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토) 저녁 6시 민주노총 1층 회의실에서 '민주노총의 현사태에 대한 비상시국토론회'(이하 시국토론회)가 개최되었다. 이 시국토론회의 공동주최자는 소위 노동운동내에서 '좌파'로 분류되는 단체들과 현장조직들이었다. 대부분 민주노총 지도집행부의 즉각 사퇴와 비대위의 구성, 그리고 이를 통해 민주성,자주성,계급성 등 조직내부의 혁신을 이루고 하반기 투쟁을 돌파해야 한다는데는 이견이 없었다. 단지 즉각적인 행동이 필요한 시점에서 위원장실 점거, 16일 민주노총 집회에서 이수호위원장에 대한 야유등의 행동을 조직하자는 문제로 논란이 있었으나, 결국 토론회 주최단체 대표자들이 중심이 되어, 지도부 즉각 사퇴를 포함한 내용의 현장단위 서명, 16일 민주노총 집회에 시국토론회 참가자 명의의 결의문 배포, 18일 단위노조 대표자회의 대응, 비상대책기구의 건설 등 4가지 실천사항을 결의하고 토론회는 마감되었다.

토론과정에서는 지역 현장에서 겪고 있는 여러가지 어려운 점들, 예를 들어 민주노총 명의의 유인물조차 배포하기 힘든 실정 등이 이야기 되었고, 민주노총 조합원의 참여를 강화하고 내부 민주주의를 강화하자는 등 '좋은' 제안들이 많이 나왔으나, 핵심적인 문제제기는 빠져있었다. 그것은 바로 비정규직 투쟁을 외면하고 열사투쟁을 망쳤던 현대자동차민주노동자투쟁위원회(이하 민투위)가 토론회의 주최로 참여한 것이었다. 첫발제를 맡았던 김태연 민주노총 전 정책국장은 발제를 통해 우리가 이 시국토론회를 시작으로 행동하지 않는다면, 이런 비상식적인 민주노총의 대응이 관례화되고 결국에는 이번 비리사건과 유사한 사건이 터져도 대응하지 못할 것이라는 발언을 했다. 그런데 이러한 인식이 왜 소위 말하는 좌파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것인가? 열사투쟁을 배신하고도 한국 최대노조인 현자노조의 집행부를 유지하고 있는 민투위가 민주노총 지도부 총사퇴를 말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은 앞으로 비정규직투쟁을 방기해도 좋다는 관례를 만드는 것이 아닌가? 이런 상황을 그냥 두고 앞으로 어떻게 비정규직 철폐투쟁을 강화하겠다는 것인가? 이런 사태! 를 그냥 두고 민주노총의 혁신을 이야기하는 것이 도대체 진정성이 있는 것인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사태를 안이하게 보고 있는 것은 민주노총 집행부 뿐만 아니라, 시국토론회에 참석한 동지들 또한 마찬가지다. 이번 민주노총 사태는 집행부를 사퇴시키고 비대위를 구성하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핵심은 민주노총을 어떻게 혁신시킬 것인가 하는 것이다. 어떻게 곪아터지기 직전인 노동운동판에 새로운 주체를 형성하고, 조합원 참여 확대와 민주주의를 강화시켜 낼 것인가 하는데 있다. 민주노총 지도부 사퇴와 비대위 구성은 그렇게 하기위한 한 계기일 뿐이다. 어떻게 민주노총을 혁신하겠다고 하면서, 열사투쟁을 배신하고 비정규직 투쟁을 방기한 세력과 함께 비대위를 구성하고 민주노총을 혁신할 수 있겠는가? 더더욱 가관이었던 것은 민주노총 집행부의 즉각 퇴진에 동의한다면 모든 세력과도 함께 할 수 있다는 '고뇌에 찬 결단'까지 제안되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지금의 사태의 핵심을 민주노총 집행부의 즉각 사퇴에 모든 초점을 맞추고 있는 집행부 장악 논리의 결정판이다.

나는 시국토론회 자리에서 민투위의 토론주최 참여에 대해서만 문제를 제기했는데, 그 자리에 참석한 민투위 의장은 '당신 나만큼 투쟁해봤냐'는 어처구니없는 질타만 되돌려 받았다. 말은 잘못했다고 하는데 전혀 잘못하지 않은 태도로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보며, 참으로 당혹스러웠다. 이번 민주노총 사태에 대한 대응과 민투위에 대한 문제제기는 결코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두 문제가 분리되어 있는 것이라고 여기는 순간, 민주노총을 혁신하자는 주장은 그 의미의 진정성을 잃게 될 것이다. 민주노총을 바꾸고 싶은가? 그렇다면 먼저 우리 주위에서 행해지는 반노동자적 행위에 대해 철퇴를 가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