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7일 오후 4시경 민주노총은 총파업지침을 유보했고, 단병호 의원은 환노위에서 기간제법과 파견법의 차별처우금지조항을 정부안대로 합의함으로써 사실상 동일노동-동일임금을 폐기했다. 바로 당장 다음주 초면 환노위에 상정될 것이 뻔한데도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의 이런 상황만 놓고 보면 정권의 비정규 법 개악 시도가 물 건너간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더구나 심상정 의원은 ‘노동부 신임장관이 취임하고 민주노총도 새 지도부를 선출하는데 비정규법안을 강행처리하면 향후노정관계에 바람직하지 않다.’며 “법안 처리일정을 조정하기 위한 방법의 일환”이라고 했다. 개악입법 저지가 목적이 아니라, 일정조정이 문제였던가? 그 자리에서 “정부의 원안은 비정규직을 늘리고 생존권을 짓밟는 것이며 정부 여당과 한나라당이 강행처리하는 것을 막기 위해 회의실을 점거한다.”는 말을 하면 안되는가? 이것 역시 단순히 의사진행의 전술상 나온 발언인가?


다른 한편, 민주노동당은 당원들에게 당일 집회가 취소되었다는 문자메세지를 날렸다. 그러나, 민주노총 주최의 집회는 예정대로 5시에 개최되었다. 비정규직개악입법을 바라보는 당의 자세와 태도가 어찌 이리도 한심한지 맥이 탁 풀린다.

이 집회에서 민주노동당이 차별처우금지에 대해 정부안에 합의했다는 말만 들었으나 그 자세한 내용은 알지 못했다. 오늘 신문과 인터넷을 뒤져보니 구차한 변명으로 가득할 뿐이다.

다음은 2월 8일자 한겨레신문 중 단병호의원 인터뷰 기사 내용이다.

“동일노동-동일임금이 실현되지 않는 것을 합리적인 이유 없는 불리한 처우라고 볼 여지가 있으므로 정부안으로도 이 원칙을 관철시킬 수 있다.....정부가 차별적 처우의 금지대상을 원안보다 더 협소하게 규정하는 내용의 개악된 수정안을 들고나와, 원안에 합의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언어도단도 이 정도면 가히 득도의 지경이다.

정부원안에서 ‘차별적 처우’라 함은 임금 그 밖의 근로조건 등에 있어서 합리적인 이유 없이 불리하게 처우하는 것을 말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합리적인 이유의 기준에 노동시간과 노동강도, 작업조건을 기준으로 하는 동일노동-동일임금의 원칙이 관철될 수 있는 여지는 전혀 없어 보인다.


힘이 없어 우리의 당초 요구안을 관철할 수 없다면, 정권과 자본에 하나씩 하나씩 밀려가면서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을 것이 아니라, 강기갑 의원이 지난 농민투쟁시기 보여준 것처럼 투쟁에 나서야 하는 것 아닌가? 그동안 합의한 기간제법의 내용상 아무리 보더라도 비정규직노동자를 양산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한데 무슨 이유로 그 법안을 잡고 국회일정에 연연해하는가? 국회의 의사진행 전술적 차원이라는 말을 100% 인정하더라도 노동계급에 대한 대표임을 자부하는 민주노동당 의원이 이런 사안에 대해 합의해 주는 것이 반동적 직권조인과 다를 바가 무엇인가? 이런 양보의 또 다른 내용을 보자. 그동안에도 기간제 근로자의 경우, 계속하여 계약이 묵시적으로 갱신된 경우 사용자에 의한 계약의 거부는 제한되어 왔다. 그러나 단병호 의원이 합의한 이른바 기간제법 제5조에서는 ‘기간제근로자를 통상근로자로 우선고용 노력한다’는 것으로 합의하여 아무런 구속력도 갖지 못하는 조항으로 대체시켜버렸다.

힘이 없어 패배하더라도 기세와 투쟁의 정당성이 꺾이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우리는 이미 98년 배석범 직대의 노사정합의를 통해 경험했다. 비정규직개악법이 정권과 자본의 맛대로 개악된다고 하더라도 노동계급의 원칙과 투쟁의 예봉과 정당성만큼은 훼손하지 말아야 한다. 물론, 자본의 입맛대로 법이 개악되도록 두자는 것은 아니다. 개악입법을 막아내고 비정규직노동자의 요구에 기반한 입법을 추진할 수 있도록 가능한 모든 투쟁을 조직하는 것은 기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들의 의도대로 개악되었을 때는 이후에 또 다른 투쟁을 조직할 여지와 가능성이 남지만, 노동계급의 원칙과 예기를 꺾으면서까지 국회의 의사일정에 말려들어가는 것은 결국은 배신행위가 될 것이다.


당 지도부는 비정규직노동자에게 절망의 상징이 되어서는 안된다. 희망이 되어야 한다. 지금이라도 비정규직개악입법 저지태세를 갖추고 민주노총이 총파업을 유보하더라도 당 자체의 기획과 투쟁일정으로 당장의 개악입법저지에 전면적으로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