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의 삼성에버랜드로 불리는 현대글로비스 사태로 세상이 시끄럽다. 현대자동차 정몽구회장의 장남 정의선이 트럭배달회사로 자동차 회사를 꿀꺽 삼키는 마술이 삼성에버랜드에 이어 또 한번 등장했다. 이번 일이 일어나자 한편에서는 회사 금고지기에게 함부로 하지 마라는 경구가 새삼스럽게 회자되고 있다. 결국 이번 사태가 재무담당 내부고발자의 제보가 결정적이었다는 이야긴데, 이미 현장노동자들도 감을 잡고 있던 글로비스문제가 노동조합에 의해 제기되지 않았다는 점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노동이 모욕 받는 시대에 사주의 심기를 건드리는데 망설이는 것은 노동자국가를 건설하겠다는 의지 실종에서 나온다. 자본에 대해 불경스럽고 오만한 노동자가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그리고 이 놈의 대한민국 자본주의는 그런 취급을 받을 충분한 이유가 있다.


역사의 배신 - 노무현 정권

미국에서는 스탠다드 오일이라는 거대 독점체를 지배했던 록펠러가에 대한 미국인들의 분노가 하늘에 치솟은 적이 있다. 합병인수를 통해 규모를 늘려나간 스탠다드 오일은 합병을 하면 곧 비용절감을 위한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석유수송로였던 운하와 철도노선을 따라 진행된 거대한 규모의 해고로 인해 보통사람들의 삶은 고통 그 자체였다. 생활고로 인한 자살이 속출했고, 자경단이라 불린 깡패들에 의해 파업노동자는 살해되었다. 20세기초에 이르자 이들을 향한 원망의 목소리가 미국전역을 뒤덮었고, 스탠다드 오일이 창업되었던 클리블랜드에서는 민중의 폭동과 부자들을 교수형에 처하는 인민재판이 등장했다. 결국 이 분노에 기대어 대통령 후보들이 거대 독점체를 해체하겠다는 공약으로 당선되는 사태가 찾아왔다. 191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의 미국역사는 대다수의 민중을 빈곤으로 내몰고 국가경제를 사실상 지배하고 있는 거대독점체에 대한 미국민의 반격이 줄기차게 진행된 시기다. 독점금지법이 등장했고, 미국석유의 90%를 차지하던 스탠다드 오일은 수천개의 회사로 쪼개지게 되었다.

대한민국에서는 98년 IMF 사태이후 정리해고와 가계파산에 의해 수백만이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수십만의 가정이 해체되고 출산율은 세계최저가 되었다. 세상에 대한 원망으로 자살하는 사람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2002년 부자들의 정당 한나라당 후보 이회창에 맞서 지독히도 운이 없어보였고, 지역정치에 적응하지 못해 선거마다 번번이 낙선하는 못난이 대통령후보 노무현은 '서민의 눈물을 닦아 주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아마 후세에 여기까지 대한민국 역사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당선된 대통령이 국부를 빨아먹는 외국자본을 규제하고, 노동자의 희생 위에 해마다 경상이익을 갱신하는 독점재벌에 칼을 빼들었을 거라고 예상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대통령의 말씀은 기업하기 좋은 나라였고, 지역균형발전을 위하여 전국의 부동산 가격을 일제히 올렸으며 희대의 재벌특혜인 기업도시법([해방] 2호 참조)을 통과시킨 것이다. 이 역사의 배신을 사람들은 어떻게 해석할까 궁금하다.

존경받는 부자? 어림없는 소리

대한민국에서 부의 창출과 성장은 정경유착, 그 자체다. 말이 좋아 정경유착이지 부정부패와 도둑질이었다. 오죽하면 60년대 조성된 서울 성북동이나 청운동의 고급주택가를 사람들이 도둑촌이라 불렀을까? 현대니 삼성이니 LG니 하는 재벌들의 창업주는 왜놈밑에서 허드렛일이나 하다가 해방후에 미군정에 빌붙어 적산불하로 한몫 잡은 자들이다. 해방후 기관총을 긁어대며 인천에 상륙한 미국은 당시 조선의 민중역량에 기겁을 하였다. 노동자들은 왜놈들이 떠난 공장을 자주관리하고 있었고, 왜놈이 떠난 농토에서 소작하던 농민들은 두레를 이용한 공동노동, 공동분배를 실천하고 있었다. 군, 면단위까지 인민위원회가 구성되어 실질적인 자치권력이 성립되어 있었다. 미군이 이 땅에 들어와 한일은 노동자 민중의 자치역량을 분쇄하고 왜놈들의 마름들을 사장과 지주로 만들어 주는 것이었다. 이승만이 들어서 원조경제를 꾸려갈 때도 이승만 일당과 결탁한 자들은 이기붕과 같은 집사출신 부통령에게 상납을 해가며 막대한 특혜를 누렸다. 박정희가 들어서도 마찬가지였다. 개발을 앞세운 박정희와 똥별들에게 선이 단 자들은 벼락부자가 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전두환, 노태우 정권때는 전경련 회장 정주영이 재벌들의 돈을 모아 하나회 출신 대통령들 각각에게 1조씩을 갔다 받치고 3저 호황의 떡고물을 독차지했다. 김영삼 때는 국제화 흐름을 타고 대우의 김우중처럼 나라를 거덜내면서 폼잡는 자들에게 아낌없는 지원이 있었다. 김대중 정권 때는 공기업 민영화로 거부가 탄생했으며, 마침내 노무현정권에 이르러서는 “대한민국에서 안되는 게 어디 있니”라는 '오해 말고 들어'야 하는 격언이 재벌들 입에서 절로 나왔다.

