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의 급속한 확산은 국민다수를 하루살이 인생으로 전락시키고 있으며 이른바 사회양극화의 주범이다. 만성적인 내수부진과 경제침체의 핵심원인도 급속한 비정규직의 확산에 있다. 그만큼 비정규직의 문제는 단순히 비정규직노동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 노동자계급의 문제이고 노동자계급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다수의 문제이다. 그런데 이러한 비정규직문제를 더욱더 악화시키는 법개악을 자본과 자본가정치세력은 획책하고 있고 이들은 한국사회전체가 나락에 빠져들게 하고 있다.

이글을 쓰고 있는 현재 시점에서 이번 임시국회에서 열린우리당이 비정규직법개악을 강행할지는 여전히 확정적이지 않다. 한나라당이 이미 내용적으로 개악안에 찬성하고 있으면서도 사학법재개정과 비정규직법개악을 연계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이 사학법재개정에서 합의한다면 그 즉시 양당은 개악을 강행할 것이다.

현재까지 여전히 상황은 유동적이다. 그러나 명확한 것은 사안의 중대성에도 불구하고 비정규직법개악저지투쟁에서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이 위력적인 대중적 정치전선을 형성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사안이 국민다수의 삶의 악화와 파탄을 초래하고 삶의 절박한 문제임에도 실제로 개악저지투쟁의 대중적 정치전선은 사안에 걸맞게 획기적으로 확대되어오지 못하였다.

이러한 상황이 전개된 핵심적 이유는 비정규직법개악저지투쟁이 투쟁주체의 의식과 조직력을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선 현재의 국면이 착취의 강화를 획책하는 자본의 법개악기도와 이에 맞서는 개악저지투쟁사이의 대립국면이라는 점을 민주노동당, 민주노총 모두 분명히하지 않았다. 이런 태도는 마치 현재의 국면이 법안 내용의 조정을 둘러싼 대립인 것같은 대중적 환상을 만들어 내었고 투쟁의 정치적 성격을 분명하게 하지 않았다. 두 번째 이유는 국회에서의 활동과 대중투쟁 모두 개악의 핵심적 내용을 단순명쾌하게 요약하고 노동측 요구 역시 단순명쾌하게 요약하여 교육선전하고 선동하지 못함으로써 대중적 분노를 올바로 촉발하고 분노를 집중하지 못한 점이다. 대신 환노위에서의 단병호의원의 활동은 대중적 분노를 촉발하는 것이 아니라 입법전문가로서 논쟁하는 모습이었고 대립점을 단순명쾌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대립점의 내용을 오히려 복잡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였다. 이점은 원외의 투쟁지도부 역시 똑같이 반복하였다. 그 결과 있는 그대로를 말하면 민주노총소속 비정규직조합원, 정규직조합원 대중들조차 현재의 핵심적 대립점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고 있지 못하다. 세 번째 이유는 두 번째 이유와 일맥상통하는데 노동자계급전체와 민중전체속에서 자본과 노동이 대립하는 정치적 전선을 분명히하지 못하고 이 정치적 전선을 확대시키지 못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현재 비정규직법개악저지투쟁은 자본과 자본가 정치세력의 공세앞에서 극히 수세적인 처지에 몰려있으며 열린우리당의 계속되는 개악강행기도에도 불구하고 대중적 분노와 투쟁은 고양되지 않고 있다. 이러한 무력한 상태는 더 이상 계속되어서는 안된다. 그리고 이러한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투쟁의 약점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고 이를 돌파할 전술을 기획하고 새롭게 투쟁을 재정비해야 한다.

