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당 위기의 현황

- 10.26 보선의 패배 : 울산북구만이 아니라, 타 지역의 낮은 득표율
- 노동운동의 위기 및 혁신과 관련해 아무런 입장이 없음 : 눈치보기만이 만연. 비정규직사업도 대부분 말로만 언급될 뿐, 실제의 활동은 극히 미약한 편
- 의회주의로의 급속한 경도 : 의원단은 실제로는 5개 정당 중 최고의 자율성을 지님. 당은 의원단에 대해 어떠한 지도도 행하지 못했음
- 대중들에게 열린우리당과의 차별성을 거의 보여주지 못함 : 열린우리당과 입장은 같되 좀 더 원칙적인 정도로 받아들여졌을 뿐, 야당으로서의 확고한 정체성 실종
- 지방정치에 대한 전략이 없음 : 이미 행정부를 장악한 울산북구나 동구의 경우, 당이 무엇을 할 것인가가 전혀 드러나지 않았음
- 한마디로 당은 전혀 당답지 못했음 : 보수정당보다도 못한 정당으로서의 자기응집력과 지도력을 보여주지 못한 것이 현재 위기의 핵심임


2. 3기 당활동에 대한 평가

① 당적 지도력의 부재 - 가장 근본적인 문제

- 당은 의원단에 대해서도, 노동운동에 대해서도, 지방정치에 대해서도, 당원대중에 대해서조차 당으로서의 지도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 의원단의 경우 : 무엇보다도 지금 당에는 어떤 사안에 대한 ‘당론’ 즉 당의 정치적 입장이 없다. 당론의 결정과정조차도 불분명하다. 대부분의 중요한 정치적 쟁점에 대해 의원단의 입장이 그대로 당론이 된다. 그런데 의원단은 그 속성상 원내에서의 표결을 중심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으며, 캐스팅보트니 선택적 공조 따위 정치공학적인 접근이 위주가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는 의회주의로의 경도와 당의 독자적 정체성을 실종시킬 위험이 크다. 당은 중요한 정치적 쟁점에 대해서는 당론을 통해 의원단을 제어해야 함에도 이는 거의 이루어지지 못했다 (가령, 윤광웅 국방장관 해임안에 반대한 것은 과연 옳았던가?) 그나마 당론을 결정하려고 했던 행정수도 이전 건의 경우 지나치게 절차를 강조한 나머지 한참 뒷북이 되어버렸다. 신속하게 당론을 정하고 이에 대해 정치적 책임을 지는 방식이 되어야 마땅한데도 그렇지 못했다.
- 노동운동의 경우 : 당의 핵심적인 지지세력인 노동운동이 심각한 위기상황에 처한 후에도 당은 눈치보기에 급급할 뿐 노동운동에 대해 당당하게 혁신을 요구하지 못했다. 가령 노동부문 할당의 일정비율 이상을 비정규직에게 반드시 할당할 것을 요구한다든지, 산별노조로 전환하지 않은 조직에 대해서는 할당을 제한할 것을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정규직 이기주의에 빠진 일부 조합간부의 경우 당이 앞장서서 문제를 제기해야 함에도 그러지 못했다. 또한 현장분회 등 각종 현장당원모임을 통해 노동운동에 대한 정치적 지도력을 아래로부터 확보하려는 노력은 전혀 이루어지지 못했다.
- 지방정치의 경우 : 당은 지방정치에 대한 고민이 거의 없다. 이미 지방정부를 장악한 울산의 경우 각종 현안들에 대해 당적 입장에서의 지도나 조정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울산북구청장이 비정규자치노조에 대해 잘못된 입장을 취하고 있음에도 이를 당적으로 제어하지 않았으며, 음식물자원화시설의 경우 당원들끼리 입장이 갈라졌음에도 아무런 조정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단순히 울산이 문제가 아니라, 아직 지방정부를 장악하지 못한 다른 곳도 상황이 모두 마찬가지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한마디로 중앙당 차원에서 지방정치에 대한 전략적 고민이 없기 때문이다.
- 당원대중에 대하여 : 상근자와 일부 활동당원들을 제외하고는 당활동에 대한 참여가 거의 없음에도 이를 활성화시키려는 노력들이 거의 없었으며, 단지 양적 성장에만 치중했다 (10만당원 확대운동). 당원에 대해 당강령에 입각한 기본적인 교육조차도 없는 상황이다. 당원들조차 당의 입장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있지 못한 경우가 많다 (일부 최고위원 등 지도부조차 그랬던 판이다). 이런 상황이다보니 당의 정치적 지도력은 당원들에게조차 발휘되지 못했다.

