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글의 성격상 한 번에 게재할 수 없기 때문에 몇 회에 걸쳐 나누어 게재한다. 다음 글들에서는 최소강령주의, 개량주의 비판과 과도적 요구 주장의 필요성, 현 시기의 핵심적인 과도적 요구, 과도적 요구투쟁을 수행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주체의 혁신 등을 다룰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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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적 삶의 급속한 파괴-자본가계급의 범죄행위

또 다시 두명의 동지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끊이지 않는 죽음의 행렬에 참담한 마음뿐이다. 고 류기혁동지의 죽음을 앞에 두고, 마치 열사라는 호칭이 무슨 영예로운 호칭이라도 되는 듯이 열사가 아니라는 현대자동차노조의 주장이 우리의 마음을 더욱 더 어둡게 하고 있다. 한 인간의 죽음 앞에서 이렇듯 무례할 수 있는 현대자동차노조의 주장이, 분노를 자아내기 이전에 끔찍스럽다. 사람으로서 기본적인 예의가 있다면, 인간으로서의 자신의 삶이 파괴되는 것에 무너져간 한 인간의 절박한 고통부터 자신의 고통으로 느꼈여야 했을 것이다.
IMF사태 이후 한국의 자본가계급과 자본가정권은 짧은 기간 동안에 아주 체계적으로 그리고 또 잔인하게 한국사회를 황폐화시켜 버렸다. 이들은 노동자, 민중의 인간적인 삶을 체계적으로 파괴하고 인간을 마모시키고 노동자, 민중으로부터 삶의 희망을 앗아갔다. 이들 자본가계급과 정권의 행위는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인간파괴의 범죄행위에 해당한다.
이들의 범죄행위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이들은 고통분담론으로 노동자, 민중을 기만하여 자신의 배만 채우더니, 이제는 도둑놈이 몽둥이들고 설치듯이 체제의 최대의 희생자인 노동자계급을, 사회에 위기를 조장하는 가해자로 몰아세우고 있다. 뿐만 아니라 노동자계급을 이간시켜 노동자계급내에 분열과 상호불신을 노골적으로 조장, 확대하고 있다.
본래 자본과 노동자계급의 대립은, 이윤과 자본축적을 위해 끊임없이 노동자계급의 인간성을 파괴하고 소외를 조장하는 자본과, 인간성을 지키고 확대하려는 노동자사이의 대립이다. 이 대립은 자본주의의 역사와 함께 반복되어 왔으며 자본주의가 역사적 종말을 고하는 시기까지 계속될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일반적인 대립이 아니다. 현시점에서 심각한 문제는, IMF사태 이후 자본의 인간파괴가 전례가 없는 빠른 속도로 자행되고 이 과정에서 노동자, 민중은 인간이기를 포기할 것을 강요당하고 있다는 점이다. 수많은 활동가들의 연이은 자살은 자신의 인간성을 지키려는 처절한 의지와 절망의 몸짓이다.


