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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공황은 끝났는가?
- 공황심화의 전조를 보이는 세계경제 -

2010/06/11 ㅣ 황정규

자본주의의 필연적 결과인 과잉생산공황

모든 사회는 그 사회에 고유한 경제위기 형태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생산활동을 통해 생산물을 만들어 생계를 유지하는 인간의 특성 상, 생산활동에서의 교란 등으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충분한 생산물을 마련하지 못하면 그 사회는 심각한 위기에 빠진다. 그런데, 유독 자본주의만이 과거의 다른 사회와는 경제위기의 형태를 보인다. 다른 사회에서는 대부분 경제위기가 결핍, 즉 생산물의 부족이라는 특징을 지녔다면, 자본주의만이 너무 많이 생산해서 위기가 발생하는 과잉생산공황이라는 특이한 특징을 지닌다.

자본주의에서 과잉생산공황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은 개별자본가들이 최대한 많은 이윤을 획득하려 하기 때문에, 경쟁과 축적을 지속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른 자본을 이기고 시장을 확보하기 위해 생산규모를 확대시키다보면, 어느 정도에 이르러서는 적정한 이윤을 확보할 수 없을 정도로 지나치게 많이 생산하는 상황에 도달하게 된다.

그러나 자본주의에서 과잉생산은 절대적 의미의 과잉생산이 아니다. 즉 모든 사람의 필요를 충분히 충족시켜주고도 남아서 생기는 과잉생산이 아니다. 모든 사람의 필요충족은 애시당초 자본주의 생산의 목표도 아닐뿐더러, 공황은 상품을 소비하는 사람들의 수요부족에서 기인하는 것도 아니다. 과잉생산은 철저히 자본의 입장에서의 과잉생산으로, 자본가들이 적정하다고 생각하는 이윤율을 유지시키지 못하는 생산수준의 과잉을 의미할 뿐이다. 오히려 생산력의 수준은 여전히 모든 사람들을 충족시키기에는 부족하며, 상품의 과잉, 자본의 과잉 상태 속에서 사람들은 더 큰 빈곤과 삶의 고통을 겪는다.

과잉생산공황과 부채경제

자본주의에서는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와 생산력발전의 모순이 과잉생산공황이라는 형태로 주기적으로 나타난다. 공황은 자본주의의 모순이 드러나는 형태이자, 이러한 모순이 극복되는 계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모순의 극복은 일시적인 것으로 새로운 공황이 더 큰 형태로 반복한다. 이 과정에서 자본은 꾸준히 집적되고 집중되어 독점자본주의로 나아간다.

독점자본주의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생산에 투여되는 자본의 최소규모가 증대된다는 것이다. 그 결과, 자본의 규모, 생산의 규모가 막대해지면서, 과잉생산 상태에 처한 자본의 처리가 쉽사리 이루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독점자본주의에서는 과잉생산 상태가 일상화되는 경향이 존재한다. 가령 미국의 경우에는 부동산 투기열풍으로 민간소비가 한창 상승하고 있을 때에도 생산설비 가동률이 80%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최근 오바마의 월스트리트 개혁 추진과정 중 “대마불사(Too big to fail)”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을 정도로, 독점자본주의에서는 과잉생산이 공황 과정에서 제대로 청산되지 않고 유지된다. 이는 독점자본의 국가, 사회에 대한 영향력이 매우 커져 있고, 파산, 사업장 폐쇄, 설비가동률 저하에 따른 실업증가, 인력구조조정과 사회불안 확대 등 과잉생산상태의 독점자본의 청산시 사회적 파급력이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황에 돌입하면, 한편에서는 과잉생산을 청산하기 위한 구조조정이 일정정도 이루어지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과잉생산 부분을 무마하기 위한 다양한 조치들이 취해진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케인즈주의로 대변되는 재정정책으로, 재정적자와 감세를 통한 수요확대로 과잉생산부분을 유지시킨다. 이외에도 신용팽창을 통해 민간부분의 부채를 확대시켜 과잉생산을 상쇄시킨다. 즉 막대해진 규모의 과잉생산 부분을 청산하는 것이 여의치 않게 되고, 그것이 더 큰 공황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독점자본주의에서는 과잉생산을 무마하기 위해 부채에 의존하는 경제형태가 나타나게 된다.

