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다소 생소하지만, 해외에서는 국민투표가 다양한 경우에 활용되는 정치행위이다.

외국의 경우에는 국민투표가 다양한 사안에서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특히 스위스의 경우에는 직접민주주의제도가 잘 정비되어 있는 나라답게 군병력의 1/3 감축, 예비군의 복무연한 단축, 세입자 정책, 자동차 일요일 운행중지, 건강보험제도 개혁, 원자력발전소 존폐문제 등 웬만한 정치적 사안은 모두 국민투표에서 다루어지곤 한다. 과거 스웨덴이나 이탈리아의 경우에도 원전존폐문제에 대한 국민투표를 진행하는 등, 국민투표하면 떠올리는 것과는 사뭇 다르게 포괄적인 의제들이 국민투표에서 다루어진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여섯 차례의 국민투표가 대부분 헌법개정과 관련되어 있으며, 집권세력의 권력연장과 연결되어 있었다. 헌법개정이 아닌 국민투표로는 박정희 대통령이 유신체제의 정당성을 물었던 국민투표가 한 번 존재한다.

최근 들어서는 노무현 대통령이 재신임 국민투표를 제안하기도 하였으며, 한나라당에서는 수도분할 반대 국민투표를 요구하기도 하였다. 모두 정치적 상황을 돌파하기 위한 정치적 카드로 국민투표가 활용되었으며, 정말로 국가적 사안에 대한 국민투표의 의지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되지는 않는다. 이러다보니 국민투표라는 정치행위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지 못하고 정치적 상황에서 나온 일종의 제스처처럼 인식되고 있다.


자본의 신자유주의 공세와 관련된 국민투표만 해도 여러 가지 중요한 국민투표 사례가 존재한다.

우선 2003년 10월에 있었던 콜롬비아의 국민투표를 들 수 있다. 당시 콜롬비아 베레즈 대통령은 국내 게릴라 소탕과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15개 쟁점의 국민투표를 제안한다. 이 국민투표는 정책에 대한 국민투표(Referendum))였지만 대통령 신임여부가 결합된 형태의 국민투표(Plebiscite)였다. 이 당시 베레즈 대통령은 국민투표가 성사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대대적인 투표홍보 활동을 하였다. 언론과 정부기관의 대대적인 물량공세가 있었다. 그러나 선거결과는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유권자의 25%(625만명)가 참여해야 유효한 투표에서 5개 정도의 쟁점을 제외하고는 25%를 넘지 못하였다. 베레즈 정권의 국민투표 실패는 민중진영에서 투표불참전술을 효과적으로 활용했다는 점이 크게 작용하였다.

베네수엘라에서는 휴고 차베스 대통령의 탄핵과 관련된 국민투표가 2003년 있었다. 차베스 대통령이 1998년 당선된 후 만든 ‘볼리비안 헌법’은 유권자의 20%의 찬성을 얻으면 탄핵 국민투표를 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차베스 반대파는 이러한 헌법의 조항을 이용하고자 하였다. 반대파는 Sumate(대통령 탄핵을 위해 조직된 시민단체)를 만들어 탄핵을 위한 서명조직에 들어갔다. 부정서명 등의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결국 차베스 정권은 탄핵 국민투표를 진행하기로 하였고, 투표결과 차베스 대통령에 대한 탄핵반대가 다수를 차지하면서 반대파의 기도는 수포로 돌아갔다.

2005년에는 프랑스와 네덜란드에서 유럽헌법을 국민투표에서 부결시켰다. 일부에서는 세계적 추세나 유럽통합의 흐름을 저해하는 보수적 움직임이나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시도인 것처럼 호도하지만, 유럽헌법이 담고 있는 비민주성과 신자유주의로 유럽을 갱신하려는 흐름에 대해서 사회적 연대와 평등의 가치를 수호하려는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프랑스의 최초고용법 저지투쟁은 앞서 있었던 유럽헌법 부결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헌법의 경우 ‘외교 ·국방 ·통일, 기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에 대해서 국민투표를 할 수 있다고 해놓으니, 국민투표의 주제는 뭔가 심오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민중들의 삶에 직결되는 문제라면 무엇이든지 국민투표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스위스에서 요일제 문제나, 건강보험 문제로 국민투표를 하고, 스웨덴, 이탈리아에서 원자력 존폐문제로 국민투표를 하듯이 말이다.

또한 국민투표라는 방식은 자본의 공세를 막아내거나 공격하는데 효과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전술이다. 신자유주의를 추구하려던 콜롬비아의 정책투표나 유럽헌법에 관한 프랑스의 국민투표 모두 국민투표의 내용이 신자유주의의 주된 축을 이루는 것이었고, 이에 대한 찬반이 사회에서 중요한 투쟁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민중의 선택은 집권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세력에 대해 정치적 타격을 입히고 집권세력의 정당성을 허물어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