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은 민중의 해방을 위한 진리 탐구의 장이다

대학의 주인은 누구일까? 총장? 교수? 학생? 하지만 이들 중 누구도 대학의 주인이 될 수 없다. 대학의 주인은 이념이어야 한다.
이념은 우리가 길을 가다가 떨어져 있는 동전을 줍듯이 그렇게 우연히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념은 중국요리집에서 자장면을 먹을지 짬뽕을 먹을지 선택하는 것처럼 순간적인 선택에 의해서 만들어지지도 않는다. 삶의 여정 속에서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에 대하여 어느 것이 옳은 것인지 혹은 어느 것이 그른 것인지를 끝 없이 묻고 답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삶의 결정체, 그것이 바로 이념이다. 따라서 '대학의 주인은 이념'이라는 말이 의미하고 있는 것은 옳고 그름에 대한 끝 없는 판단, 그리고 그 속에서 진리를 찾아내고자 하는 강한 의지가 바로 대학의 공기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학은 항상 진리 탐구의 장으로서의 역할을 해 왔다.
진리를 탐구한다는 것은 천상에 있는 낙원을 연구하기 위해 상상의 나래를 펴는 것도 아니요, 지하에 존재하는 세계를 탐닉하기 위해 땅을 파내려가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현실 속에 존재하는 인간과 사회에 대하여 파헤쳐 나가는 것이리라. 그 과정에서 지성은 진리와 현실 사이에서의 모순에 대해 깨닫게 되고, 현실을 아파한다. 역사를 이끌어 온 민중 그러나 억압받고 있는 민중의 현실, 그 사이에서 고뇌하는 것이다. 이 사회에서 가장 절실한 진리는 민중을 억압하고 있는 실체를 밝혀내고, 그로부터 민중 해방을 일궈내 종국에는 민중을 역사의 승리자의 자리에 앉히는 것이다.


진리탐구의 과정은 현실과의 투쟁과정이고, 대학생은 그 투쟁에 앞장서 왔다

진리 탐구의 과정은 현실과의 투쟁과정이다. 현실에 존재하는 것들에 균열을 내고, 좀 더 진리에 가깝게 바꿔내야 하기 때문이다. 코페르니쿠스를 기억해 보자. 지금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구가 자전축을 중심으로 자전하면서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하고 있다는 지동설에 동의한다. 하지만 500여 년 전만 해도 사람들은 천동설을 믿고 있었고, 신 중심의 세계관 하에서 코페르니쿠스의 책은 금서처분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과의 투쟁을 포기하지 않았던 코페르니쿠스는 끝내 역사에 남았다.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는 이름으로...
현실과 투쟁하는 지성의 모습은 우리 역사에서도 찾을 수 있다. 조선 시대 성균관 유생들 역시 불의를 보면 투쟁을 서슴지 않았다. 광해군 때 정인홍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북인정권의 최고 실력자였다. 그런데 이런 실력자의 정치적인 독주에 가장 강력하게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이 성균관 유생들이었다. 그들은 정인홍을 유생명부인 청금록에서 삭제했다. 뿐만 아니라 왕 앞에서 연좌시위와 단식투쟁도 서슴지 않았다. 심지어는 성균관에서 퇴거해 버리기까지 했다고 한다.
가깝게는 70년대 80년대에 우리보다 앞선 시기 대학을 다녔던 선배들도 현실과의 투쟁에 앞장 섰던 사람들이었다. 선배들 역시 민주주의의 씨앗을 뿌리기 위해, 민중이 해방된 세상을 후대에 물려주기 위해 불의에 맞섰다. 불타는 가슴으로 세상을 바라보았고, 냉철한 지성으로 현실에 맞섰다. 지성으로서의 자신에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 끊임 없이 노력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대학 현실은 어떠한가?


지금의 자본주의 사회는 대학생들에게서 성찰의 시간조차 박탈해 갔다

진리 탐구의 장으로서 대학은 온데 간데 없다. 부르주아 언론에서조차 학생 사회가 우경화되고 있다고들 떠들어 댈 정도로 심각하다. 자기 권리를 찾기 위해 어렵게 나선 노동자들에 연대하는 자세는 사라진지 오래다. 2004년 여름 화물연대 파업을 기억하는가? 화물 노동자들은 경찰의 폭력적 만행을 피해 각 대학교 학생회관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적지 않은 학생들은 화물 노동자들의 파업을 지지하고 연대하기는 커녕 자신들의 불편함을 이야기하며 노동자들에게 볼멘 소리를 높였다.
게다가 요즘 학내에서는 상대주의가 하나의 미덕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점차로 많은 학생들이 스스로를 상대주의자라 칭하면서 자기는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은 고결한 사람인 양 행동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탈정치화를 선언하는 것에 다름 아니고, 진리야 어떻든 현실을 그저 있는 그대로 두고 자기 만의 세상으로 도피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상업 영화지만... <바람의 파이터>를 보면 '힘이 없는 정의는 무능이고, 정의 없는 힘은 폭력이다.'라는 말이 나온다. 하지만 지금의 대학생들에게는 자기가 힘을 얻어서 지켜내야할 정의조차 없다. 오히려 위에서 말하는 것처럼 지켜내야 할 정의가 없음을 자랑으로 삼고, 하나의 진리라는 것을 추구하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다.
하지만 학생들의 탈정치화 되고, 대학이 진리 탐구의 장에서 멀어져 가고 있는 것을 대학과 대학생의 탓으로만 돌릴 수 없다. 앞서 진단한 것과 같이 대학생들은 저학년 때에는 돈 되는 학과에 진입하기 위해서, 그리고 고학년 때에는 돈 잘 버는 직장에 취직하기 위해서 발버둥쳐야 한다. 게다가 대학에서는 학생들을 A, B, C 등급으로 줄을 세우고 있기 때문에 C등급의 질나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을 짓밟고 올라가야 한다. 지금의 대학생들은 돈에 치여 경쟁에 치여 옳고 그름을 판단할 겨를이 없다. 그 속에서 점차로 연대의 미덕은 사라져가고 있는 사정이다. 점차로 대학은 진리 탐구의 장이 아니라 시장 경제의 한 부분으로 기업의 인력 동원을 위한 한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다. 교수들까지도 대학을 진리탐구의 장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화폐를 축장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고 있다. 그것은 이번 서울대학교 공대교수의 연구비 횡령 사건에서 여실히 증명되고 있다.

조금이라도 진지하게 대학생으로서의 자기 자신의 위치를 고민해 본 사람이라면 작금의 현실에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앞으로 대학은 어디로 나아가야할 것인가!!
아아 분하도다! 우리 2백만, 자본의 노예가 된 지성이여! 살았는가! 죽었는가! 단군 기자 이래 4천 년 비판 정신이 하룻밤 사이에 졸연히 멸망하고 말 것인가! 원통하고 원통하다! 지성이여! 대학생들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