이런 재벌들의 횡포에 민중들의 반감과 저항이 없을 수 없기에 역대 정권은 재벌들에 대한 규제와 통제를 하는 시늉이라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공정거래위원회니 금감위니 하는 기관도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들은 절대 재벌을 해체하거나 부도덕한 재벌총수들을 뽑아내는 일을 한 것이 아니다. 현대자동차가 계속 협조를 안 하면 조사흐름이 바뀔 수도 있다는 검찰의 엄포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위법사실은 다 알면서도 적당히 관리하는 선에서 재벌손봐주기는 항상 마무리 짓는다. 언론에 더 많은 사실이 폭로될수록 검사들 접대 받는 횟수는 그만큼 줄어드니 검찰이 짜증도 날만하다.


무서울 것이 없는 재벌들의 자살골 - 상속

소위 뼈대 있는 재벌들의 역사도 50년 내외가 대부분이다. LG, 삼성, 현대 등이 모두 적산불하의 수혜자이니 당연하다. 부자가 망해도 3대 간다는 말도 있지만, 거꾸로 부자 3대 이상 못 간다는 말이 있다. 두산이 보여주었고, 지금 현대가 3대 상속을 기도하다가 허우적대고 있는 것을 보면 근거 없는 말도 아니다. 대한민국에서는 부자들에게 금기가 없다. 그들은 대중의 눈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덕분에 파렴치한 세금도둑을 잡기 위해 쳐 놓은 허술한 그물망에도 덜컥 걸리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 미국부자들은 20세기 초반에 격렬한 계급투쟁을 경험하고는 경영에서 손을 떼고 자신들의 재산을 신탁회사에 맡기고는 대중의 이목에서 벗어나 이자 생활자로 초호화생활을 즐기고 있다. 앞서 말한 록펠러가도 같은 길을 가고 있다. 물론 그 덕에 미국의 금융시장은 비대해지고 이자생활자를 위한 자본주의, 신자유주의가 도래하는데 혁혁한 전공을 세웠지만 말이다.
반면 대한민국 부자들은 새파랗게 어린 후계자에게 회사 경영권을 넘기기 위해 온갖 편법을 다 동원한다. 그건 한국의 금융시장이 아직 충분히 성장하지 않았다는 증거이기도 하고, 기업경영을 통해 만들어 낼 수 있는 부가 여전히 막대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세계에서 가장 노동유연화가 진전되어 있고, 노동자가 파업하면 때려잡아주는 경찰이 5분대기하고 있는 나라에서 이것은 당연한 욕심이다. 하지만 자본주의 입장에서도 자본가들이 지켜야 할 절제의 미덕을 잃어버린 그들에게 그들의 탐욕이 자신들의 목을 조르는 올가미가 되고 있다.


노동자 자주관리를 위한 첫걸음 - 기업회계의 공개

한나라의 절대적인 부가 불과 소수에 의해 독점되어 있으며 그 소수가 악행을 일삼고, 사회정의에 어긋난다면 어떤 조치가 필요할 것인가? 당연히 그러한 부는 사회에 귀속될 것이며, 사회가 관리하는 것이 정상일 것이다. 자본주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현대자동차가 정몽구 일가와 운명을 같이할 특별한 이유가 없다. 실질적인 창업자였던 정세영이 아들과 함께 현대산업개발로 쫓겨갔지만 현대자동차는 잘 돌아가고 있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온갖 특혜를 받아 기업인수를 해서 거대 기업집단이 된 다음에 형제끼리 재산다툼으로 엉망이 된 두산그룹이나 상속문제로 사회정의를 훼손하고 있는 삼성, 현대 족벌가문에게 경영과 소유를 맡길 특별한 이유를 찾지 못한다.
재벌의 상속문제, 그리고 탈세 등이 문제가 될 때마다 재벌개혁 문제가 등장한다. 그러나 재벌개혁의 문제는 소유와 경영의 분리, 재벌해체 정도의 논의를 맴도는 수준이다. 반면 땅값은 오르고 임금은 제자리고 일자리는 시원찮은 가운데 사회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이 위기는 부의 생성에는 사회전체가 동원되지만 소유는 극소수가 독차지하고 있는데서 심화되고 있다. 현실에 대한 가장 정직한 해답은 재벌로 상징되는 사회적 부를 사회전체의 소유로 바꾸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한 최초의 조치는 기업회계를 완전히 공개하라는 요구와 투쟁으로 시작되어야 한다. 특히 비정규직을 통해 자본이 거두는 이익을 폭로하고, 부당노동행위를 위한 노무비 등을 폭로해야 한다. 이러한 회계공개를 위한 투쟁을 통해 노동자계급은 사회정의의 수호자, 그리고 기업경영의 진정한 후계자로 나설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