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메이데이는 정말 뜻깊은(?) 날이다. 작년 메이데이에서 민주노총 이수호 전 집행부가 2006년 5월 1일에 ‘세상을 바꾸는 투쟁’을 하겠다고 선포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민주노총 보궐선거에서도 한 후보가 ‘세상을 바꾸는 투쟁’을 계승하겠다고 했다.


1. 민주노동당의 오류를 반복하다 - 부유세는 만병통치약인가?

세상을 바꾸는 투쟁의 내용은 간단하게 다음과 같다. 한국 사회 위기의 핵심인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 분배의 정의를 실현하고, 동시에 노동자 민중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우선적으로 두 가지, 교육과 의료를 무상으로 공급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바로 이런 질문이 던져진다. 어떻게? 이수호 전 집행부의 대답은 조세개혁을 통해서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수호 전 집행부의 논리는 부유세를 가지고 무상교육과 무상의료를 실시하겠다는 민주노동당의 논리와 똑같다. 여기서 문제는 부유세가 만병통치약이 아니라는 것이다. 무상교육과 무상의료를 실시하기 위해 필요한 재정을 마련하려면 부유세로는 택도 없다. 물론 부자에게 세금을 더 걷어야 한다는 부유세는 정당하지만, 세수를 획기적으로 증폭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수호 전 집행부가 선포한 세상을 바꾸는 투쟁은 민주노동당이 범한 오류를 반복하고 있다. 더 솔직하게 말한다면 민주노동당이 대중을 기만하는 논리와 슬로건을 그대로 차용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대중을 현혹(?)할 수 있는 몇 가지 개혁과제를 이런 식으로 구호로 내걸기만 한다면 그처럼 무책임한 것은 없다. 마치 김근태의 토지공개념이나 정동영의 무상교육이나 홍준표의 아파트 반값과 같은 신자유주의자들의 싸구려 주장에 불과하게 된다. 무상의료와 무상교육을 솔직하게 주장하려면 한국 사회의 작동 원리를 통째로 바꿔야 한다고 말해야한다. 실제 역사적 경험을 통해서 무상의료와 무상교육을 실시했던 사회는 두 가지 경우였다. 스웨덴처럼 사민주의 정당이 집권을 하되 국민들이 수입의 절반 정도를 세금으로 많이 내고 사회복지 혜택을 누리든가, 아니면 쿠바처럼 공산당이 집권을 하되 사회주의 경제로 완전 전화하든가. 그런데 세상을 바꾸는 투쟁은 과연 둘 중 무엇이라도 되는가?


2. 신자유주의 시대, 사회적 합의주의가 웬말인가?

한편 무상교육과 무상의료를 실시하기 위해서는 자본가 정권을 강제해야한다. 문제는 어떻게 강제할 것인가에 대한 방책이 뚜렷하지 않다는 것이다. 지금 노동계급은 정권의 비정규 법 개악을 저지하기 위해서 총력 투쟁하는데에도 힘에 부친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사회를 개혁하는 무상교육, 무상의료와 같은 구호가 걸리기만 하면 저절로 투쟁동력이 살아나고 사회적 파괴력을 갖출 것인가. 이에 대해 회의적일 수 밖에 없다. 마치 작년 말 비정규 법 개악 저지 투쟁 국면에서 비정규직권리보장입법 쟁취로 전환할 때, 요구 투쟁이기 때문에 투쟁 국면이 공세적으로 바뀌었다라는 자기 최면과 같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세상을 바꾸는 투쟁’론자들은 투쟁과 교섭의 병행이라면서 총파업과 사회적 교섭을 말한다. 하지만 바로 그 사회적 교섭 때문에 세상을 바꾸는 투쟁에 대해서 일단 불신의 눈초리를 보낼 수 밖에 없다. 한마디로 노사정위에 복귀하자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물론 ‘세상을 바꾸는 투쟁’론자들은 전술적으로 사회적 교섭을 활용해야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역사적 사회적 맥락을 고려한다면, 신자유주의 시대에는 노동자 계급이 승리하는 사회적 교섭은 전혀 불가능하다.

서유럽에서도 사회적 대타협이 성공할 수 있는 배경에는 계급 역관계에 있어서 압도적인 노동계급의 우위가 그 배경에 있었다. 2차세계대전 당시, 자본가계급이 모두 나치에 부역했고 반면에 공산당은 레지스탕스가 되어 목숨을 걸고 싸우던 마당에 전후의 역관계는 너무나도 뻔하지 않았겠는가. 결국 서유럽의 담합 체제는 공산당의 집권을 막기위해 미국이 개입하여 사민당과 노동관료를 앞세워서 자본가계급과 대타협을 시킨 것이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시대, 계급 역관계가 밀리는 상황에서 사회적 대타협은 철저한 양보교섭이었다. 노무현 정권이 사회적 대타협의 모델이라며 칭송해 마지않던 네덜란드의 경우가 바로 그런 양보교섭의 사례이다.
결국 논리적으로 따져본다면, ‘세상을 바꾸는 투쟁’의 예상되는 결과는, 전면적인 무상교육과 무상의료를 실현하기는 커녕 도리어 현재 자본가 정권이 추진하는 노동유연화에 합의해주는 대신에, 양극화의 심화에 따라 정권과 자본도 수용가능한 몇 가지 각론적인 복지정책들을 따내는 식으로 정리될 수 밖에 없는 형국이다. 그런데 이것이 과연 세상을 바꾸는 것인가?


3. 세상을 바꾼다? 자본에 대한 통제 없이 어떻게?

