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호에 이어 같은 제목으로 글을 게재한다.)


궁극적 목표를 쟁취하기 위한 활동을 다시 되살리고 이를 강화해야 한다.

현실사회주의의 붕괴에도 불구하고 90년대에 한국의 노동운동은 전세계가 주목할 만큼 전진을 계속하였고 활력을 보여왔다. 많은 한계를 안고 있지만 현재에도 한국의 노동운동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중심으로 완강한 생명력을 갖고 자본에 맞서 투쟁하고 있다. 이는 현실사회주의의 붕괴 이후 극심한 침체 상태에 빠져든 서구의 노동운동과 달리 한국의 노동운동이 보여온 강점이다. 작금의 노동운동내부의 심각한 타락 현상과 부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점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현실사회주의의 붕괴는 한국의 노동운동에도 심각한 영향을 주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영향은, 노동운동내에서, 현체제를 근본적으로 변혁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약화되고 차츰 실천활동이 당면과제, 그것도 낮은 차원의 개량쟁취라는 과제 중심으로 변화되어 가는 흐름을 만들어 내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양상의 전개는, 자본주의를 대체하는 체제는 불가능해졌다는 자본가들의 오만과 맞물려, 자본주의체제자체에 반대하는 투쟁으로 나서는 노동운동의 기세와 패기의 약화를 가져왔다.

그런데, IMF사태 이후 자본의 노동자계급에 대한 공세가 강화되고 투쟁에 의한 개량 쟁취가 90년대 중반 이전과 달리 매우 어려워 지면서 노동운동은 심각한 곤경에 처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활동이 개량쟁취투쟁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오히려 개량쟁취는 더욱더 어려워지는 상태가 되었고, 이는 다시 투쟁수위를 낮추는 요인이 되고 투쟁수위를 낮추는 것은 더욱더 투쟁성과를 내는 것을 어렵게 만드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노동운동은 좁혀진 자신의 전망과 활동의 틀을 깨야 한다. 즉, 서서히 뒷전으로 밀려난, 궁극적 목표를 쟁취하기 위한 활동을 다시 되살리고 이를 개량투쟁과 올바로 결합시켜가야 한다. 궁극적 목표를 쟁취하는 활동을 올바로 전개하지 못하는 노동운동은 자본가계급과의 투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 이미 이러한 노동운동은 자본가계급과의 투쟁에서 기세가 꺾인 노동운동이며 스스로 자신의 강력한 투쟁무기를 포기한 운동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노동운동은 개량쟁취투쟁을 주된 활동으로 하지만 정작 개량이라는 성과조차 제대로 내지 못하는 운동으로 전락하게 된다.


최소강령주의, 개량주의를 철저히 극복하자!

궁극적 목표를 상실하고 개량투쟁에 몰두하는 노동운동을 우리는 최소강령주의, 개량주의에 빠진 노동운동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개량주의에는 다양한 종류가 존재한다.
현재 한국의 노동운동내에서 가장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개량주의는 이른바 ‘국민과 함께하는 조류’의 노사협조주의이다. 이 노사협조주의는 현재 자본가계급의 입장을 노동운동내에서 전달하고 대리하는 역할을 충실히하고 있는데 이들의 타락은 얼마전 터진 강승규민주노총수석부위원장 사건에까지 이르고 있다. 노동운동이 최소한의 자주성을 지키려면 이제 노동운동은 노사협조주의세력과 전면전을 벌여야 할 지점에 이르렀다.
개량주의의 문제를 보다 철저한 관점에서 극복하기 위해서는 노동운동은 ‘말로는 최소강령주의, 개량주의를 비판하지만 행동에서는 개량주의활동을 벗어나지 못하는’ 개량주의와도 투쟁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 개량주의는 이론적으로는 궁극적 과제와 당면과제를 변증법적으로 결합해야 한다는 사회주의노동운동의 기본활동원칙을 수용하고 주장하고 있지만 실제의 활동에서는 일상적인 개량투쟁에 집중하고 있고 궁극적인 과제를 실천하는 활동을 거의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의 활동에서 이들이 공공연한 개량주의자들과 구별되는 활동을 전개하는 것을 발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런 점에서 이들은 사실상의 개량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사회주의노동운동은 이러한 은폐된 개량주의와도 철저히 내부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과도적 요구를 적극적으로 주장하자!

