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이 이른바 ‘연정’을 들고나왔다. 지지율이 10%대로 떨어진 노무현 특유의 위기돌파전술 중 하나로 제안된 이번 연정론은 일단은 일과성 해프닝으로 끝날 듯 하다. 민주노동당이나 민주당, 한나라당 등 어느 정당으로부터도 동의를 받지 못했을 뿐 아니라 열린우리당 내부에서조차 제대로 입장정리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을 단순히 일회성 해프닝으로만 넘길 수 없다. 비록 지금은 잠복되었을지언정 연정은 추후 정부형태 및 국회의원 선거제도 관련 개헌논의와 대통령 결선투표제 도입 등을 계기로 해서 언제든지 다시 제기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물론 부르조아 정치인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건 우리는 노동계급의 독자정당,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정당으로서 우리의 길을 가면 그만이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 민주노동당 내에도 이런 류의 주장에 솔깃해하는 세력들이 상당수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미 이번 연정논란에서도 노회찬 의원등 당의 일부에서는 몇가지 ‘전제조건’만 충족된다면 연정을 검토할 수 있다고 공개적으로 발언했다. 본인들은 열린우리당이 이런 전제조건을 받아들일 리가 없다고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대중들에게 더 중요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잡다한 전제조건이 아니라 연정도 가능하다는 언급 그 자체이다. 나름대로는 정치적 감각을 발휘했다고 생각하겠지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런 식의 정치적 감각이 아니라 부르조아 정당들로부터의 확고한 구별정립이다. 대다수 대중들에게 우리는 아직까지도 이른바 ‘범개혁세력’의 일부로 인식되고 있거니와 그간 당의 원내외활동 또한 개혁공조니 선택적공조 운운하면서 그런 대중적 인식에 손쉽게 영합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이에 따른 필연적인 후과겠지만, 노무현 정권의 개혁이 얼마나 사이비인지 드러나면서 열린우리당만이 아니라 민주노동당까지도 지지율이 동반추락하고 있다. 당이 지금까지처럼 사이비 부르조아 개혁세력으로부터 스스로를 확실하게 구별정립하지 못하는 상태가 지속된다면 당의 장기적이고 독립적인 성장은 결코 담보될 수 없다. 연정은 지금까지 당내에서 지속되어왔던 이런 치명적인 전략적 혼란을 더욱 가중시킬 뿐이다. 결국 연정은 단순히 정치감각 따위의 문제가 아니라 당이 어디로 나아갈 것인가라는 근본전략의 문제이다.

이런 전략적 방향성과 관련해서 반드시 지적되어야 할 것은 당내의 이른바 ‘우파’ 세력 중 상당수가 그들이 견지하고 있는 소위 ‘통일전선론’에 따라 계급협조 및 계급연합전술을 당의 기본전략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이번 연정논란은 정치적으로 그다지 중요한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서인지 특별히 두드러진 입장을 밝히지 않았거나 오히려 반대에 가까웠지만, 그들의 기본적인 전략이 자유주의 부르주아지와의 계급연합에 기초하고 있음을 생각해보면 앞으로 2007년 권력재편기가 다가올수록 결선투표 등 몇가지 조건을 매개로 연정을 본격적으로 검토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이른바 ‘우파’의 핵심인물 중 하나이며 당의 현직 최고간부가 사석에서 ‘2007년을 계기로 연정을 이루는 것이 당의 정치적 목표’라고 발언했다는 것이 확인되고 있다. 그들은 이것을 소위 ‘상층민족통일전선’ 쯤으로 포장하려 할 지 모르나, 한국에서는 이미 상층민족통일전선의 대상이 존재하지 않는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맹목적으로 추종함으로써 노동자계급과는 결코 화해할 수 없는 적대세력임을 스스로 명백히 드러냈거니와, 이라크 파병 등으로 미제국주의의 세계전략에조차 아무런 저항없이 순응하고 있는 부르조아 사이비 개혁세력과 어떻게 연정이 가능하단 말인가? 이런 식의 어색한 동거는 특정 정권의 대외정책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나 ‘민족’ 전체를 위해서라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고, 실제로 이 땅을 변혁시켜 내는데는 더더욱 그러하다. 수구든 사이비 개혁이든 모든 부르조아 정치세력과 확실히 단절된 독자적인 노동계급의 정당으로서 스스로를 자리매김하지 않는 한 계급적 변혁운동의 주체는 결코 제대로 형성될 수 없다.

이제 우리는 당 내에서 온갖 종류의 기회주의와 계급협조주의에 맞서서 단호하게 싸울 준비를 해야한다. 연정논란은 결코 이번 한번으로 끝날 사안이 아니다. 부르조아 개혁세력과의 동거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세력들이 당 내에 있는 한, 앞으로 언제가 되든 다시 제기될 수 밖에 없는 문제이다. 당의 독자적인 성장과 사회주의 변혁정당으로의 강화발전을 바라는 모든 이들은 이와 관련해 다음 입장을 확고히 천명해야 한다. 연정을 비롯한 모든 부르조아 정치집단과의 동거 시도는 노동자계급에 대한 명백한 배신행위일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