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사회에서 농업은 죽어가고 있다.

10월 27일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에서는 삼엄한 경비 속에 10분만에 쌀 관세화유예협상에 대한 비준동의안이 통과되었다. 쌀농사를 비롯한 농업에 대한 완전한 포기방안이 본회의 통과만을 남겨두고 있다.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11월 18일 부산 APEC 회의에 올 농산물 수출국의 눈치를 보며, 그 전에 반드시 비준안을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이고 있다.
90년대 이후 정부는 세계화시대에 우리나라 공업생산품의 수출을 위해 무역장벽을 낮추어야 한다는 이유로 농산물의 수입장벽을 낮추었다. 싼 값으로 외국의 농산물들이 물밀듯이 수입되었고, 이는 노동자들의 임금을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싼 외국농산물이 늘어나며 우리나라 농산물 가격 역시 따라서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 이에 맞서 살아남기 위해 몇몇 농가가 틈새시장을 개척하여 유기농 농산물로 전환하는 등의 고급화 전략을 실시하고 유통구조를 개선하여 가격 경쟁력을 갖추었다. 하지만 이와 같은 틈새시장 개척은 모든 농가에게 일반화되기는 어렵다. 수박농사가 잘 된 다음 해에 많은 농가들이 수박농사로 몰리면서 가격이 폭락해 밭을 갈아버리는 것과 유사한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리고 상품작물을 판매하기 위해 하우스를 세워 계절 구분 없이 농사를 짓는 바람에 차츰 지력이 쇠해져서 몇 년이 지나면 농산물의 생산성이 급격하게 하락하기도 했다.
정부는 농업부분의 희생을 통해 산업자본의 이익을 보장하려는 의도를 이번 쌀시장 개방협상에서도 여실히 드러내보이고 있다. 정부는 쌀시장 개방에 맞먹는 양을 의무수입물량으로 수입하기로 하는 한편, 이면협상을 통해 중국, 캐나다, 아르헨티나 등의 과일과 축산물에 대한 수입장벽을 대폭 낮추기로 했다. 이로 인해 더욱 큰 희생을 당할 농민들에 대해서는 5조 9천억의 농가부채 상환을 3-5년 동안 유예해주겠다는 임시방편만 내놓고 있을 뿐이다.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해, 농업을 보호하자.

농업시장 개방에 반대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식량주권의 사수’를 주요한 이유로 내세운다. 식량이 무기로 사용될 수 있기 때문에 민족주권을 사수하기 위해 식량의 자급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쌀개방에 맞서 식량자급률을 일정수준 이상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점에서 이 논리는 일정부분 합당하다. 그러나 완벽한 의미에서의 식량주권 사수는 농산물이 100% 자급자족되는 폐쇄된 경제구조를 만들지 않는 한 실현되기 어렵다. 한편, 자본주의가 발전함에 따라 농민이 분화되는 동시에 농업분야가 쇠퇴하는 것은 자연스럽다고 이야기하며, 농업의 유지와 빈농의 생존을 위해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공격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들은 현재 농촌의 실제모습을 설명해줄 수는 있으되, 구체적으로 농촌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 주지는 못한다.
농업은 우리 사회의 유지를 위해 반드시 보호되어야 한다. 지금 자본주의사회에서처럼 농업이 쇠퇴하여 농지가 차츰 축소되거나 상품작물을 키우기 위해 땅을 혹사하는 것이 이어진다면, 자연은 황폐해지고 인간이 생존하기는 어려워진다. 그렇기에 국가가 나서서 농업을 보호하고, 농업을 시장의 영역에 맡겨두는 것이 아니라 계획적으로 통제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우선, 농가부채를 탕감해주고, 공공재정을 이용하여 개별 생산자에게 직접 보조금을 지불하는 직접지불제를 대폭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우리나라에 필요한 기본적인 농산물에 대한 가격보전을 통해 식량자급률을 높이고 생태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도록 만드는 것도 필요하다. 이것이 우리사회를 유지할 수 있는 농업정책의 기본 방향이다.