집단지도체제 도입, 대표성 강화

민주노총 위원장에게 과도한 권한이 집중됨으로써 사회적 합의주의와 같은 중대한 문제와 비정규직노동법안에 대한 대 정부 협상과정에서 결정적 시기에 노동자 대중과 괴리 또는 배신하는 행위들을 통제할 방도가 적어지게 된다. 배석범 직무대행의 노사정 합의와 그로 인한 노동운동의 침체, 이수호집행부의 도덕적 타락과 사회적 합의주의에 대한 조합원들의 통제가 불가능했던 것도 현장노동자의 무관심과 직접적 통제력을 상실한 데 있다. 때문에 과도하게 권한이 집중되어 있는 민주노총 위원장제를 폐지하고 20명 내외의 전국집행위원을 민주노총 조합원 직선으로 선출한다. 민주노총 위원장 대신 민주노총 조합원에 의해 직선으로 선출된 전국집행위원이 공동으로 민주노총을 대표하며 중앙집행위원 중에서 의장을 선출한다. 전국집행위원을 보좌하고 이끄는 책임은 전국집행위원 중에서 선출한 사무총장이 맡고 의장은 현재의 민주노총 위원장과 같은 역할을 하나, 다수의 전국집행위원에 의해 통제받아 사무를 실행하며 대자본, 대정부 투쟁과 교섭을 집단지도체제로 운영하며 책임진다. 이러한 체계는 이미 다른 나라에서 시행하고 있는 제도다. 그래서 대개 전국센터의 대표자가 대표가 아닌 사무총장으로 불리는 것이다.

선출과정도 비례대표제를 도입한다. 각 정파 경향별 또는 이에 속하지 않은 개인별로 후보 리스트를 제출하고 리스트에 대한 투표를 진행해서 득표비율별 순위로 당선자를 확정하는 것이다. 정당명부 비례대표제와 흡사한 방식인데, 정치개혁의 요구로 자주 등장하던 방식이다. 선거에서 가장 과학적인 방식이라는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것은 민주주의 발전에도 조응하는 것이다. 이것은 민주노총 내에서 정파투쟁을 양성화하고, 건전한 경쟁으로 유도할 수 있을 것이다.

민주노총이 전체 노동자계급의 4% 내외의 조직으로 전체 노동자를 과도하게 대표하고 있다는 점에서 조직되지 못한 분야와 미약하게 조직되어 있는 비정규직노동자의 대표성을 강화하여 20인의 중앙집행위원 중 최소 5명은 비정규직노동자로 선출한다. 민주노총에 비정규직담당자 몇 명 두는 것으로서는 현재 진행되는 비정규직양산 저지와 비정규직노동자의 생존권을 확보하기 위한 조직과 투쟁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이 이미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다. 5인의 비정규직노동자를 대표한 중앙집행위원은 소수대표나 비례대표가 아닌 전체 1000만 비정규직노동자의 대표로서 비정규직노동자투쟁의 조직화와 대정부, 대자본투쟁과 교섭에 있어서 실질적인 주체와 담당자로서 기능한다. 현재 민주노총의 노동자계급 대표성이 취약한 구조에서 이는 대표성의 확보에 있어서, 그리고 조직화와 대표성 확보의 거점으로서 필수적이다.


3. 간부들의 공인의식을 높이고 노동자 대표성을 강화할 제도의 도입

최소한 연맹위원장, 지역본부 위원장 급의 임금은 민주노총 조합원의 평균임금으로 조정한다. 대다수의 노동자들이 비정규직노동자로 생활하고 있고 그에 따라 최저임금을 조금 넘는 임금수준으로 생활한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현재 민주노총의 최고 간부급의 임금은 이 수준에서 조정되어야 한다. 상근간부가 불이익을 받는 것을 막기 위해 연장근로수당을 지급하는 등의 조치들이 아직도 유의미하다. 그러나 최고 간부라면 노동자 평균임금수준으로 급여를 정하는 것이 간부들의 도덕적 자긍심을 높이고 공인의식을 높여내 단순히 간부가 아닌 노동계급의 대표자로서 지위를 보장할 것이다.


4. 획기적 재정확보로 과감한 투쟁 마련

민주노총 가입사업장의 노조 조합비 1개월분을 연 1회 무조건 핵심사업을 위한 기금으로 적립하여 비정규직철폐투쟁이나 전국적 순회 투쟁 등 과감한 투쟁의 재정적 뒷받침을 한다.

민주노총의 주된 재정은 단위노조에서 올라오는 맹비와 기금, 부과금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 핵심재정이 맹비로 60만 조합원 1인당 1000원 정도로 월 예산 6억 정도에 불과하다. 이나마도 100%납부가 제대로 안되고 있는 상황이다. 반면, 연맹을 제외한 민주노총 상근인원만 해도 지역본부를 포함하여 137명의 인원이 상근하고 있다. 물론, 각 산별연맹의 상근인력과 무급자원봉사자는 포함되지 않는다. 산별연맹을 포괄하고 있는 민주노총 차원에서는 인건비를 포함한 사무실 유지와 투쟁비용에 빠듯한 상황에서 기획투쟁사업을 조직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한 구조다.

단위 사업장에서 분담금을 납부하지 않는 것이 문제이기는 하지만, 우선적으로 민주노총 내 전반적인 혁신이 진행되어 투쟁과 조직의 기풍이 살아 있는 조직체로 움직이고 노동자 민중의 생활을 옭죄는 족쇄를 푸는 투쟁을 전개한다면 조합원들은 자발적으로 분담금을 늘리는 데 동의 할 것이다. 더구나 민주노총 차원의 전국적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 연 1회 1개월분의 조합비를 확보하는 것도 재정의 투명성 확보와 조직-투쟁의 기풍이 살아 있는 한 민주노총 조합원은 기꺼이 동의할 것이다. 물론, 이렇게 확보한 재정은 전국적으로 중대한 사안에 과감한 투쟁을 진행하는 데 사용되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조합원의 동의 확보가 필수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