수세적인 노동자계급의 담론

모든 노동자계급의 투쟁은 삶의 악화를 막고 인간다운 삶을 확대하려는 투쟁이다. 그러나 자본가계급은 이러한 투쟁을 끊임없이 왜곡한다. 자본가들은 삶의 수단을 확보하려는 노동자계급의 투쟁을 집단적 이기주의로 공격하고 비인간적이고 소외된 노동과정에 소극적으로 저항하는 노동자계급의 행동을 근무태만과 게으름으로 공격한다. 특히 IMF사태 이후에 한국의 자본가계급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 저항하는 조직노동자들의 투쟁을 ‘철밥통’을 지키려는 집단이기주의로 공격하고, 정규직의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어 비정규직의 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는 선전을 강화하고 있다. 나아가 노동자들의 집단이기주의 때문에 경제위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뻔뻔스러운 주장마저 하고 있다. 현재 이들의 이러한 선전은 매일매일 반복되어 부르주아언론에 의해 노동자계급과 여타 계급에게 주입되고 있다.
자본가계급의 이러한 선전은 철저한 왜곡이다. 이들의 선전은 현실에서 아무런 근거도 갖고 있지 못하며 사실에 의해 반박될 수밖에 없는 것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들의 주입식 선전은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그 이유는 첫째는, 선전의 반복과 그 규모의 크기가 이를 가능하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선전은 거짓말도 진실로 들리게 만든다. 더구나 그것이 언론을 장악하고 있는 자본가언론에 의해 대규모로 반복될 때에는 더욱더 그러하다.
둘째는 노동자계급전반의 급속한 비정규직화와, 정규직과 비정규직사이의 격차의 확대가, 자본에 대한 불만을 정규직에 대한 불만으로 유도할 수 있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객관적 자료와 수치는 정규직의 삶 역시 IMF사태이후 악화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더욱더 열악한 상태에 처해 있는 노동자계급과 여타계층에게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정규직의 삶이 자본가들의 선전을 정당화하는 것으로 보이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주체적인 관점에서 가장 중요한 이유는 현재의 노동운동, 대기업정규직 중심의 노동운동이 보편성을 확대하지 못하고 오히려 축소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즉, IMF 사태 이후 자본에 저항하는 노동자계급의 총전선을 형성하는 데 실패하고 노동자계급의 투쟁이 각개격파당하면서 대기업정규직 중심의 노동운동은 과거와 달리 노동자계급전체와 민중을 대표하는 역할을 급격히 상실한 채 자기 앞에 닥친 문제에 함몰되고 있다. 그 결과 기왕의 노동운동은 노동자, 민중의 이해를 대변하는 운동으로서의 지위를 상실하고 자본가계급의 왜곡된 선전에 자신을 변호,변명하는 위치에 몰리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노동자계급전체와 민중으로부터도 보편적인 운동으로서 전혀 인식되지 못하는 처지에 빠지게 되었다.
담론은, 이를 통해서 각각의 주체가 세상을 이해하고 대응해간다는 점에서 투쟁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담론은 이를 통해 세상을 보는 안경과도 같은 것이다. 계급투쟁에서 이데올로기, 사상투쟁이 중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현재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말하면 현재 노동자계급의 담론은 자본가계급의 담론에 밀려 극히 수세적인 처지에 몰려있으며 다수의 노동자계급조차 자본가들의 담론에 따라 자본가계급의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노동자계급이 현재의 전반적인 수세적 위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먼저 이러한 담론에서의 수세적 위치에서부터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그 첫걸음은, 노동운동이, 자본이 강요하고 있는 인간다운 삶의 급속한 파탄을 노동자계급과 민중의 최선두에서 막아내는 운동이라는 것, 그리고 끊임없이 인간다운 삶을 확대해가는 운동이라는 것을 분명히하고 이를 실제로 실천해가는 것이다. 그것은 한편에서 노동운동이 인간답게 살려는 운동, 보편적인 인간해방을 실현하기 위한 노동자계급의 해방운동이라는 기치를 다시 분명히 세우고 다른 한편에서 이러한 운동으로 서기 위해 자기내부의 협소한 의식과 틀을 깨고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전자는 후자의 확립-현재의 노동운동의 전반적 혁신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 만약 후자가 확립되지 못하면 전자는 공허한 주장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이것을 전제로 먼저 전자를 검토해본다.


지금은 노동운동이 자본에 맞서 삶의 파탄을 막고 인간다운 삶을 확보하기 위한 요구를 과감하게 제기하고 실천할 때이다

7년여의 자본의 집요한 공세와 이에 따른 사회의 급속한 황폐화에도 불구하고 자본은 이 공세를 중단하지 않고 계속해서 밀어붙이고 있다. 이러한 자본의 공세에 맞서 더 이상의 삶의 악화를 막는 것만으로도 노동자계급은 힘에 부치고 있다. 하지만 노동자계급의 투쟁이 현재의 상황을 유지하는 데에 머물러서는 이 자체에서도 성공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수세적 위치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 이제 노동자계급은 자본의 공세에 대항하여 새로운 무기, 자본의 최대의 약점을 공략할 수 있고 노동자계급의 단결과 민중과의 연대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무기를 사용해야 한다. 그것은 인간이라는 기치를 높이세우고 인간다운 삶을 확보하기 위한 요구를 과감하게 제기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이제 노동운동은, 자본에 대한 대항전선을 치고 노동자계급전체와 민중을 여기에 결집시키기 위해, 자본에 맞선 인간적인 삶의 옹호자, 인간다운 삶의 확보를 위해 자본에 맞서 가장 앞서 투쟁하는 자로서 나서야 한다.

(다음 호에서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