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을 건설하고 총파업과 노동자 대통령후보 출마, 민주노동당 건설로 정치적 노동운동은 전진했지만 노동해방을 기치로 내걸었던 전노협 시절 노동운동의 기세와 열기는 수그러들었다. 사태가 이렇게 된 것은 사회주의자들의 무능과 사기저하에 원인이 있다. 그러나 이제 자본주의 모순이 극에 달하고 있는 현실에 부딪친 노동운동은 다시금 그 때의 열기를 복원하고, 보다 풍부한 내용으로 사회주의 노동운동의 질적 수준을 고양시켜야 한다. 노동조합은 단순히 노동력 판매비용을 높이기 위한 활동을 넘어 노동자 계급의 해방을 위한 투쟁에 앞장서야 한다는 고전적 명제는 우리에겐 현실의 지침이다. 이를 위해 노동조합운동차원에서 사회주의 노동운동을 강화하기 위한 체계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대정부투쟁에 있어서도 노동자 계급의 해방투쟁에 복무할 수 있고, 대중의식을 끌어 올릴 수 있는 과도적인 요구-무상교육, 무상의료, 비정규직 철폐-를 중심으로 투쟁을 배치해야 한다.


1. 민주노총 차원의 과도적 요구투쟁 강화 (비정규직 투쟁을 중심으로)

현재의 비정규직투쟁은 이전보다 확장되기는 했어도 여전히 고립적이고 외로운 투쟁을 벌려나가고 있다. 대중동력이 없다는 이유로 민주노총 차원에서는 대정부 교섭과 협상이 우선시 되고 있다. 그러나 익히 알고 있듯이 노동자를 포함하는 국민 대다수는 비정규직제도에 문제를 느끼고 있다. 노동자 민중의 삶에 가장 치명적인 족쇄가 되고 있고 그로 인해 저임금과 살인적인 노동조건을 만드는 비정규직노동제 자체에 대한 국민투표를 실행하자는 요구를 민주노총 차원에서 제기하는 것이 요구된다.

일례로 행정수도가 논란이 되고 있을 당시 행정수도 이전 반대론자들이 들고 나왔던 것이 바로 국민투표를 하자는 주장이었다. 지금은 행정중심도시에 대해서까지 국민투표를 하자고 나서고 있다. 주장의 옳고 그름을 떠나 한나라당과 서울의 땅부자 같은 수구주의자들도 자신들의 이해를 조금이라도 침해하면 국민여론 운운하며 국민투표를 하자고 하는 데 비해 비정규직노동제와 관련한 우리의 태도와 행동은 너무 협소하다.

국민투표의 문제제기와 시행 과정에서부터 여러 가지 찬반양론이 들끓어 오르게 될 것이고 비정규직제도의 철폐가 저임금에 기반한 자본가들만의 살찌우기와 그로 인한 내수부진과 경기침체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다는 가장 단순한 사실들을 폭로해 나가고 비정규직노동제 자체가 소멸된 이후의 새로운 사회상에 대해 희망을 가지게 될 것이다. 비정규직이 없으면 마치 나라가 망하는 것처럼 떠드는 자본가들과 정부에 실로 비정규직의 도입 자체가 노동자 민중을 죽이고 있고 국민경제의 가장 큰 적이라는 사실을 노동자 민중 스스로가 터득해 나가는 과정이 되기도 할 것이다. 이 사업을 민주노총 단독으로 처리할 수 없다면 민주노동당과의 공동사업으로 진행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다. 새로운 사회와 새로운 희망을 만들기 위한 전반적이고 총체적인 밑그림을 그려나가기 위해서라도 지금 가장 시급하게 고통받고 있는 비정규직노동자들의 처지를 근원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정치적 행동이 요구되고 있으며 그 핵심 사업으로 비정규직노동제 존폐를 묻는 국민투표는 가능할 뿐만 아니라, 시급한 과제이기도 하다.


2. 노동자들의 계급의식을 발전시키고 현장의 토론/교육을 강화한다.

1) 노동조합의 토론/교육 분위기를 부활시킨다.

민주노총 전반의 관료적 구조를 해체하고 민주적 질서를 수립하는 것과 함께 민주노총 노동자들의 의식을 고양하고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현장노동자들의 의식의 고양과 실천이 따를 때 민주노총의 관료구조를 타파하고 제대로 된 민주적 질서를 수립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민주노총 산하에 중앙연수원을 건립하고 현장노동자, 조합간부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한다.

민주노총에 대정부 교섭과 관련된 정책연구소는 만들어졌지만, 현장노동자와 조합간부의 교육을 위한 연수원은 건립되지 않고 있다. 이것은 현재 민주노총의 비중이 어디에 있는지를 가늠하게 한다. 따라서 노동자와 조합간부들 사이에서 배우고 토론하는 분위기를 만들고 이것을 단일한 지향으로 묶어가기 위해서는 연수원 건립이 중요하다.

