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민주대연합은 잘못, 그런데 진보대연합이 그 대안?
6.2 지방선거 거의 딱 한달전인 5월6일 ‘진보대연합 실현을 위한 긴급토론회’가 열렸다. 진보교수연구자모임을 비롯해, 다함께, 전진, 사회진보연대, 진보전략회의 등등이 공동주최였다. 토론회 요지는 한마디로 민주대연합은 잘못되었다는 것인데, 대신 그 대안으로 진보대연합을 제시하고 있다.
물론 민주노총 조합원 수준에서 민주노동당 후보와 진보신당 후보, 심지어 사회당 후보가 동시에 공직선거에 출마하면 누구를 찍어야할지 고민스러울 수가 있다. 그래서 각각의 진보정당에서 선거구별로 후보를 단일화 해야한다는 소박한 진보대연합은 심정적으로는 이해가 된다.
하지만 정치조직 혹은 사회단체가 주장하는 진보대연합론은 문제가 심각하다. 단순하게 선거구별 후보단일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운동권 거간꾼 노릇으로 전락할 수 밖에 없다.
2. 진보대연합도 ‘묻지마 연합’이기는 마찬가지이다
진보대연합은 민주대연합을 ‘묻지마 연합’이라며 비판한다. 하지만 진보대연합 역시 묻지마 연합이기는 마찬가지이다. 단지 그 연합대상이 진보정당들이며, 그래서 진보정당 후보들끼리 선거연합을 하자는 것일 뿐이다.(사회주의 세력을 배려해서 무소속 후보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를 초래한다.
한번 예를 들어보자. 민주노동당이 진보정당, 노동자 정당으로서 대표성을 상실한데에는 다 이유가 있고 역사가 있다. 2005년 울산 북구 재보궐 선거에서 민주노동당은 정규직 노동자의 고용안전판으로 비정규직을 채용하자는 이른바 “비정규직 쿠션”의 당사자인 정갑득 현대차 정규직노조 전 노조위원장을 후보로 세웠다. 마침 고 류기혁 열사를 현대차 정규직 노조만 부정하고 있을 때였다. 당시 한나라당 플랜카드는 심지어 “비정규직 양산하는 민주노동당 심판하자”였다. 결국 정갑득 후보는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의 조직적 지지조차 전혀 받을 수 없었고, 그 결과 선거는 패배할 수 밖에 없었다.
진보대연합의 경우, 전혀 이런 역사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다. 아니 오히려 관료화된 현재의 민주노조운동 상태상 이들 타락한 관료들이 진보대연합의 후보가 될 가능성이 절대적으로 농후하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주의자들이 묻지마 연합인 진보대연합에 동참할 경우, 노동자 앞에서 그동안 계급의 배신자라고 비판했던 타락한 관료들을 정치적으로 지지하라고 해야하는 상황에 봉착하게 된다. 계급적 원칙을 지켜나가는 현장활동가들 역시 마찬가지가 된다.
3. 지금 진보양당의 진보는 과연 이 시대 노동자의 진보인가
- 왜 진보양당은 독자적인 후보전술을 제대로 구사하지 못했을까
진보대연합은 정작 이 시대 노동자의 진보가 무엇인지 그 내용에 대한 문제의식이 실질적으로 부재하다. 이번 6.2지방선거에서 진보양당이 독자적인 후보전술을 제대로 구사하지 못했는가를 제대로 따져보면, 왜 ‘진보’의 내용이 결정적으로 중요한지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왜 심상정 후보는 중도사퇴할 수 밖에 없었는가. 왜 노회찬 후보는 사퇴하지 않았다고 욕을 먹고 있는가. 왜 민주노동당은 민주대연합에 기회주의적으로 편승했는가.
