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턴 행정부 말기에 물꼬를 튼 것으로 여겨진 북미관계의 정상화는 2000년 부시의 대통령 당선으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부시는 당선 이후 전임 클린턴 행정부와 북한사이에 맺어진 합의를 철저히 무시하고 북한에 대한 적대적 정책을 노골화하기 시작하였다. '악의 축'발언에 이어 2002년 하반기에는 '북한이 우라늄을 사용하는 핵개발프로그램을 시인하였다'는 일방적 주장을 하면서 북한에 대한 중유공급을 중단함으로써 북한의 NPT탈퇴와 폐연료봉의 재처리를 유발하였다.
2003년 북미중 3자회담과 이후 진행된 세차례의 6자회담은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하였으며 작년 6월의 제3차회담을 마지막으로 6자회담은 개최조차 되지 않고 있다. 대신 북미사이에는 지루한 공방이 반복되면서 우리는 또다시 '선제 공격', '전쟁발발 가능성'과 같은 말들을 언론에서 일상적으로 접하는 시기를 살고 있다. 우리는 어느 한순간에 '민족의 절멸'이 초래될지도 모르는 가능성을 현실속에서 안은 채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북미공방이 가열될 때 국민들이 미국과 수구세력의 위협에 넘어가 동요하지 않고 차분하게 사태를 주시하는 것은 과거와 비교하여 매우 주요한 변화이다. 이는 그만큼 국민들의 의식수준이 높아지고 그 동안에 축적된 경험속에서 누가 평화를 깨뜨리고 전쟁을 획책하는지를 인식하게 된 결과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반복되는 위기고조속에서 위기자체에 익숙해져 위기의 심각성에 국민들이 둔감해져있는 것은 경계해야 할 측면이다. 전쟁을 막을 수 있다는 자세로 사태를 임하는 것과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라는 자세로 사태를 임하는 것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미국이 쉽사리 전쟁에 돌입할 수 없는 요인들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전쟁발발의 가능성은 여전히 현실의 위협으로 존재하고 있으며 그 위협은 점점더 고조되고 있다.
진보세력은 이 점에 특별히 유념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사태는 매우 심각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음에도 진보세력 전반은 이에 대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어느 때보다도 반제반전투쟁에 적극적인 태세로 임해야 할 때임에도 불구하고 놀랍다고 할 정도로 진보세력은 안이한 자세로 사태에 대응하고 있다. 지금은 경각심을 갖고 자신을 반성하고 투쟁에 나서야 할 때이다.


1.최근의 북미공방양상이 함축하고 있는 것

북미간의 갈등과 대립관계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이미 반세기이상 계속된 관계이다. 그러나 이 관계는 무한정 계속될 수 없으며 이제 그 종지부를 찍어야 할 그러한 관계이다. 2000년 클린턴 행정부말기 북미간의 공동코뮤니케발표는 북미간의 새로운 관계설정이 당면일정에 오르기 시작했다는 희망을 만들어 내었다. 이러한 희망이 부시의 대통령당선 이후 당장의 현실이 되지 못하였지만 북미관계의 정상화는 그 과정이 앞으로 어떠하든 북한과 미국이 선택해야 할 바람직하고 유일한 길이다.
수년간 북미간의 관계가 새롭게 전진하지 못하고 갈등이 증폭되고 있는 이유는 부시행정부가 시대의 대세를 거스르며 북한에게 일방적인 굴복을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지적해왔듯이 북한의 핵개발과 장거리미사일개발은 '유일 초강대국 미국과 대등한 입장에서 새로운 관계를 설정하기 위해 사용하고 있는 수단'이다. 문제는 미국이 이러한 사실을 잘 알면서도 이를 의도적으로 회피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이 점은 올해들어 격화된 북미공방의 양상에서도 다시 확인되고 있다.
북한은 2월 10일 자신들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음을 공식적으로 선언하였다. 이는, 2003년 북미중 3자회담에서 비공식적으로 핵무기보유사실을 밝힌 것과 이후 북한이 핵억지력을 계속 확대하고 있다고 밝힌 수준을 벗어나 공식적으로 핵무기보유를 선언한 것이다.
이에 대한 미국의 반응은 어떠했는가?
대수롭지 않다는 것이었다. 자신들은 이미 알고 있었으며 새로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는 미국이 '북한의 핵무기보유를 의도적으로 무시하겠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이런 태도를 보인 미국이 북한핵실험설을 유포하고 미국의 언론이 이를 집중적으로 부각시킨 것은 무엇때문인가? 이미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 핵실험의 문제 역시 대수롭지 않은 문제로 여겨야 하는 것은 아주 간단한 이치이다. 그러나 미국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미국은 스스로 핵실험설을 유포하고 언론은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하였다. 이는 무엇때문인가?
이는 미국이 핵실험설로 북한에 대한 적대적인 국제여론을 조성하고 6자회담에 복귀하지 않는 북한을 유엔 안보리에 회부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북한은 핵보유의 확대를 선언함으로써 미국을 압박하여 직접적인 대화를 끌어내려고 하는 반면 미국은 이를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대신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갖고 핵실험설을 유포하여 6자회담에 복귀하지 않는 북한을 유엔 안보리에 회부하려고 한 것이다.