특히 노동자 교육의 핵심으로서 자본주의체제의 근원적인 모순을 파헤치고 이 사회의 비극적인 현상이 나타나게 하는 근본원인이 이 사회체제 자체에 있음을 확인하고 그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을 토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더불어 한국사회와 제국주의와의 관계, 남북분단과 통일, 통일된 사회의 전망, 북한체제의 인식 등도 강의 프로그램에 포함되어야 한다. 한국사회에 대한 총체적인 분석과 이를 극복하는 노동자 민중의 실천방안이 교육과 토론 중에 도출될 수 있어야 한다. 이에 대한 전반적인 책임과 과제를 민주노총 중앙연수원이 가지고 이를 추진한다.

토론 분위기가 확산되는 과정에서 한 날 한 시, 동일한 정치사안을 가지고 전국 현장노동자 토론회를 개최한다. 최근 커다란 논란이 되고 있는 비정규직 개악입법문제, 쌀 협상 문제, 호주제 폐지 문제, 사학법 등 다향한 현안 정치사안에 대해서 현장노동자들이 토론할 수 있도록 민주노총 차원의 지침을 통해 전국 현장노동자 토론회를 매월 1회 개최한다. 기존의 민주노총 방침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노동자들이 체감하고 있는 제반의 문제들에 대해서 한 날 한 시에 진행되는 이 토론회는 현장에 토론과 학습 분위기를 확산시킬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낼 것이다.

2) 노조간부 필수 이수 교육프로그램 개발, 이수한 노동자에게 조합 피선거권 부여한다.

현장간부들의 수준이 떨어지고 있다는 말을 많이 듣게 된다. 토론은 없고 지침만 존재한다고 한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노조간부와 현장활동가에게 필요한 필수 교육프로그램을 만들고, 이것을 반드시 이수하게 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그리고 노조간부들의 수준을 상향평준화하기 위해서 규약 개정 등을 통해 교육프로그램을 이수한 노동자들에 대해서만 조합간부의 피선거권을 부여하는 방법도 제안할 수 있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교육프로그램이 다른 어떤 교육프로그램이나 강의보다도 질적인 면과 이수과정에서의 규율에서 모범적인 것으로 되어 하나의 권위를 확보하게 될 때 현장의 노동자 대중으로부터 자발적으로 지도력을 부여받게 될 것이다. 교육프로그램의 작성과정은 민주노조와 민주노총이 한국사회에서 책임져야 할 사회적 역할에 대해서 광범위한 토론을 통해 내용을 확보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3. 사회주의 노동운동 문화를 복구-강화한다.

전노협시절을 이야기할 때 가장 선명한 기억은 선봉대에 참여하고, 노동조합이 주최하는 교육에 참여하고, 지역단체에 회원으로 가입하고, 전노협이 발행하는 전국노동자 신문을 읽고 현장토론에 참여하고, 대의원회의도 참여한다. 지노협 분과회의에 일주일에 한 번씩 참가하고, 간부들과 노동조합활동에 대해 토론한다. 집에는 온통 노동가요 테이프고, 책도 열심히 읽었다. 그런가 하면 전노협에서는 매년 평등부부상을 제정해 새로운 삶의 지표를 보여주었다.

민주노조운동이 사회주의 노동운동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운동뿐 아니라 정치적 의제를 가지고 당 분회, 혹은 지역위원회 사무실에 토론하고, 지역위원회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현장에서 정치토론을 이끌고, 투쟁하는 동지들을 위해 모금하고, 각종 문화행위도 더욱 많이 하고, 가정에서 평등적인 관계를 끌어내기 위해 노력하고 아이들의 인권과 존엄을 지켜주는 어른이 되려고 노력하는 등 노동해방의 기치가 개인적 삶의 영역까지 침투해야 한다.

이를 위해 민주노총이 민주노동당의 현장분회를 확대하고 강화하는데 노동위원회를 집중적으로 가동해야 한다. 현장당원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높은 정치의식은 대 자본투쟁에서 우리에게 강력한 힘으로 작동될 것이 분명하다.

우리는 21세기에 노동해방으로 나가는 새로운 세대를 육성해야 한다. 같은 하늘 아래 같은 공기 마시던 비정규직노동자들이 자결하고, 순박하디 순박한 농민을 때려죽이며 장애인이 길거리서 얼어 죽는 시대, 절박한 심정으로 사회주의를 향해 오늘의 고난을 기꺼이 감수하는 지사적 풍모를 가진 노동자들이 대중운동의 선두에 서야 한다. 현실운동이 힘겨워도 책을 읽고 동지들과 토론하는 노동자, 관성에 빠지지 않고 새로운 대안을 향해 전진하는 노동자, 혁명조직에 기꺼이 참여하고 조직적 기풍으로 단련된 노동자들을 시대가 요구하고 있다. 뜨거운 심장으로 불같은 사랑도 할 줄 알고, 따뜻한 마음으로 주변마저 훈훈하게 해주는 그런 젊은 노동자, 가족을 지키고 노동자들을 지키기 위해 결단하는 가장, 후배들을 아끼고 후배들의 생각을 깊이 들어주는 그러나 행동할 때는 젊은이 못지않은 나이 지긋한 노동자들이 노동자계급의 선두를 구성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