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계급정당 건설을 목표로 하여 활동을 시작한 ‘노동자의 힘’이 조직 안팎으로 적잖은 곤경에 처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계급적 좌파’를 대표하며 민주노조운동의 한 흐름을 주도한 노동자의 힘은, 연초 있었던 금속산업연맹 임원선거를 비롯해 최근 운동 내부의 주체의 문제로 붉어진 굵직한 사건들의 주인공 노릇을 톡톡히 해옴으로써 주된 비판의 대상이 되어왔다. 특히, ‘열사 규정 논란’과 ‘잠정합의’로 불법파견 투쟁에 결정적 타격을 입힌 현자노조 집행부는 이미 ‘대역죄인’으로 낙인찍혀 비판을 주저하던 이들의 원성까지 한 몸에 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정치조직으로서 관련 회원들에게 이렇다할 조치 한번 제대로 취하지 못하는 모습은 이제 우려를 넘어 분노마저 불러일으킨다.

왜 이렇게까지 오게 되었는가! 노동자의 힘이 보여준 일련의 모습들은, 덩어리가 큰 대중조직의 대표자들에게 지도력은커녕 최소한의 조절과 견제조차도 제대로 못하고 있는 조직활동의 단면을 잘 보여준다. 계급운동의 원칙을 기반으로 노동자 대중을 정치의 주체로 세워내겠다는 당초의 목표가 이미 현실에서 사라지고 조합주의 운동의 그늘 아래로 묶여버린 조직활동의 결정적인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정치조직으로서 본연의 소임을 다하지 못하고 스스로에게 불철저한 태도로 일관함으로써 운동을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를 노동자의 힘은 아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정치조직으로서 심각한 ‘정체성의 위기’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지난 4월 8일에는 노동자의 힘 소속 회원들로 구성된 ‘노동자의 힘, 혁신과 연대를 위한 모임(이하 ‘노힘혁신모임’)’이 공개활동을 시작할 것을 선언했다. 노힘혁신모임은 그간 “노동자의 힘이 사회주의 정치운동의 전망 아래 계급투쟁을 이끌어야 할 정치조직으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 점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노동자의 힘의 혁신과 계급적 좌파의 연대”를 위해 실천해 나갈 것이라 밝혔다. 그리고, “조합주의적 관성을 버리고 사회주의적 정치활동의 전형을 획득”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말이야 다 구구절절이 옳은 말들이다. 또 미루어 짐작컨대, 노힘혁신모임이 조직 내부의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그 극복을 위해 공개적인 활동을 시작하기까지는 결코 쉽지 않은 결단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노힘혁신모임이 표방한 ‘노동자의 힘의 혁신과 계급적 좌파의 연대’가 그다지 설득력을 주지 못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우선, ‘과연 노동자의 힘을 혁신할 수 있겠는가!’하는 회의감이 가장 크다는데 있을 것이다. 그것은 노힘혁신모임이 구성되기 훨씬 이전부터 이미 나타났던 조직적 과오에 대하여 단호한 내부투쟁이 없었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다음으로, ‘계급적 좌파 연대’에 대한 막연함이다. 매번 그랬듯이, 좌파 연대는 목표와 과제, 추진 경로 등이 주체들간에 구체적으로 공유되지 못한 채 당위적인 제안에 머물렀을 뿐이다. 한편, 노동자의 힘 내부의 문제로 언급된 ‘사회주의 정치활동의 부재’는 운동판 전체에 대한 문제제기로 확대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노힘혁신모임이 공개활동을 시작한 지 5개월을 경과하고 있다. 그러나, 내부 정치토론과 입장 표명 정도를 한 것 외에는 이렇다할 활동이 없어 보인다. 무엇보다도, 사회주의 정치활동을 위한 구체적인 노력과 실천이 시급히 이루어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