먼저 현재의 정치적 전선의 성격을, 착취를 강화하기 위해 이미 심각한 수준으로 진행된 비정규직화에 더욱박차를 가하려는자본과, 최소한의 삶의 조건을 확보하기 위해 더 이상의 비정규직화를 저지하고 비정규직을 철폐하려는 노동과의 대립으로 정치적으로 분명하게 설정하여야 한다. 또한 현재의 법안 대립점을 몇가지로 요약하여 표현하고 민주노총소속조합원에 대한 교육선전, 정치선동부터 제대로 실천해야 한다. 특히 비정규직법개악이 초래할 이른바 ‘사회양극화’문제의 악화와 노동자, 민중의 삶의 악화에 대한 정치적 폭로와 선동을 강화하여 분노를 ‘조직’해야 한다. 분노를 ‘조직’한다는 것이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으나 현재의 문제점 중 핵심적인 문제점은 잘못된 실천으로 분노해야 할 대중이 분노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데에 있다. 쌀수입개방확대에 분노하는 농민과 달리 노동자계급은 비정규직법개악에 대해 지금 제대로 분노조차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실정이다. 아울러 정치적 전선에 국민다수를 조직하여(이미 국민다수는 직간접적으로 비정규직문제와 관련을 맺고 있다) 그 잠재적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극히 협소한 상태에 있는 정치적 전선을 대폭적으로 확대하는 전술을 적극적으로 실천해야 할 시점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우리는 [비정규직철폐국민투표] 요구투쟁을 현시점에서 주요한 정치전술로 실천할 것을 제안한다. 이 전술은 앞에서 지적한 현재의 투쟁의 약점을 효과적으로 극복할 수 있게 할 것이다. 이 전술은 투쟁의 정치적 전선을 분명하게 할 수 있고 정치적 전선에 조직노동자중 일부가 아니라 전체노동자계급과 국민다수가 참여하게 하는 데 효과적이다.

그리고 [비정규직철폐국민투표] 요구투쟁의 내용은 기본내용은 ‘비정규직확산 동결과 1단계 대폭적인 비정규직의 축소, 2단계 비정규직의 완전철폐’로 하고 이를 위한 구체적 조치로, ①간접고용 파견법폐지, ②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자 지위보장, ③기간제노동자 채용의 사유제한실시로 압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자세한 내용은 「[비정규직철폐국민투표] 요구투쟁 해설」 참조). 요구는 최대한 단순화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이러한 내용을 갖고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이 국민투표실시를 요구하고 이를 지자체선거를 경과하면서 현실의 투쟁으로 만들어 갈 것을 제안한다.

혹자는 지금까지 투쟁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는데 국민투표요구투쟁같은 높은 수준의 정치투쟁이 가능하겠는가 의문을 제기할지 모른다. 이 의문은 충분히 제기될 수 있는 의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오히려 지금까지의 비정규직투쟁이 개별적인 비정규직노동자들과 노동조합들의 생존권적 투쟁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이 투쟁을 엄호지원하는 정치투쟁이 제대로 조직되지 않은 데에 있다. 지금은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 비정규직투쟁을 전체 노동자계급와 민중의 정치투쟁으로 만들어내야 할 시점이다. 이러한 실천속에서 현재처럼 개별화되고 자본의 집중적 탄압속에서 고통받고 있는 조직된 비정규직노동자들의 투쟁이 새롭게 분출될 수 있게 되고 아직 조직화되지 못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자연발생적인 투쟁 역시 폭발적으로 분출될 수 있게 될 것이다.

[비정규직철폐국민투표] 요구투쟁제안은 그 잠재적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침체되고 답답한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비정규직 철폐투쟁이 그 한계를 극복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현재의 국면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우리의 고민의 산물이다. 우리는 국민투표요구투쟁이 고민될 수 있는 효과적 전술들중 하나라는 판단에서 이를 제안한다. 보다 바람직한 대안이 있다면 우리는 그 대안을 갖고 적극적으로 함께 실천할 것이다. 현재의 상황을 극복하려고 분투하는 많은 동지들의 적극적인 고민과 실천이 있기를 바란다.


→ [비정규직철폐국민투표] 요구투쟁 해설
→ 자본의 공세에 정면돌파하는 정치적 고리로서 국민투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