② 당의 총체적 전망과 전략의 부재 - 사회주의적 지향성은 어디로?

- 왜 당적 지도력이 발휘되지 못했는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라는 총체적인 전망과 전략이 부재했기 때문이다. 총체적인 전망과 전략 없이 그때그때의 대응에 급급하다보니 전체적인 조망 하에서 의원단이나 지방정치, 노동운동이나 당원대중 등 당을 구성하는 각 단위에 대해 체계적인 지도력을 확보할 수 없었고 각 단위들은 각자 알아서 움직였다.
- 지금 당내에는 통일된 정치사상적 흐름이 거의 만들어지고 있지 못하다. 의원단은 의원단대로 따로 놀고, 구청장은 구청장대로 따로 놀고 있다. 지역위원회는 더 심각하다. 그 지역위원회를 장악한 위원장과 상근자의 성향에 따라, 자신이 관심있는 사업만을 하고 있다 (통일사업이든, 민생사업이든).
- 정파 때문에 어렵다는 핑계만 대지말고 기본적으로 동의할 수 있는 것부터라도 통일된 정치사상적 흐름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 시작은 지도부가 앞장서서 총체적 전망과 전략을 제시하고 이에 대해 당원들의 의견을 구하는 것이다.
- 총체적 전망과 전략에 있어서 핵심적인 것은 좌파정당으로서의 자기정체성을 확고히 하는 것이다. 일시적인 성과에 연연하지 않고 우리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혁시키겠다는 전망이 대중들에게 제시되어야 하며, 이는 결국 당의 사회주의적 지향성을 강화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③ 당의 계급적 독자성과 정체성의 혼란 - 압박이나 캐스팅보트 따윈 필요없다

- 이렇게 당의 독자적인 변혁에의 전망과 전략이 부재하다 보니 이는 곧바로 당의 계급적 독자성과 정체성의 혼란을 불러왔다.
- 이는 3기 당지도부와 의원단 모두가 마찬가지다. 3기 지도부의 경우, 열린우리당 2중대 문건으로 대표되듯이 이른바 개혁을 ‘압박’한다는 입장이 강했는데,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보수개혁세력과의 확실한 구별정립이지 그들을 압박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입장은 대중들에게 당을 좀 더 원칙적인 개혁론자 쯤으로 비치게 만들며 보수정당과 우리의 차별성을 희석시킬 뿐이다.
- 의원단 역시 개혁공조니 야당공조니 해가면서 제3당으로서의 캐스팅보트 내지 틈새전략에 치중했는데, 우리는 두 보수정당의 틈새를 공략하는 것이 아니라 두 보수정당이 대변하지 못하는 광범위한 계급대중을 대변하기 위해 만들어진 당이다.
- 결국 개혁에 대한 압박이니 캐스팅보트 따위 그 모든 원내전략들은 당의 근본적인 지향을 약화시키는 일종의 투항행위일 뿐이다.

④ 당내 기풍의 약화와 기회주의의 득세

- 이상의 문제점들은 단순히 노선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당적 정체성이 불분명해지면서 진보정당다운 당내 기풍이 사라지고, 정치적 야심을 가진 기회주의자들이 득세하게 된 것이 현상적으로는 가장 문제시되는 것이다.
- 현장의 대중투쟁이나 당사업에의 결합도가 극히 낮을 뿐 아니라, 투쟁회피적인 성향이 만연되어 있다. 가령 비정규직 사업의 경우, 상근자 몇 명이 담당할 뿐 실천단을 꾸려 투쟁현장에서 함께 하려는 노력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 오히려, 비정규직 사업에 무관심하거나 방해했던 자들이 특정 조직의 후원 하에서 중요 당직이나 공직후보로 진출하고 있는 판이다. 또한 투기의혹 등 도덕적인 문제가 제기된 경우에도 제대로 된 진상조사나 엄정한 처리가 이루어지고 있지 못하다.
- 정치사상적이나 도덕적으로 잘못된 행동을 하더라도, 특정 정파와 결탁하거나 이미 권력을 잡고있으면 별 문제가 없이 넘어갈 수 있는 현재의 당내 기풍이 기회주의의 온상이 되고 있다. 당을 쇄신하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이것부터 바꾸어야 한다.


3. 당의 쇄신을 위하여

- 엄정한 평가로부터 쇄신의 방향이 도출된다. 평가를 통해 드러난 문제점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가 쇄신의 핵심내용이다.

