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과 중앙일보 및 정치권과 검찰의 불법적인 자금수수 내용이 담긴 이른바 엑스파일의 내용이 부분적으로 공개되면서 온 나라가 들썩거렸지만, 현재 진행상태로는 역시나 용두사미 비슷하게 끝날 것 같다. 노무현 스스로가 ‘도청내용보다는 정보기관의 불법도청 그 자체가 문제의 핵심’이라고 강조했거니와, 검찰 또한 도청내용에 대한 수사는 거의 하지 않고 불법도청 부분에만 수사를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각종 언론 역시 보도의 대부분을 불법도청과 관련된 기사들로 채우고 있다. 마치 짜고치는 고스톱을 보는 것 같다.

물론 불법도청은 잘못된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것이 잘못이라고 해서, 그보다 몇십배 더 심각한 불법행위를 모른 척하고 넘어갈 수는 없다. 도청은 도청대로, 불법자금은 불법자금대로 모두 처벌하면 될 일이다. 물론 불법자금수수 쪽이 더 심각한 범죄이므로 처벌수위도 그에 걸맞게 결정되는 것이 마땅하다. 혹자는 ‘불법적인 방법으로 취득한 증거를 인정하란 말이냐’라고 반박할 지도 모르나, 의지만 있다면 계좌추적 등 다른 방법으로 얼마든지 증거는 확보할 수 있다. 사실 각종 선거 특히 대선에서 재벌들이 불법적인 정치자금을 제공해 왔으리란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불확실하나마 이미 알고 있는 것 아니던가? 그렇다면 굳이 불법도청이라는 잘못된 수단이 아니더라도, 대선 후보자 및 정당들의 정치자금 입출금 내역을 몇 개월간에 걸쳐 철저히 조사할 확고한 의지만 있다면 이번과 같은 거액의 자금수수는 얼마든지 범죄사실을 포착해낼 수 있다.

결국 문제는 그것이 삼성이든 누구든 범죄행위는 무조건 처벌하겠다는 의지가 과연 있는가라는 것일 뿐이다. 그러나 현 정권은 그럴 의지가 전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단순히 삼성의 위세나 파장을 두려워해서가 아니다. 그간 자신들은 한나라당보다 무척 깨끗한 듯 떠들었지만, 실제로는 금액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그들 또한 삼성 등으로부터 거액의 불법자금을 받아왔으니 일단 처벌을 하게 되면 자신들도 처벌을 해야 할 판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삼성 역시 이 부분을 가지고 거꾸로 현 정권에 협박을 하고 있을 것이다. 만약 삼성을 처벌한다면 그간, 아니 지금도 지속되고 있을 현 정권 및 여당에 대한 불법자금 제공내역을 전면 폭로하겠다는 식으로. 사실 대선 때는 달랐다 하더라도, 일단 현 정권이 들어선 후에는 야당보다 여당 쪽에 훨씬 더 많은 돈을 주었으리란 것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사실 아닌가. 게다가 삼성의 2인자인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은 노무현의 부산상고 직속 선배로서, 과거에도 노무현이 어려울 때 많은 ‘도움’을 ‘개인적으로’ (과연 그럴까?) 주었다고 한다. 실제로 노무현은 집권 이후 삼성에 매우 우호적이었다. 국민소득 2만불 목표에서부터 최근의 금융산업법 개정안에 이르기까지 현 정권은 각종 정책이나 입법에서 삼성의 입장을 충실히 반영해왔는데 이것이 과연 우연일까?

또한 그들이 도청내용보다도 더 중요한 잘못이라고 공언한 불법도청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은 애초에 문제된 엑스파일이 만들어진 김영삼 정권 시절만이 아니라 김대중 정권 시절에도 광범위한 불법도청이 있었다고 스스로 밝혔다. 그리고 지금은 더 이상 그런 불법도청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마치 꼬리를 자르고 도망가는 도마뱀을 보는 듯하다. 어차피 법원허가에 따른 합법적 감청이나 대북정보수집 용으로 도청장비가 운용되고 있는 이상,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가능한 불법도청을 지금은 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국정원을 폐지하고 도청장비를 완전히 폐기하지 않는 한, 현 정권 출범 이후 최근까지든 앞으로든 정권 차원에서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얼마든지 광범위한 불법도청이 자행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현 정권 하에서는 불법도청이 없다는 것을 무조건 믿어달라고만 하고 있다.

이번 사건은 한국지배계급의 본질을 그대로 드러낸 사건이다. 현 정권은 사태를 무마하는 데에만 급급하지 말고, 엑스파일의 내용을 있는 그대로 전면 공개하고 철저하게 수사를 벌이는 한편 그간 자행된 불법도청의 실상을 현 정권 하에서 이루어진 것까지 모두 완전하게 공개해야 할 것이다. 그것만이 국민적 의혹을 해소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