필자가 주장하는 내용을 보다 간명하게 하기 위해 하나의 가정을 해본다. 만약 현실사회주의가 붕괴되기 이전의, 자본주의를 대체하는 체제를 수립하려는 패기와 기풍을 노동운동이 현재에도 계속 확보하고 있다면, 현재의 한국자본주의와 같은 상황과 급속히 열악해진 노동자계급의 상태에서 노동운동은 자본주의를 타도하고 사회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대중적이고 힘있는 투쟁에 나서고 있을 것이다.
현재 한국사회는 90년대 중반까지와는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자본주의적 모순현상이 심화되고 이 과정에서 노동자계급과 민중은 현재의 상태를 유지하기조차 어려운 지경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와는 달리 자본가계급과 자산계급은 다수의 고통을 기반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하고 있다. 노동자계급과 민중의 인간적 욕구는 계속 고양되어가고 있는데 한국자본주의는 이를 최소한도라도 충족시키기는 커녕 이러한 욕구의 실현을 더욱더 억압하고 현재의 상황을 오히려 후퇴시키고 있다. 바로 전형적인 자본주의사회의 모순이 전개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난폭하게 현자본주의체제는 노동자, 민중을 계속 벼랑끝으로 몰아가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객관적 조건의 형성에도 불구하고 노동운동은 현실사회주의의 붕괴 이후 체제극복에 대한 자신감과 패기를 상실하고 있고 이것은 힘있는 투쟁의 고양을 내부로부터 제약하고 있다. 청년실업의 만연에도 불구하고 사회전반적으로 변혁의 기운보다 개인주의가 만연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주장을 보다 간명하게 하기 위해 이번에는 하나의 질문을 던져본다. 이렇게 모순이 증폭되고 있는데 왜 노동자계급과 민중은 자본주의를 타도하려는 대중적 행동으로 나서지 못하고 있는가? 상황은 폭발적인 대중적 분출이 이루어지게 할 정도로 악화되고 있고 대중적 불만도 누적되고 있는데 왜 현실에서 노동자계급과 민중은 자본가계급에 밀려 수세적인 위치를 계속해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가?
현재 노동자계급과 민중이 삶의 악화에 고통스로워 하면서 이것에 불만을 갖고 이것이 현체제의 문제점이라고 하는 것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노무현정권에 대한 지지율이 급격히 떨어진 것의 근본적 원인은 여기에 있다. 그러나 현재 노동자계급은 이들 문제가 정확히 자본주의체제의 문제라는 것을 대중적으로 명확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으며 또한 현체제를 극복할 대안적 체제를 상상하지 못하고 있고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적극적인 행동으로까지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또다른 측면을 바라보면 노동자계급은 이러한 의식과 행동으로 발전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받지 못하고 있다. 바로 사회주의노동운동의 취약함으로 인해 노동자계급은 의식과 행동의 고양의 기회를 제공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요약하면 자본주의체제가 초래하고 있는 삶의 고통의 심화와 자본과의 투쟁과정에서의 구체적 경험에서 현체제와 자본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문제가 체제의 문제라고 하는 인식에도 이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불만과 의식이 자본주의체제자체에 대한 불만과 명확한 인식으로까지, 다시 행동으로까지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사회주의자들이 주목해야 할 점은 이 점이다. 사회주의자들은 객관적 모순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노동자계급이 현재 갖고 있는 적극적 요소를 살려내고 현재의 한계를 돌파할 수 있는 방책을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실천해야 한다.
필자는 이러한 방책중 하나가 현시기에 과도적 요구를 적극적으로 제기하는 것으로 판단한다. 과도적 요구는 노동자계급의 현실에서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고려하되 이 요구를 궁극적 요구로 상승시킬 수 있는 가교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과도적 요구는 그 자체로는 자본주의체제를 넘어서는 최대강령적 요구는 아니지만 이 요구의 제시를 통해 노동자계급의 의식을 자본주의자체에 대한 명확한 의식으로 상승시키고 자본주의자체에 대한 반대투쟁으로 상승시킬 수 있는 요구이다.

(과도적 요구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다음호에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