① 당내 기풍 쇄신과 기회주의의 척결

- 일차적으로 당내의 잘못된 기풍을 쇄신하고 기회주의를 척결해야 한다.
- 정치사상적이나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인물인 경우, 과감하게 문제를 공론화하고 이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 잘못된 행위에 대한 자기반성이 없이는 당에서 지도적 역할을 하지 못하는 기풍을 수립해야 한다.

② 당의 계급적 독자성과 정체성 확립

- 단기적인 정치력 약화를 감수하고라도 보수정당과 확실히 구분정립해야 한다.
- 특히 열린우리당과의 관계에 있어서 ‘야당’으로서의 자세와 계급적 독자노선을 확고히 해야 한다. 개혁공조니 압박 따위가 아니라 전당적 투쟁이 필요하다.
- 또한 지나친 민족주의적 편향을 극복하고 계급정당, 이념정당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확고히 해야 한다.

③ 당의 총체적인 전략과 전망의 확립

- 우리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혁시키기 위한 사회주의적 지향성을 명백히 해야 한다.
- 변혁에 대한 장기적인 자기전망 하에서 당활동의 총체적인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단기적인 성과에 집착하지 말고 중장기적인 전략을 어떻게 가져갈지를 전당적으로 토론하고 결정해야만 한다.
- 이런 전략 하에서 몇가지 집중할 의제를 선정한 후 의원단에서부터 지역조직, 노동운동과 당원대중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새로운 활동방식을 정착시켜야 한다. 당의 각 단위들이 따로따로 노는 것을 방치해서는 안된다.

④ 당적 지도력의 확립

- 이 모든 것들은 결국 정당으로서의 당다운 지도력을 확립하기 위한 것이다.
- 의원단의 활동은 냉정하게 재평가되고 그 역할이 재정립되어야 한다. 특히 당론을 통해 의원단을 제어하는 구조가 확립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선 우선 당론을 결정하는 방식이 정립되어야 한다. 또한 의원단이 개별 상임위에 매몰되지 않고 전당적 계획 속에서 자기역할을 부여받아야 한다.
- 지방정부와 구청장은 중앙당의 직접적인 지도 하에 놓여야 한다. 해당 당부에만 맡겨놓을 것이 아니라, 지방정치에 대한 당의 중장기적 전략 하에서 중요한 정치적 결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미 장악한 곳부터 지방정치의 모범을 창출할 수 있도록 중앙당이 직접 노력해야 한다.
- 노동운동의 혁신을 강력하게 요구해야 한다. 노동할당의 상당부분을 (절반까지도) 비정규직에 할당할 것을 요구해야 하며, 산별노조로의 전환을 미루는 경우 일정한 제재조처를 취하고 반대로 현장분회 또는 공장위원회를 활성화시킨 사업장에 인센티브를 주는 등 노동운동과 관련해서 당당하게 개입해야 한다. 할당방식을 지금처럼 연맹 단위로 할 것이 아니라 지역별로 함으로써 지역별 대산별구조를 추동하는 것도 적극 고려해야 한다.
- 당내 교육과 선전을 강화하고 실천단 등 투쟁에의 참여를 강화하는 동시에, 평당원의 참여와 비판적 의견개진을 적극 장려함으로써 평당원과 당의 결합지점을 높여야 한다. 그리고 이 과정 속에서 평당원들 스스로가 계급정당의 당원으로서의 자기정체성을 확고히 할 수 있도록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교육 및 토론이 이루어져야 하며, 교육을 이수한 당원에 한해서 선거권과 피선거권이 주어져야 한다 (피선거권은 선거권보다 교육이수요건을 강화시켜야 함).
- 당의 중장기적인 전망 및 전략과 관련된 중요한 정치적 사안(가령, 비정규직문제, 의원단의 활동방식에 대한 평가, 노동운동 혁신문제 등)에 대해서는, 당의 모든 지역위원회가 같은 주제를 가지고 일정한 기간 내에 의무적으로 전체당원토론회를 개최함으로써 당내 토론의 분위기를 활성화시키는 한편 전당적인 의견을 수렴하여 이를 당방향설정의 기본근거로 삼아야 한다.
- 평당원에 의거한 당의 의사결정구조를 강화시키는 동시에, 일단 결정된 당의 방침에 따라 의원단과 지방정부를 포함한 모든 당조직이 통일적으로 제어되도록 해야만이 민주노동당은 당으로서의 제대로 된 지도력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보다 더 민주적이면서도 확고한 계급적 자기정체성에 바탕을 둔 새로운 민주집중제를 구축해나가는 것이 당 혁신의 기본적 목표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