미국의 경우로 본 부채경제

20세기 이후, 미국의 자본주의 경제는 부채를 통해 유지되는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미국은 1929년 대공황 이후 적극적인 재정정책이 아닌 균형재정을 추구하였다. 1938년, 공황이 재차 심화된 후에야 미국은 재정적자 정책을 사용하였다. 그러나 이것 역시 공황극복에는 부족하였고, 결국 2차 세계대전 발발 이후 군사지출의 비약적 확대가 공황 극복의 결정적 열쇠가 되었다. 20세기 중반의 호황기에도 베트남전, 신냉전 등을 빌미로 한 미국 정부의 군사지출은 경제유지의 핵심적 축이었다.

90년대에 들어서 변화가 찾아오는데, 규모가 커져가는 재정적자를 막기 위해 클린턴 정부는 균형재정을 추구하였다. 따라서 과잉생산을 상쇄시키기 위해 민간의 소비에 의존하는 방식이 등장하였다. 그러나 수십 년간 지속적으로 실질임금이 감소한 상황에서 소비의 확대는 결국 소위 자산효과라는 투기거품에 의존하여 가계부채를 확대시키는 것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90년대 주식투기, 2000년대 부동산투기 열풍은 과잉생산체제를 무마하기 위해 자본에 의해 조장된 것이었다.

밑돌을 빼어 윗돌을 괴는 방식에 불과하였던 2008년 공황 대처과정

2008년 공황은 2001년 IT공황을 부동산투기와 이를 통한 신용팽창으로 무마시켰던 것이 곪아 터져나온 것이었다. 이 기간 동안 미국의 가계소비는 GDP 대비 67%에서 70%로 상승하였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의 붕괴는 미국의 민간소비를 급격하게 붕괴시켰고 이는 전세계적인 공황으로 확대되었다.

2008년 공황에 대한 각국의 대응은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개입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미국은 3조 2290억 달러의 공적자금을 투여하였으며, 2009년 1조 4천억 달러, 2010년 1조 6천억 달러의 적자재정을 운영하였다. EU 역시 각국의 지원대책들을 포함하여 1조 5273억 유로의 경기부양책을 추진하였다. 중국은 공황 직전 경기긴축기조를 버리고 2008년 11월 4조 위안 규모의 공공투자 계획, 2009년 상반기 7조 7,300억 위안 규모의 은행 신규대출이라는 대대적인 경기부양책을 실시하였다. 일본은 총 61조엔 규모의 경기부양책을, 한국은 51조원 규모의 경기부양책을 추진하였다. 이렇게 들어간 돈이 세계 GDP의 12%에 달한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는 과잉생산공황을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모르핀을 투여하여 일시적으로 통증을 완화시키는 것에 불과하였다. 또한 독점자본주의에서 과잉생산 상황을 무마하기 위해 활용되어온 부채라는 카드를 새로운 방식으로 재연하였을 뿐이다. 즉 민간 가계의 빚으로 막고 있던 과잉생산체제가 더 이상 지탱되지 않자, 정부가 다시 자리를 교대하여 빚폭탄으로 공황의 전개를 막고 있는 것이다.

빚으로 지탱하는 경제의 위기징후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정부부문과 민간, 가계부문의 막대한 부채에 의지하여 파괴적 공황을 막는 방식은 영원히 지속될 수 없는 것이다. 부채는 무한대로 계속 확대시킬 수 없다는 당연한 사실에 비추어보면, 당장은 창출된 부채만큼 과잉생산부분이 무마되겠지만, 일정정도가 지나면 오히려 부채가 더 심각한 경제위기의 원인으로 작동하게 된다. 가령 2000년대 중반, 주요한 경기유지요인이었던 미국의 가계부채의 경우, 최초 자산효과에 기인하는 부채의 확대시에는 소비확대에 일정정도 기여할 수 있었지만, 가계부채가 심해지고 부동산 거품이 꺼진 후에는 오히려 그동안의 부채 때문에 소비가 위축되었다. 135.3%까지 치솟았던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비율을 더 이상 지탱할 수 없어 가계부채를 축소시켜가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세계경제에서 오는 적색신호는 바로 이 부채경제에서 비롯되고 있다. 이미 OECD 국가들의 평균 국가채무는 91.9%(일본 189.6%)에 달하고 있으며, 더 이상 적자규모를 확대시키는 데에 한계가 존재하고 있다. 따라서 최근 세계경제를 전망하는 데 있어, 각국의 재정건전성을 중요하게 거론될 수밖에 없으며, 6월 4-5일 부산에서 열린 G20 재무장관 회의에서도 재정건전화 조치를 취할 것이 주요합의 내용이 되었다.

