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성, 성과인가 환상인가

철도노조의 투쟁이 일단락되었다. 한편에서는 이번 투쟁이 ‘사회공공적 노동운동의 싹을 키웠다’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정반대로 ‘공공성이라는 환상을 버려라’라는 극단적인 비판까지도 있다. 공공성 강화 요구 때문에 생존권 요구가 등한시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비록 조합주의적 시각에 갇혀있다 할지라도, 후자의 비판에는 일말의 진실이 있다. 바로 공공성 강화 투쟁이 조합원들의 고용안정 쟁취, 구조조정 저지 요구와 괴리되었음을 지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합원들의 생존권 요구는 승화되지 못한 채, 오히려 공공성 강화 요구와 괴리되었다

3.1 파업 당시, 지도부의 예상보다 많은 1만 8천여명이라는 조합원이 투쟁에 동참했다. 그런데 이처럼 조합원들이 강력하게 투쟁했던 이유는 다름아니라 고용불안에 따른 위기감의 발로와 구조조정에 대한 반발이었다. 물론 조합원들의 이와같은 생존권 요구는 정당했다. 관건은 조합원들의 생존권 요구가 어떻게 승화될 것인가에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공공성 강화 요구와 어떻게 결합할 것인가에 있었다. 그러나 이번 투쟁에서 공공성 강화 요구는 이에 기여했다기보다는, 생존권 요구와 괴리된 채 또하나의 병렬적인 요구사항에 머무르고 말았다. 분명 철도노조 조합원들은 실질적으로 외주화 철회, 상시적 구조조정 저지를 위해서 싸웠다. 심지어 일부 조합원들의 경우, 공공성 강화 요구는 철도노조가 대중조직이고 특히 공공부문이니까 대외용이 아니냐고 말하기도 한다.

이와같은 결과는 ‘공공성’ 개념 자체가 매우 협소화되었기 때문에 야기된 것이었다. 왜냐하면 공공철도라는 개념 자체가 할인제도 유지, 이용자 대표의 참여, 적자노선 유지 등으로만 이해되었기 때문이다. 철도공사의 상업화에 대한 철도노조의 대안인 공공성 강화는 단지 이 정도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딱 거기까지가 전부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철도노조 투쟁에 대해서 사회공공적 노동운동의 싹을 키웠다는 평가는 지극히 피상적인 평가에 머무른 것이다.


원인은, ‘사회화’ 라는 목표를 상실했기 때문

공공철도 즉 공공성 강화는 ‘사회적으로 소유하고 민주적으로 통제한다’는 사회화가 목표이다. 그 목표가 불분명하면, 공공철도라는 대안은 단지 자본주의 시장 내에서 시장의 실패를 대체하는 공공재 이상이 될 수 없다.

공기업은 법적으로 정부 소유인 만큼, 사회화를 목표로 한다면, 철도공사에 대한 운영을 철도노동자가 민주적으로 통제하고 더 나아가 실질적으로 국민이 소유하는 만큼 사회적으로 통제하는가가 그 핵심이다. 특히 여기서 민주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투쟁 고리라면, 철도공사가 무엇보다 기업 비밀을 철폐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재무제표 수준이 아니라 기업의 모든 거래가 기재되어 있는 원장(계정장부)을 공개해야 한다. 그래야 기업의 재산과 영업 상태를 소상히 알 수 있다.


운영적자와 누적 부채가 투쟁 고리였다

이번 투쟁에서 철도노조가 사회화라는 목표가 있었다면, 적극 공략해야했던 것은 4조원이 넘는 부채와 1조원이 넘는 운영적자(현재 정부가 매년 1조원 지원)였다.

정부는 철도공사가 강력한 자구노력을 선행해야한다는, 즉 구조조정을 해야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운영적자 문제 그 자체는 고용안정 쟁취, 구조조정 저지 즉 생존권 요구와 직결되는 쟁점이었다.

물론 철도노조 역시 이를 언급하기는 했다. 그러나 전면적으로 이 문제를 가지고 투쟁하지는 않았다. 그 결과 정부가 부채를 탕감해주느냐 아니냐라는 수준에서 대중적으로는 이슈가 되었고 사람들 눈에는 실상 철도공사의 주장과 다를바가 없게 보었다.

오히려 투쟁 고리는 왜 운영적자가 발생했으며, 누가 책임져야하고,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이다. 여기서 이를 위한 선결과제는 기업비밀의 철폐이다. 공공철도이기 때문에 국민들 앞에 투명하게 회계를 공개하라고 철도노조는 요구했어야 했다. 그래서 부실경영이나 관료주의에 대해서 철도노조가 폭로할 수 있었어야 했다. 최근 감사원 감사 결과를 보면, 철도공사는 공사 전환 당시 설립한 12개 자회사 중 10개가 부실경영 때문에 적자였고, 그나마 그 12개 모두 급조된 자회사였다. 또한 17개 전체 출자회사 임원의 80%가 (구)철도청 관료였다. 어이가 없는 것은 부실 자회사 설립에 관계된 자가 바로 작년 (구)철도청 러시아 유전개발 의혹사건으로 구속된 인물들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운영적자 역시 고속철도 건설 부채에 대한 이자 때문이다. 고속철도 건설 사업비 중 상당액을 정부가 (구)철도청에 떠넘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정권과 정부 관료, 그리고 철도공사 경영진들은 노동자와 서민들에게 책임을 전가시키려 하는 것이다. 따라서 철도노조가 노무현 정부의 관료들, 더 나아가 철도공사 경영진들의 부패와 무능을 적극적으로 폭로하고, 운영적자와 누적부채의 책임이 바로 그들에게 있다는 것을 분명히 했어야 했다.
이와같이 기업비밀 철폐를 약한 고리로 해서 철도노조가 정부의 정책, 철도공사의 경영 모두를 폭로하고 투쟁해 들어갈 때, 노동자가 철도공사의 운영을 민주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길이 닦인다. 이런 투쟁 없이 철도서비스 이용자 대표 한명이 사외이사로 참여해서는 한계가 많다.


분명 사회공공성 강화라는 투쟁방향은 노동운동이 일보전진한 것은 맞다. 그러나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투쟁에서 공공성 강화 요구는, 공공부문이기 때문에 부가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어설픈 공공성은 조합원들의 생존권 요구와 괴리된 채 힘을 발휘하지 못할 뿐이다. 공공성 강화라는 투쟁 요구에서 사회화라는 목표가 분명할 때, 그러한 한계가 극복될 수 있다. 이번 철도노조의 파업 투쟁 역시 마찬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