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998년과 2005년

1998년.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는 전국현장조직대표자회의를 중심으로 노사정위에서 정리해고제와 근로자파견제 등에 합의했던 민주노총 1기 집행부를 총사퇴시켰다. 그 여세를 몰아서 민주노총 2기 집행부로 소위 현장파 이갑용 집행부를 등장시켰다. 그때 당시 대의원대회에서는 쇠파이프가 난무했지만, 누구도 감히 문제제기하지 못했다.

2005년. 전국노동자투쟁위원회를 중심으로 민주노총 이수호 집행부가 노사정위에 복귀하는 것을 결사 저지하기 위해 두 차례나 대의원대회 때 단상을 점거했다. 그러나 같은 시기에 전노투 구성 단체였던 노동자의힘은 금속연맹 선거에서 사회적 합의주의 세력과 야합하여 집행부로 당선되었다. 그 결과 노동자의힘은 전노투에서 제명당하기 직전에 자진 탈퇴를 했다. 뿐만아니라, 단상점거 과정에서 폭력 사용을 문제삼아 전노투 구성원 일부가 경찰에 고소고발을 당했다.

똑같은 사회적 합의주의 분쇄 투쟁이었지만, 1998년과 2005년의 이 엄청난 차이는 도대체 무엇인가? 누군가 반(反)사회적합의주의 전선을 교란시켰기 때문인가, 아니면 소위 사회적 합의주의 반대파들이 힘이 없어서인가?
최근 전노투의 나아갈 바와 관련하여 전노투 내외적으로 여러 평가와 전망이 제출되고 있다. 그러나 평가와 전망은 무엇보다 질적으로 대비되는 양쪽의 모습에 대한 근본적인 진단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회적 합의주의 분쇄 투쟁은, 사회적 합의주의 반대파들은 계속 제자리를 맴돌게 되기 때문이다.


2. 사회적 합의주의 - 노동운동 지도력 위기의 산물

사회적 합의주의는 민주노조 운동이 퇴보하는 상황에서 전투성이 거세된 조합주의를 대변하는 노동운동 관료들을 통해서 표현되고 있다. 여기서 문제는 대중이 아니라 지도부이다. 경제는 장기적 구조적 불황인데, 계급 역관계에서의 자본의 압도적인 우위 때문에 대중투쟁이 쉽지 않자, 과거에는 전투성을 겸비했지만 본질적으로 조합주의적인 실리적 대중들의 요구에 적극적으로 부응하는 지도부가 형성된 것이다. 오히려 이제는 대중의 실리주의에 편승하고 심지어 부채질까지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사회적 합의주의는 발본적으로 조합주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노동운동의 퇴보와 지도력의 위기의 산물이다.

87년 이후 대공장 정규직의 임단투는 그것 자체만으로 선도투였다. 여타 미조직 중소영세 사업장에서 임금인상의 가이드라인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우리 사회의 임금 소득은 상승하였고 절대적인 삶의 질 역시 나아질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90년대 중반까지였다. IMF 이후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저지 투쟁이 실패하면서 사태는 변화했다. 계급역관계에서 자본의 절대적 우위가 관철되고 있는 상황이 도래하기 시작하였고, 비정규직이 대규모로 양산된 것이다.

그런데 외환위기가 터진 직후인 1998년도에는 아직 대중의 전투성이 살아있었고, 무엇보다 당시 민주노총 지도부가 최소한의 자주성과 민주성 마저도 져버리고 말았던 것이어서, 조합원들의 불만과 분노는 하늘을 찔렀고 그 불만과 분노를 바탕으로 전국현장조직대표자회의로 대표되는 소위 현장파는 르네상스를 맞이했다.
하지만 2005년도에는 전혀 상황이 달라졌다. 대중들의 의식은 본질적으로 조합주의에서 변한 게 없지만, 전투성이 거세되면서 아직은 민주파라고 하지만 실질적으로 노사협조주의적이고 사회적 합의주의 지도부가 여기에 편승하여 등장한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노동운동이 질적인 도약을 하지 못하자, 사회적 합의주의가 노동운동 지도부를 장악해 들어갔다.
조합주의는 본질적으로 체제를 부정하지 않는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이며 그래서 자본주의 체제를 전복하지 않는다.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중반까지 정세상 전투성을 갖췄던 조합주의는 나름대로 노동운동과 이땅의 역사에서 진보적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이젠 전투성마저 상실한 조합주의에서 사회주의 노동운동으로 양질 전화를 하지 못해서, 전체 노동운동은 고통받고 있다. 그리고 그 책임은 1차적으로 민족주의 세력도 아니고 노사협조주의 세력도 아닌 사회주의 세력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 합의주의를 진정으로 분쇄하기 위해서는 노동운동의 지도력 위기를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그리고 2005년도가 보여주는 것은 전투적 조합주의 노동운동으로는 한계에 봉착했다는 것이고, 여기에 갖혀있는 사회주의 세력들의 경제주의는 이제 극복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사회주의적 노동운동을 재구축하는 것이다. 계급성이나 연대와 단결로는, 반관료주의나 '아래로부터'만으로는 부족하다.