여기서 주목해야할 것은, 이제는 왜 노동자 후보가 독자적인 후보전술을 구사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냐는 것이다. 2002년 대선 당시만 해도, 노무현과 이회창의 지지율 차이는 근소했고 노무현이 가뜩이나 개혁적인 이미지로 치장하고 있었음에도, 최소한 노동자 후보였던 권영길 후보는 처음부터 끝까지 후보사퇴를 고민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심상정 후보가 사퇴한 것은 본질적으로 유시민 후보와 질적인 차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 심상정 후보는 지방선거 직후 인터뷰에서 친노세력도 진보라며 진보대연합의 대상이라고 했다. 그런데 친노세력이라면 국민참여당은 물론, 민주당 내 신주류가 아니던가. 그래서 심상정 후보는 진보대연합의 대상인 유시민 후보를 지지하고 중도에 후보를 사퇴했던 것이다.
노회찬 후보가 욕을 먹는 이유 역시 한명숙 후보의 당락과 무관하게 노회찬 후보가 존재해야할 이유가 부족했기 때문이 아닌가. 한명숙의 ‘사람특별시’에 대해서 노회찬의 ‘아이와 엄마가 행복한 서울’은 별 차이가 없다.
그래서 민주노동당의 민주대연합 올인은 기회주의적이기는 했지만, 민주노동당의 진보가 제1야당인 민주당과 질적인 차이가 없음을 미리 자각한 정치적 결정이었다.
4. 진보대연합은 노동자 계급에게 그 역사적 과제를 오히려 헷갈리게만 만들 뿐이다
진보대연합은 그 형식에 있어서도 민주대연합과 마찬가지로 묻지마 연합이며, 그 내용에 있어서는 더 이상 노동자의 진보나 노동자 계급의 진보정치가 아니다. 그래서 진보대연합은 노동자 계급에게 그 역사적 과제를 오히려 헷갈리게만 만들 뿐이다. 결국 진보대연합론은 운동권 거간꾼 노릇에 불과하게 된다. 각 진보정당들 후보들을 대상으로 정치공학적인 협상만 할 수 있을 뿐, 오히려 왜 진보가 망했는가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일언반구도 할 수가 없다.
5. 진보정당운동이 망했다는 데에서 다시 시작해야한다
- 이 시대 노동자의 진보는 무엇인가
진보의 진보성은 이제 상실되었다. 진보는 이제 개혁 부르주아지의 프레임에 갇혔다. 죽은 노무현의 진보에 진보양당의 진보가 흡수되었다.
노동자의 진보는 이제 다시 근본적으로 씌여져야한다. 그렇지 않다면 앞으로 독자적인 후보전술조차 제대로 구사할 수 없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 시대 노동자의 진보는 무엇일까. 반자본주의 기치를 분명히 하는 것, 그 기치 하에 비정규직 문제, 청년실업 문제, 교육,주택,의료와 같은 복지의 문제를 제시하지 않는다면, 죽은 노무현의 진보와 별반 다르지 않게 된다. 이번 6.2 지방선거에서 진보양당이 복지 혁명을 주장했지만, 그것이 과연 민주당류의 개혁 부르주아지의 복지와 질적인 차이가 있었을까. 단지 양적인 차이, 즉 조금 더 많은 복지였을 뿐이다.
6. 지금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대안은 사회주의정당건설 뿐!
오히려 노동자 계급은 노동자 정당, 진보정당이 다 망했다는 데에서 근본적으로 다시 시작해야한다. 지금의 위기는 다만 옛 것은 다 망했는데, 새 것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비롯되는 것이다.
바로 그 새 것은 반자본주의 기치 하의 노동자의 진보인, 사회주의정당건설이다. 이제 노동자 계급의 역사적 과제로 사회주의정당건설이 제출되었다. 오히려 진보대연합의 이면에는 사회주의정당건설이라는 역사적 과제를 회피하는 기회주의가 숨어있다. 5월6일 ‘진보대연합 실현을 위한 긴급토론회’의 공동주최 단체 중에서 사회주의정당건설 사업을 추진하는 정치세력이 없었다는 것은 단순한 우연은 아니다.
→ [6.2지방선거평가] 이제 이 땅에 노동자 정당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