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 비정규직 투쟁을 돌아보면 비정규직 법안개악을 중심으로 한 공방과 불법파견철폐투쟁, 건설일용직,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의 87년을 연상케하는 치열하고도 절박한 투쟁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노무현 정권과 자본측의 비정규직 개악기도는 천행으로 민주노동당 의원들의 상임위 점거 전술로 지연되고 있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이 소원하는 비정규직 권리입법의 가능성은 요원하다. 그것이 현재의 계급역관계를 정확하게 보여주는 양상이다. 정치적 노동운동이 확보한 진지의 수준은 적에 대한 공세를 취할 수 있는 고지가 아니라 안간힘으로 적의 공세를 막아내는 참호정도인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보여준 당사자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의제의 중요성과 사회적 관심에 비해서 높지 못하다. 이는 노동자들의 생존권 투쟁 각각이 갖고 있는 치열함에 비해, 그리고 주체들의 진정성과 비교되는 것이다.

이러한 상태는 비정규직 운동의 조직력의 한계에도 원인이 있지만 주체의 자각과 연대수준이 높지 못한데 결정적인 원인이 있다. 특히 비정규직 운동은 조합주의에서 탈피하지 못함으로서 기대한 만큼의 진취성을 확보 못하고 있다.
불파투쟁의 경우 투쟁의 정당성이 분명하고, 원,하청 공동투쟁이 제기되고 있지만 투쟁의 현장을 뒤덮고 있는 것은 기업별 노조가 갖는 협소함이다. 현장노동자의 대표성을 공장전체로 확대하고, 종국에는 공장의 통제을 위한 공장위원회 건설요구는 아직 나타나고 있지 못하다.
덤프연대가 보여주었던 치열함은 그 요구에 가서는 참으로 맥 빠지는 것이었다. 주요한 요구였던 경유값인하와 과적단속완화는 참여연대가 제기했다면 훨씬 신선한 요구였을 것이다. 지금 덤프연대에게 필요한 것은 공동물류를 통해 지입으로 해방되고 고용안정과 적정임금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동물류를 위한 (가칭)물류공사를 설립하고 모든 트럭을 유상으로 매입하고 운수노동자를 고용해야 한다. 이는 이미 서울시내버스의 준공영화를 통해 제한적으로 달성된 성과에 비추어 보더라도 훨씬 현실적인 요구인 것이다. 물론 이러한 요구는 주체들의 또 다른 노력에 의해 진취성이 확대될 것이다. 즉 물류공사의 통제를 위한 공장위원회를 건설하는 것이 노동자들의 요구와 계획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요구에 있어서 조합주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사회주의자의 비정규직 운동에 대한 개입과 투자가 아직 모자라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전국비정규직연대회의에 주목하고 이를 정치적으로 강화하기 위한 계획이 시급히 요구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말을 하기 전에 민주노동당이 가끔씩 정책이라고 내세우는 비정규직 대책이 사람들에게 실소를 낳게 하는 현실이 지적되어야 할 것이다. 채권발행이나 임금연대니 하는 식의 국적도 사상도 없는 방안이 민주노동당에서 나올수록 민주노동당에 대한 현장의 절망과 생소함은 가시지 않을 것이다. 결국 민주노동당이 사회주의 정당으로 강화되는 것만이 이문제의 해결책인데, 그 길은 아직 시원한 답이 없다는 것이다. 다만 비정규직 철폐운동본부가 당원들의 열망으로 만들어지고 활동을 본격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말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을 따름이다.
과거 산별노조운동이 지녔던 진취성은 바로 프롤레타리아를 하나의 계급으로 조직한다는 계획으로 그 운동이 제기되었다는 점이다. 그것은 하나의 계급으로 조직된 노동자들은 자본의 방해를 뚫고 계급해방의 의식으로 단결할 거라는 낙관적 전망과 결합되어 있었다. 제국주의 시대에 노동귀족이 등장하면서 이러한 낙관이 얼마나 유효한지는 논란거리지만 아직도 하나의 계급, 하나의 조직이라는 생각은 변함없이 진취적이다. 그리고 여기에 더하여 사회주의만이 현재의 노동자의 어려움을 덜 수 있다는 생각이 결합되어야만 그 운동이 보다 보편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운동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비정규직운동과 사회주의의 결합은 절실하고도 필연적인 요구인 것이다.

이제 비정규직운동은 노동조합 조직운동에서 소외된 자들의 운동이라는 면에서 갖는 도덕적 우위, 사회적인 동정과 지지를 넘어설 것을 요구 받고 있다. 그래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이시기에 장쾌한 계획을 마련하고 과감히 실천해야 한다. 투쟁방식에서도 파업을 넘어 가두로 진출하고 이를 통해 강력한 투쟁력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울산플랜트 노조가 보여주었던 삼보일배도 그것이 전경 몇 명을 때려잡는 것 보다 훨씬 파괴력이 있었다는 점에서 비정규직 노동운동의 주체들이 지금보다 더욱 과감해야 한다는 교훈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