2.일괄타결만이 해결책

북미간의 공방은 현재의 추세라면 격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북한이 미국에 굴복하여 선핵폐기로 나아갈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북한은 무장해제가 이라크와 같은 사태를 초래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식량위기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미국의 일방적 요구에 굴복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현재까지 미국은 새로운 태도를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북한의 6자회담 복귀를 주장하면서도 한미 정상회담 이후에도 미국의 고위관리들이 북한을 자극하는 발언을 계속하는 것은 이를 잘 보여준다. 이런 상황에서 북미간의 공방은 약화되기보다 더욱 더 격화될 것이다.
이것이 현재의 냉엄한 현실이다. 문제의 해결의 돌파구는 미국이 현실에 굴복하여 북미관계의 정상화라는 궤도로 복귀하는 것, 이를 가능하게 하는 일괄타결밖에는 없다.


3.무엇을 해야 하는가?

북미간의 공방은 현상은 북핵을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지만 실제로는 북미간에 정상적인 관계를 형성하려는 북한의 요구와 이를 회피하는 미국간의 공방이다. 그리고 이 공방은 북미간의 막바지 공방으로서 현재의 부시행정부의 태도로 인해 매우 치열한 양상을 띨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러한 상황전개를 한반도에서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전체 과정중의 한 계기로 바라보아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시야와 전망속에서 현재의 위기를 수세적인 관점에서가 아니라 적극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고 이를 한반도평화체제구축의 기회로 전화시켜내야 한다.
남한 진보세력의 반제반전투쟁역량은 미국의 전쟁도발을 저지하고 한반도평화체제를 구축하는 데서 매우 중요한 역량이다. 미국이 남한에서의 반제반전투쟁의 발전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러한 역할에도 불구하고 현재 진보세력은 반제반전투쟁에서 매우 안이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전쟁의 위협에 대한 경각심도 매우 부족하고 현재의 투쟁이 한반도에서 새로운 질서를 창출해가는 데서 차지하는 역할의 중요성에 대한 자각도 매우 부족하다. 이를 극복하고 반제반전투쟁의 새로운 발전을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과제들이 필요하다.

1) 현재의 한반도 위기의 본질과 극복대안에 대한 선전선동을 강화한다.

2) 노동자계급을 반제반전투쟁의 핵심주체로 세워낸다.

- 탈계급적 반제반전투쟁은 그 토대가 매우 취약할 수밖에 없다. 노동자계급을 반제반전투쟁의 핵심주체로 세워낸다.

- 반제반전운동의 경험의 부재한 상태에서 노동자계급에게 반제반전운동은 생소한 것으로 남아 있다. 노동자계급이 반제반전투쟁을 자신의 문제로 인식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현재의 한계지점을 극복하기 위한 사업들을 세심하게 기획 실천해간다.

3) 평택미군기지확장반대투쟁, 전시군작전지휘권반환투쟁 등 계기적 투쟁을 전개한다.

4) 국제적 연대투쟁의 실천

- 미국과 여타나라에서 미국의 전쟁기도를 반대하고 한반도에서의 평화체제형성을 지지하는 노동자계급과 진보세력과의 국제적 연대투쟁을 실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