그러나 재정건전화라는 것은 공문구에 그치거나, 공황을 심화시키는 촉매역할을 할 수 있다. 이는 이미 미국 등 각 자본주의 선진국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딜레마가 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 공황을 막기 위해 재정적자를 줄여나간다면, 경제가 다시 심각한 위축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도 출구전략과 관련하여 동일한 딜레마에 빠져있다. 문제는 조만간 각 국이 어떠한 길을 갈지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도래하고 있다는 것이다. 2008년 공황 이후 경기부양책들은 대개가 2010년까지를 목표로 하고 있는 것들이었다. 재정적자로 새로운 부채를 증가시키면서 공황을 저지시켜갈 것인가, 아니면 재정적자 규모를 줄여서 불가피한 공황의 심화를 자처할 것인가, 결론을 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전자를 선택하더라도 효과는 일시적인 것이며, 부채의 가중으로 앞으로의 선택의 여지를 협소하게 만들뿐이다.

이번 공황의 전모는 아직도 드러나지 않았다

6월 4일 헝가리 재정위기에 대한 우려로 뉴욕증시가 3% 넘게 하락하였다. 이미 부채의 문제가 공황의 심화로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이미 2008년 공황을 거치면서 헝가리 외에도 라트비아, 세르비아, 벨로루시, 우크라이나 등 동유럽 국가들은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한 바 있으며, 연쇄부도 위기에 처했던 바 있다.

동유럽 국가들의 위기가 서유럽과 전세계를 위협하고 있는 상황은 고전적인 “약한 고리”론을 확인시켜 준다. 이들 국가의 대외채무는 사실 상 GDP 대비 40%를 넘는 수준으로, OECD 국가들에 비하면 절반 수준에도 그치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 국가는 유로존 통합, 해외자본의 투자 등으로 대외종속적 조건에 놓여있어 금융시장 등 대외조건의 악화에 취약하며, 독자적 재정정책을 취하는 데 한계가 존재한다. 한편 이들 국가가 대출받은 자금의 91%가 서유럽의 자금이다. 따라서 97년 동아시아 위기시처럼 취약한 기반의 국가들의 위기가 중심부 선진국으로 전이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동아시아 지역에서의 공황 역시 새로운 국면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일본은 국가채무가 GDP 대비 189.6% 수준으로 새로운 지출 여력이 줄어들고 있다. 중국은 천문학적 경기부양책으로 모든 국가들이 공황과 씨름하고 있을 때 11%가 넘는 경제성장률을 유지하였지만, 부동산 등에서 경기과열이 심화되어 경제적 불안요인이 가중되고 있으며, 실물경제에서도 심각한 과잉생산상태로 “철강, 시멘트, 석탄화공 등의 생산능력 과잉 비율이 시장수요의 30-70%”에 달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중소 건설회사들의 연쇄부도 등 건설부문부터 위기가 감지되고 있으며, 정부는 부동산발 경제위기를 막기위해 4월 23일 부동산대책을 발표하여 5조원을 들여 2만1천가구의 미분양 주택을 매입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40조원 규모의 부동산 PF자금의 만기가 연내 도래하기 때문에 공황의 심화가 점쳐지고 있다.

이러한 자본주의 경제의 적신호들은 새로운 공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앞서 계속 강조하였듯이 자본주의는 2008년 공황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다만 막대한 재정적자라는 경기부양책으로 공황의 심화를 일시적으로 저지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이는 이번 공황의 전모가 아직도 드러나지 않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 공황은 “자본주의적 생산의 참된 한계는 자본 그 자체”임을 명백히 보여준다. 자본이 이윤획득이라는 목적을 위해 발전시킨 생산력이 스스로의 숨통을 조여오는 과잉생산을 야기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부채의존은 공황의 규모를 더욱 키워왔을 뿐이다. 자신이 낳은 결과물이 자신의 존립을 위협하는 형세이다. 그리고 여기서 비롯되는 고통은 고스란히 노동자계급과 민중에게 전가된다. 결국 자본 자체의 철폐가 자본이 낳은 결과물로부터 해방되는 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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