3. 전노투의 태생적 한계와 비경제주의 그룹들의 한계

그렇다면 지난 1년가 전노투의 활동에 대하여 어떤 평가가 가능한가? 오히려 전노투에 대한 평가의 핵심은 출발 당시부터 가지고 있었던 그 내용적 한계이다. 전노투 구성 당시, 사회적 합의주의 분쇄, 노사정 담합 분쇄라는 슬로건과 ▼ 현장으로부터 노사정 담합 분쇄, ▼ 아래로부터 계급적 단결, ▼ 민주노조운동의 계급적 복원이라는 기조를 결정했다. 그리고 그 기조들은 무엇인가 근본적인 것을 말하고자 했다. 하지만 그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사회적 합의주의 분쇄는 노동운동의 지도력을 어떻게 다시 올곧게 세워나갈 것인가, 그러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로 나아가야 발본적이다. 그러나 전노투 자체는 그동안 근본적인 원인에 착목하기 보다는 모호한 슬로건 속에서 부유했다. 참가 단위마다 사회적 합의주의 분쇄 투쟁에 대한 개념과 접근은 상이했지만, 지난 1년 동안 봉합된 상태가 지속되었다. 회의에서 자주 언급되는 "사회적 합의주의 분쇄 투쟁이 아닌 것이 없다"란 발언은 이런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제는 지난 1년간의 활동에 대한 평가를 통해서 바로 그런 태생적 한계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 다시한번 강조하지만, 그러기 위해서, 보다 발본적인 전망을 찾아야 한다. 문제는 전노투 내 사회주의 그룹들은 노동운동의 전투적 조합주의 이상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제까지 전노투의 선전선동은 노동조합이나 대중의 생존권적 요구를 모아내는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관료들의 노사정 담합에 대한 폭로, 총파업을 위한 선전선동과 각종 대회. 한마디로 경제주의에 발목이 잡혀버린 것이다. 한국 사회주의 세력들이 고질적인 경제주의라는 비판은 절대적으로 유효하다! 또다른 문제는 비경제주의 그룹들이 전노투의 태생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기에는 역량의 한계들이 있었다. 전투적 조합주의를 극복하는 것이 무엇인지 적극적으로 전노투 활동 속에서 발휘하지 못하였고 매우 미약하였다는 것은 분명하다. 정치력과 조직력의 한계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4. 잘못된 평가들

그런데 일부에서는 전노투가 출발 당시부터 사회적 합의주의에 대한 견결한 반대 세력들끼리 공투체를 구성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문제였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이는 공투체에 대한 잘못된 상을 가진 것이다. 대중적이고 공개적으로 사회적 합의주의 분쇄를 위한 공동투쟁의 과정에서 무엇이 문제이고 한계인가는 드러나는 것이지, 그것을 처음부터 예단할 수는 없다고 본다. 그렇다면 속된 말로 불순분자들을 모두 제명한다면 전노투가 다시 강화될 것이라는 결론이 도출된다. 하지만 오히려 현실은 그와는 다른 양상으로 진행되었다. 막말로 노힘이 자진 탈퇴하면서 전노투가 강화되었는가!

한편 다른 일부에서는 조직 강화론을 주장한다. 예를 들어 전노투 중앙집행부에 단위별로 책임있는 활동가를 더 많이 파견하자거나, 전노투 지역 조직을 확대개편하자거나, 조금더 나아가면 현장조직과의 연계 강화 등 아래로부터 강화하자는 주장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강화가 발본적으로 어떻게 가능한가 이다. 양적인 집중은 기능적인 사고이다. 왜 전노투라는 공투체가 강력한 집행력을 담보할 수 없었는가? 동상이몽 상태는 전노투의 내용적 수준이 높지 않았던 결과물이지, 단순한 기능적인 한계가 아니었다. 게다가 강화론의 이면에는 전노투에 올인하지 않는 그룹들은 자조직 중심주의니, 종파주의라는 딱지를 붙이게 될 소지도 있다. 오히려 강화해야한다는 당위성과 도덕률은 1998년과 달라진 2005년도에 대하여 주체적 조건에 대한 근본적인 혁신보다는 현상을 유지하자는 수동적인 자세일 뿐이다.

결론적으로 이상의 평가들은 무엇보다 서두에서 문제제기 했던 1998년과 2005년의 차이를 제대로 극복해내지 못한다. 2005년 전노투의 자화상은 집행력이 취약해서도 아니고, 지역 조직이 약해서도 아니고, 규모가 작아서도 아니고, 불순분자 때문도 아니다.


5. 노동운동 지도력의 위기에 대한 대안 - 과도강령

그렇다면 노동운동의 지도력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전투적 조합주의를 넘어 사회주의 노동운동을 재구축하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문제의식 수준에서 말한다면, 당면의 절실한 요구를 노동자 권력쟁취로 연결-상승시킬 수 있는 과도강령을 전면화하고, 과도강령에 입각한 민주노조운동 내 사회주의 분파를 구성하는 것이다. 대중의 낮은 의식과 사회주의 건설이라는 목표 사이에 가교를 놓는 과도강령을 통해서 노동운동의 지도력을 세워낸다면, 노동운동은 재도약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