자본주의 세상에서 정말로 세상을 바꾸려고 한다면 자본에 대한 사회적 통제 없이 불가능하다. 무상교육과 무상의료만 해도 그렇다. 대학 교육까지 전면적으로 무상교육을 하기 위해서는 세금을 더 걷는 것이 아니라, 상식적으로 학교를 모두 국공립화해야 한다. 무상의료 역시 마찬가지이다. 종합병원을 모두 국유화하지 않으면 가능하겠는가. 그런데 사립학교법을 신자유주의적으로 개정한다고 해도 난리를 치는 사학 재단들이다. 수가 인상을 위해서 폐업을 하는 의사들이다. 이들을 적극적으로 통제해 들어가지 않고 어떻게 무상교육과 무상의료를 하겠는가. 사학법 개정을 뒤집기 위해서 한나라당이 한달이 넘게 장외투쟁을 하는 마당에, 무상교육이나 무상의료를 위한 사회적 대타협이 가능할까?

결국 자본가 정권은 신자유주의 기조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양극화 심화로 인한 노동자 민중의 불만과 분노는 폭발적으로 분출하지 않을 정도로 관리를 할 뿐인데, ‘세상을 바꾸는 투쟁’론자들은 무상의료와 무상교육을 실현하기 위한 중간 과정은 완전히 무시하고, 부유세로 가능하다는 식으로 대중을 호도하면서, 사회적 합의주의를 조장하고 있다. 이래서는 결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양극화 해소만 해도 그렇다. 도대체 양극화의 원인은 무엇인가? 우선적으로 무엇보다 비정규직 때문이다. IMF 이후 노동소득분배율이 큰 폭으로 떨어졌지만, 아직까지 회복되지 않고 있다. 이는 무엇보다 기업이 정규직과 달리 임금을 차별할 수 있고 노동 통제가 용이하며 해고하기 쉬운 비정규직을 채용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정규직을 철폐하지 않고서는 우선적으로 양극화 해소의 길은 열릴 수가 없다. 그런데 비정규직 철폐는 어떻게 가능할까? 주주자본주의로 전화한 한국 자본주의는 주주들의 단기순이익을 위해서 투자 위험이 적은 노동유연화를 추구한다. 그런데 노동자 계급이 투쟁을 하면 외국자본이 투자를 하지 않는다는 둥, 국내 재벌 같은 경우에는 아예 해외로 공장을 이전하겠다는 둥 협박을 한다. 그러나 금융시장이 자유화되고 국제적인 자본이동이 원활해졌기 때문에 이는 단순한 협박이 아닐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비정규직을 철폐하기 위해서라도 이들 자본에 대한 사회적 통제는 필수적이다.

양극화의 또다른 주요 원인은 재산 문제이다. 재산지니계수는 거의 절대불평등 상태인 1에 육박한다. 그런데 그 재산의 상당수는 땅, 즉 부동산에서 나온다. 따라서 양극화를 진정으로 해소하려면 무상의료, 무상교육뿐만이 아니라 무상주택을 실현해야 한다. 하지만 무상주택, 공공주택을 실현하려면, 건설족이라고 불리우는 재벌-관료-정치인-언론의 유착관계를 무너뜨려야 한다. 사실 원가 공개만 해도 아파트 값이 반값으로 떨어질 수 있다. 그걸 알기에 정몽준이나 홍준표도 아파트 반값주장을 함부로 하는 것이다. 그러나 내수 부진을 이유로, 건설 경기를 살려줘야 한다는 이유로 노무현 정권은 엄두를 못 내고 있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건설공사에서 얻은 초과이익들이 건설족을 통해서 대다수 정치자금으로 유입되기 때문이다.

결국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서 분배의 정의를 실현하겠다는 발상을 조금만더 근본적으로 파고들어가면, 자본에 대한 사회적 통제가 수반되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렇기 때문에 정말로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자본에 대한 본격적인 통제를 해야한다. 예를 들어서 베네주엘라에서 차베스의 경우, 권력을 장악한 데에는 민중의 압도적 지지도 있지만, 권력을 유지하는데에는 석유 산업을 국유화해서 경제적 힘을 발휘하는데에 있다. 마찬가지로 접근한다면 한국에서는 반도체나 자동차, 철강, 조선소가 대표적인 국유화 대상이다.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해외투기자본의 적대적 M&A에 흔들리는 재벌가를 국가가 편법까지 써가면서 비호하지 않고, 부패하고 무능한 재벌가가 소유한 고작 1% 정도의 주식을 사회에 환원해 버리면 된다. 그래서 대자본들을 사회적으로 통제해들어가야 한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은행을 전면적으로 국유화해서 국가가 기본적인 자본통제 수단을 갖춰야 한다.


4. 정말로 세상을 바꾸려면...

‘세상을 바꾸는 투쟁’은 그 이름에 걸맞게 다시 작성되어야 한다. 자본은 눈을 부릅뜨고 덤벼들고 있는데, 그렇게 어설프게 준비해서는 세상을 바꾸기는 커녕 우리가 당한다. 자본가 계급은 노무현 정권에게 자꾸 친노동으로 흘러가면 기업파업이라도 하겠다고 대놓고 엄포를 놓고 있다. 여기에 우리는 무엇으로 맞설 것인가? 당장 노동유연화를 위해 벌려진 노사정위에 들어가서 복지정책을 구걸할 것인가, 아니면 니들 자본을 사회적으로 통제하겠다고 주장하겠는가. 후자가 정말로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