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거리는 노동자의 힘

노동자계급정당, 혹은 활동가조직을 표방하고 활동해 왔던 “노동자의 힘(이하 노힘)”이 비틀거리고 있다. 고통과 분노로 자살한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해 열사로 인정할 수 없다는 망발을 해댄 현대자동차 집행부에 대한 분노가 끓어올랐다. 동시에 주요임원들이 회원으로 있는 노힘의 수수방관이 문제가 되고 이에 대한 비판이 고조되면서 이 위기는 본격화되었다. 문제는 조직내외적으로 비판이 높아져서가 아니라, 그 비판에 반응하는 태도가 스스로를 위기로 몰고 있다는 점이다. 한 조직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 조직내 어떤 문제가 있느냐도 중요하지만 그러한 문제를 어떻게 대처하고, 처리하는가가 매우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노힘은 노동자계급정당은 물론이고 활동가 조직으로서도 갖추어야 할 규율과 “계급적 원칙”이 수준미달이라는 것이 증명되었다.


대공장 노동조합에 굴복하는 활동가 조직

특히 관찰자에게마저 부끄러움을 주는 것은 대공장 노조집행부에 굴욕적인 저자세를 보이는 정치조직의 모습이다. 현장권력이라는 말을 즐겨했던 노힘답게 이상욱 집행부에 대한 노힘의 태도는 현장권력에 완전히 굴복하는 모습이었다. 이렇게 “활동가 조직”이 갖는 권위는 무너졌다. 현장조직이 집행부를 견제하고, 나아가 활동가들이 대중이 있는 현장의 감각과 논리로 집행부를 선도한다는 소리는 이번 사태로 인하여 모조리 빈말이 되었다. 현장조직과 연결되어 있는 전국적인 활동가조직이 기를 못 펴는 상황에서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겠는가 말이다.


자기정화 능력이 없는 집단의 도덕적 불감증

노힘 회원들에게 이상욱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면 대개 반응이 우리보고 어떻게 하란 말이냐는 식이다. 이제는 이런 식의 반응에 솔직히 열불이 나는 것을 넘어 측은한 심정이 든다. 회원들 스스로가 주변에서 엄정한 규율과 혁명적 결기를 접하지 못했거나, 조직세에 대한 열망에 취해서 진실을 보지 못하는 것일게다. 해방연대(준)의 전신이었던 평등연대는 2001년도 효성투쟁으로 제기된 울산지역총파업에 조직의 입장과 달리 소극적이었던 당시 수석부위원장(당시 위원장은 노힘회원이었던 이상욱)을 포함한 현대자동차 회원 8명 전원을 제명한 적이 있다. 이런 결기를 접하지 못했던 노힘은 도덕적 불감증을 거의 집단적 정서로 만들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해방연대(준)은 최근 공문을 통해 현대자동차 임원으로 있는 노힘 회원들을 중징계할 것을 요청한바 있다. 여기에 대한 노힘의 반응은 타조직의 내부문제에 간섭하지 말라는 식이었다. 보수정당들도 상대 당 국회의원의 품위 없는 행동에 대해 자체징계를 요구하고, 해당 정당도 여기에 어떤 식으로든 성의를 보이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다. 집회에서는 모두에게 동지라고 칭하는 사람들이 이런 식의 반응을 보이는 것은 도덕적 불감증이 이미 상당히 진행되었다고 판단하는 것이 옳다.


정치적 지도를 포기한 정치조직의 운명

사실 이상욱 집행부가 노힘의 정치노선을 가지고 조합선거에 임한 것이 아니었다. 그냥 민주노조의 일원으로 현장강화 등을 내걸고 당선되었다. 그러니 처음부터 노힘은 현대자동차 집행부를 정치적으로 강제할 근거가 없었다. 그런데 노힘은 딱히 정치노선이라고 부를 객관적인 내용이 부재했다. 그들은 강령을 갖고 있지 못했기 때문이다. 계급적 노동운동이라는 알듯말듯한 말을 즐겨 쓸 따름이었다. 강령의 부재는 결국 노힘내에서 사상이론적 권위를 가진 집단이 형성되는 것을 불가능하게 했으며, 이어서 조직내 기풍과 규율의 혼란을 낳고 말았다. 사회주의운동을 거칠게 말하면 강령놀음이라고 본다면 애초에 강령수립에 소극적이거나 불가능한 “단결”의 결과가 이렇게 되는 것은 예정된 일이 아니었나 싶다.

노동자의 힘 위기는 사회주의 운동진영의 위기로 번지고 있다. 그것은 권위의 위기이자 진정성의 위기이다. 이제 민주노총의 정체성위기와 더불어 이러한 사태에 대해 사회주의자들의 단호한 행동이 필요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