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 빈곤과의 전쟁 선포!

싸움에서 이기고자 하는 이는 눈빛부터 다르다. 상대방의 움직임을 날카롭게 주시하며 면밀하게 약점을 살피는 동공은 팽팽한 긴장감으로 터질듯이 빛이 난다. 결코 상대가 만만하게 여길 수 없는 무서운 기세, 그것은 싸움에 나서는 자의 기본자세이다. 작은 싸움에서도 그럴 진데 하물며 큰 싸움에서야. 그러나 최근 민주노동당이 추진하고 있는 빈곤과의 전쟁을 보면 당에게 과연 싸울 의지가 있는 것인지 심각하게 의심하게 만든다.
작년 9월말, 장석준 동지가 산만한 투쟁을 매가리 없이 진행하고 있는 당을 비판하면서 빈곤과의 전쟁을 선언하고 자본과의 전선을 그어 대대적인 투쟁을 벌이자고 주장하였다. 이는 건강한 당원들의 열정적인 지지를 받으며 당이 운동정당으로 거듭나야 함을 환기시켰다. 그러자 산재해있던 투쟁들 사이에서 비실거리던 당은 당원들의 열기에 감화를 받았던지 즉시 빈곤과의 전쟁을 선포하였다. 빈곤과의 전쟁! 이는 실로 위대하고 장엄한 선언이었다.


자본의 공격은 시작되었다! 당은 무엇으로 맞서고 있는가?

그러나 준엄한 빈곤과의 전쟁 선포 이후 당은 무엇을 하였는가? 그것은 토론회와 현장 체험으로 요약된다. 당은 전쟁을 알리는 우렁찬 뿔 나팔을 스스로 불고 아무런 공격도 취하지 않음으로써 노동자 민중을 자본의 칼바람에 그대로 쓰러지게 놔둔 것이다. 투쟁에 있어서 실태를 조사하고 폭로하는 것의 의미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당은 1년 동안 이 지점에만 머물러 있었으며 도무지 한 발짝도 뗄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빈곤 문제의 심각성이 그 한계를 넘어서서 이제는 부르주아 언론에서조차 기획기사다 특집기사다 해서 요란을 떨고 있는 것이 작금의 상황이다. 그러나 토론회만 있을 뿐, 투쟁은 없다.
1년 가까이 토론회와 기자 회견으로 빈곤 문제를 끌어오던 당 지도부는 비로소 지난 9월에야 아둔한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는 적에게 어떠한 위협도 가하지 못하는 종이칼에 불과한 것이었다. 지난 9월 김혜경 당 대표는 각 의원, 최고위원과 함께 국민건강보험공단을 방문하여 이사장과 면담하는 것을 시작으로 각 현장 체험을 진행하였다. 현장체험, 이것은 일관되게 면담, 당의 입장 전달로 이루어졌다. 근묵자흑, 당은 어느새 부르주아 정당들의 꼴 같지 않은 모습을 닮아 가고 있다. 만면에 느끼한 웃음을 띠고 김용갑이가 재래시장을 방문하여 국감을 진행하는 것과 이는 무엇이 다른가!


자본주의 극복 없이 빈곤 문제 해결 어림없다!

빈곤과의 전쟁 선포, 그것은 결국 자본에 대한 선전포고였다! 이는 은유로서의 표현이 아니라 무서운 공세로 노동자 민중을 처참하게 쓰러뜨리고 있는 자본과의 실제 전쟁을 뜻한다. 그러나 당 지도부는 도처에 널린 민중들의 시체가 보이지 않는지, 종이 짝으로 만든 칼과 방패를 들고 우두커니 서있을 뿐이었다.
결국 이러한 무능은 당의 노선 문제로 귀결된다. 사실 빈곤만큼 당에게 중요하며 유리한 문제는 없다. 노동자 민중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비정규직 문제, 부르주아들의 투기 잔치로 불로장생의 꿈보다 어렵게 된 주거 확보, 숨 쉬고 사는 것만을 감지덕지해야할 만큼 형편없이 열악한 교육과 의료 시스템.......이 모든 것은 분명히도 자본주의가 잉태한 문제다. 따라서 빈곤 문제의 제기는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한 문제제기여야 하며 빈곤문제의 해결은 자본주의 체제를 극복하겠다는 선언이어야 한다.

그러나 당 지도부는 분명한 포부 없이 빈곤 문제를 말 그대로 '빈곤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 단순화시켜 접근하면서 여타 부르주아 세력이 보여주고 있는 실천 양태와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실천과 괴리된 토론회와 생색내기식 현장 방문으로는 안 된다.
구체적인 슬로건을 걸고 산개된 채 존재하는 노동자 민중의 투쟁을 강력한 대중투쟁으로 승화시켜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